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리에게 위기가 닥치다 -- >
5등급 우두머리 몬스터 사냥도 실상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세진과 자넷 이외의 다른 식구들이 무척 위험한 상황을 자주 겪어야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들 뒤에는 세진이 있었다.
정 위험할 것 같으면 어김없이 세진의 디버품이 작렬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에테르 방패가 일행들을 구했다.
물론 대부분의 위험은 김혜인 박사의 대상 이동 능력으로 넘길 수 있었는데, 그 때마다 식구들은 한 번씩 지옥을 갔다 오는 경험을 해야 했다.
만약 김혜인 박사가 제 대에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면 몬스터의 입에 씹혀버리거나 몽둥이에 찍히거나 꼬리에 두드려 맞거나 했을 테니, 꼭 눈앞에 닿을 듯이 이빨이나 몽둥이, 꼬리가 다가온 다음에야 이동이 이루어지곤 했던 것이다.
당연히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이동 능력을 쓰지 못하게 하는 자넷의 교육을 받은 김혜인 박사가 능력 사용을 극도로 아끼고 제한한 이유 때문이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언제나 슬쩍 지리는 경험을 매번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5등급 일반 몬스터를 해결하고 우두머리를 찾아가면 그 후는 세진과 자넷이 나서서 해결을 하는데 그 때에는 또 몬스터의 기운에 적응해야 한다면서 가까운 곳에서 관전을 하게 해서 살떨리는 경험을 하게 한다.
몬스터와 세진, 혹은 자넷이 서로 부딪힐 때마다 사방으로 퍼지는 엄청난 파장은 그야말로 떡배 등을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이 기운에 눌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거 잘 알지? 그러니까 버텨! 겪다 보면 익숙해지고 그럼 웃으면서 넘길 수 있게 되는 거야."
자넷은 에테르 충격파에 몸을 떠는 식구들에게 그렇고 소리를 질렀다.
어쨌거나 '벗' 소속의 공략팀이 나서서 세계 곳곳에서 5등급 우두머리 몬스터의 이면 공간을 정리하면서 어느 정도 인류의 숨통이 트이는가 했다.
그 동안에 다른 4등급 우두머리 공략에 나서는 나라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새로 늘어나는 6등급 몬스터 구역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주제파악을 해서 확실하게 이면 공간 공략에 성공할 자신이 없으면 나서지 않게 된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간혹 실패가 생기고 그렇게 되면 또 6등급 몬스터가 날뛰는 영역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그런 구역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그 나라는 주변국들의 지탄을 받아야 했다. 책임지지 못할 똥덩어리를 싸질러 놓은 나라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었다.
이에 '벗'에선 6등급 몬스터 공략에는 절대 나서지 않을 것이며 자국에서 벌어진 6등급 몬스터 발생은 그 나라에서 책임지는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래도 혹시나하고 기대하고 있던 6등급 몬스터 소유국들은 그야말로 암울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 이제는 정말로 4등급 우두머리 몬스터를 공략하는 것을 스스로 금지하는 나라들이 늘어났다.
그러는 사이에도 5등급 우두머리들은 계속 소탕이 되고 있었다. 이제는 공략에 나서는 이들이 어리 공방의 식구들 이외에 다른 팀이 '벗' 소속 팀이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왜냐하면 어리 공방의 식구들이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어리의 이동 능력을 사용해서 의뢰가 들어온 곳으로 가서 이면 공간을 공략하고 사라지곤 했기 때문에, 어리 공방 공략팀이 여전히 우이동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린 곳에서 이면 공간이 공략되는 일이 벌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 있잖아요. 어리는 방금 대단한 것을 알아냈어요.
어느 날, 세진과 자넷이 오랜만에 어리의 홀에서 쉬고 있을 때에 어리가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둘의 관심을 끌었다.
"대단한 거?"
당연히 세진이 냉큼 호기심을 보였다. 물론 자넷도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 있잖아요. 제가 관리하는 테멜들 중에서요.
"그래. 테멜들 중에서?"
- 어떤 거는 여기 이면 공간에서 얻은 코어. 그러니까 이면 공간 유지 코어로 성장을 했고, 어떤 것은 저쪽에서 가지고 온 테멜 코어로 성장을 했잖아요.
"그래. 그렇지."
- 그런데요. 그 중에 하나는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하나도 흡수하지 않은 상태로 3등급 테멜이 된 것이 있어요. 그리고 다른 거는 어쨌거나 1등급이건 2등급이건 이쪽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한 경험이 있는 것들이거든요?
"그런데?"
- 있잖아요. 테멜 코어만 흡수해서 성장한 경우에는요, 아무래도 좀 모자란 아이가 된 것 같아요.
"응? 무슨 소리야?"
- 그러니까 이것들을 잘 보니까요. 아주 조금씩이지만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의지라고?"
세진이 감짝 놀라 되물었고 자넷의 눈도 커다랗게 떠졌다.
- 맞아요. 분명 그런 것이 있어요. 더구나 4등급 오션 테멜 녀석은 가끔 반항을 하려고 하기도 해요. 뭐 제가 워낙 카리스마가 있어서 꾹 눌러 버리긴 했는데 이번에 등급이 높은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이것들이 무슨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이전과는 달리 의지가 강해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코어들이 의지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테멜 코어만으로 성장한 쪽은 그런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럼 결론적으로 말을 하면 지구의 이면 공간 유지 코어들이 의지를 품고 있다는 말과 같은 거네?"
- 네. 그래서 생각을 했어요. 아무래도요. 우리가 생각을 잘못했던 것 같아요.
"생각을 잘못하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세진은 어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되물었다.
- 제게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일부러 지구의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먼저 흡수하고 그 뒤에 테멜 코어를 흡수했던 것이 잘못된 거라는 거죠. 그거 아무래도 거구로 해야 하는 거 같아요.
"음?"
세지은 어리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리말은 그러니까 지구의 코어가 의지를 지니고 있는데 그걸 먼저 흡수하는 것이 잘못이다 이런 거야?"
자넷이 어리에게 물었다.
- 어리가 코어들을 흡수하면 강해지는 건 맞거든요. 그런데요 만약에 제가 이제 또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한다고 치면요. 그 코어가 가진 의지는 4등급과는 비교가 안 되겠죠? 거기다가 이전까지는 별로 의지 같은 건 없었던 녀석들이 이번에 각성이라도 한 듯이 강해졌으니까 5등급을 흡수할 때는 힘겨루기를 해야 할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어리 말은 이제까지와는 반대로 의지가 없는 테멜 코어로 먼저 등급을 올리고, 그 뒤에도 테멜 코어들을 많이 흡수해서 힘을 키운 후에 마지막으로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하는 것이 좋겠다는 거야? 그럼 그냥 이면 공간 유지 코어는 흡수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냐?"
- 자넷님, 그건 아니죠.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테멜 코어와 결합해서 전혀 새로운 것들을 이룩할 수가 있다고요.
"그렇군. 그게 있었어. 두 코어가 결합해서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거."
- 그래서 이면 공간 유지 코어도 포기하기 아깝죠. 그러니까 어리는 테멜 코어들을 흡수해서 무럭무럭 자란 다음에 같은 5등급이라도 제가 훨씬 더 강해진 후에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하는 거예요. 그래야 할 필요가 있어요. 흐음.
세진은 묵묵히 어리와 자넷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선입견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어리가 이쪽의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먼저 흡수하고 성장했다는 이유로 그게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던가. 혹시라도 어리가 그런 사실을 알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어리에게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시켰다가 그 5등급 코어의 의지가 더 강해서 어리를 잠식하거나 혹은 대체하게 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세진은 저도 모르게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구나.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 어리가 예전에 처음으로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하면서 무척 고생을 했던 이유도 그런 거 때문이었을지도 몰라요. 어리도 몰랐지만 당시에 코어의 의지와 제가 서로 주도권 싸움을 하고 결국 어리가 승리했던 것이 분명해요. 뭐 그 후로도 어리는 두 번이나 더 이겼지만, 그 때는 어리가 무척 튼튼한 상태로 적을 상대했고, 적들의 의지가 강하지 않아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이에요. 하지만 이번에 갑자기 강해진 코어들의 의지를 생각하면 이제부터 어리는 한 등급 낮은 테멜들을 관리해야 할 것 같아요. 같은 등급이라고 오션 테멜의 의지가 반항을 하거든요. 제 통제를 받기 싫다고 하는 것이에요.
"일단 눌러 놨다면서?"
-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자꾸 싸우게 되면 곤란할 것 같아요.
"결국 어리에게 파란색 등급의 테멜 코어를 줘야 한다는 건데, 문제는 우리에게 5등급 테멜 코어가 없다는 거지. 안 그래 세진?"
"그래. 그게 문제지. 그런데 그걸 세바스에게 부탁하면 쉽게 구할 수 있을까?"
"그건 모르겠는데? 글쎄, 가능하지 않을까? 가지고 있는 헌터들이 있긴 할 거야. 아니 없을까? 사실 따로 구별해서 판매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그 등급의 화이트 코어 로 취급을 해버리니 따로 구하기가 쉽지 않을 지도 몰라."
"전엔 4등급 세 개도 구해 왔었잖아. 참, 어리야 몬스터 랜드 녀석도 4등급 아니냐?"
- 몬스터 랜드는 아직은 조용해요. 그 녀석은 3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와 4등급 테멜로 성장을 했거든요. 그래서 아직은 별로 반항을 하진 않아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
- 그 녀석도 조금씩 의지가 성장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에는 4등급의 몸에 맞게 성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그 놈도 결국 반항을 하겠네?"
- 확실치는 않지만요.
"아니. 잠깐만."
그런데 갑자기 자넷이 대화를 중지시켰다. 그리고 어리에게 물었다.
"어리, 혹시 오션 테멜하고 몬스터 랜드 테멜이 함께 4등급이 되어서 힘을 모으면 네 가 그것들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아?"
- 에? 둘이요? 둘이 한꺼번에 덤비면 곤란한데요?
"거기다가 3등급 중에서 하나만 빼곤 모두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한 녀석들이잖아. 그럼 그 녀석들도 어쩌면 오션 테멜이나 몬스터 랜트 테멜 편을 들게 될지도 모르지. 그것들이 보기엔 어리나 오션 테멜이나 몬스터 랜드나 모드 같은 등급이라면 말이야."
- 하지만 지금은 제가 월등한데요? 제가 모두 통제하고 있다고요.
"알아. 아는데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거지. 그렇게 되면? 어리, 넌 어떨 것 같아?"
- 정말 그렇게 되면 어리가 질 수도 있어요.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는 거죠.
"미쳐. 미치겠구만."
세진이 어리의 말을 듣고는 고함을 질렀다.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암초를 만난 기분인 것이다. 어리는 세진의 가장 든든한 우군 이다. 그런데 그런 어리에게 위험이 닥칠 수도 있다니 세진이 버럭 소리를 질러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세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그랜드 마스터에 한 발을 걸친 실력자이며 또한 정신 능력을 크게 개발한 사람이었다.
잠깐 화를 내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멘탈이 붕괴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다시 데블 플레인으로 가야 한다는 거지. 그래서 파란색 등급의 테멜 코어를 여러 개 얻어서 어리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거지? 그럼 자넷은 어떻게 하지? 이제 곧 휴가가 끝나잖아."
"흐응. 그러네. 그럼 나는 여기 있고 세진만 가면 안 되나?"
"자넷 바보냐? 그럼 자넷이 실종된 상태로 데블 플레인의 시간이 흐르겠지. 그렇게 되면 세바스가 나를 죽이려고 들 거야. 널 테멜에 숨기고 있다는 누명을 쓰게 될지도 모르지."
"아, 그렇게 되겠구나? 다음에 내가 세진하고 다시 데블 플레이에 가게 되면 거긴 세진이 머물렀던 시간만큼 시간이 지난 다음이 된다는 거구나?"
"당연하지."
"그럼 어쩔 수 없이 나도 세진과 함께 가야 한다는 거네? 정말 나 휴가 기간 얼마 안 남았는데 어쩌지?"
"세바스가 파란색 등급의 테멜 코어를 쉽게 구해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자넷의 휴가가 끝날 때까지 만족할 정도를 얻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내가 데블 플레인을 쓸고 다니면서 테멜 코어를 모아야지. 물론 헌터들 사이에서 수배도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어차피 이곳은 시간이 흐르지 않을 테니까 걱정없어."
"그건 그렇겠네. 하지만 나 휴가 끝나가 가버리면 세진 혼자만 남게 되잖아."
"자넷이 나를 찾으러 다시 올 때까지 데블 플레인에 있을 텐데 뭐. 내가 지구를 몇 번을 오고 가도 결국 자넷이 데블 플레인으로 오게 되면 나를 볼 수 있을 거야. 내가 데블 플레인에 있을 때에만 그곳의 시간이 흐를 테니까 말이야."
"그게 그렇게 되나?"
"아니면 내가 죽고 나면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 그건 너무 어려운 문제니까. 거대한 우주의 법칙이 알아서 할 문제겠지."
- 그럼 이제 또 다시 데블 플레인에 가는 건가요?
어리가 물었다.
"그래. 네가 지금 관리하고 있는 모든 테멜들을 일단 빼 놓은 상태로 가야지."
- 왜요?
"그것들이 그곳 데블 플레인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니까 말이야. 더구나 몬스터 랜드에 그 많은 몬스터들이 데블 플레인에 가게 되면 데블 플레인에 몬스터들이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될 걸?"
- 아, 그렇군요. 에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