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22화 (122/298)

< -- 칸엘리와 하파트, 두 마스터의 싸움 -- >

선거는 과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사실 데블 플레인에서 처음 치루는 선거는 세진이 보기에 곳곳에 허점이 많았다.

그러니 시작부터 여기저기 삐걱거리고 선거를 투명하게 이끌어야 할 단체도 좀처럼 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게슈너가 나서서 라훌 족의 선거를 유저 헌터들에게 맡기는 방안을 제시했다.

투표함을 관리하고 또 개표하는 것까지 그들에게 맡기고 또한 툴틱을 이용해서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면 부정의 여지가 많이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것이 게슈너, 즉 세진의 의견이었다. 또한 그 일을 세력을 가지고 있는 어떤 트라이브에 맡길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 활동하는 유저 헌터에게 맡겨서 단체가 가질 수밖에 없는 어떤 정치적 경제적 담합의 소지를 줄이자는 의견도 함께 내었다.

당연히 그들을 감시하기 위한 라훌족 감시단도 활동을 해야 했다.

그렇게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동안에 레트 시와 레트 시의 부속 마을들 전체의 선거 날짜와 후보들의 출마 위치가 정해졌다.30명의 의원 중에서 열 명은 레트 시에서 뽑고, 나머지 20명은 부속 마을에서 선출하기로 했다.

당연히 지역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사람들이 그 지역의 대표가 되기 위해서 출마를 선언했다.

이전까지는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없이 의원 후보가 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만 많았던 이들이 후보 등록을 하면서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또 뒤로는 서로 타협을 하고 거래를 하면서 후보 사퇴가 줄을 잇기도 하고 서로를 비방하는 내용의 유언비어가 떠돌기도 했다. 세진은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광복 직후부터 이어져서 현재까지 반복되는 대한민국 선거의 단면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이건 뭐 완전히 난장이구만? 이래서 선거가 제대로 되기나 하나?"

심지어는 어느 마을에선 결국 피가 튀는 혈전이 벌어지기도 했단다. 서로를 지지한다는 이들이 나서서 몽둥이질을 했다니 세진으로선 한숨이 나올 일이다.

"후훗, 다음 선거에선 이번처럼 혼란스러운 일은 없을 거야. 내가 법을 아주 잘 만들어 놓을 생각이니까 말이야. 호호. 두고 봐, 자넷이란 이름이 이 라훌족의 정치 역사에 거인으로 우뚝 서는 때가 올 테니까 말이야."

자넷은 세진 곁에서 어깨를 으슥거리며 큰소리를 쳤다. 아직 유세 초기지만 이미 자넷은 30석의 의석 중에서 열다섯 석 이상을 차지할 거라고 장담을 하고 있었다.

만약 선거 결과가 정말 자넷 당의 압승으로 끝나면 주크의 독립당은 꽤나 문제가 커진다.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정책을 그들의 뜻대로 이끌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이후에 있을 다른 도시에서의 선거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에 레트 시의 선거가 끝나면 레트 시 의회의 활동을 통해서 다른 도시의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또 선거의 필요성을 역설해서 남은 도시들도 하나하나 의회를 구성할 계획을 가진 독립군이었다.

그런데 독립군의 계획, 의회 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고 선거를 치르게 한다는 그 계획이 성공한다고 해도 그 독립당이 의회를 장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지금 자넷당이 바로 그런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그나저나 하파트가 아주 미쳐 날뛰는 모양이던데?"

자넷이 지나가는 말을 하듯 툭 던졌다.

"왜 그런다니? 무슨 부하들이 실종이 되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무슨 일인지 정확히 알 수가 있어야지."

세진이 시치미를 뗀다. 낮말은 새가 듣는 법이다.

"그래. 그렇겠지. 아무튼 그 때문에 주크도 하파트와 사이가 나빠졌다는 이야기가 있어. 하파트가 주크를 지워하는 임무도 함께 맡고 있는데 그걸 제대로 해 주지 않았다고 뒤에서 욕을 하고 다닌다고 그러더라."

자넷도 뻔히 알고 있으면서 말을 에둘러 한다.

"그 라하 수색대라는 것을 만든 이유도 실제로 라하를 찾겠다는 의미 보다는 그런 단체라도 있어야 양지에서 활동할 수 있는 무력 단체를 설립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 아니 실종된 사람을 찾겠다고 도시 안에 무력 단체를 만들고 그들에게 도시 전체를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하게 하는 게 애초에 말이 되는 거였어? 그게 전부 주크와 그 일당들을 지원하기 위한 술책이었던 거지."

"그래, 그랬겠지. 그런데 하파트가 딴 곳에 신경을 쓰느라고 주크를 제대로 돕지를 못했으니 뭐 그렇게 된 거지. 거기다가 하파트가 유저 헌터들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그런다더라고. 라하의 실종이 유저 헌터들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나 봐."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건데?"

세진은 왜 갑자기 유저 헌터를 의심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종된 부하들이 유저 헌터들이 의심스럽다고 하고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거지. 그래서 더 그렇게 확신을 하고 감시에 열을 올리고 정보 수집을 하고 있다는데, 결과적으론 별다른 성과가 없으니 답답해하고 있다더라고."

"그러니까 그들이 실종될 때에 하고 있던 일이 유저 헌터들을 감시하는 일이었단 말이지?"

"응. 그랬다나 봐. 그러니 의심이 거의 확신이 된 거지."

"재미있네. 상황이."

세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눈빛을 반짝거렸다.

레트시에만 수십 개의 트라이브가 있다. 그리고 그 수십의 트라이브의 치프들은 대부분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있는 이들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수가 많은 것 같지만 사실 몇 백 년을 이어온 유저 헌터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숫자도 아니다. 그들은 생체 에테르바디를 이용하기 때문에 신체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데블 플레인이 열렸던 초기부터 헌터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런 이들은 대부분 마스터가 되었고, 또 그 중에는 위대한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가 된 이들도 있다.

하지만 비율적으로 보면 아직도 익스퍼트 최상급에서 턱걸이를 하며 아둥바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말한다. 마스터는 몸 안에 있는 에테르 기관에 에테르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하가 세진에게 잡혀 죽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것도 초급도 아니고 초급에서 중급으로 올라가는 경계에 있던 라하가 세진에게 잡혔던 것은 정말 방심이 아니었다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라하가 전혀 상상도 못했던 디버품이란 희대의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라하가 진작 마음을 독하게 먹고 세진의 목을 자르자고 서둘렀다면 세진이 라하에게 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찌 시간을 끌다보니 결국 라하가 세진에게 당하게 된 것이고, 그것은 세진이 생각해도 운이 좋은 경우였다. 세진은 라하 이전에 마스터라는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었기에 특임대를 이끌고 라하와 그 부하들을 습격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고, 그게 운 좋게 성공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 세진은 그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하파트도 아직까지 그냥 두고 있는 것이었다.

라하와의 싸움을 겪은 후에 세진은 하파트를 상대할 자신이 없어졌다. 두 번의 운을 기대하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란 것을 세진도 알고 있었다.

특히 하파트는 라하에 비해서 정신 능력을 더 잘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물론 하파트도 주로 쓰는 능력은 육체능력이다. 하지만 라하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 능력도 개발을 했다고 라하가 털어 놓았었다. 그런 이유로도 세진은 하파트를 공격하지 못하고 기회만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그런 상황에서 세진에게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하파트를 직접 공격할 수가 없는 상황인데 하파트와 유저 헌터 사이를 이용할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세진도 모르는 사이에. 하파트가 유저 헌터들과 불화를 일으키고 있다면 거기를 살짝 들쑤셔주면 불길이 활활 타오를 수도 있었다.

세진은 경비대와 특임대, 어리까지 총동원해서 레트 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 게슈너의 행동은 곧바로 여러 세력들에게 알려졌지만, 선거 유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상황에서 게슈너가 자넷을 지원하는 것이 확실해진 이상, 그런 정보 수집 활동을 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는 반응이 대체적이었다.

게슈너가 직접 후보로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자넷 당을 후원하고 또 지지한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게슈너가 자넷 당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다른 후보자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맥이나 무력을 한껏 동원해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 게슈너의 행동도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자넷 당 소속의 후보자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저 말로만 지원을 하고, 지지를 한다던 게슈너가 그들은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당연히 사기가 올라간 것이다.

이야기가 어떻게 퍼지고 있건 사실 세진은 유저 헌트들의 트라이브와 하파트의 부하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하파트는 처음에는 펄커스 트라이브에 관심을 보이고 감시를 집중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펄커스에서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다른 트라이브로 범위를 넓혀서 정보를 얻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마침 제이앤과 알프론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때 하파트가 관심을 두고 있던 트라이브가 칸엘리 트라이브였다.

칸엘리 트라이브도 다른 트라이브와 마찬가지로 치프의 이름을 내세운 트라이브로 칸엘리가 치프의 이름이기도 했다.

칸엘리는 레트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규모와 역사를 지니고 있는 강호였다.

펄커스 트라이브도 칸엘리에 비하면 한 수 밀린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세가 강한 트라이브인 것이다. 그런데 그곳을 조사하던 중에 제이앤과 알프론이 사라졌으니 하파트가 칸엘리를 의심했다.

당연히 칸엘리 트라이브에 대한 감시와 정보 수집이 시작되었는데 그러자니 당연히 칸엘리 트라이브의 멤버들과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유저 헌터들을 라훌족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유저 헌터의 입장에서 라훌족은 그저 생활의 편리를 제공하는 존재들 이외의 의미는 없다고 봐야 했다.

물론 그 생활의 편리란 것이 워낙 방대한 영역에 걸친 것이어서 라훌족이 없는 생활을 상상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라훌족의 깊은 유대를 가지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랬던 것이 라훌 헌터들의 비약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유저 헌터들이 라훌족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라훌 헌터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하급 사냥터에서 마주치는 경우가 늘어나고, 거기에 기본적은 규칙도 모르는 라훌족 헌터들 때문에 이런저런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규칙에 적응하게 되겠지만 아직도 사냥터의 작은 혼란 들은 계속되는 시기였다.

이런 중에 레트 시에서 라훌 족의 의회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더니 결국 후보 등록과 선거 유세까지 진행이 되는 상황이다. 급격한 변화가 데블 플레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여기서 각 트라이브들의 입장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저 사냥이나 하고 거기서 얻는 이익을 서로 나누는 정도인 트라이브는 경쟁자가 좀 늘어난 것이 신경이 쓰이는 정도에서 끝날 문제다.

하지만 레트 시의 여러 분야에 손을 뻗고 이익을 실현하고 있던 트라이브들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겉으로는 라훌족을 내세우긴 했지만 레트시의 많은 상점들이 유저 헌터들의 트라이브에서 운영하는 것들이었다.

그 수익이 별로 크지 않은 듯 했지만, 일단 그런 상점들을 이용해서 각 트라이브들은 라훌 족의 여러 정책에 간섭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물가까지 조작을 해 오던 이들이었는데 이제 새로운 의회가 구성이 되고 또 그들에 의해서 법이 만들어지면 여러가지로 트라이브드의 사업에 지장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사실 트라이브들은 상점이나 건물등을 소유하면서 거기서 이익을 실현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들은 자신들이 알게 모르게 도시를 좌지우지한다는 정신적인 만족과 충족감을 누렸다.

이를테면 다른 이들의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우월감 같은 것을 누리며 즐겼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 사소하지만 경제적인 이익도 주고, 또 정신적인 충족도 주던 그런 일들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칸엘리 트라이브의 신경을 건드리는 하파트 일당의 행태가 일정 수준을 넘었다는 판단이 내려지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하파트와 칸엘리는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가다가 멋도 모르고 충돌을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세진은 그런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서 조금씩 하파트와 칸엘 리의 관계를 위기상황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결국 레트 시에서 뽑는 열 명의 의석을 두고 합동 유세를 하는 날, 일은 터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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