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50화 (150/298)

< -- 널뛰는 몬스터 등급 -- >

- 도시 하나와 마을 여섯 개. 이번에 이주 희망자를 최종적으로 정착시킨 결과예요. 어때요?

어리가 홀에 앉은 세진과 자넷에게 물었다.

"도시 인구는 7천? 마을들을 100명에서 200명 사이? 제법 규모가 큰데?"

"그러게? 7천이면 정말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이 뭐 하고 사는 거야?"

- 도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소규모 도시의 모습을 짜깁기해서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도시를 먼저 만든 다음에 그 건물들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뽑았다고 해야죠. 그래서 건물들 마다 그에 알맞은 직업들이 생긴 거예요.

"빵집에는 제빵사를 원하는 사람과 그 가족을 넣고, 옷집에는 또 옷을 만드는 사람을 넣었다는 말이네?"

- 잡화점을 운영하고 싶은 사람에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했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시에서도 필요 없는 건물들을 뺐다는 거죠.

"전자 제품을 팔거나 하는 곳들을 말하는 거야?"

- 네. 그래서 제가 참고한 도시들은 대부분 오래 된 도시들이고 전통이 살아 있는 도시들, 그리고 아직 발전하지 못한 도시들이었어요.

"결국 재래식 도시의 등장이네. 하긴 전기가 없는 곳이니 어쩔 수 없지."

"전기는 없어도 몬스터 코어를 이용한 편의 시설들은 다 있잖아. 등불이라거나 난방이라거나 하는 것들은 차고 넘칠 정도고."

- 그래도 특수 구역이 있어서 그곳에선 에테르를 최소로 해서 전자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어요. 연구소죠. 테멜 하나를 그렇게 활용해서 그곳으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테멜 사이를 오고 갈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었다는 말이네?"

- 그렇죠. 다른 소규모 마을들은 몰라도 도시는 그래야 할 필요가 있어요. 연구원들은 연구소 테멜에서 근무를 해도 되지만 그들의 가족은 도시에서 머물러야 하니까 요.

"좋아. 그래서 이번에 정착시킨 인원이 1만? 그런데 그 중에 각성자나 수련 능력자도 있다고?"

- 네에. 어디서 사주를 받고 정보원으로 들어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한 마디로 음, 투쟁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싸우는 것이 싫다는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 받아들여서 좋은 것은 없을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세진. 그들도 그냥 일반인처럼 살고 싶다는 것 뿐이야. 아니 어쩌다가 각성을 하게 되었다고 무조건

'각성자니까 나가서 몬스터와 싸워서 인류를 보호해라.'

라고 하는 건 이상하지 않아? 그들도 선택의 자유는 있어야 하는 거라고."

"그러다가 사람들 다 죽고 나서 후회하라고? 거기다가 수련 능력자는 또 왜? 수련을 했으면 당연히 스스로 원해서 한 거 아냐?"

- 그건 아닌데요.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한 경우도 많은 모양이에요. 특히 나이가 젊은 사람들 중에서 수련 기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프랜드 이주민으로 신청한 경우가 많았어요. 심지어는 정보부 같은 곳에 자원을 해서 이곳으로 정보 수집을 위해서 가겠다고 하고는 여기 와서는 곧바로 그런 사실을 알리고 이곳에서 일상적인 삶을 살 고 싶다고 한 사람도 있어요.

"가지가지 한다. 뭐 어쨌거나 그 사람들도 일단은 일반인들과 같이 취급해. 그들의 능력을 우리가 쓸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일반인과 다르게 대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테멜 안에서 능력 사용은 못하게 하고."

- 그건 미리 약속을 받아 뒀어요. 테멜 안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유동은 제가 따로 감시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걱정이 안 되게 생겼냐? 넌 하나고 네가 관리해야 하는 테멜은 여기까지 열 여섯이다. 너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하잖아."

-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요. 어리는 어리인 것이에요. 컴퓨터가 아니라고요.

"에휴, 그래 알았다. 알았어. 누가 뭐라냐? 어차피 테멜 입구는 닫혀 있으니까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는 없고, 여기 홀도 나하고 자넷 이외엔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테멜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해 봐야 저들끼리 치고 받고 싸우고 할 뿐이지뭐. 일단은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거니까."

- 그래도 각성자들은 어쩌면 테멜 입구를 제 허락 없이 통과할 수도 있어요. 물론 평 소엔 감춰두겠지만 감이 좋은 사람이라면 테멜의 입출구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죠.

"만약에 테멜을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냥 몬스터 랜드로 보내버려. 그 안에서 시달려봐야 정신을 차리겠지. 죽으면 그것도 하는 수 없는 일이고."

세진은 어리에게 단호한 대처를 명령했다. 이쪽에서 계약을 어기지 않으면 당연히 상대로 그래야 한다는 것이 세진의 생각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뭐가요?"

"5등급 몬스터가 나왔잖아."

"그런데요?"

"그 좋은 머리로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예상을 해 보란 말이지."

"흥, 그건 해서 뭐해요? 그런 넘사벽은 아예 머리에서 지워요."

"어허, 이 여자가 어딜."

"이 아저씨가 정말, 지금 피한 거죠?"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아저씨가 콧대를 세울 때가 아니라고요. 알아요 몰라요?"

"알지."

"알면서 그래요? 좋아요. 그럼 어디 안마나 좀 해 봐요. 나도 해 줄 테니까."

"남들 보면..."

"능력은 뒀다 어디 쓰게요?"

"으음. 알았어."

떡배는 슬금슬금 기운을 풀어서 김혜인 박사의 몸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와 동신에 김혜인 박사도 떡배의 몸을 정신 능력을 이용해서 꾹꾹 눌러주며 근육을 풀어주기 시작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조금 떨어져 앉은 상태로 각자 책을 보고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론 온통 서로의 몸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이런 관계가 된 계기는 딱히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외로운 처지끼리 얽혔을 뿐이다. 거기다가 능력이 남다른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묘한 터치를 즐길 수 있는 사이어서 더 빨리 가까워졌다.

각자의 방에 떨어져 누워서도 서로의 몸을 더듬을 수 있다는 것은 이 둘에게 있어선 더없이 좋은 능력이었다.

그렇게 가까워진 지금은 어리 공방 식구들도 대충 둘의 관계를 알아차릴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퍽!

"으아악!"

"너 거기 안 서?"

"아 왜 또! 왜 나만 보면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데?"

"어쭈? 도망을 가?"

"이건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이게 뭔 짓이야? 왜 남의 방에까지 들어와서 행패냐고."

우당탕 소리가 나며 김형일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더니 반대쪽 문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그 뒤를 전진이가 뒤따라 간다.

둘 다 육체 능력을 지니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부대끼게 되는데 정진이도 호감을 표현하는데 익숙치 못하고, 김형일은 정진이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상상은 하지도 못하면서 얽히고 있었다. 그래도 워낙 계속 붙어 있다 보니 정이 들어선지 일이 생기면 서로를 알아서 챙기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퍼벅! 퍼버버버벅!

"쿠에에엑. 그만, 그만 해. 자꾸 이럼 나도 안 참는다?"

"참지 않으면 어쩔 건데? 함 해 볼까? 훈련장으로 가?"

"으아아. 왜 이러냐고. 오늘 그 날이야? 응?"

"죽어!"

"쿠에에엑, 거, 거긴..."

"야, 터졌냐? 응? 터졌어? 어디 봐봐."

"보긴 뭘 봐! 저리 가!"

"야, 어딜 가냐? 거기 서 봐. 약이라도 발라야지. 내가 알고 그랬겠냐? 나도 그건 아껴야 한다는 거 안다고."

"저리 가라니까? 아니 이 누나가 정말!"

우당탕탕.

"아주 힘이 넘치네요."

"하하, 그렇군요. 흐음."

"그, 그렇지요?"

몇 걸음 떨어져 앉아 있는 두 사람도 김형일과 정진이의 공방에 자극을 받았는지 뭔가 조금 더 격해진 듯 하다.

"후우, 세진님께 새로운 식구를 영입하자고 해야 하나? 아니다 자넷님께 부탁을 할까? 뭐가 이렇게 허전하고 그러냐?"

선도일이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다가 남모르는 한숨을 쉰다.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기운과 전혀 다른 기운을 사용하는 선도일은 떡배와 김박사 사이에 오고가는 에너지의 흐름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진다.

그 기운이 어딜 어떻게 오고가는지 느껴지니 선도일로선 이제와서 그걸 느낀다고 할 수도 없이 그저 모르는 척 하고 버틸 뿐이다.

'내가 변태가 되어가는 것 같아. 저 둘 때문에 점점 더. 아흐흑.'

손에 들고 있던 부엌칼로 허벅지라고 찌르고 싶은 도일이다. 참, 한가로운 어리 공방의 한 때였지만, 그것이 단지 한 때에 지나지 않음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멀고 아득한 곳에서는 아직도 힘겨운 싸움이 벌어지고 있음을 몰랐고, 그것이 이제 곧 인류 전체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도 몰랐다.

넓은 공간에 수 많은 코어들이 허공에서 춤을 추듯이 흔들리며 흘러 다닌다.

그 중앙에 거대한 코어 하나가 있다.

일반적인 코어도 아니고 화이트 코어도 아니다. 시시각각 수많은 색으로 다변하는 코어는 주변에 있는 금색의 코어들을 호위를 받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마치 숨을 쉬는 듯이 코어의 색이 이리저리 변할 때마다 엄청난 에테르가 사방으로 휘몰아친다.

그리고 또 어디선가 끌려 들어온 기운이 코어에게 흡수되고 다시 얼마간 시간이 흐 르면 에테르가 휘몰아쳐 나온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에테르 기반 생명체의 모태, 행성 코어였다.

행성 코어는 쉼없이 지구의 에너지를 끌어 들여서 그것을 에테르로 바꾸어 내뿜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행성 코어는 지구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었다. 행성코어는 자신이 우주의 어떤 다른 행성 코어들과 비교해도 색다른 진화를 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와 같은 존재인 많은 코어들이 행성을 점령하고 또 에테르 기반 생명체를 흩뿌려서 에테르 기반 생명체의 세상을 수도 없이 만들었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모방이었다.

살아있는 것들의 모방, 다른 생명들의 모방으로 그 행성에 존재하던 것들을 흉내낸 인형들을 무수히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정체된 행성으로 굳어 가는 것. 그것이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의 현주소였다. 하지만 지금 지구에서 성장한 행성 코어는 자신이 다른 유사 개체들과는 다른 진화를 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겪어내고 있었다.

애초에 지구에서 몸을 숨기고 자식들을 널리 번창시키는 것까지는 이전의 다른 유사 개체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지구라는 행성의 의지가 행성코어로 자란 그를 막아섰다.

행성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를 경험하지 못한 코어는 정해진 계획대로 일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며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렇게 조금씩 코어는 변화하고 성장하며 진화했다.

그러느라 코어는 지구와 협상을 했고, 그들만의 공간을 지구 위에 만들어서 살아가기로 했고 지구도 그에 동의했다. 비록 기이한 생명이기는 하지만 그들도 생명이니 지구는 지구상의 다른 생명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지구 위에 이면 공간을 만들어 공생을 하는 쪽이 나쁘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행성 코어의 탐욕이 그 끝을 모를 정도로 커서 지구 자체를 위협할 거라는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지구의 기운을 끌어 들여서 에테르로 바꾸는 코어의 탐욕이 지구에게도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그만 만족할 것을 요구했지만 코어는 그 때부터 대화가 아닌 실력 행사를 시작했다.

억지로 기운을 끌어가서 에테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전처럼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지구의 의지는 어느 순간 코어의 퇴출을 결심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코어의 반격에 지구의 의지가 꺾였다. 만약 지구의 의지가 나선다면 코어는 자신들의 자식들을 모두 지구상에 풀어 놓겠다고 협박을 한 것이다. 지구의 의지와 에테르 기반 생명체의 모태인 행성 코어가 싸우는 동안 아마도 지구가 품고 있는 다른 생명들은 거의 멸종을 하게 될 터였다.

어쩌면 그렇게 되고도 싸움을 끝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때문에 지구의 의지는 행성 에테르 코어와 지루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단, 이면 공간을 열고나서는 몬스터들이 생기면 그 때는 지구의 의지도 최후의 결전을 치르리라 고 코어를 위협했고 다시 협정이 맺어졌다. 이면 공간을 열고나서는 에테르 코어의 자식들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지구의 의지에겐 불행하게도 이면 공간을 외부에서 열어 버리는 일이 생겼고 그 때문에 다시 다른 이면 공간들이 수도 없이 열리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때문에 행성 코어의 힘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에테르의 소비. 그것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에테르가 소비되면서 그 에너지는 지구 본연의 에너지도 아니고 에테르 에너지도 아닌 형태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것은 행성 코어에게 불행한 일이 되었다.

지구의 생명체들이 그 에너지를 이용해서 새로운 지구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데 반해서 에테르 기반 생명체는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주 소소한 양이지만 몬스터 코어를 이용해서 소비되는 에테르가 지구 생명체들의 활동을 통해서 지구 본연의 에너지로 환원이 되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지구가 빼앗기는 에너지의 양이 아직도 더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구의 멸망은 약간씩이라도 늦춰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행성 에테르 코어는 더 많은 자식들을 세상으로 보내서 지구 생명들을 멸종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지구에선 등급에 맞지 않는 몬스터가 이면 공간에서 나오는 일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행성 코어도 적잖은 힘의 낭비를 해야 했지만 어쨌거나 제법 강한 자식을 세상에 풀어 놓기 시작했으니 성과가 있을 거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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