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38화 (138/298)
  • < -- 자넷 어리 공방의 안주인이 되다 -- >

    대한민국은 기린 그룹과 석성 그룹의 문제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 사건이 의외로 국민들의 의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지고 왔다.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안전 불감증에 큰 충격이 가해진 것이다. 매일같이 서울 한 복판에서 무너진 거대 빌딩 두 곳의 모습이 매스컴을 장악하며 나왔다.

    수도 서울, 그 심장에 폐허가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몬스터 영역에 대한 피해와 그 실황들이 화면을 채웠다.

    분명히 의도적인 것이었겠지만 그렇게 해서 국민들은 벗이란 단체에 대한 두려움과 위협을 몬스터 영역, 혹은 몬스터의 문제로 생각하는 의식 변화가 생겨났다.

    한 마디로 정의하면

    '우리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라는 것인데, 이전까지는 그냥 머리로 생각하던 것이 이젠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정부에서 벌이는 여러 정책들에 대한 저항이 많이 감소했다. 특히 몬스터와 관련해서 세우는 대책들에 대한 지지가 수직 상승을 할 정도였다.

    때문에 각성자에 대한 국가 관리에 힘이 실리고, 또 각성 프로그램에 대한 실험 계획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각성자의 육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우선적으로 현역 군인들을 대상으로 예외 없는 몬스터 영역 체험 훈련을 실시했다.

    이는 몬스터 영역을 경험한 이들 중에서만 각성자가 나온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국민들의 의견이 나뉘기도 했지만, 어차피 많은 군인들이 몬스터 영역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데 그것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다른 장병들의 체험을 막는다면 그것 또한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통상적으로 할 수 없는 대대적인 실험이 진행되었다.

    장병들은 유격 훈련이나 행군 등의 훈련 말미에 일정 기간 몬스터 영역에서 주둔하는 체험 훈련을 했고, 실제로 몬스터와 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정부에선 몬스터 영역 체험 신청자를 받았다.

    물론 그에 대한 광고도 대대적이었다.

    각성자라는 존재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사회 학자들의 미래 예견이 줄을 이어 나왔다. 그 모든 예견 속에서 각성자는 특권층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선전되었다.

    지금 학생들이 좋은 대학을 나와서 무슨 '사'자 직업을 가지는 것보다도 훨씬 미래가 밝은 직업으로 각성자를 꼽았다.

    당연히 몬스터 영역 체험에는 많은 사람들의 신청이 줄을 이었다. 더구나 각성자는 입대에서도 혜택이 있을 거란 소리에 입대를 걱정하는 모든 남자들이 몬스터 영역 체험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러니까 뭐야? 우리에게 각성자가 될 때의 징조나 뭐 그런 것을 자세히 적어서 제출하란 거야?"

    김혜인이 정진이를 보며 물었다.

    "응. 그렇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가봐. 우리처럼 간지러운 사람도 있고, 머리에 계속 바람이 불었다는 사람도 있고, 몸에 불이 났다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며칠동안 꽁꽁 얼어붙어서 움직이지도 못했다는 사람도 있었어. 뭐 주위 사람들이 볼 때는 멀쩡했다고 하는데 자기가 느끼기엔 그랬다나?"

    정진이가 탁자 위에 종이를 놓고 또박또박 글씨를 쓰면서 김혜인 박사의 말에 대답을 한다.

    "넌 정말 글씨가 그게 뭐냐? 완전 정자로 그것도 무슨 프린터로 찍은 것 같다."

    "이상해?"

    "그럼 안 이상하냐? 무슨 글씨가 자로 잰 것 같으냐?"

    "난 이게 좋은데? 딱 봐도 정리가 되어 있고 깔끔하잖아."

    "이 화상아 니 옷이나 정리를 해. 그리고 속옷 제대로 간수하라고 그랬지? 응? 여자가 아무데나 속옷을 내동댕이 치는 거 아니라고!"

    "에에, 그거야 언니하고 나하고 둘만 있으니까..."

    "이것아, 그러니까 더 잘 하란 말이야. 왜 난 사람 취급을 않는 건데? 응?"

    "그거야 언니하고 어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너 솔직히 말해 봐. 네가 이러고 사는 거 니 남자친구가 보면 어떨 것 같으냐?"

    "괜찮아. 없으니까."

    "김형일이 관심 없어?"

    "에? 그 꼬마?"

    "꼬마라니?"

    "나보다 어리니까 꼬마지."

    "세 살 차이는 보지도 않고 데리고 간다고 했다. 너."

    "그건 남자가 나이가 많을 때 이야기지."

    "요즘 남녀 구별이 어딨냐?"

    "헹, 난 관심 없네요. 그런 근육 바보를 누가!"

    "그러는 너는 뭐 다르냐? 너도 근육 바보야. 육체 능력 각성자."

    "나, 난 아니거든. 언니!"

    "아, 다 썼다. 역시 빨라."

    "언니 지금 나한테 말 시켜서 방해하면서 언니 할 일은 끝냈다는 거야?"

    "원래. 능력자는 한 번에 몇 가지 일을 하는 법이거든. 호호홋."

    "어니잇!"

    정진이가 와락 김혜인 박사에게 달려들지만 곧바로 침대 위에 나뒹굴었다. 달려드는 정진이를 김혜인이 이동을 시켜서 침대에 던져버린 것이다.

    퍽! 꿈틀 꿈틀.

    "야, 정진이 그대로 잘 생각 하지 말고 보고서 다 써야지."

    "아앙, 귀찮아. 귀찮아. 언니가 대신 해 주라. 우린 함께 겪었으니까 언니가 써도 되잖아. 아웅."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뭉기적거리는 정진이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던 김혜인 박사가 한숨을 쉬고는 정진이가 앉있던 탁자 앞에 앉는다.

    "뭘 썼나 했더니 관등성명만 적고 마셨어요? 그 외에 적은 것이

    '온 몸에 진드기가 붙은 것처럼 간지러웠다.'

    이게 전부야?"

    "뭐 사실이니까."

    "야, 그래도 세부적으로 이상을 느꼈던 순간부터 해서 시간별은 아니어도 날짜별로는 적어 주는 성의가 있어야지!"

    "그래야 하는 거야?"

    "말을 말자. 말을 말아."

    김혜인 박사가 정진이의 펜을 들고 뭔가 스윽스윽 써 내려간다. 그런 모습을 침대에  엎드려 보고 있던 정진이가 혀를 살짝 내밀며 웃는다.

    "여우같은 것."

    그런데 등도 돌리지 않고 김혜인 박사가 한 마디 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리고 정진이는 찔끔하곤 침대에 얼굴을 묻어버린다.

    김혜인은 물론이고 정진이와 떡배, 김형일까지 모두 각성과 관련된 보고서를 작성했다. 세진과 자넷에 대해선 정부에서도 감히 그런 요청을 하지 못했고, 선도일의 경우엔 특별한 수련으로 능력자가 된 경우여서 대우가 달랐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그런 수련 능력자와 각성 능력자를 서로 융합할 수 없을지 연구를 하고 있다고 선도일이 이야기했다.

    "그런 경우가 있긴 한 모양이지요?"

    세진이 선도일에게 물었다.

    "수련 능력자 중에서 각성자가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한 모양입니다. 워낙 비밀로 하 고 있어서 자세하진 않지만 스승님께서 지나가듯 하신 말씀 속에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각성자에게 비전을 가르치는 방법도 있고 말입니다."

    "그 비전이란 거 일반인은 익힐 수 없는 건가요?"

    김혜인 박사가 물었다.

    "한 20년 수련할 각오를 하면 저 정도는 될 수 있습니다."

    "선도일씨 정도라는 것이 지금 상태는 아니겠지요?"

    세진이 잘라 물었다.

    "그, 그야 당연합니다. 회복 캡슐 덕분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지에 올랐는데 당연히 그건 아니지요."

    "어머, 재미있네? 20년? 그럼 지금 열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은 모두 그 교육을 받으면 적어도 1등급이나 2등급 몬스터 정도는 처리할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말 아냐?"

    "어? 정말 그러네요? 형수님. 떡배 형. 어떻게 생각해요?"

    "뭘 어떻게 생각해? 일단 자식 새끼 하나 낳으면 무조건 그거 배우게 하고, 그 다음에 어느 정도 나이 먹으면 몬스터 영역 체험 시켜서 각성에 도전을 해야지. 그럼 못해도 선도일씨 정도 되는 거고 잘 되면 괴물 하나 탄생하는 거잖어. 내 자식이라면 그 정도 투자는 해 줘야지. 아무렴."

    떡배의 말에 모두들 입을 떡 벌렸다.

    "왜? 어째? 내 말이 틀려? 어차피 몬스터가 판치는 세상에서 제 몸 하나는 지켜야 하니 그 비전인가 뭔가 수련을 시키고, 나중에 뼈가 여물게 되면 몬스터 영역 체험 시켜야 할 거 아닌가 말이지. 그 정도 미래는 보고 자식 교육을 해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선도일씨 그 비전 말이지 좀 널리 알려서 배우게 할 수는 없는가?"

    "아, 그, 그건 저도 잘. 하지만 몇몇 수련자들이 이미 도장을 차린 예도 있고 하니 그게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럼 말이지. 솔직히 이야기해서 제일 좋은 것이 뭘까? 물론 선도일씨야 자파의 것이 제일 좋다고 하겠지만 아무래도 객관적인 시선이란 것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거지."

    "그거야 체질에 따라 다 다른 문제니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각 기예들마다 좋은 체질이나 체형이 있습니다."

    "아, 그렇군. 그럼 그런 기예들이란거 다 모아서 학교 같은 거 만들고 그러겠네 이제? 정부에서."

    "형,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김형일이 뜬금없는 떡배의 말에 되물었다.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겠냐? 돌머리인 나도 그건 기술들을 익히는 것이 미래에 각성자만큼 대우받는 삶이 보장될 거란 사실을 아는데 말이여. 그럼 자식새끼라면 끔찍한 부모들이 그 생각을 못할까? 아마 귀족 학교가 될지는 몰라도 그런 학교 하나 만들겠지. 음. 그럴 것이구만."

    떡배가 그렇게 확언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며칠 후부터 매스컴에서 특수 능력자 학교니 뭐니 하면서 설립에 대한 문제를 떠들기 시작했다.

    "내가 그래도 세상을 허투루 산 건 아니란 말이지. 이 정도는 읽어 줘야 그래도 브로커 노릇도 하고 그러는 것이지. 아무렴."

    떡배의 잘난척이 있었지만 이 때는 어느 누구도 떡배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보기보다 괜찮은 구석이 있는 거야?"

    김혜인 박사마저도 떡배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세진."

    "왜 자넷."

    "3등급 이면 공간 공략한다며 언제 갈 건데?"

    자넷이 그 동안 세진이 고민하고 있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어리의 성장을 위해서 3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세진은 3등급 이면 공간을 공략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는 3등급 몬스터 영역이 없었다. 그나마 정말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이다. 다른 나라에선 지금도 간혹 3등급 몬스터 영역이 생겨나고 있고, 그로 인한 피해가 점차 커지고 있는 중이었다.

    "음, 고민중이야.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 가도 되지만 그것들은 정이 안 가고, 그럼 어차피 비행기를 타고 가는 거니까 아무 곳이나 찍어서 가면 될 것 같은데, 가는 김에 3등급은 모두 해결을 해 주고 온다고 생각하면 그냥 찍기도 좀 그렇고 해서 이리저리 고민 중이야."

    "그래? 그럼 호주로 가자."

    "응? 호주?"

    "그래. 땅은 뒤지게 넓고 사람은 적은 곳이니까."

    "야, 그런 곳에 뭐하러 가냐? 아직 그 곳은 사람 살 땅은 넉넉한데. 동남아 중에서 한 곳을 택하는 것이 차라리 좋지. 그 쪽은 작은 나라들이 다닥다닥 붙은 곳도 있고 그래서 3등급 몬스터 영역 하나가 세 나라에 걸쳐 있는 곳도 있더라."

    "그래? 하긴 호주엔 몬스터 영역이 나타나도 다른 땅이 많이 남으니까 일단 그냥 둬도 되긴 하겠네."

    자넷이 세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자, 그럼 그런 의미에서 다들 모였을 때, 3등급 이면 공간 공략을 위한 회의나 해 볼 까?"

    자넷이 탁자 위를 치우면서 말했다.

    "선도일씨, 가서 몬스터 영역지도 최신판으로 좀 가지고 와 봐요. 동남아지역으로 하죠."

    세진이 선도일에게 최신 정보를 요구했다. 선도일은 여전히 정부와 끈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이제는 어리 공방의 식구로서 공방의 비밀을 허락 없이 밖으로 전하는 일은 없기로 약속한 것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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