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47화 (147/298)

< -- 세상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 >

"직업이 문제군."

세진이 서류를 뒤적이며 중얼거렸다.

"응?"

"테멜 도시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직업 말이야. 직업이 문제라고. 뭐든 해서 벌어먹고 살아야지. 그냥 먹여주고 입혀주고 할 수는 없잖아."

"그것도 그러네. 하지만 대부분 농사 짓게 한다고 하지 않았어?"

자넷이 세진에게 물었다.

"기껏 수준이 텃밭 수준인 텐데? 그걸로 자급자족도 못하겠다. 그러니 뭔가 일을 시켜야 한다는 거지."

"그럼 일단 몇 가지로 일을 분류해야겠네?"

"무슨 말이야?"

"일에도 종류가 있는 거잖아. 일단 생산."

자넷이 손가락을 하나 펴며 말한다.

"생산?"

"맞아. 뭘 하거나 생산을 하는 모든 활동이지. 농사를 지어도 생산. 땅을 파서 철광석을 캐도 생산. 농산물로 음식을 만드는 가공을 해도 생산. 쇳물로 칼을 만들거나 혹은 수리하는 것까지도 생산 활동."

"그래. 좋아. 그런 생산 말고는?"

"일을 하기는 하는데 생산은 아니고 뭔가 만족을 주는 여러 행위들."

"서비스?"

"그렇게 불러도 좋지. 그런데 거기엔 치안을 유지하는 경찰이나 청소부 같은 이들도 포함이 되는 거야. 아무튼 일은 하는데 생산적인 것이 아닌 모든 거."

"또 있어?"

"있어. 이건 육체 노동이 아니라 정신 노동. 그러니까 배우고 익히고 연구하고 고민하는 지적인 활동들."

"이해했다. 뭐 그것도 일은 일이지. 그리고?"

"몰라. 지금 생각나는 건 그 정돈데? 아무튼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것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대가를 줘야 한다는 거지."

"복잡하네."

세진이 머리를 긁었다.

"아니 안 복잡해. 그냥 사람들 모아 놓고 그대로 둬. 그럼 알아서들 하겠지. 처음에는 아주 난리도 아니겠지만 서로 필요한 일들을 찾아서 할 거야. 하나만 막으면 되는 거지."

"뭘 막는데?"

"정당하지 못한 행위. 그것만 막아 놓으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거래가 발생하고, 그 거래를 하기 위한 수단을 찾게 되는 거야. 물물교환에서 시작하겠지만 곧 화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겠지.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일단 소규모 마을로 먼저 시작을 해야 하는 거야. 몇 백 명 정도의 소형 마을들. 그러다가 자리를 잡으면 그 마을들을 연결을 시키는 거지."

"내가 끼어드는 건?"

"화폐 유통? 그런 걸 도울 수는 있지. 일단 어리가 한동안 보급품을 주잖아. 그럴 때에 교역을 하게 해는 거야. 뭔가 생산품이 있으면 그걸 사 주는 거지. 그러면서 화폐를 풀고, 공무원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뽑게 되면 그 사람을 통해서 봉급을 주고 화폐를 유통하게 하는 거지."

"그 화폐로 살 수 있는 재화는 어리가 만든 것으로 일단 대체하고 이후에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들을 상품으로 하게 만든다?"

세진이 어느 정도 이해를 했다는 듯이 되물었다.

"뭐 그렇지. 하지만 처음에는 어차피 혼란스러울 거야. 그러니까 이참에 컨설턴트  같은 이들의 도움을 얻어 보라니까? 계획 도시 건설, 외부와 단절된 자치 도시 정도로 해서 외주를 주면 될 거 아냐? 그럼 알아서들 시뮬레이션 해서 어느 정도 결과를 만들어 낼 텐데?"

자넷은 주먹구구 식으로 테멜 도시를 만들려는 세진을 타박했다.

"하아, 이건 뭐 그냥 부모님이 편히 지내실 전원 마을 하나 만들겠다는 것이 뭐가 이렇게 복잡하게 얽히는 거야?"

세진이 한숨을 쉬면서 이마를 짚었다.

사실 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젠 테멜의 위험성도 어느 정도 확인을 해서 도시나 마을을 건설해도 상관이 없다는 확신을 얻자마자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 뿐이다.

그런데 달랑 부모님만 모시고 와서 테멜에서 살게 하는 것은 감옥에 가두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마을을 건설해서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것을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으니 계속 머리를 쥐어 짜게 된다.

"그럼 쉽게 가자. 응?"

자넷이 세진의 꼴을 더는 못 보겠던지 도움을 주기 위해서 한 마디 한다.

"쉽게? 어떻게?"

"그냥 테멜의 마을을 외부와 완전 단절된 것으로 하지 말고 이를테면 주민들을 밖으로 나다니지 못하지만 택배 차량 정도는 오갈 수 있는 곳, 정도로 하는 거야. 그럼 마을에서 생산한 것을 내다 팔 수도 있고, 또 필요한 것을 주문해서 살 수도 있고,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의 가치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 따로 화폐니 뭐니 걱정할 필요도 없잖아. 외부와의 연락이야 좀 구식이어도 편지 정도로 제한하고."

"흐음."

세진이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괜찮은 생각인가 고민을 해 본다.

"어차피 계약서에 안전을 보장하는 대신에 외부로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편안하고 안전한 노후를 위한 실버 타운 정도로 해서 사람들 모아. 그럼 되잖아."

세진은 그럴 듯 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외부에서 상품을 조달할 일이야 별로 없겠지만 일단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재산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괜찮은 조건인 것 같았다. '벗'에서 모집하는 자치 도시에 대한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어쨌거나 갓파 10년(사람들은 몬스터가 등장한 후부터 연차를 붙여 그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동안 '프랜드' 혹은 '벗(友)'이라고 하는 단체가 한 일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고, 지금도 여전히 '벗'이 대 몬스터 전선에서 빠지게 되면 엄청난 희생이 생기게 될 거란 사실은 확실한 상황이었다.

비록 아직도 테러단체라는 오명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벗'은 강력한 집단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런 단체에서 자치 도시의 주민을 모집한다는 것은 엄청난 소식이었다.

거기에 그 자치 도시의 위치가 불명이란 것도 꽤나 이슈가 될 만한 일이었다. 어디에 그 도시를 세울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하다가 결론은 이면 공간을 이용한 도시일 거라는 쪽으로 의견이 좁혀졌다.

거기에 대해서 '벗'에서도 긍정적인 답을 내어 놓기도 했다.

"우리들이 건설하는 도시는 이면 공간 자체는 아니다. 하지만 이면 공간과 유사한 곳이다. 그러므로 이면 공간과의 동화 현상이나 에테르 과도 노출과 같은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곳이다. 우리들의 도시가 이면 공간에 건설될 것이란 소리 때문에 이면 공간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라면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확언한다."

자꾸만 '벗'의 자치 도시가 이면 공간에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또 이면 공간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특이 사항 때문에 인류에게 위험한 곳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하자 어쩔 수 없이 '벗'에서 발표한 내용이었다.

이로서 새로 만들어지는 도시가 세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고, 또한 벗에서 이면 공간을 이용한 특별한 뭔가를 이룩해 냈다는 것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또 다시 '벗'의 자치 도시에 정보원들을 들여보내기 위한 수작들이 꾸며지기 시작했다. 이미 '벗'의 역량을 알고 있는 정보기관에서는 어설프게 들킬 것 같은 이들을 정보원으로 한 것이 아니라 '벗'에서 자치 도시의 주민으로 받아들일 것 같은 이들을 거꾸로 포섭해서 자치 도시에 지원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썼다.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정보를 밖으로 빼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그런 작업들을 두루두루 펼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벗'의 자치 도시 주민 모집에는 의외로 많은 인원이 지원을 했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지원한 지원자들이 넘쳐났다.

"뭐가 이래? 이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뭘?"

"아니 겨우 몇 백 명 모집하겠다는데 이게 무슨..."

"다 뽑아도 상관없잖아. 먹여 살리는데 문제 있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어차피 그 사람들 대부분이 정보를 빼 내기 위해서 오는 사라들일 거야. 그런 사람들이니까 일단 받아서 한 쪽에 몰아 넣고 오리엔테이션을 해. 그거서 최종 합격자를 뽑으면 될 거 아냐?"

"엉? 오리엔테이션?"

"일단 합격했다고 하고 어리 테멜에 모아. 그런 다음에 생활 하는 것을 보고 적당하다 싶은 사람만 정착지로 보내면 되잖아. 나중에 다른 사람들은 불합격 통보를 하고 내쫓으면 되는 거고 말이야."

"테멜에 대해선? 자신들이 있던 곳이 테멜 공간이란 사실을 아는 이들이 있을 텐데?"

"그래서 뭐? 기껏 전자기기나 통신이 안 되는 공간이란 것을 빼면 커다란 건물 실내에서 생활하다가 나가는 것 뿐이잖아."

"그래도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있다는 걸..."

"이면 공간을 숱하게 보고 들은 사람들에게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숨길 걸 숨긴다고 애를 써야지. 그런 걸 뭐하러 숨겨? 사실 따지면 테멜이나 이면 공간이나 다를 것이 별로 없잖아. 안 그래?"

"음, 그런가?"

세진은 잠깐 생각을 자넷의 말대로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 으음. 어리는 무척 바빠요.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세진이 어리가 있는 중앙 홀로 들어가자마자 어리가 투정을 부렸다.

"그래. 고생한다."

- 그래도 괜찮아요. 이제 어리는 어리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정말 좋아요.

어리는 자신이 테라포머로서 인류의 생존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된 테멜 개발에 무척 열성적이었다.

"오션 테멜은 어때?"

- 아주 좋아요. 에테르를 이용한 정화 시스템은 확실히 대단해요.

"에테르 때문에 생명체들의 변이 현상은 벌어지지 않고?"

- 괜찮아요. 이건 확실한 것 같아요. 에테르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으면 절대로 문제 없어요. 그래서 테멜 안에서도 전기 전자 제품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게 필요할까?"

- 당연하죠. 통신과 기록은 무척 중요하다고요. 사실 사람들의 기억은 한계가 있잖아요. 연산에도 한계가 있고요. 그런 것을 도와줄 보조 도구들은 분명 필요하다고요.

"그럼 그 부분은 아무래도 분리를 해 보는 것이 어떨까?"

- 분리요?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사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과 현대 문명을 누리고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을 분리해서 받아들이는 거지. 솔직히 소규모 마을들에서라면 구형 전화기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연구소 같은 곳에서야 현대적인 시설들이 필요하다고 해도 말이야."

-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지형 설정은 끝이 난 거야?"

- 네에. 농사를 짓거나 목축을 하고 뭐 그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 세 곳이에요. 지형이 조금씩 다른데 한 곳은 평원이고 다른 두 곳은 산과 평야로 되어 있죠. 아열대 기후로 설정한 곳이 한 곳이고 한국과 같은 기후를 설정한 곳이 한 곳, 그리고 호주 동부의 기후를 그대로 적용할 곳이 한 곳이에요.

"3등급 테멜이라서 그리 넓지는 않을 텐데?"

- 일단은 그래도 테멜 한 곳에 1만명 정도 까지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리는 별로 사람들의 생활에 간섭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필요한 것들을 전해주는 정도로만 도움을 줄 뿐이죠. 그리고 그것도 어느 정도 지나면 알아서 자급자족하게 할 거예요.

"참, 들었지? 오리엔테이션."

- 네.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일단 먼저 어리 테멜에 공간을 만들어서 확실하게 테스트를 하고 적합한 사람들을 선별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뭐 일단 정착지로 가게 되 면 외부완 거의 단절이 되는 거니가 아무나 뽑아도 상관은 없어요. 알아서 적응하고 살겠죠. 뭐. 그렇게 계약을 하고 오는 사람들이니까요. 괜히 헛소리 하고 그러면 몬스터 랜드로 보내버릴 거예요. 흥.

어리가 무시무시한 말을 한다.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보낸다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