< -- 조작된 테르켓트의 악몽을 아는가 -- >
어찌되었건 시간이 꼭 필요한 일이 있다. 시간이 흐르지 않고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어떤 것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시간이 필요하다.
테레켓트의 하층민들이 에테르 수련법을 익히고 또 몬스터를 사냥하기 시작한 후로 세진과 자넷이 조바심을 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일이 껑충껑충 건너뛰어서 진행이 되지는 않는다.
천천히 시간이 흘러가서야 효과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하층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기 마련이다.
로디아드의 귀족들이 오랜만에 대회의를 열었다.
거멘단트의 가주가 회의를 주관하는 회장으로 사람들의 발언권을 조절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요즈음 테르켓트에서 생산성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이유가 그들 두 사람 때문이라는 겁니까?"
자히락의 가주가 한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히락의 가주는 얼굴이 각이 진 호남형의 인물이었고, 지금 다섯 가주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었다. 아직 마흔이 되지 않은 자히락의 가주는 아직은 애송이 취급을 은연중에 받고 있었다. 그래도 그를 받쳐주고 있는 자히락 가문의 원로들이 있으니 그가 가문을 이끌고 다른 가문들과 견주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맞습니다. 그들이 테르켓트에 에테르 수련법이란 것을 퍼뜨렸습니다. 그것을 몇 달만 익히면 하급 몬스터 정도는 사냥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무기에 에테르를 실을 수 있게 된다는 말이군요. 그런 능력을 고작 몇 달에 익힐 수 있게 한다는 것은 그 수련법이 꽤나 고급이란 소리고."
테르렉치의 가주가 상황 설명을 자세히 했고, 데글의 가주가 분석을 내 놓았다.
테르렉치 가문은 이곳 로페소에테에서 가장 상업을 크게 하고 있는 가문이었고, 때문에 정보을 수집하는 것도 가장 빠르고 정확한 가문이었다. 물론 모든 가문에서 나름의 단체를 둬서 정보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테르렉치 가문에 비하면 한 수 쳐진다 는 것이 공통된 평가였다.
그것이 테레렉치의 가장 큰 힘이기도 했다.
"겨우 테르켓트 따위가 몬스터 사냥에 매달리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제재를 가해야합니다."
털거일의 가주가 길게 이야기 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맞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자히락의 가주도 같은 의견을 냈다.
"맞습니다. 우리 로디아드의 귀족들에게 맡겨진 일이 있는 것처럼 페이러드, 슬메드, 에프레드, 테르켓트는 제각각 해야 할 일이 있고, 맡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테레켓트의 일은 몬스터 사냥이 아니라 농사와 목축입니다. 그들이 에프레드를 먹여 살려야 에프레드가 소르데드를 받치고, 소르메드가 우리 로디아드와 페이러드를 위해 봉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테르렉치의 가주도 생각이 같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방법만 남았을 뿐, 테르켓트에 제재를 가해야하다는 결론은 내려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거멘단트의 가주가 다른 가주들을 보며 방법을 물었다.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이참에 악몽을 불러 오지요. 그리고 그와 함께 그 둘을 잡아 와서 정체를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테르렉치의 가주가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으음. 악몽이라. 좀 이르지 않습니까?"
거멘단트의 가주는 조심스러운 어조였다.
"그렇다면 그자들이 영향을 미친 쪽으로만 구멍을 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과거의 기록을 보아하니 악몽을 일정 지역으로만 불러들인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자히락의 가주가 새로운 의견을 냈다.
"어차피 그 쪽은 전부 썩은 과일이라고 생각하고 버려야 합니다. 그것들이 다른 과일들까지 영향을 주게 되면 우리는 테르켓트 전체를 버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데글의 가주는 에테르 수련법을 알고 있는 테르켓트 전부를 지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흐음. 그것도 그렇기는 하지요. 하지만 간혹 그것들 속에서도 원석이 있는 경우가..."
털거일의 가주가 인재에 대한 욕심을 냈다.
"그건 안 될 말입니다. 일단 그 수련법을 퍼뜨린 둘을 잡아다가 수련법을 확보하는 것에서 끝내야 합니다. 테르켓트 출신 따위를 원석이니 뭐니 하면서 회위할 이유는 없지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로디아드도 포화상태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는 로디아드에서 옥석을 가리는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하물며 테르켓트 따위를 로디아드에 들일 수는 없지요."
테르렉치의 가주가 강경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그러자 털거일의 가주도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자 여기 지도가 있습니다. 이쪽 여기가 문제인데, 여기하고 여기, 그리고 여기를 트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와 여기를 막아야죠. 그리고 이 안에 있 는 테르켓트는 모두 죽입니다. 악몽의 때에 테르켓트에서 에트레드로 피난민을 받아주던 것도 이번에는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이쪽과 이쪽으로 막아서 몬스터들이 테르켓트의 다른 지역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이전에 비해서 더 많은 병력을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겠군요."
거멘단트의 가주가 지도를 펴고 설명을 하자 자히락의 가주가 병력이 많이 필요할 거라며 걱정을 했다.
사실 사람들을 많이 동원하는 것은 그만큼 지출이 많아지는 일이다. 당연히 꺼져질 수밖에 없다.
"테르켓트 절반은 구해야 하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뭘 그렇게나. 지도를 봐도 삼분의 일이 조금 넘을 뿐인데요."
거멘단트의 가주가 절반이라고 했지만 데글의 가주는 삼분의 일이 조금 넘는다고 했다.
그것은 이번에 그들이 죽이기로 결정한 테르켓트 사람들의 비율을 말하는 것이었다.
"참, 그 둘은 누가 잡아오겠습니까? 우리들이 모두 사람을 내서 함께 움직일까요? 아니면 한 가문에서 책임을 지는 것이 좋을까요?"
데글의 가주가 세진과 자넷을 잡아 올 사람들에 대해서 물었다. 하지만 그 물음은 하나마나였다. 새로운 수련법에 대한 문제이다보니 어느 가문도 빠질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그 수련법을 한 가문에서 독점했는데 그것이 매우 유용한 것이라면 가문사이의 균형이 깨질 염려도 있었다.
"뭐, 다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군요. 그런 각 가문에서 실력있는 두 명씩을 내서 그들을 잡아오게 하지요."
데글의 가주가 그렇게 제안을 했다.
"열명? 수가 많지 않습니까?"
자히락의 가주가 그런 전력이 필요한가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보자는 이야깁니다."
데글의 가주는 그렇게 말했고, 다른 가주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쳤구만. 결국 그렇게 하기로 했단 말이지?"
세진이 혀를 찼다.
로디아드의 귀족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다고 해서 그 내용을 확실하게 확인하라고 했더니 어리가 회의 내용을 전부 알아가지고 왔다.
그런데 그 내용이 테르켓트 인구의 삼분의 일을 죽이겠다는 내용이란다. 그것도 이번에 에테르 수련법이 퍼진 구역을 격리해서 몬스터들을 불러들여 모두 죽을 때까지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막을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 그래도 좋은 소식이 있잖아요.
"뭐? 그 놈들이 나하고 자넷을 잡으러 온다는 소식?"
- 네. 그런데 전부 익스퍼트 상급 정도의 실력이에요. 그러니 좋은 소식이죠. 그들은 걱정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지금 두 분의 실력이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잖아요.
"마스터만 아니라면 어려울 것은 없지. 그런데 세진, 어떻게 할 거야?"
"뭘?"
"뭐냐니, 테르켓트의 사람들이 왕창 죽어나가게 생겼다고."
"어리야, 테르켓트 사람들 테멜에 모두 수용할 수 있냐? 이번에 지도에서 표시된 지역에 있는 사람들 전부 말이다."
- 그거야 당연하죠. 어리는 5등급인 것이에요. 음, 초원 테멜에 일단 수용을 했다가 몬스터들이 정리되고 나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면 될 것 같아요.
"꼭 제자리로 갈 이유는 없지."
그런데 세진이 어리의 말에 이어서 엉뚱한 소리를 한다.
"무슨 말이야 세진?"
자넷도 세진이 딴 생각을 한다고 느꼈는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었잖아.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모두 이곳 로페소에테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주를 시키는 거야. 신의 은총이니 뭐니 하는 몬스터 방어막이 없는 곳에 말이야."
"그럼 많이 죽을 텐데?"
"몬스터가 약한 곳을 찾아야지. 하급 몬스터들이 몰려 있는 곳이 있을 거 아냐? 중급이나 상급은 안 보이는 그런 곳 말이야. 거기에 사람들을 이주시켜야지."
"아, 무슨 소린지 알겠다. 결국은 사람들을 몬스터방어막 밖으로 끌어내서 몬스터와 싸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거구나?"
"그렇지. 그리고 사람들에게 로디아드의 귀족들이 벌였던 테르켓트의 악몽에 대해서도 알려줘야지. 그렇게 되면 몬스터들 사이에서 살아야 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 않을까?"
"글쎄? 나 같으면 안전한 곳에서 꺼내서 몬스터 무리 속에 던졌다고 욕을 할 것 같은데?"
"그럼 이렇게 하자. 일단 장소를 물색해서 도시를 건설하는 거야. 그리고 근처 몬스터들은 대충 정리를 해 두는 거지. 그리고 나서 악몽이 시작되는 사람들을 그냥 납치해서 그 마을로 곧바로 보내버리는 거야. 어리가 수고를 하면 크게 어렵지는 않을 거 야. 그렇지?"
- 일이 많은데요? 납치가 그렇게 쉬워요? 히잉. 사람 수가 얼마나 많다구요. 그 사람들을 어떻게 모두 납치를 해요.
"엄살 피우지 마라.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렇지 어리야? 어리는 능력자니까."
- 세진님 너무해.
어쨌거나 어리가 투정을 부려도 일은 제대로 할 것이다. 먼저 장소를 정하고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리는 테멜 안에서 재료만 있으면 뭐든 만들 수 있다. 그것도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그러니 집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테멜 안에서 만들어서 그냥 꺼내 놓으면 된다. 마치 붕어빵을 찍어 내듯이 집을 찍어 낼 수 있는 어리인 것이다.
그것도 재료는 행성에 널려 있는 흙과 나무들을 이용하면 되니 어려울 것도 없다. 다만 무수한 반복 작업을 해야 하니 그게 지루할 터다. 어쨌거나 그렇게 일단 도시를 만든 후에는, 그곳으로 테르켓트의 사람들을 악몽의 날에 구해서 이주시키는 것이다. 못해도 30만 이상의 인원을 이동시켜야 하는 어마어마한 작업이다. 그것도 몬스터들의 위협에서 구해주는 선행을 배풀어서 사람들이 고마워하게 만들어야 하는 임무도 있다. 그래야 이후에 사람들을 이끌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사실 그런 일은 거의 전부 어리가 해야 하고, 어리가 아니면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어리의 투정 정도야 웃으며 받아줄 수밖에 없는 세진이었다.
"우리는 로디아드에서 온다는 그 녀석들을 상대해야지."
"왜? 그 놈들도 그냥 테멜로 납치해서 고생을 좀 시키지?"
"그것들이 그래도 익스퍼트 상급이란 말이지. 테멜 입구 정도는 그들의 기운으로 빠져 나올 수도 있어. 알잖아. 테멜 입구도 강력한 에테르에는 흩어지는 거 말이야."
"그건 그렇지. 그런데 다 죽일 거야?"
"물론이야. 이번에 악몽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동원된 놈들은 죽일 수 있으면 모두 죽일 거야. 무슨 일인지 모르고 동원된 놈들은 예외로 하고."
"그럼 간부들까지만 손을 보겠다는 소리네? 흐응, 그래 그 정도면 괜찮겠다. 그 놈들 테르켓트의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는 놈들이니까. 죽어도 어쩔 수 없는 거지."
자넷도 세진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