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62화 (162/298)

< -- 로페소에테에서 토블을 만나다 -- >

토블은 테르켓트의 많은 하층민 중에 하나다.

이제 열다섯이 된 토블은 오늘도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시장의 토박이들은 그런 토블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다른 각다귀같은 놈들과 달리 토블은 시장에서 상인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손님의 주머니를 털지 않는다. 더구나 죽기 직전이 아니면 구걸도 하지 않았다.

토블은 언제나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먹을 것을 받았다.

그래서 토블을 아는 사람들은 토블이 믿을만한 놈이라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토블이라도 언제나 일거리가 있어서 배를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토박이 상인들도 토블에게 적선을 하듯이 일거리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토블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그것이 그들에게 이익일 될 때 뿐이다. 가엾다는 이유로 토블과 같은 아이들에게 뭔가를 적선하기에는 테트켓트의 삶이 그리 풍족하지 못했다.

"야, 토블, 토블."

토블은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목이 꺾일 듯이 고개를 돌렸다. 뭔가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토블은 자신을 부른 사람이 뜻밖에도 몬스터 물품 판매점의 직원이란 것에 놀랐다. 하지만 뒷일은 따지지 않고 곧바로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형."

토블은 꾸벅 인사부터 했다. 사실 토블은 그 점원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몬스터 물품 판매점과 토블은 거의 인연이 없었다. 한 번도 이 상점에서 일거리를 받아 본 적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뭔가 도움을 받았던 적도 없었다.

"그래. 토블. 마침 잘 되었다. 너 할 일 없지?"

"네? 네."

토블은 할 일이 없냐는 질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점원은 그 말을 듣더니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이 녀석이 이곳에서 그래도 믿을 구석이 있는 녀석입니다. 철이 들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지만 아직까지 저 놈이 누구 물건을 훔쳤다거나 일에 게으름을 피웠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습니다. 이곳 사람들이라면 다들 저 녀석이 괜찮은 녀석이라고 인정을 할 겁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알았습니다. 그럼 저 아이로 하지요."

"네네. 후회는 없으실 겁니다. 그럼요."

"고맙소. 이건 소개비요."

토블은 점원 형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몬스터 사냥꾼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곁에는 붉은 머리카락을 한 예쁜 여자가 함께 있었는데 그 여자도 갑옷에 검을 차고 있었다.

그러다가 토블은 사냥꾼 남자가 점원에게 몬스터 코어 하나를 던져주는 것을 보고  눈이 똥그랗게 변했다.

"아이고. 이렇게나! 고맙습니다. 손님."

토블은 점원 형의 손에 들어간 코어를 생각하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소개비라고 했어. 그럼 저 형이 나를 소개해 준 대가로 저걸 받았단 거잖아. 그럼 나도 코어를 받을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행복한 상상이었다. 코어를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코어만 있으면 적어도 몇 달 동안은 굶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또 열심히 일을 해서 모으면 또 그만큼 굶지 않을 정도로 모을 수 있을 거고, 그것이 반복되면 어느새 토블은 성인이 되어서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매번 토블은 어른이 될 때를 상상했다. 어른이 되기만 하면, 아니 몸이 조금 더 크고 그래서 힘이 더 세져서 보수가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자면 그 때가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동안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토블이라고?"

사냥꾼이 물었다.

"네. 토블이요."

"나이는?"

"열다섯이요. 정확하진 않지만 시장 사람들이 그랬어요. 열다섯이라고."

"그래? 좋아. 나하고 내 아내는 몬스터 사냥꾼이다. 원래는 다른 지역에서 사냥을 했는데 이번에 이쪽으로 옮겨왔지. 우린 방벽 밖에서 사냥을 하는데 사냥을 하고 들어와서 쉴 곳이 필요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쉴 곳이라면 여관이라거나 하숙이라거나 하는 곳이 있는데요? 그런 곳을 안내해 드릴까요?"

토블은 그런 일을 해서는 별로 대가를 받지 못할 것을 알았지만 일단 뭔가 하긴 해야 할 것 같아서 물었다.

"아니. 우리 부부는 집을 하나 지을 공터가 필요하고 집을 지으면 그 집을 맡아서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다. 토블 네가 하고 싶다면 그 관리를 네게 맡길 거다."

"네에? 집이요?"

"그래."

"하지만 아저씨, 저는 집을 관리하거나 하는 일은 할 줄 모르는데요?"

"특별히 관리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우리 부부가 사냥을 나간 사이에 집을 지키고 또 먼지가 쌓이지 않게 청소를 하고, 가끔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게 물건을 시켜서 창고를 채우고, 그런 일을 하면 된다. 그리고 음, 음식을 할 줄 안다면 요리를 맡기고 싶지만, 그런 실력이 없다면 네가 잘 아는 사람을 고용해서 일을 시키는 것도 좋겠지."

"제, 제가요? 사람을 고용해요?"

"여기서 오래 살았다니 아는 사람이 많을 테지?"

"네. 그렇죠."

"그럼 그 사람들 중에서 요리 실력은 좋은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혹은 네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데 처지가 어렵다거나 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일을 시킬 수도 있겠지?"

"무, 물론이죠."

"나와 내 아내는 네게 넉넉하게 관리비를 줄 거다. 그러니 너는 그걸 어떻게 쓰건 마음대로 써도 된다. 대신에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또 우리가 집에 있는 동안에 식사를 할 수 있게 해 주면 되는 거다. 뭐 음식이야 여관에서 먹는 정도로만 나와도 우린 만족할 수 있다."

토블은 뭔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자신이 큰 행운을 잡았다는 것을 느꼈다.

"네. 네. 할 수 있어요.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말로요."

"네 나이가 어려서 다른 사람들이 너를 무시하는 일은 없도록 해 주겠다. 우리는 네가 성실하고 믿을 수 있는 아이라고 들어서 일을 맡기려는 거다. 알겠지?"

"물론이죠. 네네."

"나는 세진. 내 아내는 자넷이다. 앞으로 부를 때에는 이름을 부르면 된다."

"알겠습니다. 세진님. 안녕하세요. 자넷님."

"응. 그래. 안녕? 앞으로 잘 부탁한다."

토블은 두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집을 지을 거라면 어디가 좋을까?

"저기 주인님."

"응? 주인님?"

"다들 고용이 되면 그렇게들 불러서 죄송합니다. 세진님."

"뭐 그게 편하면 그렇게 불러도 상관없다."

"그럼 나는 뭐라고 부르는데?"

세진의 말에 곁에 있던 자넷이 토블에게 불었다.

"그야 당연히 마님이죠. 여기선 다들 그렇게 부릅니다."

"어머, 마님? 그거 좋다. 어감이 좋아. 흐음. 그래 그렇게 불러. 자넷 마님이라거나 아니면 마님이라거나. 호호홋. 좋다."

토블은 별 것도 아닌 호칭에 무척 즐거워하는 자넷 마님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일단은 일이 우선이었다.

"집을 지으려면 땅이 필요한데 지금 이 근처에 마땅한 땅이 없습니다. 길을 건너거나 언덕을 넘거나 개울을 건너야 합니다. 다른 곳은 다들 집에 속한 땅이라서 그냥 차지했다간 다툼이 생길 겁니다."

토블은 은근히 기대를 했다. 몬스터 사냥꾼 부부가 집을 짓겠다고 나서면 땅을 소유하고 있던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양보를 해야 할 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곳에선 집을 지은 후에 주변에 있는 땅을 개간해서 경작지로 만들거나 혹은 울타리를 친 후에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는데 그걸 인정받으면 집과 땅을 그 개인이 소유하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 새로 집을 짓고 그 땅에 대한 분할을 요구하면 그 때는 분쟁이 일어나서 다툼이 생긴다. 하지만 그 다툼은 대부분 힘이 있는 쪽에서 승리한다.

토블이 보기에 사냥꾼 부부는 어지간한 곳이면 아무 곳이나 집을 지어도 충분히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땅은 필요 없어. 그냥 집만 지을 거야. 텃밭도 필요 없고, 목장도 필요 없지. 그럼 자리를 정하는 것이 더 쉽지 않나? 마침 저기도 공터가 있는데?"

토블은 세진이 가리키는 공터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저긴 에프레드에서 오는 상단의 자리입니다. 그들이 시장에 올 때에 사용하는 곳이라서 함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 그렇담 하는 수 없지. 그럼 저 언덕 위는?"

이번에는 시장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을 가리키는 세진이다.

"집을 지을 수는 있지만 살기가 불편할 겁니다. 물을 긷는 것도 그렇고, 뭐가 되었건 언덕 위까지 가지고 올라가야 하니 불편이 이만저만 아닐 겁니다."

토블은 언덕 위의 집은 별로 마땅치 않았다.

"좋네. 운동도 되고 말이야. 저기 집을 짓자. 그리고 토블?"

"네. 네?"

"넌 앞으로 아침마다 개울에서 물을 길어서 항아리 세 개를 채우는 일부터 하루를 시작하자. 다른 일들은 사람을 고용해도 되지만 그 일은 토블 네가 해야 하는 걸로. 물론 항아리의 물이 남았다면 그건 저녁마다 비워야 한다. 그래야 매일 깨끗한 물을 채울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

"네? 네에."

토블은 세진 주인이 이상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굳이 그렇게 힘들게 일을 시킬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래도 뭔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았다는 생각 때문에 일을 포기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을 깃는 일 정도야 못할 일은 절대 아니다.

토블은 어쩔 수 없이 앞장서서 시장 언덕을 향했다. 따로 이름이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 언덕은 실제론 커다란 바위 몇 개가 겹쳐 쌓인 곳이었다.

그래서 보기보다 가파른 곳과 거친 곳이 많았다.

"흐응. 길이 많이 불편한데?"

자넷이 불평을 하자 토블은 혹시 세진 주인님이 집의 위치를 다른 곳으로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그래? 그럼 길을 좀 다듬어야지. 내일은 그 일이나 할까?"

"호홋, 그러자. 아무래도 사람이 다닐 정도는 되어야지. 계단도 좀 만들고."

"그래."

토블은 앞장서서 안내를 하면서도 하필이면 이런 곳에 집터를 정하는 주인 부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가파른 언덕이라고 해도 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 정상에 오를 수가 있었다.

"하아, 하아."

토블은 정상에 오르고 나서야 자신이 평소와 달리 힘을 너무 낭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이 일상인 토블은 평소 움직일 때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체력을 아꼈는데 오늘은 흥분을 해서인지 과하게 몸을 움직인 것이다. 그 때문에 많이 지쳐버렸다.

"괜찮아?"

자넷이 토블에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너 오늘 아침은 먹은 거야?"

"아뇨. 못 먹었습니다."

토블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굶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 따위를 해 본 적이 없는 토블이다. 없으면 굶는 것이 당연한데 그게 부끄러울 이유가 뭐가 있을까.

"점심 때가 다 되었는데 아침도 안 먹고 돌아다녔던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지치지. 세진 밥 먹고 하자."

"응? 아니 일단 집부터 하는 것이 좋지 않아?"

"그러려면 적어도 지반은 우리가 다듬어야 하잖아. 저기하고 저기 정도는 정리를 해야 집을 놓지."

"그런가? 그럼 일단 먹고 하자. 우리 어린 고용인도 배가 고픈 모양이니까."

토블은 두 부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세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점심'이란 것을 먹는 것을 주인 부부가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을 말이다.

테르켓트에서 점심을 당연하게 먹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연히 토블은 아침, 점심, 저녁 중에서 어느 때를 가려서 먹는 입장이 아니다. 먹을 것이 생기면 적당히 먹고 아껴뒀다가 먹어야 할 때가 오면 꺼내 먹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도 잠을 깨고 나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서 먹을 것을 챙기는 경우가 많으니 토블이 가장 많이 먹는 끼니는 아침이고, 그 다음은 저녁이다.

점심은 정말 특별한 경우로 시장에서 일을 하다가 중간에 참으로 나오는 것을 먹는 경우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자. 이리 와서 앉아. 서서 먹을 것이 아니라면 말이야."

토블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자넷이 넓은 가죽을 바닥에 깔아 놓고 토블을 불렀다.

그 가죽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토블은 보지 못했다. 두 주인은 등짐도 없었는데 가 죽 깔개가 생겼다.

"음. 자 그럼."

이번에는 세진이 허공에 손짓을 하더니 커다란 바구니를 꺼낸다.

"억!"

토블은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응? 왜 놀래?"

"세진. 그걸 몰라서 물어? 이런 걸 한 번도 못 봤으니까 몰랐겠지."

"그런가? 뭐 앞으로 자주 볼 테니까 신경 쓰지 마라. 토블 네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여기 뭐가 들었는가 하는 거야. 자 봐라."

토블은 세진 주인이 뚜껑을 여는 바구니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 정확하게 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후각을 자극하는 그 향기만으로도 먹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주르륵. 토블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침이 흘렀다.

"에잇, 지저분한 녀석!"

토블은 자넷 마님이 야속했다.

'어떻게 이런 냄새를 맡고도 제정신이길 바라는 걸까?'

토블은 두 주인이 음식을 나누는 것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여전히 침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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