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46화 (146/298)

< -- 세상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 >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그 오랜 적응의 역사가 유전자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고, 그로 인해 도전하고 또 도전하며 결국 이룩하는 것이 인간들의 삶이었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고작 백 만년도 되지 않는 시간, 지구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지구를 지배하는 종으로 살고 있을 뿐임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 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진 종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인간이라고 그런 종들의 뒤를 따르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몬스터들이 세상을 뒤덮기 시작한 것이 고작 몇 년도 되지 않았는데, 세계 곳곳에 몬스터 영역들이 산재해있고, 그 중에는 아직도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한 3등급 몬스터 영역도 적잖았다. 더구나 등급 혼합의 몬스터 영역 중에서 4등급 몬스터가 등장한 것도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전 세계는 그야말로 생존 경쟁을 시작했다.

모든 인간은 몬스터 영역을 체험하고 각성의 기회를 가져야 했고, 각성자가 되지 못한 이들은 공개된 비기들을 수련하면서 최소한의 능력이라도 가지려고 애썼다.

거기에 조기교육부터 시작된 수련자 교육은 그야말로 성황을 이루었다. 이젠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하고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일반 학교라도 능력 수련 시간이 교과 시간에 들어가 있었다.

어떻게든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인류의 종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그런 상황을 당연한 일로 만들었다.

각성자나 수련 능력자들은 따로 교육을 받고 봉급을 받으면서 인류 수호의 첨병으 로 키워졌다.

그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각국이 보유한 비기들에 대한 교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또 그것을 숨기기 위한 숨바꼭질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몬스터 문제로 인류의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면서도 국가나 민족, 사상과 종교에 따른 분열의 골은 메워지지 않았다.

자넷은 이 코딱지 같이 작은 행성에서 무슨 그렇게 많은 단체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상황을 평가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전 일본에서 갓파가 나타난 이후로 한동안 이어지던 혼란은 10년이 지나기 전에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있었다.

절대 깰 수 없는 단 하나의 규칙.4등급 몬스터 사냥 금지.

이 철칙이 지켜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구에는 여전히 3등급 몬스터 영역이 최고의 등 급이었고, 그 3등급 몬스터 영역 중에서 등급 혼합형 영역에서 나오는 4등급 몬스터가 최고 등급의 몬스터인 상황이 유지가 되고 있었다.

만약 4등급 몬스터를 사냥해서 그로부터 코어를 얻게 되고, 또 4등급 몬스터 영역이 열리게 되면 그 사태는 정말 걷잡을 수 없을 것이란 인식을 모두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점차 한계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또 인류는 예감하고 있었다.4등급 몬스터가 있는 영역의 수가 하나 하나 늘어나고 있었다.3등급 코어들에서 생성되는 등급 혼합 영역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4등급 몬스터 사냥을 금지한 이후로 프랜드에서도 3등급 이면 공간을 공략하기는 하지만 혼합형 공간은 공략을 하지 않았다.

혼합형 이면 공간에는 4등급 우두머리 몬스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4등급 몬스터 사냥이 금지된 상황이라 의뢰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3년 전부터 프랜드에서는 3등급 천공기를 일정 수량 보급하고 있었다.

프랜드는 3등급 천공기에 대해선 판매를 하지 않고 요청하는 국가에게 단서를 달아서 내 주었다.

단서는 당연히 사냥에 성공하는 경우 화이트 코어는 프랜드의 몫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3등급 천공기를 가지고 호기롭게 이면 공간 공략에 나서서 성공을 하는 경우는 열 번에 한 번도 보기 힘들었다.

대부분 전멸을 면치 못했고, 성공하더라고 우수한 인재들을 대부분 잃은 상태로 공략을 이루어냈다.

그러니 그런 공략을 성공이라고 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나마 3등급 우두머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몬스터 등장 10년이 지나는 동안에 이룩한 성과라면 성과일 것이다.

개인 화기는 더욱 크고 튼튼해지고, 각성자들이나 수련 능력자들 중에서 특별하게 만들어진 그런 총화기를 들고 사냥에 나서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아는 이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 화기의 한계가 3등급 우두머리 몬스터까지란 사실을 말이다.

그 이상을 개인화기에서 기대하는 이들은 없었다. 도리어 각성자와 수련자들의 개인 능력을 더 키우는 쪽에 무게를 실어다.

당연히 그들에겐 롤모델이 있었다.

어리 공방의 이면 공간 공략팀은 세진, 자넷, 떡배, 김혜인, 선도일, 정진이, 김형일 이렇게 일곱 명이 전부지만 이 인원으로 한 번도 3등급 우두머리 사냥에 실패한 적이 없었고, 희생자를 낸 적도 없었다.

그런 예가 있으니 무기에 의지하기 보다는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관심을 두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도 세계의 과학자들은 코어의 에너지 즉 에테르 에너지를 이용한 여러 가지 실험들을 했고, 심지어는 에테르 에너지를 이용한 돌연변이 실험을 하다가 인간에게 과도한 에테르를 주입해서 결국 몬스터화 시키는 사고를 저지른 나라도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은 극비로 기록조차 되지 않고 구두 보고를 거쳐서 또 비밀스러운 장소 로 옮겨져서 여전히 가능성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친 짓을 하는 인간들이 어디 시대나 행성를 가리겠어? 어디나 그런 것들은 있었어. 과거 세기에는 일루젼이란 것들이 그랬다고 했지.'

자넷은 언젠가 그런 말로 지구 과학자들의 기괴한 실험을 논평한 일이 있었는데 세진이 일루젼이 뭐냐고 물었을 때 자넷은

'만약에 나치의 잔당들이과 731부대가 지금까지 음지에 숨어서 못된 짓을 획책하고 있다고 생각해 봐. 그런 것이 우리 우주 연방에도 있었거든? 그게 일루젼이었어.'

라고 설명을 해 줬다.

일종의 미친 과학자들의 비밀 세력 따위인가 하고 세진은 이해를 했는데, 자넷은 그런 것들은 세상 어디나 있고, 지구에도 그런 놈들이 많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어떤 나라에서 어떤 실험을 하고 있는지는 세진도 알지 못했다.

그런 것을 파헤치자고 각국을 돌아다니거나 혹은 어리에게 수고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갓파 10년이 된 상황에서 여기저기서 새로운 형태의 에테르 코어의 사용법들이 나오고 있었다. 에르터 코쿤은 이미 과거의 유산 정도로 취급해야 해야 할 정도로 에테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기관들이 나오고 있었다.

'쯧쯔. 진주를 돼지 목에 거는 것이 아니라 진흙에 처박는 것들.'

이라는 자넷의 혹평을 들은 것들이기는 해도 에르터 코쿤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형태의 에너지 이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세진이 김혜인 박사를 통해서 내 놓은 몇 가지의 실용 마법진들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거기에 세진의 어리 공방에서 2년 전부터 판매하고 있는 에테르 코어 갑옷들도 인류의 대 몬스터 대항에 일조를 하고 있었다.

몬스터의 공격을 방어해 줄 수 있는 갑옷은 여벌의 목숨을 지니고 있는 것과 같았으니 당연히 수요가 많았고, 각국 기관에서 여러 형태로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결국은 어리 공방에서 만들어진 것이 기준이 되었다.

세진이 내 놓았다는 실용 마법진 중에 에테르 코어를 이용해서 여러 형태의 충격을 방어해주는 마법진이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서 갖가지 방어구들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도 역시 명품 소리를 듣는 것은 어리 공방의 물건이었지만 세진은 일정 수량 이상은 내 놓지 않았다.

"너무 내게 기대게 하면 안 되지. 필요한 것을 모두 주는 것은 멍청한 짓이야. 스스로 만들게 해야지."

세진은 그런 이유로 갑옷의 수량을 조절하고 있었고, 그에 부응하듯 각국은 나름의 방어구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3등급 테멜의 주인인 어리는 몇 년 사이에 드디어 4등급 테멜의 주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전에 테멜들을 구해오면서 가지고 왔던 초록색 등급의 테멜 코어가 몇 개 없어서 어리는 4등급 테멜로 진화를 하고, 그 아래에 두 개의 4등급 테멜과 열 세 개의 3등급 테멜을 관리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럼에도 4등급으로 진화한 후, 어리는 정말로 테멜 안에서 에테르를 이용한 몬스터 생성에 성공했다. 물론 단 한 번이라고 어리가 관리하는 테멜 안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몬스터에 한해서지만 어리는 에테르를 이용해서 몬스터를 만드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부족 코어를 지니고 있는 우두러미 몬스터를 어리가 관리하는 몬스터 랜드라 이름  붙인 테멜에 넣어두고 적당한 에테르를 넣어 주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우두머리 몬스터가 부하 몬스터를 만들어 냈다.3등급일 때에는 하지 못했던 일이데 4등급이 되면서 가능해진 일인 것이다. 물론 4등급이 되면서 어리가 관리하는 공간의 크기가 서울의 행정 단위로 두 개 구(區) 정도의 넓이가 되었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사실 그 넓이에 높이가 문제인데 300미터 정도의 높이를 가진 두 개 구 정도의 넓이가 4등급 어리의 넓이였다.

그리고 오션 테멜이 4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와 초록색 등급 테멜 코어를 흡수해서 어리 테멜과 비슷한 넓이로 커졌고, 다른 하나는 초록색 등급 테멜 코어만 흡수한 상태로 역시 넓이는 비슷한 테멜이 되어서 몬스터 랜드라고 불리며 몬스터 실험실로 사용이 되고 있었다.

"우아아. 정말 죽이려고 작정을 한 거야. 어떻게 우리에게 4등급 몬스터를 상대하라고 할 수가 있어?"

"3등급 우두머리 아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 진이야."

방금 몬스터를 처리하고 복귀한 어리 공방 식구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뒤풀이를 하 고 있었다. 그런데 그 뒤풀이가 잘 먹고 잘 쉬는 것이 아니라 그 날 있었던 사냥을 돌아보며 점검하는 시간이란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무래도 조만간 세진님과 자넷님 도움 없이 우리 다섯이서 3등급 우두머리 몬스터를 사냥해야 할 것 같습니다. 훈련하는 것을 봐서는 분명 그렇게 될 겁니다."

"도일씨. 지금 겁주자는 거예요? 그래요?"

김혜인 박사가 발끈한다.

"뭐 틀린 말도 아니구만. 오늘 우리가 4등급 몬스터를 상대했단 말이지. 그러니 이제 그 위짝으론 3등급 우두머리 순서 인 것이 맞지 뭘. 다 알면서 괜히 모른 척 한다고 될 일이 아니지."

"떡배 아저씨!"

"나 어디 안 갔으니까 살살 이야기해도 되는데 김박사?"

"어쩜 날이 갈수록 능글능글."

"뭐 나이 순서로 대접하기로 한 다음부터는 떡배 형님이 서열 4위 아닙니까. 그러니  어쩔 수 없죠."

"호호호. 맞아. 형일이 말이 딱 맞네. 서열 4위. 공동 1위 세진님과 자넷님. 그리고 2위는 없고, 3위는 어리. 그리고 4위와 그 이하 떨거지들."

"에휴휴. 진이 누님은 정말 말을 그렇게 하면 좋아요? 그 떨거지에 누님도 들어가거든요?"

"형일아. 어쩔 수 없어. 이젠 뭐 그런 걸로 마음에 스크레치 같은 거 안 생기거든."

"그나저나 테멜이란 거 정말 엄청나지 않아요?"

김혜인 박사가 조금 전에 다녀온 몬스터 랜드를 비롯해서 테멜을 떠올리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긴 하지. 어떻게 프랜드에선 그런 곳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것도 이면 공간을 보고 만들어낸 거라고 했지 언니?"

"그렇지. 그런데 그거 만드는데 워낙 많은 화이트 코어가 들어가고 거기다가 그걸 유지하는데도 엄청난 화이트 코어가 필요하다잖아. 하긴 세상의 화이트 코어의 절반 이상을 다 모아서 어디에 쓰는가 했었지. 그런데 테멜 보니까 이해가 되긴 하더라."

아직도 어리 공방의 식구들은 어리에 대한 비밀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여전히 어리는 특이한 각성 앵무새 정도로 인식이 되고 있었고, 테멜의 경우에도 어리라는 이름을 딴 것이 원래 어리 공방이란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었다.

어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세진과 자넷 뿐인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 사람들 입주를 받을 거라는데 그거 어떻게 될 거 같아?"

정진이가 선도일을 보며 물었다.

나이가 선도일이 한 살 더 많았지만 정진이는 선도일을 친구처럼 대했다. 나이로 서열을 정하는 중에서 유일하게 어긋난 관계가 그 두 사람이었다.

"몬스터로부터 안전한 '벗'의 특별 자치 도시로 이야기가 되고 있고, 입주하려는 사람들도 계약서를 써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몰리지는 않을 거야. 사실 말이 자치 도시지 일종의 새로운 나라나 마찬가진데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는데 누가 쉽게 응하겠어?"

선도일이 정진이에게 그의 예상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안전하다는데? 그것만 해도 어디야? 솔직히 벗의 비호를 받으며 평화롭게 살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거 아냐?"

정진이는 그게 당연한 거 아니냔 표정으로 물었다.

"확신이 없다는 거지. 도일이 이야긴."

떡배가 나섰다.

"확신이요?"

"자자, 어딘가 아주 살기 좋은 곳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거기가 어딘지는 몰라. 더구나 그 배후에 있다는 것이 '벗'이란 말이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는 비밀 단체에서 운영하는 묘한 자치도시. 거기에 가서 산다는 결심은 쉽지 않아. 더구나 중요한 것은 그곳에 가면 외부로 출입하는 것이 제한을 받는다는 말이지. 도시 안에서 안전하게 살 수는 있지만 어쩐지 자유롭지는 않다는 그런 느낌? 그래서 안 가려고 할 거란 말이지."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요. 그래도 아는 사람들에겐 권하고 싶지 않아요? 테멜 안 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다면 말이죠. 물론 사람들의 수가 어느 정도 되어서 사회를 구성할 수 있어야겠지만요. 몇 명이 모어서 살면 그건 정말 재미 없을 테니까요."

"그렇지. 사실 적당한 규모의 마을 하나만 되어서 그럭저럭 부대끼며 살 정도는 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테멜에 만드는 도시도 나쁘진 않을 거야. 다시 말하지만 사람 수만 적당히 맞출 수 있으면 말이야."

떡배도 테멜 속의 도시 건설이 나쁘진 않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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