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넷의 엉큼한 꿍꿍이와 골품제 -- >
세진은 조금 서둘러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파트와 칸엘리의 싸움에 집중을 하다 보니 한 가지를 놓치고 말았다.
"어디로 갔지? 안 보여?"
= 네. 제가 느끼는 범위 안에는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된 걸까? 그 사이에 어디로 도망을 갔지?"
= 혹시 테멜을 이용한 거 아닐까요?
"테멜?"
= 하파트의 경호원이었으니까 테멜을 소유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그럼, 광장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는 말?"
= 그렇죠. 어디 구석진 곳에 테멜을 넣어두고 그 테멜 안에 몸을 숨겼으면 세진님이 찾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그럼 거길 다시 가 봐야 한다는 건가?"
= 에이, 괜히 거기 얼쩡거리다가 유저 헌터들이나 다른 라훌 헌터들에게 주목만 받을 텐데요?
"어리 네가 가서 살펴보는 건 싫지?"
= 당연하죠. 거기 칸엘리가 없다고 해도 다른 마스터들이 우글우글 거릴지도 모른다고요. 그런 곳에 어떻게 가요? 저 이제부턴 세진님 곁에서 안 떨어질래요.
세진은 어리의 말에 한숨을 폭 쉬고 말았다.
마스터들의 능력을 경험한 어리의 생존본능이 확실히 발동되었다. 이전에는 여기저기 정찰도 잘 다니고 했었는데 이젠 그런 일도 시킬 수 없을 것 같 다. 지금도 광장 주변에 다른 트라이브의 치프들 같은 실력자들이 있을 것을 겁내서 가지 않으려고 하니 말이다.
"후안이 분명히 제 정신을 못 차리고 하파트의 명령에만 따르는 상태라고 했는데 말이지. 함께 호위를 하던 놈은 죽지도 않았는데 하파트가 죽은 이후에는 그저 넋이 나간 놈처럼 주저앉아 있기만 했잖아."
= 그러게요. 후안이란 사람은 어떻게 된 걸까요?
"혹시 다른 사람이 있어서 그 후안만 빼돌린 것은 아닐까?"
= 그것도 가능성은 있겠네요. 하지만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지려면 역시 테멜이 제일 유력한 방법이에요. 후안이 쓰지 않았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썼겠죠.
"그렇긴 하겠네. 쯧, 이렇게 되면 정말 잡고 싶었던 놈을 놓친 셈이 되는 건가?"
세진은 후련하지 못한 일 마무리에 살짝 인상을 썼다.
= 그래도 하파트는 잡았잖아요. 마스터라고요. 마스터를 잡은 거면 큰 성공이라고 생각하셔야죠.
"쯧.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아, 저쪽에 자넷이 있네."
세진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자넷과 게슈너 경비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괜찮아?"
"음. 그냥 구경만 하다가 온 건데 뭐."
"칸엘리가 이겼다면서?"
"벌써 소식이 전해졌어?"
"멀리서 살피던 경비대원이 달려와서 전했지."
"그렇군."
"혹시 말이야 하파트 죽은 거, 네가 그런 거야?"
자넷이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마지막에 살짝 도움을 줬지. 칸엘리에게."
"역시 마지막 순간에 하파트의 마스터 브레이드가 사라졌다고 하더니 그거 네가 한 거구나? 무서운 놈."
"무섭긴 뭐가? 난 그냥 살짝만 간섭을 했을 뿐이야. 어차피 실력은 칸엘리가 훨씬 좋았어."
"그래도 그냥 뒀으면 칸엘리가 죽었을 거라던데?"
"뭐, 하파트가 내 적이었다는 것이 칸엘리에겐 행운이었겠지."
세진은 슬쩍 자넷을 외면하며 말했다. 더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 표시였다. 아직도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엔 자리가 좋지 않았다.
"음. 알았어. 나중에 어리하고 같이 이야기하자. 자, 그럼 이젠 어쩌지?"
"어쩌긴? 빨리 움직여서 선거 유세를 해야지. 합동 유세는 물 건너 간 거니까 자넷당 단독 유세라도 열어야지. 오늘 광장에서 있었던 사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말이야."
"아, 우리 라훌들이 힘을 결집시키고 법을 제정하면 그렇게 함부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거라는 뭐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해야겠네?"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거기다가 독립당의 후보자들이 상황도 살피지 않고 무력 충돌에 개입해서 사건을 키웠다는 정도의 흑색선전도 필요하겠지. 처음 싸움을 시작한 것은 우리 레트 시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과 유저 헌터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인데, 거길 주크와 독립당이 끼어들어서 일이 커졌다는 식으로 말이야."
"흐응, 뭐 그거야 사실이기도 하니까 흑색선전은 아니지. 좋았어. 빨리 서둘러서 소문을 내야겠다. 그리고 참, 여기 경비대원들 좀 더 써도 되지?"
"그래. 일 시킬 거 있으면 알아서 시켜. 나는 이만 가게로 가 볼 테니까. 아무래도 분위기 보아하니 칸엘리가 나를 찾아올 것 같단 말이지."
"응? 뭐야? 들킨 거야?"
"들키긴 뭐가 들켜? 그 둘이 싸우는 중에 가까운 곳에 내가 있었고, 싸움이 끝난 다음에 내가 사라졌으니까 당연히 의심을 하겠지."
"그래서 도와줬다고 이야길 하려고?"
"아무래도 아니라고 잡아떼도 소용이 없을 것 같긴 한데, 일단 고민 중이야. 알잖아. 나 이 생체 에테르바디도 조만간 폐기해야 하는 거."
"맞다. 너 다시 제이비아에 가야 한다고 했지. 안전한 곳에서 수련을 하려면 말이야."
"그래. 어설픈 실력으로 돌아다니다가 당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 본체로 돌아다닐 수는 없지."
"그렇구나. 그럼 언제 가려고?"
"아직은 좀 더 있다가. 하파트까지 넘어뜨렸으니까 이제 타지난만 남은 건데, 타지난에 대해서 좀 고민을 해 보고 결정을 하려고."
"그럼 후안이란 그 놈도 처리를 한 거야?"
"아, 그게..."
세진은 자넷의 질문에 얼굴을 확 찌푸렸다.
"왜? 무슨 일인데?"
"그 놈. 내가 잠깐 하파트와 칸엘리에 집중하는 사이에 사라져버렸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니까."
"그렇구나. 흐음. 그래서 어쩔 거야? 후안 그 놈?"
"솔직히 타지난은 그냥 둬도 후안은 아니거든. 후안 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이번에 놓쳤으니 또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지만 일단 찾아야지. 그리고 대가를 치러 줘야지."
"기억도 잃은 놈이라면서 굳이 그래야 해?"
자넷의 물음에 세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진은 마음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했어요?"
"잘 포장해서 옮겼습니다."
"세진이 절대 눈치체지 못해야 하는데요?"
"당연합니다."
"대신에 후안에 대한 몇 가지 사소한 정보들을 남겨요. 음, 광장에서 어떻게 도망을 갔고 또 어디로 갔는지. 그런 거 말이에요."
"준비하고 있습니다. 칸엘리를 공격하다가 충격을 받고 튕겨 나가서 과거의 기억을 되찾았다는 설정에서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가지고 있던 테멜로 숨었다가 얼마 후에 살짝 빠져 나가서 레트 시의 빈민촌에서 한동아 숨어 지내다가 결국 다른 도시로 사라진 겁니다. 그런 정보를 앞으로 열흘 정도 시간을 두고 게슈너 경비대원들이 수집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응, 그래요. 그 정도면 되겠네요. 뭐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어도 어쩌겠어요? 확인을 할 수가 없는데 말이죠."
"될 수 있으면 의심을 사지 않도록 만들겠습니다. 이전에 후안의 얼굴을 봤던 사람들을 수배해서 그들에게 그런 정보를 슬쩍 흘리면 자신들이 보지 않았어도 본 것처 럼 이야기하는 놈들이 생길 겁니다. 그런 식으로 말이 말을 만들다보면 대충 구체적인 이야기가 짜여 지는 것이지요."
"음, 좋아요. 세바스."
"전 세바스가 아닙니다. 자넷님. 이건 다른 이름입니다만."
"시끄러워요! 뭘 쓰고 있건 세바스는 세바스인거죠."
자넷의 말에 세바스는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저, 그런데 왜 후안을 빼돌리라고 하신 건지요?"
"흐응. 세진이 일을 다 마치고 나면 떠날 거 아니에요?"
"그렇겠지요."
"그런데 느낌이 좋지 않아요. 이번에 가면 다시 안 올 것 같단 말이죠."
"네?"
"가서 안 올 것 같다고요. 하지만 후안이란 목표가 남아 있으면 다시 오기 쉽지 않을까요? 뭔가 미진하고 남겨진 숙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말이죠. 그럼 세진이 고향으로 갔다가도 다시 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지요."
"아니.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겨우 그런 이유로 후안이란 놈을 숨기게 하신 겁니까?"
"겨우라니? 뭐가 되었건 세진이 이곳에 다시 올 확률을 높이는 일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거예요."
"차라리 그러시면 그 세진이란 사람이 증오하거나 혹은 미워할 적대 세력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럼 확실하게 데블 플레인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머물지 않겠습니까? 그가 승부욕과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면 말입니다."
"뭐라구요? 지금 그 소린 나보고 세진에게 못된 짓을 하라는 거예요? 네? 그런 거예요? 세바스 세진은 내 친구에요. 친구!"
"아니, 그거랑 후안 빼돌린 거랑 뭐가 다릅니까?"
"달라요. 전혀 다른 문제지요. 후안은 그냥 도망을 간 것 뿐이에요. 하지만 내가 뒤에서 세진을 공격하는 무리를 조종하고 그러는 건 전혀 달라요! 세바스 그런 말도 안 되 는 생각은 어떻게 한 거죠?"
"아니 자넷님 그건..."
세바스는 억울하지만 중간에서 말을 멈췄다. 자신의 상관은 아주 좋은 사람이지만 때로는 무서운 사람이다.
이번 일도 단지 세진을 곁에 두고 보고 싶다는 이유로 세진의 복수 대상인 후안을 빼돌리지 않았나.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솔직히 후안이 제정신을 가지고 있었으면 나는 그냥 후안을 세진에게 내줬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후안은 복수의 대상으론 많이 부족하죠. 그에겐 별다른 가치가 없어요. 이제 치료를 받고 제 정신을 차리게 되면 그 때는 정말로 세진이 복수를 해도 합당한 존재가 될 거예요. 그럼 세진도 정당한 복수를 할 수 있게 되니 좋고, 나도 세진을 곁에서 오래 볼 수 있으니 좋지 않나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후안을 빼돌린 것이 자넷님인 걸 알면 세진이란 그 사람도 무척 화를 낼 텐데요?"
"세.
바.
스. 나는 그 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어요. 전혀!"
"아, 알았습니다. 당연히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저 후안은 얼마 후에 제 정신을 차리게 될 겁니다. 블스 시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그 자가 다시 독립군으로 활동을 하거나 말거나 그건 우리가 신경을 쓸 문제가 아니죠. 참, 그런데 그 하파트에 대해서 조사하란 건 어떻게 되었죠?"
"네. 역시 자넷님의 생각대로 뭔가 있습니다. 라훌 독립군 내부에도 알려지지 않은 묘한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거기까진 밝히지 못했지만 라하와 하파트 중에서 하파트가 그 비밀스런 모임에 속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도 그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쯧쯔. 고만고만한 것들이 모여서 서로 잘났다고 우기는 꼴이라니. 정말 한심하군요."
"저들에게 주어진 환경이 그런 탓입니다. 라훌 족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쯧. 어떻게 같은 라훌인데도 서로 다르다며 선을 가르고 우월의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참, 그 놈들 뒤에 유저 헌터들도 있는 것 같다구요?"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조사해 보세요. 여기서 자넷 당을 크게 키워서 라훌들의 정치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려면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겠어요. 호호호. 이거 생각보다 재미가 있어요.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는 것이 말이죠."
"휴우, 알겠습니다. 자넷님. 그런데 계속 본성으론 돌아가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필요한 결정 사항이 생기기라도 했나요?"
"그건 아닙니다만."
"그런 일이 생길 때까진 나를 방해하지 마세요."
"그런 일은 몇 십, 혹은 백년에 한 번 생길까 말까 합니다."
"그러니까요. 이전 휴식이 내가 얼마만에 얻은 휴식인지 알면서 나를 다시 끌고 가고 싶어요?"
세바스는 자넷의 말에 그저 허리를 숙여 보였다. 자넷의 지금 휴가는 당연히 누려야할 휴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