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36화 (136/298)

< -- 자넷 어리 공방의 안주인이 되다 -- >

자넷은 순식간에 복장이 바뀌어 나타난 세진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어리의 테멜에 넣어 보냈던 물건을 통해서 정말로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정말이네? 그러니까 정말로 내가 세진이랑 같이 그곳에 오래 머물다가 이곳으로 돌아와도 지금 이 순간이 된다는 말이지? 응?"

"그래. 몇 번을 이야기해야 믿을 거야?"

"아니 내가 못 믿는 다는 건 아니고. 너무 굉장한 이야기잖아. 지금 이건 못 믿는 게 아니라 놀라는 거야. 놀라는 거."

"그래서 같이 갈래? 가 봐야 네가 보기엔 정말 낙후된 문명의 행성을 보게 될 뿐이겠지만."

"에이, 그거야 뭐 상관없어. 음음. 내 휴가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거잖아. 그거면 충분해. 나 정말로 이대로 일하러 가는 거 싫다고."

자넷은 휴가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싫은 듯이 인상을 썼다.

"그래봐야 여기 돌아오면 일하러 가야 하는 건 똑 같은데?"

"그래도 맘껏 놀다 오면 좀 나을 거야. 암."

"글쎄다. 사람이 게을러지면 한이 없는 건데 말이다. 그리고 너 여기 일은 어쩌려고? 이번에 지구에 갔다가 와서는 더 활동 안 할 거야? 말하는 거 들어 보니까 라훌족에게서 손을 뗄 것 같은데?"

"여기 뭐? 라훌족 2대 의원 구성도 마무리가 되었고, 블스 시를 비롯한 다섯 개 시의 선거도 끝났잖아. 나도 휴가만 아니라면 이번에 통합 의회 구성까지 신경을 쓰고 싶지만 그럴 시간은 안 될 것 같아서 의원직에서 물러났잖아. 그냥 때 될 때까지 네 곁에서 쉬려고 했지. 그런데 니가 지금 황당한 이야기로 내 탐험심을 자극하고 있는 거잖아."

"그런 거냐?"

"그런 거지. 거기다가 너, 갔다고 온다고 하고서 얼마나 있을지 모르잖아. 그럼 그 사이에 니가 어떻게 변할 줄 알고 너를 혼자 둬? 절대 안 될 이야기지."

"못 믿어서 감시하겠다는 뜻?"

"시간은 사람을 변하게 만들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몰라?"

"그래. 알았다. 알았어. 쯧 내 복이지. 내 복이야."

"뭐야? 그 말은? 너 내 남자가 된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몰라서 그러는 건데, 너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한다?"

"됐다. 됐어. 그래 나 엄청난 마누라가 생긴 거 인정한다. 하지만 그거 지구에선 전혀 의미 없는 거다. 참, 그런데 네 신분증은 어쩐다지? 나 안 그래도 제법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몸이어서 네가 곁에 나타나면 너에 대해서 알아내려고 눈에 불을 켤 놈들이 수두룩한데?"

"헹, 괜찮아. 나도 이제 마스터야. 걱정 없어."

자넷은 여전히 생체 에테르바디를 쓰고 있다. 물론 라훌족의 자넷으로 활동을 하려 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어쨌건 그 몸으로 라훌족에게 전해진 에테르 수련을 쉬지 않더니 결국 마스터에 한 걸음 걸치게 되었다. 세진은 그런 급격한 자넷의 성장이 자넷 본체가 지닌 능력 때문이란 소리를 들었지만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자넷이 엄청난 위치에 있는 여자란 사실을 굳이 파헤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자넷과의 삶은 지구와 데블 플레인에서만 허락된 것이라 여겼다. 사실 헌터룸에서도 세진의 연방 진입에 대해서는 불허의 방침을 확실히 하고 있었다.

물론 세진이 테멜에 들어간 상태로 자넷이 세진을 연방으로 데리고 가려고 마음먹으면 못할 일도 아니지만 세진은 굳이 그럴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삶은 지구에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었다.

"그럼 가자. 가서 상황을 보고 신분증을 만들거나 만들어 달라고 하지 뭐. 우리 떡배가 그건 잘 하니까."

"떡배? 그 뚱뚱하다는 부하?"

"부하? 뭐 그렇지."

"그런데 여자들도 있다고 했지?"

"김혜인 박사와 정진이씨가 있지. 전에 이야기했잖아."

"뭔가 심장이 근질근질하고 그런 거 아니지?"

"뭔 소리야?"

"뭐 켕기는 거 없냐고."

"너 자꾸 쓸데 없는 소리 할래? 일단 가자. 그리고 너 한국말!"

"응. 어느 정도 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자넷이 자신만만하게 한국어로 대답한다. 데블 플레인에선 연합의 공용어를 써야 했지만 이제 가는 곳은 지구 그것도 한국이니 한국어가 필요했다.

'정말 어처구니 없지. 한국어를 단 사흘만에 완벽하게 익혔어. 괴물이야 괴물.'

세진은 고개를 흔들면서 지구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 뭐야? 둘이 떠들더니 나는? 난 무시하냐? 응? 어리 지금 무시당한 거야? 둘이 사귄다고 하면서부터 자꾸 나 무시하는데 그럼 나 삐뚜러진다. 응?

어리 앵무가 세진의 어깨 위에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빽하고 소리를 지른다.

"어머. 미안. 하지만 어리 너하곤 조금 전까지도 함께 이야기를 하고 그랬잖니. 너는 거기서 시간을 보내고 왔지만 나는 조금 전까지 너하고 수다를 떨던 기억이 있단 말이지. 너를 의식적으로 무시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 거야. 방금 이야기를 했던 어리니까. 내게는 말이야."

= 아, 그렇구나. 응. 이해했어. 용서해 줄게.

"용서고 뭐고 가려면 빨리 가자."

세진이 재촉하자 자넷이 머뭇거리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고 뒤따라서 세진이 들어갔다.

어리 공방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윤기 흐르는 붉은 머리카락의 미녀는 세진의 곁에 바짝 붙어서 둘의 애정을 과시했다. 그녀는 어느 순간 세진과 함께 어리 공방으로 들어와서 세진과 함께 공간을 공유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하는 2층 공간까지도 그녀에겐 허락이 되었다.

"제 짝입니다. 이름은 자넷이고 다른 것은 비밀입니다. 아, 제 벗들 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세진은 자넷을 그렇게 소개했고, 김혜인 박사와 정진이는 이해하지 못할 박탈감을 느꼈다. 한 번 잘 찍어서 넘어뜨려 볼까 했던 자신도 모르던 마음이 단숨에 허물어진 탓이다.

자넷의 등장은 당연히 세진을 주시하고 있던 많은 세력들에게 활기를 불어 넣었다. 세진 이외에 새로운 벗 멤버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의 모든 정보기관들이 나섰다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넷에 대해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그녀는 어떤 흔적도 없이 갑자기 세진의 곁에 나타난 존재인 것이다.

세진은 선도일을 통해서 자넷이 쓸 수 있는 신분증을 요구했고, 대한민국 정부는 자넷을 귀화 한국인으로 신분증을 만들어 줬다. 더구나 호적에는 세진과 자넷이 부부로 올라갔다.

세진은 그런 사실을 알고는 잠시 허탈한 표정을 짓다가 정말 기뻐하는 자넷의 표정을 보고는 웃고 말았다.

어차피 데블 플레인의 제이비아에서 몇 년을 보내는 동안에 쌀이 익어 밥이 된 사이였다. 부부라고 호적 정리가 되어도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는 일이었다.

'언제 부모님께 인사를 드려야 할 텐데? 시간 내서 다녀와야겠다.'

세진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호적 등본을 확인하는 자넷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자넷이 고부간이 갈등이나 시부모와 며느리란 위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음, 앞으로 막장 드라마라도 좀 보게 해야겠다. 그나마 그게 한국 사회를 이해시키는 데는 제일 좋겠지.'

그런 세진의 결정이 이후에 드라마 마니아를 만들어 낼 줄은 세진도 상상하지 못했 다.

자넷과 아줌마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어리 공방이 어떻게 지내건 그건 세상의 흐름과는 무관한 일이다.

여전히 몬스터 지역은 생겨나고 또 없어진다.

천공기를 통해서 1등급 몬스터 영역은 점차 정리가 되어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2등급 몬스터 영역은 자꾸 늘어나는 추세다.

당연히 2급 천공기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그 이상의 천공기 3등급 천공기에 대한 요구도 점차 생기고 있었다.

다만 3등급 몬스터는 어찌 상대를 한다지만 3등급 우두머리를 어찌 상대할 것인지에 대해선 대책이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3등급 우두머리 몬스터를 처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리 공방의 공략조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는데, 일각에서는 그곳에서 나타난 몬스터가  등급 우두머리였을 거라는 추측도 있었다.

그곳에 3등급 몬스터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우두머리는 2등급이었기 때문에 세진 일행이 희생자 없이 이면 공간을 정리하고 나올 수 있었던 거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해선 말이 많았지만 몇 몇 사람만 진실을 알고 함구하고 있었다.

"그래봐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 사람은 다 알게 되겠지. 그렇지 않습니까? 선도일씨?"

세진의 시선이 선도일에게 닿자 선도일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한다.

어리 공방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선도일을 통해서 정부에 보고가 되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세진도 그걸 알면서도 그 동안 선도일을 정부와의 연결 고리로 생각하고 어느 정도까지는 정보 전달을 허용하고 있었다. 사실 숨겨야 할 내용이라면 선도일에게 보이지 않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3등급 우두머리 몬스터 우렁각시를 처치한 것은 될 수 있으면 숨겨야 할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미 선도일에 의해서 우렁각시 몬스터 퇴치에 대한 보고서가 올라간 다음 이었다. 세진이 기린과 석성 그룹를 공격한 것에 대한 해명을 해야 했던 선도일로선 나름 최선을 다한 보고서를 작성했고, 그 결과 3등급 우두머리 몬스터에 대한 퇴치 내용도 포함이 된 것이다.

"이제 그만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은 어때요?"

김혜인이 선도일을 보며 물었다. 공무원 신분을 버리고 어리 공방의 가족이 되라는 의미인 것이다.

"커엄. 뭐 그냥 둬도 되겠구만. 나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겠다는 투철한 사명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거기다가 별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지 않남? 그래서 세진님도 그냥 두고 보는 거고 말이지."

떡배가 의외로 선도일의 편을 들고 나왔다.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않고 서로 겉도는 상태였던 것을 생각하면 선도일에겐 정말 의외의 지원군인 셈이다.

모두의 시선이 떡배에게 몰렸다.

"뭘 그렇게 봐. 사실 내가 늠들에게 욕먹고 살면서 그래도 떳떳한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았을 거 같어? 솔직히 선도일 저 사람 부럽지. 그러니까 그렇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 기를 좀 살려 줘도 된다 이 말이지. 우리에게 손해만 주지 않으면 뭐 상관없 지 않냔 말이지. 안 그렇습니까? 세진님?"

"사실 선도일씨가 크게 잘못을 한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사실 이제 어리 공방을 우이동으로 새로 옮기게 되면 선도일씨의 선택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뭔가 새로운 일을 벌이더라도 선도일씨의 눈치를 보면서 하긴 싫으니까 말이죠."

"그 말씀은 이번에 공방 옮기면 뭔가 다른 변화가 있을 거라는 말입니까?"

김형일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일단 갑옷하고 무기를 개선하고 그 다음에 새로운 훈련 프로그램으로 훈련을 할 생각입니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건데 몬스터들 7등급까지 있습니다. 거기에 위로 상상하지 못할 등급외 몬스터가 있지요. 그거 차례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이대로 가다간 결국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 수준으로 일반적인 3등급이 한계입니다. 4등급이 등장하면 재앙이죠. 그런데 5등급 6등급 7등급은?"

"인류 멸망입니까?"

"하지만 코어가 없으면 몬스터가 있는 이면 공간은 열리지 않는 거 아닌가요? 4등급이 잡혀야 4등급 이면 공간이 열리고 몬스터가 나오죠."

"일단 등급 혼합형에서 3등급까지 나왔고, 또 3등급 코어가 지금 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 여기서 새로운 등급 혼합형 이면 공간이 열리면 4등급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4등급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그걸 그냥 둘까요 아니면 결국 잡아 낼까요?"

세진의 물음에 공방 식구들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분명 4등급도 잡을 것이고, 4등급 코어가 나오면 4등급 이면 공간이 열리고 그 안에서 4등급 몬스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럼 그걸 처리하기 위해서 또 다시 사냥이 시작되고 결국 혼합형 이면 공간이 열리면서 5등급 몬스터가 나오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다.

"잡을 수 없을 때까지 몬스터가 나올 겁니다."

"그럼 결국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멈추는 거잖아요."

정진이가 다시 뭔가 희망을 가지고 싶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정도 되면 인간이 살 수 있는 영역은 거의 없어진다고 봐야지. 그런 거죠? 세진씨?"

김혜인 박사가 맥을 짚었다.

"맞습니다. 예상으론 5등급 정도 몬스터가 지구상에 퍼지게 되면 그 때는 정말로 인간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 될 겁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사냥을 해야 하는 거죠. 이면 공간을 없애서 인류가 생존할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겁니다."

"그 내용 보고 해도 됩니까?"

선도일이 물었다. 그의 손에서는 얼마 전부터 까똑이 사라지고 없었다. 세진이 우두머리 우렁각시를 잡은 후로 계속 그런 상태였다.

"몬스터 등급에 대한 것만 허락하죠. 아, 새로운 공방으로 가서 뭔가 준비를 하려는 것 같다는 내용도 상관 없습니다. 아울러서 우리 벗이 몬스터들을 퇴치하기 위해서 나름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줬으면 좋겠군요. 우린 원래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세상에 몬스터가 날뛰면서 그것들을 상대하는데 우리 친구들이 힘을 모으게 되었네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보고를 하겠습니다. 약속 드리겠습니다. 이후로는 저도 어리 공방의 식구로만 남겠습니다. 다만 어리 공방의 활동 중에서 제 양심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선 거부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뭐 당연하죠. 강제로 어쩌진 못하는 것이 사람 아닙니까. 나는 누구에게도 억지로  일을 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사실 김혜인 박사님이나 정진이씨 같은 경우에도 원하지 않았으면 몬스터를 상대하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두 분이 원했기 때문에 몬스터 헌팅에 합류한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맞아요. 우리가 원한 거죠. 능력이 생겼지만 그걸 갈고 닦지 않으면 결국 나중에 쓸모가 없어지죠. 지금 세상은 변하고 있어요. 이 변화에 적응하고 제대로 우뚝 서려면 당연히 뛰어난 각성자가 되어야죠. 저와 진이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야 당연한 이야기지. 아닌말로 몬스터가 날뛰는 상황에서 제 한 몸이라도 제대로 지키려면 잘 배워 둬야지. 아무렴."

떡배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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