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54화 (154/298)

< -- 어리에게 위기가 닥치다 -- >

세바스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자넷의 휴가가 끝나는 날이 왔다는 말과 같았다.

"아, 어쩌면 좋아. 응? 세진."

"휴우. 알잖아. 자넷. 나는 여기 있을 거야. 니가 언제 이곳에 오더라도 난 여기 있어. 내가 여기 있을 때에만 시간이 흐르거든. 그러니까 자넷만 시간을 낼 수 있으면 우린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어. 그러니 너무 그렇게 아쉬워 하지 마."

"지금 그런 말이 나와? 응? 그래 내가 오기만 하면 우린 다시 볼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언제 여기 다시 오게 될지 모른다고. 그게 문제인 거야. 난 앞으로 새로운 사업 때문에 무척 바빠질 거란 말이야. 네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난 정말 커다란 기업을 책임져야 하는 총수라고."

"그래? 그렇다면 더더욱 열심히 해야지. 자넷 네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라면 그만 큼 책임도 클 거 아냐?"

"이익. 넌 나를 오래 못 보게 되도 괜찮다는 거야? 응?"

"자넷. 이리와."

세진이 자넷을 끌어 당겨 품에 안았다.

자넷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세진의 품에 안겼다.

"우린 둘 다 알고 있잖아. 해야 할 일이 있어. 그걸 하지 않을 수도 없지. 안 그래?"

"그래. 그렇지만..."

"나도 아쉬워.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겠어? 그리고 나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야.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에 내가 너를 조금씩 잊지 않을까 몹시 두려워."

"흥, 내가 널 잊는 건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투구나?"

"그야 당연하지. 난 나보다 자넷을 더 믿으니까. 자넷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믿어. 다만 내가 자넷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그것이 두려운 거지. 하지만 그 두려움 을 이기고 자넷 너를 보내는 거야. 알지? 무슨 말인지?"

"그래. 알아. 세진이 나에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제 오래 못 보게 될 것이 너무 슬퍼. 흑."

"쯧쯔. 자넷, 이게 무슨 일이야? 설마 자넷이 우는 거야? 응? 아니지?"

"그래. 아냐. 안 울어. 우는 거 아냐. 절대로."

"그래. 그래야지."

세진은 자넷을 품게 깊이 안았다.

"내가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 올 거야. 수익성 높은 일거리를 찾아서 직원들에게 잔뜩 일거리를 몰아주고 올 거야. 원래 총수는 그런 거야. 수익성이 좋을 것 같은 아이디어만 던져줄 수 있으면 되는 거야. 응. 그래. 나 얼른 가서 빨리 하고 올게."

자넷이 세진의 품에서 떨어지며 눈빛을 빛냈다.

그런 자넷을 보는 세진도 될 수 있으면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서로에게 아픔을 덜 남기고 잠시 이별하는 가장 좋은 태도라고 생각했다. 자넷은 다음 날, 그녀의 생체 에테르바디를 제이비아 보관소에 맡기고 떠났다.

그와 함께 세진을 도와주던 세바스 역시 사라졌다.

남은 것은 제이비아에 머무는 세진과, 세바스가 그 동안 관리하고 있던 게슈너 상점에 대한 서류들이었다.

세진은 세바스가 던져 준 일 폭탄에 한동안 시달려야 했다.

"빌어먹을 세바스. 자넷에게 당한 걸 왜 나한테 풀어? 나쁜 놈!"

세진은 자넷이 세바스에게 일을 과하게 시켰던 복수를 자신에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펄펄 뛰었다.

세진은 자넷의 빈 자리를 잊기라도 하려는 듯이 열심히 일에 매달렸다.

그는 파란색 테멜 코어를 구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광고를 했다. 사실 그 정도 되는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라훌 족에선 그리 찾기가 쉽지 않았다. 파란색 등급은 마스터가 되어야 사냥이 가능한데 파란색 부족 코어나 테멜 코어의 경우라면 마스터 중급 이상으로 파티를 해야 안전하게 사냥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전력을 라훌족은 쉽게 모을 수가 없다. 그러니 규모가 큰 헌터 트라이브에 의뢰를 하는 쪽이 훨씬 더 가능성이 높았다.

세바스도 자넷의 명령을 받은 후에 그런 방법으로 상품을 걸고 파란색 이상의 테멜 코어를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품이 좀 약했다. 에텔론과 함께 게슈너 상점의 에테르 가드와 웨폰을 걸었지만 게슈너 상점에서 나오는 상품들은 아직 노란색 등급에 머물러 있었다.

마스터급이라면 그 정도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로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욕심을 낼 정도는 아니란 소리다.

비록 세트로 세 세트를 준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열성적으로 테멜 코어를 찾아 나설 것 같은 수준은 아니었다.

이에 세진은 테멜 코어의 보상 물품을 초록색 등급 에테르 가드와 웨폰으로 상향 조 정했다. 단 파란색 등급 코어 하나에 한 세트의 초록색 등급 에테르 가드와 웨폰만 지급하기로 했다. 이런 조치는 사실 세바스로선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게슈너의 물건들은 전적으로 세진과 어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세바스로선 최고의 대가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앞서의 수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진이 직접 나선 이상 상품의 수준을 올리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지구에서 올 때부터 준비해 온 갑옷과 무기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초록색 등급의 코어를 이용해서 완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고 나서야 실력 있는 헌터들이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파란색 등급 테멜 코어가 등장했다.

하지만 제이비아와 그 테멜 코어가 있는 곳의 위치가 너무 멀었다.

드랑 시라는 곳에서 테멜 코어가 나왔는데 제이비아까지 오는데 적어도 45일은 걸리는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멜 코어를 얻은 트라이브의 치프는 제이비아까지 테멜 코어를  가지고 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실 자넷이 있었다면 에텔론 상점을 통해서 드랑 시에서 제이비아까지 테멜 코어를 옮겨 오는 것이 가능했겠지만 세진에겐 그런 영향력이 없었다.

그래서 세진은 자넷이 곁에 없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런데 한 번 나오기 시작하니 그 뒤로도 줄을 이어서 파란색 테멜 코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초록색 에테르 가드와 웨폰이 사람들의 욕구를 끌어 낸 것이다.

덕분에 드랑 시에서 출발한 테멜 코어가 제이비아에 도착하기 전에 벌써 다른 도시에서 나온 테멜 코어가 세진의 손에 들어오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세진은 파란색 테멜 코어가 손에 들어 온 그 날, 곧바로 지구의 어리에게로 돌아왔다.

- 어머, 세진님 벌써 갔다 오신 거예요? 역시,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건 이럴 때에 는 무척 편하긴 하네요. 그런데 얼마나 있다가 오신 거예요?

세진이 어리의 테멜로 돌아가자 곧바로 어리가 반응을 했다. 조금 전에 자넷과 함께 있던 사람이 자넷은 없어지고 세진 혼자 서 있는데 그것도 복장이 바뀌었으니 금방 알아차린 것이다.

"몇 달 안 있었다."

- 그런데 자넷님은. 음, 휴가가 끝나고 고향 행성으로 돌아가신 건가요?

어리는 세진 혼자 있는 것을 보고는 금방 사정을 짐작해냈다.

"그래. 그렇게 됐다. 자, 이거."

세진은 품에서 파란색 테멜 코어를 꺼냈다.

- 우아아, 그게 5등급 테멜 코어군요?

"파란색 등급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 그런데 이거 잘 흡수할 수 있겠냐? 잘못되는 거 아니지?"

- 걱정하지 마세요. 음.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다른 문제는 없을 거예요.

"시간이 걸려? 무슨 소리야?"

- 제가 그걸 흡수하는 동안에 요 못된 것들이 반항을 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조심스럽게 천천히 흡수를 해야죠. 그러다가 한 순간에 짜자잔 하고 등급을 올려 버려야 하는 것이에요. 그 다음에는 버릇없는 아이들을 혼내 주는 것이에요.

"음. 그렇구나. 어리가 잠시라도 관리를 못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특히 사람들이 있는 곳은 더 그렇지."

- 그래서 이번에 사람들을 모두 한 곳에 모으기로 했어요. 만약에 일이 생겨도 괜찮은 착한 아이에게 맡겨야죠.

"착한 아이?"

- 순둥이 테멜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오로지 테멜 코어로만 성장을 한 녀석이요. 의지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제 아이라고 생각하고 순둥이란 이름을 줬어요.

"그래? 그거 잘 했다. 그럼 다른 녀석들은?"

- 오션, 몬스터 랜드, 시티, 팜, 연구소, 실버타운, 호수, 마운틴, 초원, 창고1.2.3.4 그런 거죠.

"뭔가 굉장히 불성실한 작명 같은데?"

- 원래 말 안 듣는 아이들은 대우를 못 받는 거거든요. 고약한 것들이 감히 이 어리님에게 덤비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알게 만들 것이에요.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을 때려서라도 버릇을 길러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 테멜들 관리야 우리 어리가 하는 일이니까.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지. 그래도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말고."

-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누군지만 딱 알려 줄 거예요.

'그게 더 무섭단다. 어리야.'

하지만 세진도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어리가 파란색 등급의 테멜 코어를 흡수하는 동안에 세진은 어리 공방의 식구들에 게 좀 더 체계적인 에너지 운용법을 가르쳤다.

그것은 에너지의 종류가 서로 다른 각성자 그룹과 선도일 양쪽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운용법이었다. 에너지의 종류가 어떻게 되었건 몸 안의 일정한 길을 따라서 운용하면 그만큼 에너지가 증폭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증폭된 에너지는 그 사람이 평소에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늘려주는 효과가 있었고, 급한 상황에서는 몸에 무리를 주면서도 평소보다 큰 에너지를 쓸 수 있게 해 주는 용도도 있었다.

어리 공방의 다섯 식구들은 모두 세진의 가르침에 열광했다. 그들은 어쩌면 오래지 않아서 답보 상태에 있는 자신들의 능력에 탈피의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했다.

그들은 이제 익스퍼트에서 마스터로 가는 길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자넷님이 요즈음 안 보이지?"

"그러게? 어디 갔을까?"

"세진님이 아무 말씀을 않는 것을 보니까 뭔가 있긴 한 것 같은데 말이야."

"진이하고 형일이!"

"넵. 떡배 형님."

"네?"

정진이와 김형일이 세진가 자넷에 대해서 소곤거리다가 떡배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서 대답을 한다.

"미리 이야길 해 두는데 절대로 자넷님 이야기는 세진님께 묻지 마라. 알겠냐?"

"에? 떡배 아저씨 왜요?"

"그러게요. 왜 그러는데요?"

정진이와 김형일은 떡배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휴, 내가 이런 것도 하나하나 설명을 해야 하냐? 니들도 나이를 먹으면 눈치가 좀 생겨야 할 것 아니냐. 딱 봐도 자넷님이 떠나신 거거든. 그런데 그게 서로 사이가 나빠서 갈라진 것도 아니지. 뭔가 일이 있어서 서로 헤어진 것 같단 말이야. 그런데 그 걸 꼬치꼬치 물어보면 너 같으면 기분이 좋겠냐? 응?"

떡배는 그나마 나이를 먹은 티가 났다. 세진 곁에 자넷에 없다는 것을 안 뒤로 몇 번 세진의 분위기를 살펴서 세진에게서 느껴지는 그리움의 잔향을 맡아 낸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떡배가 어릴 때부터 뒷골목을 전전하며 키워온 감이란 녀석 때문인지도 몰랐다.

"에, 그런 거예요?"

"음. 그렇군요."

"그러니 그저 언젠가는 오겠거니 하면서 그냥 모른 척 하란 말이다. 알겠냐?"

떡배가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았다.

그리로 혹시나 싶어서 선도일과 김혜인에게도 넌지시 이야기를 했고, 될 수 있으면 김혜인과의 장난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남모르게 하는 것으로 바꿨다. 아무래도 세진에게 들키지 않고 서로 더듬는 것은 어렵다고 느낀 것이다.

물론 김혜인은 정진이를 불러 놓고 김형일에게 보이는 삐뚤어진 애정 표현을 삼가 하라는 충고를 했다. 물론 정진이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펄쩍 뛰었다. 다만 선도일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떡배도 참견을 하지 않았다. 워낙 과묵하고 또 연애 쪽으론 워낙 재주가 없는 사람이니 그냥 둬도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어리 공방의 식구들이 사라진 자넷에 대해서 걱정을 하며 새로운 수련법을 익히는 동안, 어리는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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