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23화 (123/298)

< -- 칸엘리와 하파트, 두 마스터의 싸움 -- >

칸엘리는 라훌족의 선거나 의회 구성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깟 것들이 뭐라고 의회니 뭐니 한다는 말인가? 라훌족은 그들 유저 헌터들의 유희에서 태어난 존재들이고 또 그들의 유희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심부름꾼 같은 것들이다.

물론 헌터룸 관리자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칸엘리의 속내는 솔직히 그런 것이었다.

이곳 데블 플레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칸엘리는 비록 개척자라고 부르는 최초의 유저 헌터 세대는 아니지만 2세대 정도의 위치는 되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라훌들이 하나씩 태어나는 것을 봤고, 또 그 라훌들의 점차 늘어나서 이곳 데블 플레인의 원주민이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사실 지금 라훌족들 중에는 칸엘리의 후손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라훌족 후손들이 칸엘리에게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는 존재들이기도 하고, 칸엘리 트라이브의 사업에서 얼굴 마담 역할을 하는 이들이기도 했다.

어떻게 연결을 하건 사실 따지고 보면 라훌족은 유저 헌터들의 후손인 것이다.

칸엘리는 초기에 이곳에서 헌터 생활을 시작한 후에 이런 저런 여자를 만나면서 생체 에테르바디로 번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얼마나 놀랐던가. 거기다가 여자 헌터들이 생체 에테르바디의 낙태가 허가되지 않자,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생체 에테르바디 보관소에 임신한 몸을 맡기고는 아이가 태어나고 헌터룸 관리자들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데려갈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또 얼마나 놀랐던가.

그래서 칸엘리도 그런 여자가 낳은 아이들에게 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 아닌 유희로 생긴 아이들은 그렇게 헌터룸의 관리자들에 의해서 키워졌다.

그러다가 칸엘리는 그래도 자신에 의해서 세상에 나온 아이들이란 생각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갔고, 그 때 그 아이들이 칸엘리에게 주었던 그 맹목적인 추종의 감정은 그를 아이들에게 한동안 충실하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아이들을 빨리 크고 나이를 먹고 또 늙었고, 그러다가 죽었다.

칸엘리가 자신의 고향 행성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면 아들의 손자가 생기고, 손자의 아들이 태어났다.

그렇게 칸엘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후손들을 거느리게 되었고, 그는 후손들을 레트 시에서 그런대로 자리 잡고 잘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물론 트라이브를 통해서 서로 이익을 나누는 상부상조의 협력체계를 이루기도 했다.

그래서 칸엘리는 레트 시의 라훌족에겐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젠 손자도 없고, 증손자 고손자도 모두 죽고 없어서 핏줄이란 애틋함이나 정감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라훌족들이 칸엘리를 공경하고 어른으로 대우하는 것은 분명했다.

사실 칸엘리는 그런 라훌족들의 굽신거림을 즐기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세월이 그를 변하게 안 것이다. 그가 레트 시의 라훌족에게 지니는 특별한 감정이란 바로 그 우월감을 충족시켜 줄 존재들에 대한 소유욕 같은 것이었다.

"선거? 그것도 우리 트라이브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라훌들이 완전히 우리 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거지?"

"저희 트라이브의 하부 조직들도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거기다만 의회가 구성되고 법이 정해지게 되면 이후에는 라훌과 우리 헌터들 사이의 벽이 지금보다 훨씬 견고해질 것입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가 상식적인 규범을 어기는 것은 없지 않나? 우리가 헌터답지 않게 상점을 운영하거나 혹은 주택을 임대하는 등의 사업을 하는 것이 위법은 아니지."

"그렇습니다.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솔직히 이야기하자. 우리끼리니까 말이야. 라훌들이 힘을 모아서 세력을 이루는 것이 싫다는 거지. 마음대로 손에 쥐고 흔들 수 있었던 놈들이 손아귀를 벗어나려는 것이 싫은 거지."

"맞습니다. 치프."

"요즘 우리를 감시하는 놈들이 있지?"

칸엘리가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그렇습니다. 하파트라고 하는 놈이 이끄는 단체인데, 이전에 이 근처에서 라훌족에서 유명한 마스터가 부하들과 실종되고..."

"알아. 그래서 그 놈 찾겠다는 핑계로 들어와서는 실제로는 우리 헌터들을 감시하고 있던 놈들이잖아. 우리가 선거에 개입하거나 방해하는 것을 막자는 의미겠지. 그런 것이 아니라면 라훌에서도 몇 되지 않는 마스터가 이곳에 자리를 잡을 이유가 없지. 그 전에 실종되었다는 마스터에 대한 이야기도 꾸민 걸지도 몰아. 레트에 무력 단체를 심기 위한 조작이었을 가능성이 높지."

"부딪쳐 봅니까?"

선임 매니저는 칸엘리와 함께 한 시간이 길었던 만큼 칸엘리의 속을 쉽게 짐작해 냈다.

"대대적으로 한 번 해 볼까? 먼저 칠 수는 없지만 먼저 맞을 방법은 많지."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해서 처리 하겠습니다."

"그래. 합동 유세 그거 할 때가 좋겠다."

"네. 치프."

하파트는 칸엘리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충돌 때문에 화가 쌓이고 있는 중이었다.

별 일도 아닌데 시비가 붙는 일이 점차 늘어나더니 언제부턴가 칸엘리 트라이브와 하파트 부하들 사이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 되어 있었다.

사실 하파트로서도 그런 상황이 마냥 나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칸엘리 놈들을 손봐주고 라하의 실종에 대한 증언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니 말이다.

"하파트님."

"뭐냐?"

"우리 아이들 중에 몇이 보이지 않습니다."

"응?"

"실... 종입니다."

"실종이라? 레트 시에서?"

"네. 하파트님."

"누군지 알아내지 못했겠지?"

"그렇습니다. 짐작만 할 뿐입니다."

"이거 내가 아주 얕보인 모양이야. 응? 이 하파트를 개무시하는 놈들이 많은 거 같아. 안 그래?"

"죄송합니다. 하파트님."

하파트에게 세뇌된 부하는 하파트가 무시당했다는 사실이 마치 자신의 잘못이라도 되는 듯이 고래를 숙인다.

"자세히 알아봐. 없어진 놈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어디서 어떻게 사라진 건지 찾아내란 말이야."

"지금 하고 있습니다. 숙소에서 나간 순간부터 하나하나 짚어서 실종된 위치를 찾고 있습니다."

하파트의 목소리에서 느낌이 사라지고 건조해지는 것을 느낀 부하가 잔뜩 긴장한 상태로 대답했다. 지금이 하파트가 몹시 화가 난 상태임을 경험으로 아는 까닭이다.

"유저 헌터, 그들이 먼저 선공을 할 수는 없는데, 어떻게 된 걸까?"

"시비를 걸어서 충돌을 유도한 다음 기습을 했다면..."

"그래. 그렇게 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라훌들을 이용했을 수도 있어. 그렇지?"

하파트가 부하에게 물었다. 실제로 그것은 질문이라기 보다는 하파트 자신의 생각을 부하에게 주입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가 그렇다고 하면 부하들은 그런 것으로 믿는다.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같은 라훌이라서 우리 아이들이 쉽게 생각하고 대하다가 뒤통수를 맞았을 수도..."

"라훌들 사이의 일에는 헌터룸의 관리자들이 나서지 않지."

"그렇습니다."

"칸엘리와 관계가 있는 놈들 조사된 거 있지?"

"네. 하파트님. 칸엘리가 가장 가까운 인물이 그의 6대손입니다. 그 자가 칸엘리의 라훌 가문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성향은?"

"칸엘리에게 충성스러운 인물입니다."

"우리 라훌족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가?"

"그가 라훌족의 발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목숨을 내 놓는 일 뿐입니다."

"하하하. 그래 바로 그거야. 그 놈의 목을 따. 그리고 칸엘리에게 전해. 그래봐야 그건 우리 라훌족 사이의 일이야. 제깐 놈이 어쩔 거야? 이런 방식은 펠릭스 계파에서 많이 쓰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참에 한 번 레트 시에 피바람을 불러보자."

"알겠습니다. 그럼 그 자를 시작으로 칸엘리 트라이브에 종사하는 이들 중에서 회유 가 불가능한 이들도 함께 정리를 시작하겠습니다."

"너무 대놓고 하지는 말고. 알지?"

"네. 하파트님."

하파트는 인사를 하고 물러나는 부하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두고 있다가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 우리가 칸엘리 놈들의 수중에 있는 라훌 몇을 정리하면 그 놈들이 어떻게 나올까? 그 놈들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서 우리가 제 놈들에게 달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렇다면 내가 먼저 함정으로 걸어가기 보다는 놈들의 허점을 찌르고 반응을 살피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지. 설마 우리가 같은 라훌족을 공격하리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지.'

확실히 하파트의 생각은 옳았다. 칸엘리는 하파트가 자신의 후손들을 공격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하파트의 공격이 시작되지 직전에 칸엘리에게 그 정보가 전해졌다.

누가 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파트의 부하들이 칸엘레 트라이브와 관계있는 라 훌족을 노린다는 정보가 전해진 것이다.

당연히 칸엘리는 트라이브의 멤버들을 동원해서 보호 대상자를 경호하게 했고, 습격과 방어가 숨 가쁘게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칸엘리의 손해로 나왔다. 하파트의 부하들은 칸엘리 트라이브의 유저 헌터는 건드리지도 않고 라훌족만 노려서 목숨을 취하고 몸을 뺀 것이다.

그렇게 도망가는 하파트의 부하들을 칸엘리 트라이브의 유저 헌터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라훌족 사이의 시비에 유저 헌터는 끼어들지 말라고 소리치는 하파트 부하들의 고함소리에 발걸음이 굳었던 것이다.

꽝!

"뭐라?"

칸엘리의 노화가 극에 달했다.

"치프 진정하십시오."

"진정?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좋아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럼 나도 참고 있을 수는 없지. 얘들 준비해. 선공이라도 한다."

"네? 치프?"

"생체 에테르바디 버릴 각오 하는 거야. 벌금이 좀 나와도 어쩔 수 없지. 그것도 내가 책임진다. 물론 새로운 생체 에테르바디와 그 몸의 성장도 지원 할 거야."

"그래도 일이 커지면 헌터룸 관리자들이 나서서 제재를 할 것이 분명합니다."

"어쨌건 우리가 공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잖아. 내 후손들이 죽었어. 이건 나에 대한 공격이나 마찬가지야. 이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어. 유저 헌터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라훌족이 죽인 일이었지. 자 그게 라훌족이 라훌족을 죽인 걸로 끝이 났을까? 아니면 라훌족이 유저 헌터의 아이를 죽인 걸로 결정이 났을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오래 된 일이지만 있었던 일이고, 그 때 결론은 유저 헌터의 아이들을 라훌족이 죽 인 걸로 나왔고, 결국 유저 헌터들을 그 라훌족들을 찾아서 목을 잘랐어. 그럼 오늘 죽은 아이들, 내 후손들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될 것 같아?"

"잘 모르겠습니다. 치프."

"그래 세대가 많이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애착을 가지고 돌보던 아이들이야. 그러니 이 문제는 유저 헌터의 자손들을 라훌족이 죽인 걸로 되는 거야. 이미 선례가 있기 때문에 헌터룸 관리자도 내 주장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어. 그러니 공격 준비 해. 뒷책임은 내가 진다."

칸엘리는 헌터룸 관리자들이 무척 고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라훌족들이 유저 헌터를 간접적이나마 공격한 것도 사실이니 이 상황에서 서로 싸움이 벌어진다고 해도 마냥 유저 헌터를 탓할 수는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라훌족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여러 조항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조항들이 있어도 칸엘리 트라이브를 막기는 어려울 거라고 칸엘리는 확신했다.

"한 번 화끈하게 하는 거야. 그것도 합동 유세 바로 그 날!"

이미 그 날 사고를 유도하기로 계획을 잡고 있었지만 사고를 크게 키우는 일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칸엘리는 사건을 키우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냥 정말로 대대적인  싸움을 한 판 벌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 시간 세진은 칸엘리에게 정보를 준 것이 무색하게 하파트 쪽이 판정승을 거둔 작전에 대해서 아쉬워하다가 칸엘리 트라이브가 하파트와 대대적인 싸움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래 한 번 해 봐라. 만약에 칸엘리가 이기면 뭐 그대로 넘어가는 거고, 하파트가 이기면 그 때는 내가 나설 기회가 있겠지. 상처 하나 없이 끝나진 않을 테니 말이지."

세진은 그 동안 두 세력 간의 갈등을 눈에 보이지 않게 부추긴 것이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고 기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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