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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노트-143화 (143/298)
  • < -- 우이동 어리 공방의 비밀 -- >

    세진과 자넷은 결국 가지 않으려고 했던 데블 플레인의 제이비아에 갔다 왔다. 자넷의 휴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될 수 있으면 데블 플레인에서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에 어리 공방을 새로 만들면서 테멜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고 데블 플레인에 다녀 온 것이다.

    사실 지금 헌터룸의 관리자들은 세진이 제이비아에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헌터룸에서 지구로 귀환을 한 것이 아니라 제이비아에서 직접 이동을 했기 때문이다.

    자넷은 데블 플레인에서 세바스를 통해서 엄청난 코어를 끌어 모았고, 그와 함께 적잖은 수의 테멜도 확보를 했다.

    세바스는 갑작스럽게 내려온 자넷의 명령에 화들짝 놀라서 엉덩이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넷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세바스는 역시 자넷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자넷이 요구한 테멜 코어와 테멜들을 한 가득 준비를 해 준 것이다.

    "이걸 다 어디 쓰시려고 그러십니까? 이전에는 그냥 장난식으로 관심을 가지신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규모가 좀 있습니다."

    "왜요? 이것들 구하는데 들어간 에텔론이 문제인가요? 그거 세진이 줄 거니 신경 쓰지 마세요."

    "네? 세진님이요?"

    "그래요. 그 동안 벌어 뒀던 거 쓰는 거지요. 거기다가 아직 게슈너 상점에서 들어오는 수입이 적지 않을 텐데요? 그걸로 모자란가요?"

    자넷이 세바스에게 따지듯 물었다.

    "설마요. 차고 넘칩니다. 게슈너가 없는데도 여전히 물건은 만들어서 판다고 말이 많고 눈과 귀들이 모이긴 했지만, 뭐 자넷님이 배후에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러려니 하지요."

    사실 게슈너의 사후에 상점을 추슬러 유지한 것이 자넷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세진이 제이비아에 내려오면서 다시 에테르 가드와 웨폰을 만들어서 자넷과 이익을 나누 기로 하고 판매 대행을 시켰던 것이다.

    물론 자넷이 레트 시의 라훌족 의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자넷 당이라는 당을 이끌고 이런 저런 일들을 하고, 거기다가 남모르게 현자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에도 매진하다보니 사업적인 일처리는 또 세바스에게 맡겨 놓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차고 넘치는 에텔론으로 물건 좀 구해 준 거 가지고 생색 내지 말란 말이지요. 어서 가서 일이나 보세요."

    "자넷님 너무하십니다. 갑자기 며칠 내로 일을 처리하라고 그렇게 닥달을 하셔고 고생고생을 했는데 어째 이렇게 구박을 하십니까? 아니. 그 전에 도대체 이 테멜들과 코어는 어디에 쓰실 건지 안 알려 주실 겁니까?"

    "우리 세진이 쓸 건데 세바스가 알아서 뭐 해요? 흐응? 솔직히 말해봐요. 뭔가 있지요? 세바스가 원래 감이 좋은 사람이지요? 그래서 자꾸 물어보는 거지요?"

    자넷이 세바스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하하하.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뭔가 엄청난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이게 말이 안 되거든요. 전혀 전조가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이런 느낌은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호호. 아직은 아니에요. 조금 더 묵혀야 해요. 아마 제 휴가가 끝나고 나서야 일을 시작해도 할 테니까 그 전에는 지금 하는 일에나 신경을 쓰세요. 그럼 되요."

    "그렇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자넷님. 그럼 저는 이만."

    세바스와 자넷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사실 그 후에는 곧바로 세진과 함께 지구로 와버렸으니 다시 돌아가도 세바스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일 터다.

    "역시 시간이 멈춰 있다는 것은 이상해. 여기서 또 오래 있다가 가도 세바스는 그걸 모를 테니까 말이야."

    "그렇기는 하지. 자 어쨌거나 테멜의 수가 엄청나게 늘었으니까 이제부턴 다시 실험을 해 보자."

    "그래."

    - 아흐흑. 어리는 굉장히 우울해요.

    정말로 어리는 자신이 우울하다는 것을 표현하려는지 홀 전체를 암울한 색과 분위기로 바꿔갔다.

    벽이나 천정, 바닥이 어두운 색으로 변하고 곳곳에 거미줄이 걸리고 먼지가 쌓였다.

    "뭐하는 거야? 지금."

    세진이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 하지만 이건 너무 속상하잖아요. 어리가 통제할 수 있는 테멜에 한계가 있다니요. 거기다가 테멜 안에 들어 있는 다른 테멜은 제가 관리할 수도 없다고요. 이럴 수는 없어요. 너무해요.

    "어리야. 너 지금 3등급 테멜만 열다섯 개를 관리하고 있거든? 그 정도면 30층 건물 150개를 네가 좌우한다는 말이나 같거든? 넌 그게 작다고 지금 투정을 부리는 거냐?"

    - 어리는요. 테멜 안에 들어 있는 테멜도 어리가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리의 원대한 꿈을 무참하게 박살이 나고 말았어요.

    "쯧. 너 자꾸 엉뚱한 짓 하지 말고 이번에 새로 가지고 온 3등급 테멜 코어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봐라. 어떠냐? 흡수할 수 있겠냐?"

    - 쳇, 세진님 미워. 실망한 어리를 위로해주진 못할망정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실 수가 있어요?

    "매정은 무슨? 너 지금도 3등급 테멜 코어를 어떻게 하면 낼름 삼킬 수 있을까 머리 굴리는 소리 다 들리거든? 실망이니 뭐니 하면서 결국은 좀 더 성장을 해야 한다고 할 거였지? 그러자면 3등급 테멜 코어가 필요하다고 할 거고? 맞지?"

    - 우와아아. 세진님...

    "감탄 필요 없고. 확실하게 하자. 자신 있는 거냐?"

    세진은 어리의 말을 막았다. 3등급 테멜 코어을 흡수하는데 문제가 있으면 안 되니 어떻게든 확인을 하려는 것이다.

    - 히잉. 몰라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하지만 오션 테멜도 3등급 테멜 코어 흡수했잖아요. 별 이상도 없고요. 그러니까 저도 괜찮을 거예요.

    "정말 오션 테멜 괜찮아? 아무 변화도 없고?"

    - 그건 아니고요. 좀 더 테멜 관리에 에테르 소비가 줄어들기는 한 거 같아요. 음, 그러니까...

    "시스템 효율이 좋아졌다는 말? 테멜을 관리하는데 더 효율적으로 변했단 말이네?"

    - 그런 거 같아요.

    "지금 네가 관리하는 테멜들 중에서 일곱 개는 3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해서 3등급이 된 테멜이고 또 다른 일곱 개는 지구에 와서 데블 플레인에서 가지고 온 3등급 테멜 코어를 흡수해서 3등급이 된 테멜이야. 딱 하나 오션 테멜만 둘을 혼합한 거지. 그러니까 그것들의 차이를 어리 네가 잘 관찰해서 비교해야 해. 알지?"

    - 우우. 알고 있다고요. 그리고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그냥 설계도 보는 것처럼 딱 보인다고요. 그리고 둘은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한 쪽과 테멜 코어를 흡수한 쪽은 확실히 구별이 된다구요. 또 둘을 결합한 오션 테멜은 확실히 달라졌어요. 뭐랄까 둘을 합쳐서 장점만 취한 것 같은 그런 거죠. 그러니까 어리도 노란색등급의 테멜 코어를 흡수하게 되면 또 다시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알았다. 준다 줘. 그렇게 하고 싶다면 해야지 어떻게 하겠냐. 실험도 해 봤는데 줘야지."

    세진은 어리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역시 그렇게 되는 거군. 어리가 이겼어."

    지금까지 찻잔만 홀짝거리고 있던 자넷이 한 마디를 한다.

    "이기긴 뭘 이겨? 어차피 방법이 없잖아. 어리를 이대로 정체시켜 둘 것이 아니라면 일찌감치 해치우는 쪽이 좋잖아. 그리고 정말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허락한 거지. 문제가 생길 것 같았으면 절대 허락 안 했을 거야. 어리는 내겐 여동생이나 마찬가지니까."

    "호호호. 알았어. 뭘 그렇게 발끈하기는. 지면 어떻고 이기면 어떻다고. 이럴 때 보면 세진도 어린 애 같아."

    자넷이 세진을 보며 깔깔거린다.

    그리고 드디어 어리에게 3등급, 데블 플레인 식으로는 노란색 등급의 테멜 코어가 주어졌다. 홀 중앙의 탁자의 중앙이 잘라지면서 사방으로 열리고 그 안에서 어리의 본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은색의 공 모양인 어리는 오랜만에 몸을 열어서 그 안에 테멜 코어를 받아들이고는 다시 역순으로 탁자까지 본래 모습을 만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어리야."

    - 천천히 할 테니까 며칠 걸리지 않을까요? 우웅. 저도 몰라요.

    "에테르 필요하니? 주입해 줄까?"

    - 에헤헤. 네에. 저는 세진님의 에테르가 너무 좋아요. 에헤헤.

    이제는 따로 에테르를 주입받지 않아도 스스로 에테르를 흡수하는 어리다. 화이트 코어를 흡수한 후부터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된 어리였다. 하지만 어리는 여전히 세진이 전해주는 에테르를 좋아했다. 뭔가 농축된 에테르이기도 했고, 세진의 기운이 들어 있어서 좋다고 하는데 세진은 어리가 아니어서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어리가 좋아하니 간혹 동생에게 간식을 챙겨주는 기분으로 에테르를 주입해 주곤 했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도전을 하는 어리에게 뭔가 응원의 뜻을 담아서 해 줄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는 것 같아서 하는 행동이었다.

    세진은 어리가 들어있는 탁자에 자신의 에테르를 흘려 넣었다. 그런 모습을 자넷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넷은 어리와 세진 사이의 교류를 이해할 듯 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면이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뭐 그래도 나도 어리를 여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으니까. 내가 어리를 아끼는 것처럼 세진도 그렇다고 생각을 하면 맞겠지. 칫, 질투 따위는 아니라고.'

    자넷은 다시 찻잔에 주전자를 기울였다.

    세진이 어리에게 에테르를 주입하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어리 공방의 식구들은 자신들이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되새김질 했다.

    새로 만들어진 훈련장이 그들이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는 이유였다.

    다른 어디에서 어떤 수련을 해도 새로운 훈련장의 수련 성취를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세진이 게슈너 경비대를 위해서 만들었던 훈련장을 약간 개선한 것이 우이동 어리 공방의 훈련장이었다.

    거기에 쓰인 코어는 모두 2등급 화이트 코어였는데 이번에 데블 플레인에 다녀오면서 3등급으로 바꿔버렸다.

    그래서 어리 공방 식구들이 체감하는 느낌이 확 달라진 것이기도 했다.

    이전에도 세진이 준 갑옷을 입고 훈련을 하면 남다른 성취가 있었다.

    그런데 이 훈련장에선 갑옷이 있거나 없거나 엄청난 에너지의 흐름을 느낄 수가 있었다. 각성자들은 애초에 그 근원이 에테르였기에 당연히 3등급 화이트 코어들로 만들어진 훈련장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엄청난 에테르의 압력을 느끼며 훈련장에서 뛰고 구르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김형일과 정진이는 육체적인 능력을 각성했고, 에너지가 몸 안에서 움직인다. 떡배는 에너지 자체를 가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김혜인 박사는 에너지를 정신의 영역에서 다뤘다. 그녀의 경우는 에너지가 정신력을 보조하는 것이거나 혹은 에너지 자체가 정신력이 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세진이나 자넷이 사용하는 에테르 자체와는 조금씩 달랐지만 어쨌거나 그들 모두가 에테르를 가공해서 에너지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에테르를 이용한 세진의 마법진들이 효과를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각성자가 아닌 수련 능력자인 선도일 같은 경우였는데, 처음 선도일은 훈련장에 들어와서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뛰쳐 나갔다.

    엄청난 에테르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그 후로도 선도일을 죽어라고 훈련장을 드나들었고, 결국 그것이 선도일에게도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선도일은 에테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에테르와 정 반대되는 기운을 다룬다.

    세진의 말로 하자면 지구 본연의 기운을 다루는 것이다. 그러니 지구를 침입한 에테르를 만나면 격렬한 거부 반응과 함께 폭발까지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도일이 훈련장에서 오래 버티면 몸 안에 있던 기운들이 모두 쇠잔하게 되고 텅 비게 된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밖에서 선도일이 익힌 수련을 하게 되면 그야말로 엄청난 기운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텅 비어 있는 그릇에 새로운 기운이 물밀듯 밀려드는 것과 같은 상황인데, 그럴 때마다 점차 선도일의 몸이 변화를 겪고 또 기운이 늘어나고 한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훈련장은 어리 공방의 모두에게 큰 효과를 보였다. 그래서 내심 선도일에 대해서 걱정하던 세진도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선도일이 어리 공방의 훈련장과 같은 것을 스승이 있는 곳에 따로 설치를 해 줄  수 없는지 물어서 그것 때문에 고민이 생기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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