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짧아도 길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 자넷 돌아오다. -- >
"청사안리 벼억게에 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아라아."
= 뭐 하시는 거예요?
"원래 온천에서는 이렇게 시조도 한 수 읊고 그러는 거다. 어허, 시워언 하다 하면서."
= 그게 뭐예요. 이상해요.
"좋지 않냐? 이렇게 야외 온천에서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내는 거 말이다."
세진은 몬스터 사냥을 나왔다가 커다란 온천 지대를 발견하고 팔자 좋게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데블 플레인은 아직 개발이 된 곳 보다는 그렇지 못한 곳이 더 많아서 미지의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번 온천도 툴틱에는 전혀 나오지 않은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곳이었다. 지구라면 온천 유원지를 엄청난 규모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 곳이었다.
= 칫, 어리는 그런 거 몰라요. 어리는 온천욕의 느낌을 알 수가 없었다.
"그거 아쉽구나. 그나저나 너 요즘 이상한 짓 하고 있더라?"
= 네? 제가 뭘요?
"기껏 테멜 코어랑 부족 코어가 합쳐진 것을 구해 줬더니 그걸 흡수하고 나서 하는 짓이 인형 만들기냐?"
= 에에엣. 인형이라니요. 어리는 새로운 몬스터의 몸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전부터 쓰고 있던 인형이랑 뭐가 다른데?"
= 하지만 인형은 감각이 없잖아요.
"그 에테르로 만든 몬스터는 감각이 있냐? 그걸 어리 니가 느낄 수 있어?"
= 아니요. 안 되니까 계속 시도를 하는 거죠. 그리고 그건 제가 꼭 제 몸을 만들기 위 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에요. 어리는 어리가 만든 에테르 생명체들을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되길 원해요. 그래서 연구하는 거죠.
"그래서 다른 테멜들도 못살게 구는 거냐? 그 녀석들도 등급은 낮지만 모두들 테멜 코어와 부족 코어가 합쳐진 것들을 흡수 시켰지?"
= 아니에요. 오션이랑 모랜만요.
"그런데 어째 그 녀석들 여전히 별로 큰 거 같지 않던데? 아무리 봐도 어린애들 같더란 말이지. 하긴 우리 어리도 아직 어리긴 하지."
= 놀리시는 거죠? 흥!
"어쨌거나 그 녀석들 상장을 잘 못하는 것 같던데 왜 그런 거냐?"
= 그거야 보고 배울 것이 없으니 그렇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요.
"하기 그것도 그러네. 너도 테멜들을 워낙 단속을 하니까 그것들이 뭘 보고 배우려고 해도 방법이 없긴 하겠다."
=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테멜 관리에 있어서는 베테랑이 되고 있어요. 그런 쪽으 론 엄청 발달을 하는 거죠.
"대신에 정신적인 성장은 없는 거겠지."
= 뭐 별로 필요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니까요. 쓸데없이 생각이 많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긴 그거야 어리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그나저나 자넷은 언제나 올까?"
= 데블 플레인 시간으로 1년도 안 지났는데 벌써 그런 말씀을 하세요? 걱정이네요. 걱정.
"그런가?"
세진은 온천에 몸을 담그고 고개를 젖혀서 밤하늘을 바라봤다. 하지만 데블 플레인의 하늘은 언제나 짙은 구름에 가려 있어서 별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어쩐지 오늘은 유난히 옆자리가 허전한 세진이다.
세진은 두 눈을 의심했다.
"어떻게 된 거야?"
세진이 물었다.
"뭐가?"
"어떻게 네가 여기에 있냐고."
세진이 다시 물었다.
"우후후후. 내가 그랬잖아. 엄청난 사업 거리를 안겨주면 그 후로는 또 한 동안은 휴가를 얻을 수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일거리를 만들어 주고 왔단 말이야?"
"빙고. 바로 그거지."
"자넷!"
세진은 자넷을 와락 껴안았다.
"어머, 뭐하는 거야? 지금?"
"곁에 없으니까 알겠더라. 내가 널 무척 좋아한다는 거."
"흐응. 그럼 전에는 덜 좋아했다는 거야?"
"더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는 거지. 이전보다 더."
"그래. 흐응. 이해해 줄게."
자넷은 세진의 어깨 위에 턱을 올린 상태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미소였다.
한동안 둘을 그렇게 껴안고 있었다.
= 흐응. 둘이 사이가 좋은 건 알겠는데, 저도 아는 척을 좀 해 주시죠? 네?
그런 둘의 감상을 방해한 것은 어리였다.
자넷이 자신을 본 척도 않으니 심술이 난 것이다.
"호홋, 그래. 어리도 왔네? 언제 왔어? 어리가 여기 온 거 보면 5등급으로 올라 선 거야?"
= 역시 자넷은 머리가 좋은 거 같아요. 맞아요. 이제 어리는 5등급이죠. 아니 이제 어리는 완전히 독립된 새로운 테멜인 것이에요.
"그게 무슨 소린데?"
자넷은 어리의 변화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진은 자넷의 휴가에 더 관심이 많았다.
"어리에 대해선 조금 있다가 이야길 하고, 자넷 네 이야기부터 해 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뭐 별 거 아니야. 전에 내가 가지고 갔던 테멜 있지?"
"그래. 그거. 테멜 코어로만 성장을 시킨 거였지?"
"그래. 그걸 내가 하나 들고 갔잖아. 어차피 그건 의지 같은 건 없는 거였으니까."
"음. 그런데?"
"자 여기서 문제. 그럼 그 테멜은 지금 몇 등급이 되었을까요?"
세진은 자넷의 질문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넷은 세진이 짐작하기 어려운, 행성이 아닌 우주 단위의 기업을 운영하는 총수라고 했다. 행성이 아니라 우주다. 도대체 몇 개의 별이 있는지 모를 우주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그런 대기업의 총수가 테멜을 가지고 가서 성장을 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설마 7등급? 아니 보라색 등급?"
"호호홋. 세진은 나를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 우리 기업의 힘이라면 그보다 더 높은 것도 가능하다고. 음, 그래서 결론은."
"결론은 뭔데?"
세진이 말을 끊고 눈빛을 반짝이며 자신을 보는 자넷을 재촉했다.
"보라색 등급 바로 윗 등급까지 성장을 시켰어. 우린 그 코어를 지역 코어라고 하는 데 지역 코어 등급까지 성장을 시킨 거지."
"대단하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세진은 상상도 되지 않는 지역 코어란 영역에 다시 멍해졌다.
"사실 그건 말이 안 되는 건데, 테멜이란 것이 원리 보라색 등급 까지만 나오거든? 그래서 그 이상 등급의 테멜은 지금까지 나온 적이 없단 말이지. 그런데 그게 나왔어. 그래서 그걸 극비로 하고 공략을 해버렸지. 그렇게 얻은 테멜 코어를 테니 테멜에 흡수를 시켰어."
"테니 테멜? 그거 혹시 자넷 네 성을 딴 거야?"
"아니. 내 성이기도 하지만 우리 회사의 이름이기도 해. 그래서 테니 컴퍼니의 소유란 의미에서 테니 테멜이라고 한 거지.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테니 테멜의 넓이가 엄청나게 넓었어. 우리가 예상한 지역 정도의 규모가 아니었단 거지. 그건 일반 행성의 평균 대륙 크기였다는 거야. 멋진 일이지."
"그래? 엄청나게 넓은 테멜이 생긴 것은 알겠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도현은 그렇게 넓은 테멜이라고 하더라도 순둥이 테멜과 같은 테멜의 문제점을 알 고 있었다. 자체적으로 내구 구조를 변경하거나 할 수도 없고, 뭔가를 생산 혹은 변경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 그런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하지 못한 테멜들의 특징이었다.
"맞아. 별 의미가 없지.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생겼다는 것 말고는 말이야. 하지만 테멜 코어를 자극해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거든? 그건 우리 회사의 연구원들이 할 일이지. 나는 그들에게 아주 멋진 일거리를 줬고, 그것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들의 책임이야. 한 번 내가 내 놓은, 즉 수장이 내어 놓은 사업 아이템에 대해서 평가를 하고 가능성이 높고, 투자 가치가 있다고 결정을 하면, 그 이후에는 그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지. 사업 아이템을 내 놓지 못하는 무능한 총수에 대해서 질타를 할 수는 있어도, 일단 자신들이 가능성이 있다고 했던 아이템을 가지고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란 말이지. 도리어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 임원들에 대한 문책을 내가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 호호호홋."
자넷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활짝 개인 얼굴로 웃었다.
"말이야 바른 말로. 그들이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모르지? 뭔가 이익을 낼만한 것을 만들어 내라고 얼마나 나를 쥐어짜는지 세진은 모를 거야.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말이야."
"우리 자넷이 고생이 많았구나. 그래. 그래. 수고 많이 했어."
세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간혹 보는 지구의 드라마 속에서 이런 때에 제대로 여자친구나 아내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 이후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모든 드라마에서 공통이었고, 드라마에 폭 빠져서 살던 자넷이라면 당연히 세진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으응. 역시 세진이 최고야. 호호호. 그래서 내가 세진에게 멋진 선물을 가지고 왔어."
"응? 선물?"
"맞아. 이제 정말 오랫동안 나도 휴가를 얻었거든?"
"휴가?"
"당연하지. 이번 임원 회의에서 내가 내 놓은 성장하는 테멜에 대해서 그 활용 가치를 지금까지 테니 컴퍼니가 생긴 이후로 최고의 이익 창출 가능성이 있다고 판별을 했거든. 아닌 말로 그 테멜에 흡수시킬 상급 테멜 코어만 있다면 컴퍼니는 새로운 우주라도 그 안에 만들어 넣을 수가 있다는 거지. 그래서 연구가 시작이 된 거야. 사실 지역 코어 이상의 테멜 코어를 어디선가 획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야."
"그런데 어떻게?"
"얻을 수가 없다면? 당연히 만들어야지. 우리 회사의 능력을 무시하지 말란 말이지. 아무튼 그래서 우리의 연구 방향은 그 테니 테멜의 코어를 우리가 제어하는 것, 그리고 그 코어를 성장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야. 일단 코어의 제어에선 어리의 예가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코어를 제어하는 쪽으로 연구를 시작했지. 그리고 코어의 성장은 뭐 여러가지 방향으로 연구를 할 거야. 에너지에서부터 코어 내부의 프로그램에 대한 것까지 갈 길이 엄청나게 멀지. 사실 어리가 좀 도와주면 좋겠지만 그건 또 곤란한 것이 어리는 우리 연방 소속이 아니어서 어떤 기술 교류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문제거든."
"별로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것 같더니 의외네?"
세진은 자넷이 연방의 법에 신경을 쓰는 것을 보며 말했다.
"이제부턴 꼬투리 잡히는 일이 없도록 진행을 해야지. 일단 지금까지는 문제 없음이라고 판결이 난 거니까 소급해서 따지진 않을 테지만 이후로는 우리의 사업 내용을 알게 된 세력들의 테클이 들어올 거거든. 그래서 앞으론 깨끗하게 해야 하는 거지."
"뭔 말인지 알겠다. 일단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문제 없음이란 판정을 받는데 성공을 했지만 앞으론 어려울 거란 말이지?"
"뭐 그렇지. 사실 법이란 것이 그렇잖아. 공평해야 하지만 안 그런 경우가 많은 뭐 그런 거. 우리 연방도 사실 사람 사는 곳이거든."
"그래. 이해한다. 이해해."
세진은 자넷의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런데 자넷, 선물이란 것이 자넷 너의 휴가야? 길고 긴 휴가?"
세진이 자넷에게 물었다. 길고 긴 휴가, 세진에게 그것은 정말 최고의 선물일지도 몰랐다.
"왜? 그걸론 부족해?"
"아니. 절대 아니지. 그거면 더 바랄 것이 없지. 그럼 정말 긴 휴가를 받은 거야? 응?"
세진은 조급하게 물었다. 얼마 있지 않아서 자넷이 다시 가야 한다면 그것은 정말 끔찍할 것 같았다.
"호호호. 아니, 이번엔 정말 긴 휴가야. 어쩌면 다시 컴퍼니에서 부르지 않을지도 모를 정도로 긴 휴가. 호호호."
"뭐? 설마 쫓겨난 거야?"
"어머, 쫓겨나다니? 총수를 쫓아낼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하나야. 제 일을 하지 못한 경우. 우리 컴퍼니 역사상 그런 총수는 단 한 명도 없었어. 우리 테니 가문은 모두 우수한 사람들이라고. 그 중에서도 최고의 인재가 총수가 되는데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없지. 하지만 또 우리 가문 사람들은 일하는 거 별로 안 좋아 하거든? 그래서 회사를 유지할 최소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총수의 임무인 거야. 뭐 사실 지분의 대부분을 우리 가문에서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어쨌건 그래서 이번에 내가 내 놓은 과제는 내 후임 총수가 온다고 해도 모두 해결을 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 엄청난 거거든. 그러니까 그게 끝날 때까지는 나를 안 부를 거라는 말씀이지. 그러니 휴가가 긴 거야. 아주 긴 휴가."
"그래? 좋은 일이네? 아주 좋아. 이제 자넷이 내 곁을 떠날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거네? 하하하하."
사실 정말 그렇게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꽤나 오래 자넷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것이 세진을 기쁘게 만들었다.
"흐응, 하지만 내 선물은 그게 아니야. 또 다른 것이 있지. 어마어마한 선물."
한참 웃다가 자넷의 말을 들은 세진은 어쩐지 등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자꾸만 어마어마하다는 말이 세진의 신경을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