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32화 (132/298)

< -- 게슈너, 왔던 곳으로 돌아가다. -- >

세진은 그를 향해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타지난이 레트 시로 오고 있었고, 그 목표가 게슈너라는 사실을 짐작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 있잖아. 세진."

"뭐? 무슨 일 있어? 너 왜 분위기가 그렇게 심각해?"

"정말 미안한 일이 생겼어."

"미안한 일?"

"이번에 내 부하들이 좀 움직였거든. 라훌 테카들 있잖아."

"음? 그 성골 녀석들?"

"그래. 그 사람들이 모여서 전체 회의를 했었어. 그래서 거기 내 부하들이 손을 좀 쓴 모양이야. 아무래도 그 테카 전체가 들고 일어나게 되면 라훌 전체가 소란스러워지고 또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모두 엉망이 될 테니까 말이야."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데?"

세진은 자넷의 부하들이란 말에서 이전에 테멜 안에 모습을 드러냈던 세바스란 인물을 떠올렸다. 그런 부하들이 뭔가 했다면 간단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거기다가 테카라는 계급의 전체 회의에 어떤 식으로건 영향을 줄 정도면 세진 자신보다도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들이 일을 벌였다니 당연히 궁금했다.

자넷은 테카의 회의와 그 곳에서 일어났던 분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렇게 단체로 들고 일어나서 반발하게 만든 것도 자넷의 부하들이었어?"

"그랬지. 중간 중간 나서서 바람을 잡은 거지."

"그래서 결국 기득권에 욕심을 내는 이들은 버려두고 들고 일어나 제 갈길을 갔다?"

"음, 거기서 끝은 아니고, 장년층 중에서 인지도가 큰 인물들, 그러니까 차기 연장자로 대우받던 이들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어. 연장자들 중에서도 미래를 보고 머리를 쓴 인물이 있었던 거지."

자넷은 레지헤니와 그가 이끄는 장년층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필요해? 그냥 둬도 되지 않아?"

"그래. 하지만 그러자면 그들 전체를 죽여야 해. 그리고 그들과 관계가 있는 두라, 무라, 누라까지 정리를 해야 하지. 그래야 완전히 새로운 라훌 족이 되는 거야. 하지만 그럴 수는 없잖아. 이번 일도 될 수 있으면 피를 적게 보기 위해서 만든 일인데 말이지."

세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테카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저항을 하면 그들을 따르는 두라와 무라 누라가 또 휘하의 세력을 이끌고 동참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말 심각한 종교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서 테카들도 나름의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서 라훌들 사이에서 살아남고자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쩌면  계급제를 인정하는 종교와 그렇지 않은 현자의 종교가 대립하며 라훌 족의 우환으로 길게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테카들 모두가 현자의 사상을 추종하며 그 그늘로 들어오면 적어도 같은 종교 안에서 갈등은 있어도 서로 완전히 다른 사상이나 종교로 인한 다툼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세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내게 미안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타지난이 세진에 대해서 알게 된 것 같아?"

"응? 뭐라고?"

"타지난이 세진, 아니 게슈너가 현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또 레트 시의 여러 문제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고. 다른 것은 몰라도 게슈너가 라하와 하파트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모양이야."

"어떻게 그렇게 된 거지?"

"칸엘리의 트라이브에서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야. 칸엘리가 입을 연 것은 아니지만 그 때 광장에는 다른 사람들도 많았잖아. 거기다가 그 내용으로 주크 일당들에게 정보를 모아서 결국 게슈너가 하파트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고, 거기 더해서 라하의 일도 그랬을 거라고 짐작을 한 거지."

"아니 그거야 모두 잠작이잖아. 확실한 것도 아닌데 타지난이 나섰다고?"

세진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그가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세진의 입장에서 아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 특히 타지난은 그냥 짐작만 할 뿐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타지난이 세진을 노린다고 하니 억울할 밖에.

"그래서 미안하다는 거야. 타지난이 그렇게 나오는 것이 모두 테카가 몰락을 했기 때문이거든. 이제 모든 것이 무너진 마당에 마지막으로 뭔가 속풀이를 하려는데 세진이 걸린 거야. 확신 따위는 필요가 없는 거지. 그냥 한 판 붙어서 화려하게 타오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한 것이 타지난의 지금 입장이야."

"하하. 젠장이네. 뭐 이런 경우가 있어?"

"에이, 세진도 이제 할 일은 끝났잖아. 타지난만 해결하면 그만 아냐? 어차피 본체로 돌아가서 수련을 해야 하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나는 아직 타지난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더구나 그 작자 부하들도 많을 텐데?"

"아, 그건 괜찮아. 내 부하들이 다 막아 줄 거야. 타지난은 혼자서 레트시로 올 거고, 혼자 와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야 단순하지. 그 자존심에 기습 따위는 하지 않을 테니까 오래지 않아서 타지난이 게슈너를 도시 밖으로 불러내서 대화를 하려고 할 거야. 물론 그 대화에서 세진이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게슈너를 죽이려고 들겠지만 말이야. 어차피 화풀이니까."

"야, 그렇게 나를 죽인다고 지가 좋은 게 뭐가 있다고?"

"있지. 레트 시의 유지 하나가 사라지는 거잖아. 거기다가 내 후원자가 없어지는 거고 말이야. 거기다가 게슈너의 에테르 가드나 웨폰은 지금 당장 도시 간의 발전 불균형을 만들잖아. 그게 대량 생산이 되면 또 다른데, 그게 아니니까 게슈너를 없애면 명품이 사라지긴 하지만 도시 균형은 맞춰지는 거지."

"뭐가 그렇게 근시안적이야? 내 장비들은 라훌족에게 엄청난 이득을 줄 수 있는 거라고."

"타지난 입장에서는 그걸 자신들이 가지지 못했으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인 거야. 뭐 이젠 다 무너진 테카 계급이긴 하지만. 이전에는 그랬다는 거지. 그리고 그는 마지 막까지 그렇게 살다 가고 싶은 거고."

"지랄. 좋아. 알았어. 결국 누가 죽건 죽어야 한다는 소리잖아. 맞지?"

"그래 그게 답이야."

자넷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좀 미안했다.

세바스가 꾸민 일 때문에 세진이 휩쓸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세바스가 꾸민 일이 그래도 진행되게 두는 것은 세바스가 언제나 좋은 선택을 했기 때문이고, 세바스가 세진을 님이라고 부르는 이상 세진에게 해가 될 일은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세바스는 세진이 너무 오래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아직 긴 수명에 적응하지 못한 세진이 고향을 오래 떠나서 생활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본체로 다시 수련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젠 게슈너의 탈을 벗는 것이 좋다고 했다.

자넷은 그런 세바스의 말을 받아들였다.

세바스는 자넷이 하는 최고의 조언자고 또 비서였다. 타지난은 게슈너의 상점 앞에서 기세를 끌어 올렸다.

마스터 중급을 넘어서 상급에 발을 들인 그의 기세는 곧바로 안쪽에 있던 게슈너를 긴장시켰다.

게슈너는 올 것이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게슈너가 상점 앞으로 나갔을 때, 그곳에는 타지난과 칸엘리가 서로를 마주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게슈너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단번에 그가 타지난이란 사실을 짐작했다.

"저를 찾아온 손님인 모양입니다. 칸엘리님."

게슈너는 슬쩍 두 사람 사이에 한 걸음 들어서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게슈너는 두 마스터의 기세 싸움 가운데로 들어섰고 엄청난 압력을 느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게슈너가 끼어들자 곧바로 기세를 죽였다.

"나도 게슈너씨 당신을 만나러 온 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험악한 기세를 뿜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불청객인가 했습니다."

"저를 부르는 것이 거친 것을 보니 좋은 생각으로 온 분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제 손님은 것은 사실이지요. 그런데 칸엘리님은 어쩐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게슈너가 칸엘리라는 이름을 말하는 순간 타지난의 눈빛이 번뜩였다.

게슈너가 하파트를 죽인 칸엘리를 만나는 것을 목격하고 역시나 하파트의 죽음에 게슈너가 연관되어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게슈너. 네게 볼 일이 있다."

타지난이 게슈너에게 낮은 음성으로 이야기했다. 길게 기른 녹색 수염이 배꼽높이까지 늘어진 타지난의 모습은 무척이나 늙은 얼굴임에도 힘이 넘쳐 보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알지도 못하는 손님 보다는 여기 안면이 있는 손님이 우선일 듯 하군요. 기다리시겠습니까? 이 분과 대화를 나누고 나올 때까지 점원들이 편의를 봐  드릴 겁니다."

"괜찮다. 이곳에서 기다리지. 일을 보고 나오너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게슈너는 타지난에게서 시선을 돌려 타지난을 데리고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타지난은 그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누구입니까? 짐작도 안 되시는 겁니까?"

"모르는 사람이지만 짐작이 가는 사람은 있습니다. 어쩌면 전에 칸엘리님이 상대했던 마스터의 동료일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런 사람이 어째서 게슈너님을 찾아 온 겁니까?"

칸엘리는 전에 자신의 손에 죽은 마스터의 동료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이유가 되었건 칸엘리님과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게슈너, 세진은 이번 싸움에는 칸엘리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타지난에 대한 원한이나 복수심은 사실 이미 많이 희석되어 버렸다. 실제로 타지난이 이전 세진의 생체 에테르바디에 대한 고문과 정보 획득을 명령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라하와 하파트, 특히 하파트의 독단적 성격이 강했다.

하파트는 생체 실험을 즐기는 인물이었고, 그런 때에 세진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어서 후안의 뒤를 봐주면서 좋은 실험 재료를 얻기 위해 작은 힘을 썼을 뿐이었다. 그런 하파트 덕분에 세진은 그토록 모진 고생을 했던 것인데, 지금 그들은 모두 죽고 없었다. 남은 것은 후안과 타지난이지만 후안이라면 모를까 타지난에게 특별히 남은 악감정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싸움에서 세진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마스터를 상대로 써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렇게 해서 본체로 수련을 할 때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실마리를 찾아 보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니 칸엘리의 도움은 바라지 않았다.

어차피 생체 에테르바디의 목숨을 걸고 하는 싸움이었다. 죽을 각오로 마스터에게 무언가 배워보자는 것이니 칸엘리가 있으면 도리어 방해가 될 뿐이었다.

"그렇게 이야길 한다면 어쩔 수 없지요. 내가 간섭하는 것을 거부하는데 굳이 내가 나서서 도움을 주겠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라훌 사이의 싸움에 끼어드는 것도 이젠 부담이니 말입니다."

"맞습니다. 이건 저와 그 사람 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꼭 그것이 다툼으로 시작과 끝을 맺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아, 그것도 그렇겠습니다. 같은 라훌이니 대화로 뭔가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칸엘리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저를 찾으신 이유는?"

"아, 당연히 게슈너님의 장비들을 구매하기 위해섭니다. 이번에 저희 트라이브에서 게슈너님의 장비 일체를 세트로 열 다섯 세트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그럼 가격이 굉장한데요? 이번에 가격을 대폭 낮추긴 했지만 그래도 장비 한 세트는 120만 에텔론입니다. 그걸 열 다섯 이면..."

"그래서 조율을 좀 했으면 합니다. 1500만 에텔론으로 구매를 하고 싶습니다."

"300만 에텔론의 가격 할인이라. 그건 좀 과한데요?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가격을 내리는 바람에 이익 폭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러니 그건 곤란하고 1650만 에텔론에 드리지요."

"으음.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더 밀고 당기는 것도 어렵겠습니다. 게슈너님 성격에 50만 에텔론까지 말씀을 하신 것은 그것이 최선이라는 말일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칸엘리가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뭡니까?"

"이 안에 물건 대금이 들어 있습니다."

"아, 테멜인 모양이군요. 그런데 그런 소형이면 가격이 상당할 텐데요?"

"하하하. 테멜은 선물입니다. 그래봐야 방금 깎은 가격만도 못할 테니 부담은 없으실 겁니다."

"음, 그렇다면 굳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세진은 테멜이란 한 마디에 그냥 받아들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테멜 만큼은 욕심이 나는 세진이었다.

"가시는 길에 물건들을 가지고 가실 수 있도록 점원들에게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세진은 칸엘리에게 물건을 나중에 보낸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곧바로 점원들을 시켜서 배달까지 하도록 했다.

그리고 칸엘리가 떠난 후에 상점을 정리하고 뒷처리를 자넷에게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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