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57화 (157/298)

< -- 어리 어리 우리 어리. -- >

어리의 홀에는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단이 있고, 그 단 위에는 어리가 관리하는 테멜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런데 그 테멜들의 수가 이전에 비해서 두 배는 될 정도로 많았다.

원래 그 테멜 중에서 절반은 어리의 관리를 받던 것들이고, 나머지는 그냥 보관만 하던 것들이었다. 당시 어리의 능력으로는 그 이상의 테멜을 관리할 수가 없어서 그저 보관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등급이 올라가면서 그 테메들까지 모두 끌어내서 한 곳에 정렬을 시켜놓았다. - 자, 그러니까 내가 누구라고?

어리는 이전부터 애용하던 인형의 모습을 하고 단에 두 손을 짚은 상태로 단 위에 놓 여있는 테멜들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테멜들이 일제히 대답을 한다.

- 저희들의 영원한 주인님이십니다.

- 주인님이요.

- 주, 주인.

하지만 실제로 어리에게 의지가 정확하게 전달이 된 것은 오션과 몬스터 랜드 그리고 3등급 중에서 유독 성장이 빠른 시티 뿐이었다. 다른 테멜들은 아직 의지가 제대로 자라지 않아서 그런지 명확한 의사 전달이 어려웠다. - 맞아.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니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

- 모든 힘을 다해서 주인님께 충성을 해야 합니다.

- 충성을 해야합니다.

- 충성. 가장 똑똑하게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은 오션 테멜이었고, 그 다음은 몬스터 랜드, 그리고 역시 3등급 중에서 선두주자인 시티가 대답을 했다. - 호호호홋, 그거야 그거. 감히 꼬꼬마 어린 것들이 감히 이 주인님께 반항할 생각을 해? 그럼 된다? 안 된다?

- 절대 안 됩니다.

- 안 됩니다.

- 안 돼.

- 쯧, 아까부터 너, 너 이리와 아주 이게 끝까지 반말이네? 그래 너 시티, 너 일부러 그러는 거냐?

어리가 아까부터 뭔가 심기를 긁고 있는 시티의 의사 표현에 기분이 상한 듯이 물었다.

- 아니. 아니다.

- 아니다아? 어쭈? 지금 나랑 맞먹자는 거지? 응?

- 아니다.

- 그럼 여기가 안이지 밖이냐? - 응? 이해를 못하는 거야? 음. 재미없네. 알았어. 그래 넘어가자. 참, 오션하고 모랜.

모랜은 몬스터 랜드를 멋대로 줄여 만든 이름이다.

- 네. 주인님.

- 네. 주인님.

- 니들이 본보기야. 알아? 아주 조금 머리가 굵었다고 나한테 엉기고 그랬단 말이지? 니들이 그러니까 저 어린 것들이 보고 배워서 감히 이 어리님에게 반항을 하려고 한 거 아냐?

- 아닙니다. 주인님.

- 저는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오션과 모랜이 급히 항변을 한다.

- 그래. 그래. 아니라고 하겠지. 그렇다고 하겠냐? 아무튼 이제 니들은 온전히 나한테만 속한 거거든? 다른 것들하고 얽히거나 하면 그 때는 정말로 작살을 내 줄 테니까 그렇게 알아. 앙?

- 네. 주인님.

- 알겠습니다.

- 알아.

- 좋아. 오늘은 이 정도로 하자. 그리고 새로 들어온 녀석들, 니들도 딱 기억해 둬. 내가 바로 너희들의 주인이야. 알았어?

어리는 그렇게 단단하게 일러준 다음에 테멜들을 다시 한쪽 공간을 이동을 시켰다.

- 호호호. 이제 문제는 해결이 된 것이야. 흥흥흥. 이렇게 쉬운 걸 가지고 왜 고민을 했을까 몰라. 에헤헷.

어리는 기분이 좋았다.5등급이 되면서 어리는 완벽하게 외부와 단절된 공간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행성 코어의 간섭조차도 거부할 수 있는 완전한 어리만의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소리다.

그러니 어리가 품고 있는 테멜들은 그야말로 끈 떨어진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어리의 시스템 밑으로 끌어 와서 종속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어리는 그 테멜들의 기본적인 의지를 존중해서 평등한 대우, 혹은 동생 같은 대우를 해 줄까 생각을 했었다. 심지어는 자식같이 키우는 것도 고려를 했었다. 하지만 곧 그것이 쓸데 없는 짓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행성 코어의 부속처럼 태어난 것들이었다.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은 행성 코어의 영향을 받아서 에고의 씨앗을 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에고가 코어 시스템에 의지해서 자라는 것이다보니 결국은 어딘가 종속되어서 명령을 받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어리의 선택은 당연히 하나였다. 다루기 좋은 부하들을 잔뜩 만들어서 이용을 해 먹자는 것.

어리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부하들이 잔뜩 생기면 그 부하들에게 일을 맡겨 놓으면 된다. 간단한 일들은 등급이 낮은 테멜에게 시키고, 복잡하고 어려운 일은 등급이 높은 테멜에게 시키면 되는 것이다. 코어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테멜 코어와 이면 공간 유지 코어의 시스템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된 어리는 등급이 낮은 코어들을 자신에게 완전히 종속시키는 데에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더구나 어리는 원래 코어에서 탄생한 에고라고 보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러니 어리는 코어의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격이 높은 존재로서 테멜이나 코어들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 부하들이 잔뜩. 이제 어리는 편해 진 것이에요.

"뭐가? 잔뜩?"

- 부하들이요.

"그 테멜들?"

- 네에.

어리는 갑자기 들려온 세진의 목소리에 놀라지 않았다. 이미 세진이 어리의 테멜로 입구를 열고 들어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는 어리가 입구을 열어줘야 했을 일이지만 이제는 세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어떻게 되었는데?"

- 음, 그러니까 뭐라고 설명을 할까요? 제가 메인 시스템, 테멜들은 개별 프로그램. 뭐 그런 식으로 되었어요.

"그러니까 니가 그 테멜들을 전부 확실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네?"

- 바로 그런 것이에요. 이제 그 녀석들에게 일을 시킬 수가 있게 된 것이에요.

"그러다가 그 놈들이 외부와 연결되어서 무슨 짓이라도 하면?"

- 절대 그럴 수가 없는 것이에요. 저를 어떻게 하지 않고서는 그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는 없는 것이에요. 그 아이들은 이제 제 허락없이 다른 코어나 에테르와도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에요. 그 아이들은 제 에테르만 에너지로 쓰는 아이들이고 결국 다른 에너지는 그 아이들에게 간섭을 할 수 없는 것이에요.

"쉽게 말하는 해킹이 불가능한 독립서버다? 다른 통신 연결망이 없는?"

- 바로 그런 것이에요. 모든 유 무선 열결이 불가능한 그런 독립된 상태라고 보시면 되는 것이에요.

"그럼 너도 다른 코어와 연결을 하지 말아야겠네?"

- 당연한 말씀이에요. 어리는 아직 어린 것이에요. 무서운 6등급, 7등급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어마어마한 코어들로부터 몸을 숨기고 있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 주인께서 열심히 네가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지? 코어를 구해서 너를 성장시키고 말이다."

- 에헤헤. 세진니임.

"애교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냐?"

- 그럼요. 당연하죠. 어리는 다 알아요. 세진님이 어리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에헤헤.

"그래.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이제 데블 플레인으로 가도 코어들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 네에. 절대 안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어를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만 않는다면요.

"그럼 이제 널 데리고 데블 플레인을 가도 되겠구나."

-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테멜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함께 가는 건데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

- 나중에 지구 시간과 비교를 해 보면 테멜 안에 있던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지구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데 테멜 안에서만 시 간이 많이 흘렀다면 억울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테멜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서약하고 들어온 사람들이야. 그들은 지구가 아니라 테멜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인 거지. 그러니 지구와 비교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 나중에 들어오는 이주민들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생길 수도 있어요. 혹시라도 가족을 찾아서 이주 신경을 한 사람들은 갑자기 늙어 버린 부모님이나 형제를 만나게 될 거라고요.

"음. 그런 문제가 있네? 그럼 그 테멜을 여기 놓고 갈 수는 없나?"

- 그래도 되긴 하죠. 이젠 말 그대로 통신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니까요. 외부의 에테르나 다른 코어들과의 교류를 끊어 뒀거든요.

"그럼 두고 갈 수 있는 테멜들은 두고 가는 걸로 하지 뭐. 감깐 갔다 오는 사이에 문제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괜찮잖아. 어차피 순식간에 갔다 올 건데."

- 그렇긴 하죠. 그런데 왜 서두르시는 건데요?

"응?"

- 세진님이요. 갑자기 데블 플레인으로 서둘러서 가시려고 하는 것 같아서요.

"그런가? 하하. 그것도 그러네."

- 자넷 때문이죠? 빨리 보고 싶어서?

"그런가? 아마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든든한 지원군이 없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하고 그런 모양이다. 그러니까 내가 우리 식구들에게 새로운 수련법도 가르치고 그런 거겠지."

- 곁에서 도와주던 자넷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허전해서 그런 거죠? 몬스터는 점점 강한 녀석들이 나오는데 이젠 몬스터를 사냥해도 혼자 사냥을 해야 할 것 같고 그러니까.

어리도 세진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세진은 어리의 말에서 확실하게 자신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우두머리 몬스터를 사냥할 때면 자넷과 함께 했던 적이 많았다. 어리 공방의 식구들은 그 전까지 사냥을 하는데 앞장을 섰지만 우두머리 몬스터는 언제나  세진과 자넷의 몫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넷이 없이 혼자가 되고 나자 우두머리 몬스터 사냥에 부담감을 느낀 것이다.

물론 5등급 우두머리 정도는 어떻게든 잡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6등급 우두머리는 자신이 없었다.

자넷은 세진에게 지구의 6등급 우두머리는 어떻게든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했고, 이번에 어리의 성장을 도우면서 세진도 완전히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으니 지구의 6등급 우두머리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곁에 자넷이 있고 없고는 심리적인 차이가 컸다.

그래서 어쩌면 떡배 등을 성장시켜서 자넷 대신으로 세우려는 마음을 먹었던 것일 게다.

'그래도 역시 나는 자넷이 곁에 있기를 바란 걸까? 그래서 자넷이 올 때까지 데블 플레인에 머물 생각을 한 거고? 그런 곳에 어리 없이 가기는 싫으니 어리까지 데리고 가려고 애를 쓴 건가?'

세진은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깨달아갔다.

'뭐 그런 거지. 어쩌겠어. 내가 이곳에 있는 것 보다는 데블 플레인에서 수련을 하며 자넷을 기다리는 것이 옳겠지. 그게 아무래도 옳아.'

세진은 그렇게 스스로의 결정이 옳다고 몇 번 되새김질을 했다.

"그래. 맞는 것 같다. 이곳은 어차피 시간이 흐르지 않을 테니까 자넷을 기다렸다가 데리고 오는 것이 좋겠지. 나도 그곳에서 좀 더 수련을 하고 말이야."

- 역시 그런 것이었던 것이에요. 좋아요. 그럼 가요. 저도 남색 등급 테멜 코어를 가지고 싶은 것이에요. 그렇게 되면 돌아와서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이에요. 그럼 어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위대한 어리가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여긴 어떤 테멜을 두고 갈 건데?"

- 사람들을 순둥이로 옮긴 다음에 순둥이만 두고 갈 것이에요.

"사람들을 옮기면 복잡하지 않나?"

- 걱정없어요. 사람들은 테멜을 바뀌는 것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할 거예요. 그냥 테 멜 코어를 바꿀 거니까요.

"응? 코어를?"

- 3등급 정도는 코어만 교체할 수도 있어요. 어리는 그 정도 능력은 생긴 것이에요. 어차피 이곳 전체가 어리가에게 속해 있는 테멜 공간 안이니까요. 그래서 3등급 테멜 정도는 잠시 코어 없이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고, 그 순간을 이용해서 코어를 교체하는 것도 가능한 거죠.

"멋지군."

세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어리는 세진이 아직 파악하지 못한 많은 부분에서 성장을 한 것이다. 이번에 데블 플레인에 가서는 한동안 어리와 연결되면서 얻은 능력들을 다시 점검해 볼 생각을 하는 세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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