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61화 (161/298)

< -- 로페소에테에서 토블을 만나다 -- >

- 에헴. 어때요?

"하하, 당연히 우리 어리가 최고지. 아무렴."

"그래. 인정. 어리 아니었으면 우리 둘 다 벌써 임무 실패하고 그 여자한테 구박을 잔뜩 받고 있었을 거야. 아니 그 여자가 일부러 그렇게 위험한 곳에 우릴 떨어뜨리라고 했을 지도 몰라."

자넷이 잔뜩 화가 난 표정을 말했다.

"그건 아닐 거야. 우리에게 테멜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가 위험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을 걸?"

"하지만 테멜 안으로 숨는다고 일이 끝나는 건 아니잖아. 밖에 몬스터들이 있는지 어떤지 몰라서 전전긍긍 하면서 며칠을 보내다가 나와야 했을 걸? 어리 아니었으면 정말 고생을 해야 했을 거라고."

"그건 그렇지. 뭐 우릴 골탕 먹일 생각이 있었던 건 분명한 것 같네. 그런데 그 여자가 헌터룸 시스템에도 간섭을 할 수 있어? 그 쪽은 자넷이 더 잘 알지 않아?"

"그건 그렇지. 뭐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긴 해. 사실 여기 내려올 때에는 중간에 워낙 변수가 많아서 정확한 위치를 잡기가 어렵다고 했거든."

"그나저나 가지고 있던 힘이 하나도 없으니까 이거 적응이 안 되네?"

"응. 나도 그래. 이전에 쓰던 생체 에테르바디를 쓰지 못하게 하니까 완전히 평범한 사람이 되어 버렸어."

"그래도 일단 에테르 로드 수련으로 에테르 저항력은 만들어야지. 안 그러면 돌연변이가 될지도 몰라."

세진은 자넷에게 먼저 에테르 저항력을 키우자는 제안을 했다.

에테르에 대한 저항력이 전혀 없는 상태로 일정 수준 이상의 에테르에 노출이 되면 오래 지나지 않아서 돌연변이 현상이 일어나면 몬스터화 된다.

그래서 원래 데블 플레인에는 최소한 에테르에 대한 저항력이라도 있어야만 올 수  있다. 그런데 세진과 자넷의 경우에는 생체 에테르바디를 만들 때부터 몸 안에 있는 에테르 기관이란 것을 제거하고 만들었다. 그런 탓에 에테르 기관이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에테르 저항력이 세진과 자넷의 생체 에테르바디에는 없는 것이다. - 천천히 해도 되요. 이 안에서는 돌연변이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에요. 왜냐하면 어리가 알아서 에테르의 농도를 조절하기 때문이지요. 에헴.

둘의 대화에 어리가 끼어들었다.

사실 세진과 자넷은 우주선에서 지상으로 보내지자마자 몬스터들에게 포위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세진과 어리는 가장 기본적은 자위 능력도 없었다. 금방 새로 만들어진 생체 에테르바디로 내려온 상황이니 당연했다. 세진과 자넷은 왜 진작 어리의 테멜 안에서 수련을 해서 약간이라도 능력을 개발하고 내려오지 않았는지 깊은 후회를 했다. 하지만 상황은 몬스터에게 포위되어 죽기 직전. 그러니 방법은 어리 테멜 안으로 피신을 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뒤에 어리는 두 사람을 테멜 안에 들인 상태로 몇 번의 순간 이동을 해서 이곳 행성의 인류 최후의 도시까지 찾아왔다. 지금 어리 앵무는 테르켓트에서 제일 높은 건물의 지붕 위에 앉아서 사방을 살피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어리 앵무가 품고 있는 테멜 안에서 세진과 자넷이 에테르 로드 수련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후우, 이제 겨우 유저 수준이야. 이 정도면 초급 헌터 정도 되는 건가?"

"으응. 나도 그 정도 수준은 된 거 같아. 유저 초급? 뭐 그래봐야 에테르를 이용해서 최하급 몬스터나 잡을 수 있을 정도겠지만 말이야."

자넷이 세진의 혼잣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게 있다는 말씀."

세진이 그런 자넷에게 자신 있게 갑옷과 검을 꺼내 보였다.

허름한 가죽갑옷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꽤나 대단한 물건이었다. 비록 세진과 자넷이 유저 초급 정도의 실력이라서 그 장비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제대로 끌어 낼 수는 없지만 실제 그 갑옷과 무기는 게슈너 상점에서 만든 최고의 물건 들이었다.

"파라색 등급 에테르 가드와 웨폰을 겨우 주황색 등급 정도로만 쓸 수 있다니 정말 누가 알게 될까봐서 무섭네."

자넷이 세진이 주는 갑옷과 검을 장착하며서 투덜거렸다. 그런 자넷 옆에서 세진도 갑옷을 입고 창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왼 팔에 팔목 방패까지 장착하고 무장을 완비했다.

"우리 실력이 늘어나면 언젠가는 파란색 등급의 위력을 모두 끌어 낼 수 있을 거야. 지금 그런 짓을 했다가는 에테르 폭주로 몸이 견디지 못할 거야."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가 언제 장비에 의지했어? 그래선 안 되는 거야. 어서 빨리 실력을 쌓아서 예전 실력을 되찾아야지."

"그냥 본체로 올 걸 그랬나?"

"그 여자가 그런 걸 허락할 거 같아? 만약 잘못돼서 내가 죽기라도 하면 그 여자나 그 여자의 종족 전체가 시달릴 텐데?"

"그런가?"

"흥, 당연하지. 내 위치가 있는데 아무렴. 그 여자도 그런 모험은 절대 할 수가 없는 거지."

자넷이 오랜만에 콧대를 세운다.

세진은 그런 자넷의 행동이 귀여운 듯 빙긋 웃는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해서 테멜 밖의 상황을 살펴본다. 어리와의 정신 연결은 생체 에테르바디로 옮겨 오면서 뭔가 노이즈가 낀 것처럼 맑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어리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역시 뭔가 한계가 생긴 것 같지만 그것은 확인을 해 봐야 할 일이었다.

"딱 봐도 라훌 족들의 작은 마을 같은 분위긴데?"

"응? 뭐가?"

세진의 말에 자넷이 되물었다.

"밖의 상황이 그렇다는 거야. 나무와 흙, 돌 같은 것으로 지은 건물들이 많고 지붕은  대부분 짚이나 갈대를 엮어 놓은 거야. 그리고 기와를 올린 2층 이상의 건물이 몇 개 있고, 나머지는 거의 단층 건물이야. 대장간도 있고, 시장에선 좌판을 벌리고 장사를 하기도 하고, 상점도 있고. 그런데 종각이 가운데 있고 십자형으로 생긴 건물이 신전이라고? 그럼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그 신전의 종각 꼭대기인 모양이야."

- 맞아요. 어리는 지금 종이 있는 탑의 꼭대기에 있어요. 그런데 꽤나 지저분한 곳이네요. 세진님 그런데 세진님은 어디까지 확인이 가능해요? 세진님이 그 몸으로 바꾼 후부터 세진님의 감지 범위가 많이 줄었다고 했잖아요.

"아, 지금 확인을 해 보니까 거의 1Km 정도 밖에는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반경 500m 그게 지금으로선 한계야. 그런데 어리 너는 어떠냐?"

- 어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에요. 변한 것이 없어요.

"그렇구나. 그럼 앞으로도 어리가 우릴 많이 도와줘야겠네?"

- 걱정하지 마세요. 어리는 세진님을 열심히 도울 것이에요.

세진은 어리의 대답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어리는 사실 그 데블 플레인 연합의 간부라는 여자도 알지 못할 비밀 병기인 셈이다.  어차피 세진과 자넷은 툴틱도 없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헌터라곤 둘 밖에 없는데 툴틱 따위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달리 행성 밖에서 두 사람을 감시하거나 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다만 로페소에테 여기 저기 과거에 우주 연방에서 뿌려 두었던 감시 장비들이 살아 있어서 그것으로 로페소에테의 전체적인 상황을 살필 수 있을 뿐이다.

로페소에테는 외부에서 이곳 인류 최후의 도시와 행성을 동시에 부르는 이름이다.

중앙에서 외부까지 다섯 구역으로 나눠진 도시 구역의 첫 글자를 따서 부르는 명칭인 도페소에테. 그것이 행성의 이름이면서 도시의 이름이 된 것이다.

"나가볼까? 자넷?"

"신분증은?"

"아, 맞다. 어리야 신분증."

- 네에. 여기 있어요. 로디아드 신분증하고, 소르메드, 테르켓트 신분증이에요. 필요에 따라서 쓸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당연히 위조 검사를 해도 절대 들키지 않아요. 어리가 조금 전에 신분증들을 확인하고 꼭 같이 만든 거니까요. 어리의 말과 함께 세진과 자넷이 앉아 있던 테이블 위에 여섯 개의 신분패가 나타났다.

한 손 안에 꼭 들어올 정도의 신분패는 테르켓트의 것은 나무로 되어 있고, 다른 것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로디아드의 신분증에는 작은 보석들이 꼼꼼하게 박혀 있고, 가운데에는 화이트 코어가 박혀 있었다.

"화이트 코어를 신분증에 쓰고 있네?"

자넷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아니야. 이 패, 화이트 코어의 힘을 이용하는 뭔가가 있어."

세진이 로디아드의 신분증을 가만히 들어서 살폈다.

그리고 한참을 신분증을 살피는 세진의 이마에는 땀까지 흘러 내렸다.

우우우웅.

그리고 어느 순간 신분증이 빛을 내더니 어리의 홀을 전반 가까이 채우는 반구형의  보호막을 만들어 냈다.

"와아. 이게 뭐야?"

자넷이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이것들이 머리를 좀 썼어. 이 신분증은 화이트 코어를 이용해서 소형 방어막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아티팩트 같은 거야. 그런데 이런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몬스터들에게 밀리는 거지? 이걸 좀 더 다듬으면 인간들의 영역을 훨씬 더 넓게 확장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은데?"

세진은 손에 들린 로디아드의 신분패를 이리저리 돌려 보면서 중얼거렸다.

- 세진님?

"응?"

- 제가 관찰하기론 로디아드의 신분증 확인은 그냥 보여주는 것을 끝나고,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그냥 빛을 내게 하는 정도에서 끝이 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관찰한 결과로는 어디에서도 이런 방어막을 만들어 내는 경우는 없어요. 어쩌면 신분패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요?

"뭐? 이런 기능이 있는 걸 만들기는 해도 쓸 수는 없다고?"

- 세진님도 그렇게 이마에 땀이 날 정도로 힘을 쓰셔야 겨우 발동을 시켰어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신분패를 확인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을까요? 사실 로디아드의 신분증을 가진 이들 중에는 에테르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들도 많은데 말이죠.

"아, 그것도 그렇지만 신분증은 세습이 되잖아. 그거 다시 만들어지긴 하는 거야?"

자넷이 어리에게 물었다.

- 자넷님 그거야 저도 모르는 거죠. 그러고 보면 그 신분패를 지금도 만들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이것도 무슨 기능 같은 것이 있을까?"

세진이 소르메드의 신분증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에테르를 흘려 넣어도 딱히 특별한 것이 없는 금속 패에 지나지 않았다.

세진이 로디아드의 신분패에서 이상을 느낀 것은 에테르를 패에 주입했을 때에 묘한 흐름에 따라서 에테르가 패를 휘감고 흐른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흐름의 종착지에 화이트 코어가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세진이 무리를 해서까지 에테르의 흐름을 화이트 코어와 연결해서 그 결과를 보고자 했던 것이고 그 결과가 바로 어리의 홀에 나타난 반경 10미터 정도의 방어막이었던 것이다.

"어때?"

자넷이 세진에게 소르메드 신분증에도 뭐가 있는 거냐고 묻는다.

"그냥 금속 패일 뿐이야. 별다른 기능은 없어."

세진은 신분패를 툭하고 테이블에 던지면서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테르켓트의 나무 신분패를 살폈지만 역시 별다를 것은 없었다.

"음, 신분패가 이상하네? 뭐 별 내용이 기입되어 있지 않아. 설마 이거 슬쩍 훔치거나 해도 되는 걸까?"

자넷이 패를 하나 들고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직 우리가 이곳에 대해서 모르니까. 좀 더 적응을 해 보자. 일단은 테르켓트에서  시작을 하자. 몬스터들 몇 마리 잡고, 또 코어도 팔고. 그러면서 몸으로 떼우는 거지. 그래야 제대로 된 여행 아니겠어?"

"흐응. 그거야 그렇지. 그리고 어리가 또 알아서 정보 수집도 해 줄 거고?"

"하하. 맞아. 우리 어리가 수고를 해 주겠지."

- 어리는 세진님과 자넷님을 지켜야 해요. 그래서 그런 일을 하고 있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오션과 모랜이 어느 정도는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오션과 모랜에게 제가 사용하는 에테르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주면 외부를 살피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요. 그렇게 넓은 범위는 어렵겠지만 4등급이니까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겠죠.

"그래? 그럼 그렇게 부탁을 할까? 아무래도 어리가 우리를 지켜준다면 고마운 일이지."

"그럼 나가 봐. 이곳이 궁금하네."

자넷의 재촉에 세진은 근처의 한적한 골목을 찾아서 테멜의 출구를 만들었다.

"출구나 입구를 여는 것도 조금 시간이 걸리네? 역시 연습을 좀 해야겠다. 자 가자. 자넷."

세진은 느리게 열리는 테멜 입구에 불만을 가지다가 자넷을 재촉해서 테멜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로페소에테에 정식으로 발을 디디는 세진과 자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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