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44화 (144/298)

< -- 우이동 어리 공방의 비밀 -- >

훈련장이 어리 공방에서 아주 중요한 곳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곳에 누가 들어온다고 무얼 훔쳐갈 것도 없고, 또 어떤 비밀을 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각성자나 수련 능력자라면 기껏 훈련 효과를 조금 보고 나가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래서 훈련장은 말 그대로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리고 누가 어리 공방을 침입해서 염탐을 하거나 하는 일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아직 없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공식적인 이야기고, 비공식적으로도 정말 어리 공방에 침입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하지 말라고 해도 꼭 해 보려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어리 공방이 북한산 기슭으로 옮기면서 어떻게 보면 사람들의 이목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도 은밀하게 무슨 일을 하려는 이들에게는 좋은 환경을 제공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잠입을 했던 이들은 그들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테멜, 그 알수 없는 세상에서.

"이봐,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분명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문도 없어지고 이렇게 끝도 없는 동굴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젠장 북한산에 무슨 동굴이 이렇게 길단 말이야? 분명 자연 동굴이 분명한데 어떻게 건물 내부에서 이런 곳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었는지 모르겠군."

"우리가 모두 한꺼번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것은 아니겠지?"

"미친 소리. 우린 정신을 잃은 일이 없어. 어리 공방의 세진이란 놈의 거처로 함께 들어오다가 이곳으로 들어오게 되었지만 그 사이에 우리가 정신을 잃거나 하진 않았다고."

"그런데 어떻게 들어온 문이 없어지고 이런 곳을 헤매게 되었냔 말이지."

"어쩌면 우린 지금 이면 공간에 들어온 건지도 몰라. 다들 알잖아. 이면 공간은 들어가는 순간 일정 지역으로 랜덤하게 이동을 하게 된다는 거 말이야."

"그럼 그 문이 이면 공간으로 들어가는 통로와 겹쳐 있었다는 거야?"

"그럴 수 있겠군. 그럼 이곳은 이면 공간이고 세진이나 프랜드에선 그 이면 공간을 이런 식으로 이용할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는 거로군."

"그래서 뭐. 그걸 정보라고 기억했다가 보고라도 하게?"

"당연하지 우리의 임무가 그것이었으니까."

"지랄을 하세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자 기기는 하나도 제대로 작동을 안 하거든. 아니 정확하게는 통신은 전혀 안 되거든? 그런데 그게 가능할 것 같냐? 우리가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고."

한 팀의 침투조가 작은 내부 분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들은 다국적 용병들로 몇 번의 1등급 이면 공간 공략 경험도 있는 탄탄한 팀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어리 공방의 내부를 염탐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고, 단지 내부의 모습만 촬영해서 건네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서 임무를 수락하고 세진과 자넷의 집이라는 건물로 들어왔었다.

그 시간 세진과 자넷은 외출중이었고, 다른 어리 공방의 식구들은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부 감시조를 통해서 확인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침투조가 세진과 자넷의 집으로 들어선 순간 일은 엉망으로 변하고 말았다.

어딘지 모를 동굴 속으로 이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육체 시계를 기준으로 닷새 동안 동굴을 따라 헤매고 있었지만 벗어날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같은 곳을 빙빙 돌면서 헤매는 것도 아니었다. 곳곳에 남긴 흔적은 단 한 번도 다시 본 적이 없었고 동굴의 모습도 비슷한 듯 했지만 매번 달랐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자 드디어 같은 동료들 사이에서 분란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 어머나 이젠 서로 싸우는 거예요? 그러지 마세요. 팀 보거스님들.

보거스는 그들이 자신들의 콜네임으로 사용하는 이름이었다.

"누, 누구십니까?"

팀의 리더인 셈슨이 황급히 총구를 앞으로 내밀며 물었고, 다른 대원들도 일사분란하게 원형을 이루며 총을 들어 올렸다.

- 설마 총으로 저를 쏘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아, 저는 정말 힘들어요. 여러분과 대화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요. 그러니까 괜히 제 신경을 건드리지 마세요. 다음에는 얼마나 더 있다가 여러분에게 기회가 올지 몰라요. 요즘 불청객들이 많아서 정말 관리하기 힘들거든요.

"우릴 가둔 것이 그쪽입니까?"

- 아아. 음. 저는 어리라고 해요. 어리.

"어리라면 그 세진이 데리고 다닌다는 앵무새 이름 아닙니까?"

- 어머나 절 아시는 분이 계시네요? 좋아요. 평가점수 5점을 드리겠어요. 호호호.

"평가 점수라니 무슨?"

-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에게 점수를 부여해서 나중에 그걸로 혜택을 주고 말고 하는 그런 짓을 한다고 생각하진 마세요. 그냥 농담이에요. 그래도 뭔가 준다니까 좋긴 하잖아요? 안 그래요?

"이런, 허허."

어리의 말에 다섯 보거스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점수란 말을 듣는 순간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 자자. 이젠 선택을 하세요. 여러분은 포로가 되셨습니다. 그걸 인정하고 포로 대우를 받아서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하실 건지, 아니면 계속 저항을 하실 건지를 선택하셔야합니다.

어리의 말에 다섯 보거스들은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어떻게든 지금 상황은 벗어나봐야 이후를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리더는 길게 끌지 않고 항복을 결정했다.

- 아, 좋아요. 결단이 빨라서 평가 점수 5점을 더 드리겠어요. 팀 보거스는 10점에서 시작입니다. 호호호.

보거스들은 어리의 말이 진심인지 장난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쨌건 그들은 입고 있던 옷까지 모두 털리고 새로 주어진 옷을 입어야 했다.

옷은 예전 19세기 초반의 범죄자들이 입던 줄무늬 죄수복이었다.

"하아, 내가 이런 옷을 입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네. 이거 영국하고 미국에서 예전에 입히던 그 옷 아냐?"

"뭐 요즘도 입히는 곳이 있긴 한가?"

"그래도 재미는 있네. 저 봐라 모두 똑 같은 꼴을 하고 있는 거."

"그런데 여긴 어디지?"

"어딘지 알면? 내가 보기엔 여기도 이면 공간 안쪽일 거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들을 저리 풀어 놓을 수는 없지."

"자 일하자. 일을 해야 배급을 받지."

보거스들은 거의 탈출을 포기하고 주어진 일에 충실하기로 했다. 겨우 며칠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곳에는 어디선가 흙들이 가끔 쏟아져 들어온다. 온통 돌로 이루어진 바닥에 흙들을 깔아서 두툼하게 만드는 것이 죄수들의 일이었다.

그리고 한쪽에선 그렇게 만들어진 밭에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심기도 한다.

"천정이 그리 높지도 않는데 나무는 심어서 어쩌려는 걸까?"

"걱정도 팔자다. 다시 뽑아서 옮기거나 말거나 그걸 우리가 왜 신경을 쓰나?"

"하긴."

대수롭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들은 삽을 들고 이리저리 작업장을 돌아다니며 흙을 평평하게 고른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한쪽 벽에 만들어진 숙소에 들어가서 먹고 자고 씻고 또 일하기를 반복한다.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어리라는 관리자는 그것이 밖에서 하루의 시간에 맞춰진 일정이라고 했다.

그런 중에도 간혹 죄수들이 충원이 되고, 사고를 일으킨 죄수가 퇴출이 되기도 한 다.

그런데 그렇게 퇴출된 죄수들이 간혹 다시 복귀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모두들 순한 양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 때문에 죄수들을 절대로 퇴출되는 일은 당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무슨 일을 당하는지 입을 다물어서 알 수는 없지만 좋은 경험은 아닐 거리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리가 관리하는 테멜 교도소는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고, 그들의 손으로 이런 저런 경작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다른 곳에서는 완전 무인 시스템에 의한 수경 재배가 시험되는 곳도 있고, 모든 것을 자연의 힘이 맡기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일들은 실상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어느 날, 어리는 여러가지 물질들을 혼합해서 영양식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 재료가 바닷물과 그 속에 있던 작은 미생물들이라는 말에 세진은 그저 감탄만 했다.

"호홋, 원래 그런 거야. 음, 그러니까 수생 생물의 성장은 엄청나게 빠르거든? 거기다가 공간 활용을 생각하도 수 천 배의 효율이 있지. 생각을 해 봐. 물은 부피 전체에서 생산이 가능하지만 땅에선 그게 안 되잖아. 땅 속에서 뿌리가 자라는 것이나 나뭇가지에서 열매가 자라는 것이나, 아무리 봐도 버려지는 공간이 많지?"

"그런데 바다, 즉 물은 그런 것을 최소화 한다는 거야?"

"응. 그래서 바다 농장이 최고로 효율이 좋아. 생산성에선 단연 최고지."

"허탈하네."

"그렇기는 하지만 저렇게 합성을 해 내는 것 보다는 그래도 직접 길러서 수확하는 쪽이 더 맛이 있기도 하고 뭔가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느낌인 것 사실이야. 솔직히 나도 합성 식품 보다는 천연 식품이 더 좋아. 왠지 몰라도 말이야."

"그게 더 비싸서 그런 건 아니고? 사실 합성 쪽이 더 안전하고 맛도 좋다면서?"

"에에,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또 그런 게 있는 거야."

"알았다. 꼭 할 말 없으면 인상 쓰고 그러더라? 자넷 너?"

"인상은 내가 언제..."

그래도 어리의 교도소 죄수들은 여전히 이런저런 일에 동원이 되었다. 그냥 놀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어리가 할 수 있는 일들도 죄수들을 동원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 어리 공방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보니 그 내막을 캐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고 또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사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침입자들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어리 공방의 탓도 있었다.

까칠하게 화를 내고 그랬으면 진작 그만뒀을 텐데, 아무 반응이 없으니 이런저런 시도를 계속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테멜에 사람들을 넣어서 실험을 해 볼 필요가 있었던 세진이 침입자들 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테멜 공간 안에서 사람들의 변화를 관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 우와아. 대단한 발견이어요.

어느 날. 어리가 호들갑을 떨며 홀로 들어오는 세진과 자넷을 반겼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 으음. 일단 어리가 드디어 3등급 테멜 코어의 정보 중에서 쓸만한 것을 찾아냈다는 것이 중요해요. 어리는 드디어 새로은 능력을 지니게 된 것이에요.

"새로운 능력?"

세진은 어리의 말에 반색을 했다.

이전에 2등급으로 성장을 하면서 에테르를 이용한 물리적인 활동이 가능하게 되었던 어리였다. 그 덕분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던가. 그런데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 니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 어리는 이제 테멜 입구를 원하는 곳에 열 수 있게 된 것이에요. 멋지죠?

"음? 테멜 입구를? 그게 무슨 소리지?"

세진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되물었다.

- 아이참, 그러니까요. 제가 지금 에테르를 이용해서 살필 수 있는 주변의 범위가 반지름으로 1키로미터가 조금 더 되잖아요.

"그래서? 그 범위 안에서는 어디나 어리 네가 원하는 곳에 테멜 입구를 열 수 있다는 거냐?"

- 얼마 전까지는 제가 직접 움직여서 테멜 입구를 여기저기 막 옮기고 그랬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는 거죠. 에헤헴.

"잠깐, 그거 혹시 그 범위 안에서는 언제든지 사람이건 물건이건 납치가 가능하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 역시 자넷. 바로 그것이에요. 어리는 드디어 무적이 된 것이에요. 제 근처로 다가 오는 사람은 그냥 테멜로 넣어서 잡을 수 있다는 소리인 것이에요.

"그거 반가운 소리긴 한데 에테르가 몸에 없는 사람들은 어떻지? 지금까지 침입자들 잡을 때에도 어리 네가 에테르를 그들을 감싸는 편법으로 테멜 공간으로 들여 놓은 거였잖아. 아직도 에테르가 없는 이들은 독자적으로 테멜로 들어올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 걱정하지 마세요. 좀 힘들기는 해도 제 에테르를 이용해서 사람이나 생물을 끌어 들이는 것이 가능해요.

"그나저나 그 문제 어떻게 안 되는 거야? 천공기로 뚫은 이면 공간은 에테르가 없는 사람도 드나들 수 있는데, 혹시 그런 식으로 입구를 만드는 것은 안 되나? 매번 일정 크기 이상의 생명체에게 그렇게 에테르 막을 씌워야 한다니 불편하잖아."

- 그거 연구해 보라고 해서 연구 중이잖아요. 어리는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래. 알았다. 어쨌거나 우리 어리가 또 한 단계 성장을 했다니 축하할 일이네. 축하한다. 어리야."

- 에헴. 그게 끝이 아니란 말씀이죠. 어리는 드디어 입구의 크기를 더 크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젠 훨씬 큰 물건도 가능하게 되었어요. 아마도 전에 탔던 그 배 정 도도 넣을 수 있을 거예요. 사실은 에테르가 허용하는 한, 얼마든지 크게 만들 수는 있는데 그렇게 하면 에테르가 엄청나게 소비가 되어서 곤란해요.

"하하하. 좋구나 좋아. 그럼 이제 어디서 설계도를 얻어서 비행기나 배 같은 걸 만들어 볼까?"

"쓸데없이 그런 건 뭐하러 만들어? 참, 그런데 어리."

- 네. 자넷.

"입구를 그렇게 마음대로 열 수 있다면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순신간에 갈 수도 있겠네? 서쪽 끝에 있던 사람을 입구로 넣은 다음에 동쪽 끝에 입구를 열어서 내보내면 말이야."

- 그런 식의 이용도 가능하겠네요. 네 가능해요.

"재미있네."

자넷은 어리의 새로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어리는 어리 테멜에 묶여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어리 테멜, 그것이 어리의 본체인 것이다. 이전 자넷이 선물로 줬던 팬던트 형태의 테멜. 모든 테멜을 다 감춰도 그것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아니 어리 테멜을 다른 테멜 안에 넣어도 결국 하나의 테멜은 남아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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