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칸엘리와 하파트, 두 마스터의 싸움 -- >
디버프 기반 에테르는 은밀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다.
이 에테르는 마치 없는 것처럼 존재하며 시나브로 상대를 점령하는 특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디버프 기반 에테르는 다른 에테르들과 충돌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지간한 에테르들은 그냥 무시하고 침투할 수 있다.
그래서 칸엘리와 하파트가 맹렬하게 부딪히며 에테르 파장이 터져 나오는 곳으로도 흘러갈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디버프 기반 에테르가 온전히 모든 에테르를 무시하고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전에 마스터 라하가 몸 안에 디버프가 발동된 것을 아는 순간 체내 에테르와 함께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밖으로 몰아내는 짓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여유롭게 칸엘리와 하파트 근처까지 흘러간 디버프 기반 에테르가 정작 칸엘리와 하파트의 몸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애를 먹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의 검에 깃든 마스터 블레이드가 서로 충돌을 할 때마다 일정한 범위 안에서 디버프 기반 에테르가 소멸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빈자리가 있으니 그 곳으로 흘러가려는 성질이 있는 범위 에테르가 계속 그렇게 소비가 되면서 정작 칸엘리와 하파트의 체내로는 그다지 많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말 안개에 옷이 젖는 것처럼 그렇게 조금씩만 두 사람의 체내에 디버프 기반 에테르가 쌓여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둘이 서로에게만 신경을 쓰느라고 그렇게 몸 안에 디버프가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마 상대가 디버프를 썼으면 어떻게든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엉뚱한 인물이 은근슬쩍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넓게 펼쳐 놓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 또한 일종의 방심이었다.
= 어쩌실 거예요?
"어쩌긴, 둘의 싸움이 격렬해지는 순간 살짝 디버프를 걸어서 하파트의 신체 균형을 무너뜨려야지. 그런 기회를 줬는데도 칸엘리가 그것을 살리지 못한다면 그건 뭐 능력 부족이니 하는 수 없는 거고."
= 그렇진 않을 것 같은데요? 아무리 봐도 칸엘리가 하파트보다 약간 앞서고 있어요. 에테르의 양이나 운용 능력을 봐도 칸엘리가 나아요.
"그래? 그럼 손 안대고 코를 풀 수 있을 확률이 더 높아지네? 그나저나 이거 변장도 안하고 여기서 얼쩡거리고 있으려니 좀 그러네."
세진은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 왜요?
"나중에 내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칸엘리가 뭐라고 하지 않을까 싶어서."
= 하파트가 살아남을 경우는 생각 안 하세요? 아마 하파트가 살아남으면 세진님이 디버프를 걸었다는 의심도 할 테니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그러니까 기회를 잘 봐서 한 번에 승부를 봐야지. 그렇게 했는데 칸엘리가 하파트에게 전혀 상처를 못 준다면 그냥 튀어야지 뭐. 그게 아니고 양쪽 모두 상처를 입었으면 뭐 내가 나서서 하파트를 쓸어 버릴 수도 있고. 그 뒤는 칸엘리의 부하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래도 역시 레트시에서 더는 게슈너를 지내긴 어렵겠지만."
= 그러니까 여유를 가지고 변장도 하고 그러시지.
"그럴 여유가 어딨었냐? 이크. 살벌하게 날아오네."
세진은 두 마스터의 충돌로 생기는 에테르 파편들을 피하면서 투덜거렸다.
하파트는 자신이 시작부터 칸엘리에게 밀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손해를 입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하파트는 마스터였고, 칸엘리가 마스터의 비기를 사용해서 초장부터 자신을 궁지로 몰아 넣은 것처럼 자신 역시 칸엘리에게 통할 수 있는 비장의 한 수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콰과광.
마스터 블레이드는 에테르를 응축시켜서 하나의 유형화된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만들어질 때부터 어마어마한 기운을 품고 있어 파괴적인 성질을 가지게 되고, 무엇이건 그것과 부딪히면 충돌을 일으키며 폭발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하물며 마스터 블레이드는 접촉하는 공기와도 끊임없이 작은 충돌을 일으켜서 겉으로 볼 때에는 타오르는 불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다. 그런 마스터 블레이드가 서로 충돌을 일으키면 어마어마한 에테르 파장이 그 곳에서 비롯되어서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지금도 광장 여기저기에는 둘이 만들어낸 파장으로 인해서 조금씩 깎여 나가는 바닥이며 벽들의 나타나고 있다.
하파트는 슬금슬금 자신의 호위와 칸엘리 트라이브의 매니저들이 싸우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의도적이란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아주 조금씩 칸엘리의 검을 피하고 막는 동안에 한 걸음씩 자신의 호위들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미 호위들도 하파트의 뜻을 받아서 될 수 있으면 이동하지 않고 매니저들과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만 더 와라. 그럼 네 놈에게 화끈한 선물을 해 주마.'
하파트는 눈빛을 빛내면서 맹렬하게 칸엘리에게 저항했다.
마치 사력을 다하는 듯이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고 마스터 블레이드를 사방으로 날려 보냈다.
칸엘리는 그런 하파트의 반격에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하파트를 몰아붙이려는 생각을 가지고 신중하게 공격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하파트가 바라더 대로 진행이 되고 있는 중이었다.
"크아아아아아!"
"크아아악!"
어느 순간 하파트의 호위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검에 마스터 블레이드를 뽑아 올렸다.
"으앗!"
"피, 피해. 맞부딪히지 마라!"
호위들을 상대하던 칸엘리 트라이브의 매니저들이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뛰어 달아났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스터 블레이드와 충돌하면 최소 무기를 잃거나 아니면 사지가 잘리는 것을 넘어서 목이나 허리가 잘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매니저들이 잠시 주춤한 사이에 호위 둘이 순식간에 몸을 날려서 칸엘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줄기줄기 타오르는 마스터 블레이드를 앞세운 둘의 공격이 곧바로 칸엘리에게 집중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마, 막아!"
그 때야 상황을 안 매니저들이 급하게 몸을 던져서 두 호위를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두 마스터 블레이드가 칸엘리의 마스터 블레이드와 충돌을 일으켰다.
"빌어먹을 개수작!"
콰과과과광!
이전보다 월등한 충돌음이 나고, 동시에 호위 둘이 모두 허공을 날아서 광장 벽까지 날아갔다.
급한 마음에 칸엘리가 과한 힘을 쏟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파트에겐 천금 같은 기회였다.
"으윽!"
칸엘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비틀거렸다.
하파트의 특기가 나온 것이다. 하파트의 특기는 에테르를 이용한 정신 능력도 아니고 육체 능력도 아니었다. 꼭 따지자면 정신 능력이지만 에테르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하파트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종족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하파트의 조상은 외모는 인간과 거의 같았지만 정수리 부분에 엄지손톱 크기의 혹이 있었다. 그리고 그 혹은 그 종족이 다른 생명체의 정신에 간섭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그래서 그 종족은 타인을 세뇌하는 것으로 세력을 넓혀나갔는데 이후에 그것이 연방 전체에서 문제가 되면서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그 능력을 사용할 경우 처벌을 받게 되는 법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의료적인 시술로 그 능력 자체를 봉인하는 것을 권장하면서 시간이 흘러서 그냥 약간의 능력만 남아서 세뇌가 아니라 호감을 품게 하는 정도로 약화된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종족이 이 데블 플레인에 내려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그 종족은 자신의 능력을 활짝 꽃피우게 된 것이다.
하파트는 바로 그런 종족의 후손으로 지금껏 그 세뇌 능력을 이용해서 승승장구 해 온 인물이었다.
"크하하핫!"
하파트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칸엘리의 목을 베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칸엘리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당장 하파트의 정신 공격은 멈췄다. 경각심을 가지고 억지로 행하는 정신 공격이 먹히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그런 것까지 가능했다면 하파트가 세상을 점령했을 것이다.
세뇌는 오랜 시간을 두고 공을 들여야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방금 전처럼 칸엘리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한동안 정신 능력을 다시 쓰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부담을 느끼면서 행한 공격 방법이었다.
어쨌거나 호위와 하파트의 특기를 살린 공격은 성공적이고 이제 칸엘리의 목이 날아가는 일만 남았다.
까가가가강!
"어헛!"
"이건?"
"제기랄!"
"죽엇!"
그런데 칸엘리의 목으로 떨어지던 하파트의 마스터 블레이드가 블레이드를 끌어올리지도 못한 칸엘리의 검에 막혔다. 아니 그 순간 하파트의 마스터 블레이드가 스위치가 내려간 전등처럼 꺼져버려서 일반인의 공격처럼 힘이 없어진 것이다.
그 순간 당황스런 감정이 둘 모두에게 닥쳤고, 그 감정에서 벗어나 먼저 공격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칸엘리였다.
푸욱!
"커억!"
가슴을 뚫은 검이 하파트의 등 뒤로 삐죽 솟아났다. 그리고 그 검에서 다시 마스터 블레이드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지금 하파트의 내부는 칸엘리의 마스터 블레이드에 의해서 재가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어, 어떻게?"
하파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칸엘리를 바라봤다.
분명 확실한 승기를 잡았었다. 그런데 어째서 마지막 공격 중에 온 몸의 에테르가 요동을 치면서 가닥가닥 끊기고 막혀서 마스터 블레이드가 사라져버린 것일까?
하파트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칸엘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너를 싫어하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지. 내 힘은 아니었다."
칸엘리의 시선이 멀리 광장 구석으로 사라지는 한 사람의 등에 꽂히고 있었다.
분명 그가 도움을 줬다는 것을 칸엘리는 알았다. 그리고 그가 누군지도 알고 있었다. 싸움이 시작될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계를 하고 있었던 이였는데 결국 그가 싸움에 끼어들기는 했다. 그것도 칸엘리 그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는 엄청난 반전을 일으키면서 말이다.
"게, 게슈너?"
하파트가 고개를 돌려 게슈너가 있던 곳을 살피려다가 그대로 멈춘다. 그와 동시에 그에게 영원한 안식이 찾아왔다.
"우와! 죽여라!"
"죽여!"
"죽여!"
칸엘리 트라이브의 멤버들이 거세게 하파트의 부하들을 공격했다. 하파트의 부하들은 하파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제대로 반격을 하지 못하고 하나씩 쓰러진다.
"그만!"
칸엘리가 트라이브의 멤버들을 멈춘다.
"복수는 끝났다."
칸엘리는 그렇게 선언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 중에는 생체 에테르바디의 유저 헌터도 있었지만 라훌족도 많았다. 선제공격으로 라훌족을 죽인 것은 이미 각오를 한 상태지만 그렇다고 과도한 살인은 문제가 될 것이다. 칸엘리는 남은 라훌족들을 포박하게 하고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칸엘리 트라이브에 격렬하게 저항하던 라훌 헌터들도 이미 승패가 결정된 것을 느꼈는지 서둘러 몸을 빼기 시작했다.
주크와 독립당의 입후보자가 이끄는 라훌 헌터들은 광장 한 쪽으로 모여서 경계를 하며 칸엘리 트라이브가 하파트의 부하들을 잡아들이는 것을 지켜봤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동료들은 어떻게 해서건 빼내려고 했기 때문에 간혹 트러블이 있었지만 칸엘리가 하파트의 직속 부하들만 잡으라는 명령을 내려서 소란이 가라앉았다.
칸엘리는 장내 정리가 끝나는 대로 서둘러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게슈너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째서 자신을 도운 것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마스터 생체 에테르바디의 가치는 단순하게 에텔론 얼마 정도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목숨은 아니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을 받았으니 마땅히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칸엘리는 생각했다.
그는 오만하며 과시욕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빚을 지고 살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