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42화 (142/298)

< -- 우이동 어리 공방의 비밀 -- >

세진의 관심이 테멜에 쏠려 있을 때, 세진이 타고 있는 유람선은 서해에서 남해를 거쳐서 동해로 거슬러 올라갔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세진과 어리 공방의 식구들이 유람선 여행으로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세진은 배를 타고 이동하는 중간 중간 배를 멈추고 관광을 즐겼는데 사실 관광이란 명목으로 숨겨진 이면 공간을 찾아서 공략하며 해안선을 타고 돈 것이었다.

몬스터 영역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이면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1등급 이면 공간이 있는 곳에 상급의 이면 공간이 겹쳐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3등급 이면 공간의 결계를 허물 정도의 에테르를 집중시키면 그곳에 3등급 이면 공간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세진은 미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이면 공간들을 미리 해결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어리 공방의 식구들 밖에 없었다.

"이거 훈장을 받아야 한다니까?"

"맞습니다. 형님. 우리가 처리한 3등급 이면 공간이 벌써 몇 갭니까? 세 갭니다. 세 개요."

"우와. 그나저나 왜 이렇게 이면 공간이 넓은 걸까? 만약에 4등급 이면 공간에 들어가게 되면 몇 달은 걸려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럼 곤란한데 말이지."

"뭐가 곤란해요? 떡배 아저씨?"

"진이씨도 생각을 해봐. 여기 이면 공간에 오래 있으면 사람은 몰라도 물건들은 이면 공간에 속하게 된단 말이지. 그렇게 되면 결국은 가지고 들어왔던 물건들 대부분이 그냥 홀라당 날아가버린다니까? 그거 얼마나 아까운 일이야?"

"아, 그것도 그러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세진이 준 물건들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요.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품고 있기 때문에 쉽게 이면 공간에 동화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자넷이 떡배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끼어들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세 번째 3등급 이면 공간의 공략 마무리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우두머리 몬스터를 지척에 두고 휴식을 취하면서 힘을 회복하고 있던 중인 것이다.

사실 싸움이 시작되면 일은 자넷과 세진이 모두 처리한다. 다만 다른 일행들은 다른 몬스터들이 나타나면 그것들을 상대하거나 혹은 3등급 우두머리 몬스터의 기세와 위력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일을 한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이들의 목숨이 간당간당한 일이지만 그래도 회복 캡슐 덕분에 아직까지 죽는 사람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사실 어리 공방 식구들은 그렇게 죽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기적으로 여길 정도였다. 그만큼 우두머리 사냥을 참관하는 일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장비(長臂)는 뭔 놈의 장비? 관우 동생?"

"아니 떡배씨. 그게 아니고 팔이 길다는 장비요. 원래 장고라는 것과 함께 바리데기 신화에 나오는데 팔이 무지 길다고 하죠."

"딱 봐도 알아. 지금까지 상대한 놈들이 모두 팔이 질쭉질쭉 했거든.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잡았던 것들이 그 바리데기라는 아가씨 이야기에 나오는 장비들이란 말이 지? 팔이 긴 이민족?"

"그것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아마도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도일형, 그 장고라는 건 뭔데요?"

김형일이 물었다.

"장고는 팔이 아니라 다리가 무척 길다고 하는 이종족이지. 물론 바리데기 이야기에 나오는 거고."

"그럼 여기 말고 어디에 장고들 있는 이면 공간도 있다는 소린가요? 그래도 팔 보다는 다리가 긴 쪽이 상대하기 쉽지 않을까요?"

정진이가 듣고 있다가 불쑥 끼어든다.

"팔의 다섯 배는 더 강력한 것이 다리라는데, 넌 그런 것들을 상대하고 싶냐? 장빈지 뭔지 팔이 긴 것들 공격도 정말 어렵게 막았는데? 넌 죽자고 몸으로 떼우면 될지 몰라도 그거 막으려는 나는 흰머리 생겨 이것아."

김혜인 박사가 정진이를 타박한다. 김박사는 정신을 사용하는 각성자다. 그래서 주로 공격 보다는 방어를 하는 편인데 정신력을 이용해서 대상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것이 김박사의 주된 임무다.

팔이나 다리 등을 보이지 않는 힘으로 붙잡고 늘어지는 것인데,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 김박사의 힘이 겉으로 보였다면 몬스터의 팔이나 다리를 붙들고 죽자사자 매달리는 민망한 꼴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김박사는 될 수 있으면 자신이 어떻게 힘을 사용하는지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나마 위험할 때에 사람들을 가까운 곳으로 순간이동을 시킬 수 있는 능력은 힘은 좀 들어도 깔끔한 이미지 때문에 김박사가 마음에 들어가는 능력이었다. 물론 그런 능력 보다는 미친년처럼 매달려서 물고 늘어지는 쪽을 훨씬 많이 사용해야 하는 김박사지만, 싫다고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는 것이 아무래도 힘의 흐름을 눈으로 보는 것 같은 자넷과 세진 때문에 그럴 수도 없어 서글픈 김박사였다.

= 음. 저런 것들 몇 마리 테멜에 데려다가 일 시키면 잘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세진님.

"꿈도 꾸지 마라."

= 왜요? 사람처럼 생겼잖아요. 그리고 힘도 세고. 그러니까 몇 마리 잡아줘요 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 그냥 지금 비어 있는 테멜에 가둬 주시면 안 될까요? 어떻게 제가 통제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단 말이에요.

"어리 너. 욕심 부리지 말라고 했지?"

"그러지 말고 생각을 해 봐. 일단 1등급 중에서 하나 골라서 어리에게 맡겨 보는 것도 괜찮지 않아? 우두머리 잡아서 넣어 주면 혹시 그 놈이 새끼쳐서 몬스터들을 더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말이야."

"그래서?"

"그렇게 되면 뭐 몬스터 농장이 하나 생기는 거지. 호호홋, 재미있지 않아? 그리고 사실 테멜도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건 세진도 알잖아."

= 맞아요. 테멜에서 몬스터 코어를 그대로 두고 계속 몬스터들 생기면 잡고 또 생기면 잡고 하면서 수련도 하고 코어도 얻고 하는 트라이브들 많이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왜 전 안 된다고 그래요?

"야, 어리. 누가 안 해 준다냐? 그냥 1등급부터 하자고 하잖아. 덜컥 3등급부터 욕심내지 말고."

= 자리가 없잖아요. 자리가. 이왕 할 거면 1등급 보다는 3등급이 식구들 훈련을 시킬 때에도 좋고 뭐 그런 거니까.

"시꺼. 누가 식구들에게 테멜을 개방한다던? 아직 그런 계획 없으니까 멋대로 앞서 가지 마라. 응?"

= 에? 네에.

"그래도 1등급부터 일단 시험을 해 보고, 혹시라도 어리가 그것들을 어떻게든 통제를 할 수 있다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그러니 어리도 너무 실망하지 말고."

"자넷, 너 어리에게 에테르로 코어 만들거나 뭐 그런 일을 시키려는 거냐?"

"몬스터를 만들 수 있으면 코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거지. 위험한 몬스터는 중간 생략하고 에테르를 코어로 응집시키면 결국 지구의 에테르를 어리가 모두 빨아들여서 코어로 만들어 쌓아 버리는 거야. 그러다 보면 결국 지구의 에테르 농도가 낮아지지 않을까?"

"자넷, 너 그거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냐?"

"호호호. 테멜에 지구나 우주를 넣겠다는 생각 보다야 낫지 뭐."

"킁."

세진은 자넷의 말에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건 좀 과했다 싶었던 것이다.

세진 일행은 다도해 국립공원을 지나는 동안에 장비, 장고, 적유, 승황 등의 몬스터가 숨어 있는 3등급 이면 공간을 더 발견해서 도벌을 마쳤다.

그것들 전부가 바리데기 이야기에 등장하는 존재들로 장비는 팔이 긴 이민족, 장고는 다리가 긴 이민족, 적유는 사람 얼굴에 물고기 몸통을 가진 존재, 승황은 여우의 몸에 등에 뿔이 난 신수였다.

선도일은 아무래도 바리데기 이야기에서 바리데기가 아버지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저승으로 떠나는 길에 다른 나라들을 거치기 때문에 바닷에 그런 몬스터들이 많은 것이거나 아니면 뱃사람들이 아직까지 굿을 많이 하는 까닭에 섬이 많은 곳에 그 런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어쨌거나 그렇게 몬스터를 사냥하며 유람을 하고 있으니 어리 공방의 행보에 관심을 두고 있던 이들은 한숨만 쉬고 있었다. 멀리서 배를 지켜보는 것이 전부라서 어떻게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도 없고, 감시해야 할 사람들은 매일같이 배에서 먹고 마시면서 놀고만 있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또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나타나곤 하는데 배에서 뭔 짓을 하는지 알 방법이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리 공방의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강릉까지 올라가는데 자그마치 넉 달이 걸렸다.

그리고 어리 공방의 사람들만 아는 3등급 이면 공간 일곱 곳이 토벌되어 사라졌다.

어리 공방 식구들은 강릉에서 유람선을 내려서 배를 인천으로 돌려보내고 곧바로 차를 타고 북한산 기슭에 새로 만든 어리 공방으로 입주했다.

"으음. 뭔가 좀..."

"그러게? 이상하지?"

"그러네요."

하지만 새로운 어리 공방은 식구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묘하게도 세진과 자넷이 머물 건물의 크기가 다른 사람들의 개인 공간과 비교해도 그다지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훈련장이라거나 김혜인 박사의 실험실 건물이라거나 하는 것들은 따로 있으니 굳이 세진과 자넷의 살림집이 클 필요는 없지만 너무 소박해 보인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단층으로 지하실도 없는 건물은 아무리 봐도 공방의 본건물이라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상하면 어쩔 건데? 그 집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들어가지도 못할 텐데? 솔직히 자넷이 무서워서라도 어디 함부로 가겠어?"

"그것도 그렇지. 언니 말이 맞아. 함부로 갔다가 둘이서 므흣한 시간을 보내는데 방해하면 어쩌면 두 말 않고 팔다리를 모두 잘라 버릴지도 몰라."

"커엄. 그런 상황이면 목이 안 잘리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야지. 그 자넷님이라면 말이야."

"그렇죠? 자넷님이니까."

"그렇습니다."

선도일까지 정진이의 의견에 동감을 표했다.

"그럼 이제 그 많은 물건들은 어디서 만드는 걸까요? 언니?"

"뭐 언제는 우리 공방에서 뭘 만들기나 했니? 다 눈가림용이었지."

"에? 그래도 뭔가 세진님이 하는 작업도 있었잖아요."

"몰라. 내가 보기에 세진님은 그런 일을 하시는 것 같지가 않아. 딱 그냥 얼굴마담인 거야. 얼굴마담."

"그런가? 하긴 세진님을 봐도 기술자란 느낌은 안 들기는 하지."

"떡배 형님도 그래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전에 구리 쪽에 살 때는 간혹 뭔가 만들곤 했지만 그 후로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확신이 없네요."

선도일도 세진이 공돌이는 아닐 거라고 한 표를 던졌다.

"으아아. 그런데 자넷님이 또 훈련을 하신다고 했잖아요. 이번에는 또 어떤 훈련일까요? 솔직히 이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라고 생각이 되는데 말이죠."

"형일이 네 말이 맞다. 사실 필요한 것은 기운을 더 모을 수 있는 시간이지. 다른 것은 대부분 한계에 이른 것 같으니까 말이야."

"그렇잖아도 지나가는 말로 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번에 새로 만든 훈련장이 물건이랍니다. 지금 세진님하고 자넷임이 마지막 작업을 하느라고 우리에게 이런 여유가 있다는 거 아닙니까."

"도일씨. 무슨 말이에요? 훈련장이요?"

"네. 박사님. 그거 아주 엄청나다고 합니다.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도일은 자넷이 지나가듯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훈련장이 만들어졌으니까 이젠 익스퍼트 중급이나 상급도 꿈은 아니지. 호호홋. 좋아. 점점 좋아지고 있어. 호호홋.'

그 때 돋은 소름이 다시 뽀글뽀글 올라오는 느낌에 몸을 떠는 도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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