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63화 (163/298)

< -- 로페소에테에서 토블을 만나다 -- >

토블은 자신이 너무 과식을 했다는 사실을 정말 늦게 알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 토블은 한쪽 구석에 앉아서 이번에 모신 주인 부부가 언덕 윗부분을 이리저리 다듬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윗돌을 옮기고 혹은 창과 칼로 잘라내서는 한쪽의 움푹 들어간 부분을 메우고, 또 돌출된 부분을 깎아 내는 일을 두 주인은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확실히 토블이 보기에 두 주인은 굉장했다. 토블이 했다면 며칠은 고생해야 할 일을 두 주인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뚝딱 해치웠다.

"뭐 이 정도만 하자. 어차피 위에 올려놓을 거잖아."

"그래. 지하실을 만들 것도 아닌데 바닥이야 별로 상관없지. 수평만 적당히 맞으면 되는 거야."

"그럼 이제 꺼내도 되나? 그런데 어리 이 녀석은 왜..."

세진이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 순간 세진의 어깨 위에 하얀색 앵무새 하나가 나타났다.

= 어리는 다 듣고 있었어요. 준비도 끝냈어요.

토블은 두 주인이 하는 일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세진 주인님의 어깨에 나타난 동물을 보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한 마디를 했다.

"닭이다."

= 누가 닭이라는 거야! 이 멍청아! 나는 앵무다. 앵우. 그것도 고귀하신 왕관 앵무 되시는 분이란 말이다!

"으아앗. 닭이 말을 한다!"

= 닭이 아니라고 하잖아. 이 멍청한 녀석아.

콕콕콕콕!

"아악, 아악, 악, 아파. 아프다니까!"

= 그러니까 다시 말 하는데 나는 어리 앵무님이다. 앞으로 나를 부를 때에는 어리님이라고 불러. 앙? 알았어?

토블은 정신이 없었다.

닭처럼 생긴 것이 나타나서 닭이라고 했다가 엄청나께 쪼인 것도 쪼인 것이지만 이제보니 그 닭이 보통 닭이 아닌 모양인지 말을 하고 있었다.

"어버버버. 어버버버."

= 세진님. 아무래도 잘못 선택한 거 아닐까요? 어째 얘가 좀 모자라 보이지 않아요?

""글쎄? 아까까진 제법 똘망똘망 했다만? 거기다가 저 녀석 보기보다 에테르 수용 능력이 좋은 몸을 가지고 있다고."

= 그래서 뽑은 건 알지만 그래도 감히 저한테 닭이라니요? 그건 정진이 이후로 최대의 모욕이라고요.

"하하하. 어쩔 수 없지. 이곳 행성에는 날짐승이 거의 없으니까 말이야. 새처럼 생긴 것은 닭이 그나마 제일 접하기 쉬운 동물이라 그런 거지. 저 녀석은 부리에 날개가 달린 것은 모두 닭으로 보일 거다."

= 헹, 멍청하니까 그건 거예요. 감히 이 몸을 보자마자 닭이라니.

어리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지만 또 이해를 하지 못할 상황도 아니었다.

토블가 태어나서 본 부리에 날개 달린 동물은 닭이 전부였다. 조금씩 모양이 달라도 모두 닭이라 부르고 있으니 토블도 어리를 닭이라 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아는 것 만큼만 보이니 어쩔 것인가.

"자, 일단 집부터 꺼내 보자. 모두 세 부분이라고 했지?"

= 그냥 한꺼번에 꺼내도 되겠네요. 나눠서 꺼낼 필요 없이요. 봐요 집을 놓을 곳이 저렇게 평평한데 굳이 따로따로 꺼낼 이유가 없죠.

"그러냐? 아무렴 그거야 상관없는 일이지. 그런 어디 꺼내 봐라."

토블은 자신이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아지랑이 같은 것이 생기더니 그 아지랑이 속에서 집이 생겨났다.

언뜻 듣기에는 저 어리님이라고 하는 닭, 아니 사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앵무라고 하는 것이 집을 어디선가 꺼내 놓는다고 하는데 토블은 그것이 귀족님들이 간혹 가지고 있다고 하는 하우타칵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우타칵은 로디아드에 있는 귀족들이 엄청난 물건들을 넣어서 들고 다니는 작은 상자라고 했는데 그 안에 집이나 창고 같은 것이 들어 있다는 소리를 토블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새삼 토블은 오늘 모신 주인 부부가 엄청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우타칵은 로디아드의 귀족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물건이라고 들었는데 그걸 들고 다니는 주인님이라니 엄청난 일이다.

"좋군. 그럼 들어가 볼까? 토블 따라 와라."

"네? 네. 주인님."

= 쯧 정신이 나갔군. 제 정신이 아니야. 저런 녀석을 어디에 쓸까. 토블은 어쩐지 어리라고 하는 것과는 친해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나쁜 인상을 준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집 안의 구조는 평범했다.

현관을 들어서면 곧바로 응접실이 나오고 응접실과 붙어서 부엌이 있었다. 그리고 응접실에서 곧바로 다른 방과 통하는 문이 하나 있고, 복도를 따라서 좌우와 복도 끝에 또 다른 문까지 세 개의 문이 더 있었다.

"여진 서재. 여기 좌우로 있는 방은 나하고 자넷이 각자 쓰면 되고 복도 끝의 방은 자넷과 나의 침실. 아, 토블 너와 고용인들은 옆에 있는 건물에 보면 방이 네 개가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옆으로 있는 또 다른 건물은 창고지. 참, 화장실은 저 쪽 마당 반대편에 만들어 놓을 거야. 그렇게 알아."

세진이 가구가 하나도 없어서 텅 비어 있는 응접실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왕창 꺼내 놓으며 말했다. 토블은 이제 세진이 허공에서 뭔가 꺼내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이미 커다란 집이 나타나는 것을 본 상황에서 소소한 물건 정로로 놀랄 일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응접실에 뭔가 한 가득 채워졌다.

"자, 이제 각 방마다 물건들을 꺼내 놓을 테니까 그걸 정리하는 건 토블 네가 알아서 해라. 음.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으면 마을로 내려가서 일을 시킬 사람들을 데리고 와도 좋다. 참, 이걸 들고 가라."

세진은 토블에게 소르메드의 신분증을 던져 줬다.

"헉!"

토블은 날아온 신분패를 받아서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알고 있겠지만 그걸 가지고 있으면 어지간해선 건드리는 놈들이 없을 거다. 그걸 가지고 있는 동안은 네가 나의 대리인이란 소리니까 말이지. 자, 그럼 주는 김에 이것도 주지."

세진은 다시 작은 가죽 주머니를 하나 던졌다. 토블은 그것을 받아 열어보고는 입을 벌리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 아무리 봐도 좀 모자란 것 같아. 또 침을 흘릴 것 같은데?"

= 바보. 자넷님 말처럼 모자란 것 같아요. 세진님.

자넷과 어리가 그런 토블을 보며 놀리듯이 말했다.

"그걸 가지고 이 집을 관리하는데 쓰면 될 거다. 신분패는 사람들이 너를 무시하지 못하게 해 줄 거고, 그 코어들은 충분히 관리비로 쓸 수 있을 거다. 무슨 소린지 알겠지?"

"네. 네. 알겠습니다."

"자, 그럼 움직여!"

세진이 손뼉을 치며 그렇게 말하고는 서재에 들어가서 책장과 책들을 꺼내 놓고, 또 자넷과 세진의 방으로 들어가서도 몇 가지 가구들을 꺼내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침실로 들어가서 멋진 침대와 가구들을 꺼내 놓았다.

"이러 게 필요하긴 해? 테멜 안에 다 있는데?"

자넷이 응접실에서 부산을 떨고 있는 토블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세진에게 물었다.

"그래도 구색은 갖춰 놔야지. 우리가 테멜 안에서 생활을 하더라도 말이야. 그나저나 어리야."

= 네, 세진님.

"이곳 에테르를 네가 사용하는 건 문제 없는 거야? 그걸로 네 코어를 충전하는데 지장이 없냔 말이지."

= 지구의 에테르와 저번 라훌 행성의 에테르, 그리고 여기 로페소에테의 에테르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화이트 코어를 충전하거나 그걸 테멜에서 사용하는데는 문제가 없어요. 거기다가 저는 세진님 덕분에 에테르의 성질을 또 다르게 바꿔서 쓰는데 그것도 지장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사실 세진이 그동안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 어리의 코어를 유지할 에테르 문제였다.

이전에는 어리가 언제나 에테르 부족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는데, 어리가 화이트 코어를 흡수하고 스스로 에테르를 충전할 수 있게 된 후로는 간식을 주듯이 세진의 에테르를 주는 것 이외에는 어리의 에테르 충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어리가 에테르를 충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행성을 바꿔서 내려오고 나서 에테르의 성질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혹시 어리의 충전에 문제가 있을까 싶어서 물어본 것인데 문제가 없다니 마음이 놓이는 세진이다.

= 그런데 저 어리버리를 정말로 제자라 삼으실 거예요?

어리가 세진에게 물었다.

세진은 자넷과 함께 이곳 로페소에테에서 어떻게 에테르 수련법을 널리 알리고 또 사람들을 몬스터에게 저항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상귀 계급의 사람들, 그러니까 로디아드나 페이러드 같은 안전한 곳에 사는 이들에겐 몬스터와 싸워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절박함이 없는 이들을 데리고 뭔가를 하는 것은 힘들었다. 역시 시작은 하층민들, 막다른 절벽 끝에서 삶을 꾸려가는 이들, 끊임없이 작고 소박한 것들을 갈구하는 이들. 그들이야말로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테르켓트를 면밀하게 살피면서 적당한 지역과 인물을 찾았다.

그렇게 찾아낸 인물이 토블이었다.

사실 토블은 어떻게 보면 테르켓트에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었다. 성정이 바르고 곧다는 것이 곧 생존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런 녀석이 가장 먼저 죽기 쉬운 곳이 밑바닥 인생이다. 그런데 토블은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살아왔다.

그래서 토블이 선택되었고, 토블이 살고 있는 이곳 지역이 선택된 것이다.

토블 같은 아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곳, 그나마 그런 아이에게 일거리를 주고 죽지 않을 정도로라도 돌봐 주는 곳이 이곳이었다.  하찮은 이유지만 그런 이유로 세진과 자넷은 이곳 토블이 있는 시장 마을에서 로페소에테의 변화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똑똑똑!

"주인님."

토블이 침실 밖에서 노크를 하며 세진을 불렀다.

"무슨 일이냐?"

"아무래도 사람 몇을 불러 와야 할 것 같습니다. 혼자서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집의 관리는 네게 맡겼으니 알아서 해라. 처음부터 잘 하기를 기대하진 않는다. 하다 보면 배우면서 늘겠지."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문도 열지 않고 대꾸를 하는 세진에게 토블은 전혀 반감이 없어 보였다. 사실 주인이 침실 안에 있을 때에 노크를 하는 것도 토블에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나마 대꾸라도 또박또박 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토블은 급히 세진이 준 신분패를 들고 코어가 들어있는 가죽 주머니에서 작은 코어 두 개를 꺼내 들고는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내일 아침부터 물을 길어야 한다고 했는데?'

토블은 마을로 내려가면서 집에서부터 개울로 이어지는 동선을 머리에 그렸다. 그리고 그게 꽤나 힘든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사람들을 부려서 일을 시키고 꼭 자기 손으로 해야 할 일이 아직은 물 깃기 밖에 없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토블이었다.

토블은 서둘러 마을로 내려가며 방금 자신이 쓸 곳을 둘러보며 확인한 방들의 숫자와 집에서 필요한 사람들의 숫자를 생각했다.

'요리를 할 사람도 필요하고, 집을 쓸고 닦을 사람도 필요해. 마님의 수발을 들 수 있으면서 집안 일도 할 수 있을 정도면 너무 어려서도 안 되겠지? 그런데 남자도 필요할까? 그래도 한 명 정도는 있으면 좋겠지? 누가 좋을까?'

토블의 머릿속으로 몇 사람의 얼굴이 주르륵 떠올랐다.

'아, 창고에 식량도 채워야 하는데? 그것도 사서 배달을 시켜야겠네. 빨리 갔다와야 저녁 준비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물도 없지 않나?'

생각을 하다보니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는 토블이다. 첫 저녁부터 주인님과 마님을 굶게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토블을 엄습했다.

만약에 주인님과 마님이 지금까지 토블에게 주던 호의를 거두어 간다면 토블은 정말 죽고 싶은 것 같았다. 토블은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