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65화 (165/298)

< -- 조작된 테르켓트의 악몽을 아는가 -- >

"휴우, 이건 뭐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버벅거리고 있으니 답답해 죽겠네."

자넷이 어리의 홀로 들어서면서 투덜거렸다.

"이제 몇 달 지나지도 않았는데 뭘 그래? 전에 라훌족들 봐봐, 거긴 툴틱 때문에 소식이 빨리 퍼지고 그랬는데도 몇 년은 걸렸었어."

"그건 알지만. 여진 유독 정체된 것 같단 말이야. 아니 에테르 수련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문이 겨우 테르켓트의 20%에도 퍼지질 않고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자넷은 일일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서 그런지 짜증을 내고 있었다.

"이제 수련관을 만들어서 사범들을 배치하면 훨씬 나아지겠지."

"본격적으로 나서면 분명히 태클을 거는 것들이 있을 텐데? 그건 또 어쩔 생각이야?"

자넷이 걱정이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아직 미루고 있는 거잖아. 그래도 마스터는 된 다음에 수련관을 열려고 말이야. 그래야 로디아드에 처박혀 있는 능구렁이들이 기어 나와도 상대를 할 수 있겠지."

세진이 슬쩍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사실 그게 문제였다.

빠르게 에테르 수련법을 전파할 방법은 많은데, 그렇게 되면 곧바로 로디아드에 있는 실력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자라는 싹을 짓밟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도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상황이라 걱정이었다.

아직까지는 에프레드 정도나 소르메드 정도에서 이야기가 되고 있겠지만 곧 페이러드와 로디아드에도 테르켓트의 소식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변화를 싫어하는 기득권자들이 당연히 무슨 수를 써도 쓰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세진과 자넷은 로디아드 귀족 놈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일단 먼저 세진과 자넷을 압박할 것이 분명했다. 테르켓트나 에프레드 같은 다수의 하층민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을 주지 말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말을 듣지 않으면 세진과 자넷을 죽이려 들 것이 분명했다.

물론 수련관을 세웠다면 그 수련관과 수련관에 파견한 사범들을 죽일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수련관에서 가르치는 에테르 수련법은 어떻게든 가지고 가서 연구를 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로디아드의 지배층들이 지금까지 로페소에테를 다스려왔다.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은 테르켓트의 악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로디아드의 귀족들이 일정 기간마다 신의 은총이라고 하는 방어벽을 허물어서 생기는 일이다.

로디아드의 실력자들이 한날 한 시에 제일 외곽이 신의 은총에 들어가는 코어들을 모두 뽑아 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곳을 지키는 이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 일을 위해서는 언제나 로디아드의 최고 실력자들이 나선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로디아드 귀족들은 더 이상 평화로운 지배자의 자리를 지키기 어려 울 것이다. 아마도 무력을 동원한 공포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고 세진은 생각했다.

물론 그런 비밀이 알려진다고 해도 결국 로디아드의 귀족들이 지배자로 남을 것은 분명했다. 그들이 가진 힘은 다른 네 계급이 지니고 있는 힘을 뛰어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스터의 실력자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그렇게 큰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세진과 자넷도 마스터는 되어야 어떻게 버텨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리의 테멜 안에서 어리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빠른 속도로 수련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벌써 몇 번을 갔던 길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어리는 테멜 안에 우이동 훈련장과 비슷한 장소를 만들어서 세진이나 자넷의 수련을 도왔다. 테멜 공간 안에서는 에테르의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어리다. 그러니 그 능력으로 세진과 자넷이 수련을 할 때에 정확하게 에테르를 움직여 최고의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해서 1년도 되지 않은 지금 세진과 자넷은 익스퍼트 최상급과 상급으로 마스터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었다.

"토블이 그나마 제일 나은 것 같아. 역시 고르긴 제대로 골랐어."

"독기를 품기는 툴레친이 더 한 것 같은데 결과는 언제나 토블의 승리지. 확실히 재능은 무시할 수가 없는 모양이야."

"응. 그래서 툴레친이 속이 많이 상하는 모양이야."

"설마 그 녀석 딴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

"그런 녀석은 아니지. 자존심이 좀 상하긴 한 모양이지만 아직은 삐뚤어질 기색은 안 보여."

"다행이네."

"응. 이제 수련관 만들어서 서로 떼어 놓으면 각자의 자리에서 제 할 일을 찾겠지. 그럼 좀 더 나아질 거야."

- 토블 그 멍청이 아직 익스퍼트 초급에도 못 들었는데 뭐가 재능이 있다는 거예요? 말도 안되요.

어리가 세진과 자넷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것은 어리가 하던 일을 멈추고 홀에 있는 두 사람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어리가 다른 일에 몰두를 할 때에는 세진가 자넷에게 신경을 쓰기 어렵다.

"토블이 벌써 익스퍼트가 되면 되겠냐? 그건 너무 빠르지. 아마 몇 달은 더 있어야 할 거다. 그것도 훈련장의 효과를 봐서 그런 거지, 일반적이라면 몇 년은 걸릴 일이야."

"세진도 참, 몇 년 만에 익스퍼트가 되는 것도 빠른 거라고. 사실 라훌이나 여기에 퍼트린 에테르 수련법은 정말 수준이 높은 거라고."

"수준이 높기는 뭐가? 그래봐야 생체 에테르바디에 있는 에테르 기관만도 못한데. 사실 그 쪽이 훨씬 더 성장이 빠르잖아."

"뭐 그거야 그렇지만 그건 생체 에테르바디 아니면 안 되는 거고. 이건 일반인들이 얼마든지 배워서 익힐 수 있는 거니까 전혀 다른 문제지."

"상관없어. 라훌이나 이곳 로페소에테나 나하곤 전혀 상관없는 행성이야. 그리고 자넷도 알잖아. 이 수련법이 좋기는 해도 제대로 된 에테르 로드 수련법과는 차이가 있다는 걸. 나도 내 것을 완전히 내어줄 정도로 속이 좋은 사람은 아니거든. 사실 이건 라훌 독립군에서 만들어 낸 수련법이라고 해야 맞는 거잖아."

"그게 세진에게서 나온 건데도."

"뭐 내 건 아니지. 내 건 자넷만 익히고 있는 거니까."

"호호, 그건 그렇지."

자넷은 세진과 자신만 공유하는 에테르 로드 수련법을 생각하자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참, 어리야 어떻게 됐어?"

세진은 조금 전에 어리가 말을 걸어왔던 것을 생각하곤 어리에게 물었다.

- 칫, 둘이서만 놀다가 갑자기 제 생각이 나긴 한 모양이죠? 이래서 어리도 새로운 몸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제가 곁에 있다는 걸 알죠.

"아, 미안. 어리야. 세진도 사과해요. 어서."

자넷이 슬쩍 어리의 편을 든다.

"그래. 내가 잘못했네. 미안하다. 어리야. 그런데 넌 저번부터 몸을 만든다고 한 것 같은데 아직도 못 만들었냐?"

- 어리의 몸은 특별한 것이에요. 모랜 녀석이 열심히 만들고 있지만 만들 때마다 조금씩 이상해서 다시 만들고 다시 만들고 그래요. 에테르를 모아서 몬스터를 만드는 것은 쉬운데 그걸 변형하는 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어리는 테멜 안에서 부족 코어가 만들어 내는 몬스터들에 대한 기록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그래서 원한다면 어리도 몬스터를 테멜 안에서 생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몬스터는 어리의 지배를 벗어나 제 멋대로 행동을 한다. 그러니 아직은 몬스터 생성에 대해선 성과가 별로 없는 셈이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몬스터 생성 방법을 여럿 조합해서 새로운 몬스터를 만드는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다지 성과가 좋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짜깁기가 된 몬스터들이 나오는 것이다. 거기다가 그렇게 나온 몬스터들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거나 어리는 그런 몬스터 생성 방법을 가지고 어리가 사용할 몸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그동안 할 일이 많아서 그걸 모랜에게 맡겨두고 있었다.

- 그래도 성과는 있었어요. 이제 새로 만든 몸을 제가 제어할 수 있어요. 뭐 사실 그냥 빈 껍데기를 만든 다음에 그걸 제가 움직이는 거지만 그래도 그 껍데기가 가지고 있는 감각 기관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에요. 아직은 두꺼운 옷을 입고 장갑을 낀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죠.

"멋진데? 그럼 이제 어리도 온천욕을 윽!"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온천욕이라니욧!"

"아니, 전에 나 혼자서 온천에 있을 때에 어리가 자기는 온천욕의 느낌 같은 건 모른다고 했었거든, 그래서 그런 거지."

"어리, 너 혹시라도 전에 봤던 그런 묘한 여자 몸으로 만들고 있다면 그만 두는 것이 좋을 거다. 그래 넌 딱 보면 내 동생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몸을 만드는 거다. 음, 열넷? 그 정도면 딱 맞겠다. 너하고."

- 자넷님 설마 진심은 아니시겠죠?

"진심이다. 어리야."

- 너무해요. 어리도 베이글 되고 싶단 말이에요.

"꿈 깨! 적어도 세진 앞에선 절대 안 되."

- 칫. 미워요. 세진님도 어리가 베이글 되는 거 싫으세요?

자넷에겐 도저히 긍정적인 대답을 얻기 어렵다고 생각한 어리가 세진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우리 어리는 딱 봐도 귀여운 여동생 느낌인데? 그러니까 어리에게 어울리는 모습이 좋겠다. 자넷 말대로 귀여운 여자아이 모습이 어울릴 것 같다. 어리야."

- 히잉. 어리도 베이글, 베이글이 되고 싶어요.

"어리야 베이글은 아니어도 베이는 될 수 있잖니. 그렇게 하자. 응?"

세진은 슬쩍 어리를 달랬다.

사실 어리가 성인 여자의 모습을 하는 것은 세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진에게 어 리는 귀여운 여동생의 이미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글래머 스타일의 여자가 나타나면 아무래도 적응이 될 것 같지 않았다.

- 몰라요.

세진은 어리가 삐친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의 말을 들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리는 세진의 뜻을 어기지 않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어때? 분위기?"

세진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어리에게 물었다.

어리는 넓은 감지 범위를 이용해서 로디아드를 감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디를 감시해야 할지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로디아드의 최고 권력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또 따로 몇몇이 모여서 음모를 꾸미는 장소들을 하나하나 알아냈다.

그러다가 테르켓트의 악몽에 대한 것도 알게 된 것이다. 벌써부터 로디아드에서는 다음 테르켓트의 악몽에 대한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었다.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소리가 대부분이었지만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모두 수긍하고 있었다.

몇 년 내에 그들이 다시 테레켓트의 악몽을 만들 것은 분명해 보였다.

- 아직은 에테르 수련법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았어요. 제가 놓치지 않았다면 말이죠. 대신에 로디아드의 권력 구도에 변화가 생길 조짐이 있어요.

"응? 어째서?"

- 당연히 후계 때문이죠. 아시는 것처럼 로디아드의 많은 귀족들은 실제론 거대 세력에 속해 있어요. 거멘단트, 자히락, 테르렉치, 데글, 털거일 이렇게 다섯 가문이죠. 그 중에서 이번에 거멘단트의 후계자가 문제가 생겼어요. 그 동안 금이야 옥이야 키운 후계자가 암습으로 죽었거든요.

"암습? 누가?"

- 데글 가문에서 보낸 암살자였죠. 그런데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고. 어쨌거나 죽었어요. 후계자가. 그런데 문제는 거멘단트의 주인이 너무 일찍 가지치기를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거멘단트의 후계자 자리를 채울 마땅한 사람이 없죠.

"그럼 아들들을 다 죽였다는 거야?"

- 죽이긴요. 그냥 페이러드로 내려 보낸 거죠. 일단 로디아드에서 페이러드로 내려가면 다시 신분 상승을 하긴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다시 불러올리면 되지 않나?"

- 정통성에 흠이 생기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곁에 두고 있던 딸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후계자로 삼아야 하는 거죠. 뭐 그런 일이 아주 없던 것도 아니어서 그것도 가능하긴 해요.

"그럼 되는 거지 무슨 권력 구도의 변화야?"

- 그걸 데글 가문에서 원했다는 것이 문제죠. 거멘단트에서 내세울 여자가 데글의 후계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거든요. 그래서 이후에 두 가문이 하나로 묶일 가능성이 있는 거죠. 새로운 거대 가문의 등장이라고 할까요? 다른 자히락, 테레렉치, 털거일은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기는 거죠.

"그거 거멘단트도 알고 있는 거야?"

- 일단 데글에서 후계자를 죽인 것은 모르고, 딸 중에서 데글의 후계자와 깊은 관계 인 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딸을 후계자로 삼은 거예요. 거맨단트의 가주도 데글과 연합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두 가문이 완전히 하나가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딸의 세대에선 두 가문이 한 몸처럼 뭉쳐서 권력을 키울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린 거죠.

"재미있네. 그럼 나머지 세 가문에서도 어떻게든 수를 내려고 하겠네?

- 네에. 그래서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아요.

"음, 감시를 잘 해야겠다. 내부에 문제가 생기면 그걸 풀기 위해서 외부에서 사건을 만드는 것은 누구나 생각하는 방법이니까 말이지."

- 네에. 세진님 어리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네요. 그럼 어리는 또 일하러 가요.

"그래 수고해라."

"어리 안녕!"

세진과 자넷은 어리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바위언덕 저택의 침실로 테멜 출구를 열고 나왔다. 이제 다시 몬스터 사냥꾼 부부로 활동을 해야 할 때인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