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20화 (120/298)

< -- 마스터 라하와 마주하다. -- >

"전혀 없다고?"

"네. 없어요. 아무리 정보를 분석해도 그 날 라하님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세력의 움직임은 하나도 없었어요."

"테멜을 사용해서 이동을 하고, 또 그것을 사용해서 복귀를 했다면?"

"테멜에 대한 조사도 했어요. 이곳 레트시에도 적지 않은 테멜이 있어요. 그리고 그런 테멜을 지니고 있을 정도의 세력들은 대부분 라하님의 실종에 관여할 수 있을 능력들은 있어요. 하지만 그건 가능성일 뿐이죠. 마스터가 포함된 익스퍼트 20명을 제압할 능력을 지닌 세력은 라훌 중에는 없어요."

"라하는 마스터다. 그래, 이 레트시에 마스터는 유저 헌터들 밖에 없다. 하지만 유저 헌터는 절대로 우리 라훌을 먼저 건드리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을 해 봤어요. 혹시나 유저 헌터들 중에 라하님이나 그분의 친위대 중에서 복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가 없을까 하고 말이죠. 그렇게 되면 유저도 선공이  가능하니까요."

"크음. 그건..."

하파트는 짧은 신음성을 삼켰다.

"계속 해 봐."

잠시 생각을 하던 하파트가 계속 이야기를 해 보라고 한다. 관심이 생긴 것이다.

"네. 하파트님. 그러니까 만약 라하님이나 그 부하들 중 누군가에게 해를 입은 유저 헌터가 있다고 가정하면."

"그렇게 되면 그들이 몰려와서 라하에게 부하를 내 놓으라고 했을 경우 그걸 라하가 들어주지 않았을 테니 결국 집단간의 싸움이 되고 말지. 그런 상태에서 라하의 세가 약했다면 모두 몰살을 당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고."

그래놓고 내용을 먼저 정리하는 하파트다.

"네. 제가 생각한 것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지금까지는 유저 헌터들은 될 수 있으면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고 보고 있었습니다만, 이제부턴 우리 라훌족이 아니라 유저 헌 터들 쪽으로 대상을 바꾸어서 파 봐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캐도 우리 라훌족들에선 별다른 의혹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네 감은 어떠냐?"

"그게..."

"나는 네가 특별한 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니 네 감을 이야기해봐라. 그에 대해선 절대로 책임을 묻지 않겠다."

하파트는 제법 머리가 잘 돌아가고 또 감이 좋은 제이앤을 그의 입으로 쓰고 있었다. 대부분 하파트의 지시 사항이 제이앤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정도로 제이앤의 하파트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제 감으로 범인은 분명히 이 레트 시에 있습니다. 그것도 무언가 강한 느낌이 옵니다. 그것이 제가 이곳에서 활동을 했던 까닭인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뭔가 있다는 느낌은 강렬합니다."

"크크.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럼 당연히 여기에 집중을 해야지. 나는 네 감을 믿으니까 말이다."

"가, 감사합니다. 하파트님."

제이앤은 하파트의 믿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황송해 한다.

사실 하파트의 부하들 대부분은 제이앤과 비슷한 상태다. 그들은 하파트에 의해서 철저하게 세뇌된 상태로 하파트의 수족이 되어 살고 있는 것이다.

"유저 헌터라... 그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일이 쉽지는 않겠어. 그나저나 어느 놈들일까? 설마 펄커스 놈들? 그 놈들이 트렉을 처리한 놈들일 텐데? 그 때, 우리가 공격을 한 것을 마음에 두고 있다가 이번에 라하를 습격해서 한 방 먹이자고 한 것일 수도?"

라훌족에게서 답을 찾지 못한 하파트의 시선이 드디어 유저 헌터들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게슈너는 하파트의 등장 이후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심스럽다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라훌 독립군의  타지난에 대한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있다는 것일 뿐, 게슈너는 여전히 레트시의 유지로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하고 있었다. 특기 그 중에서도 레트 시 라훌족 의회 결성에 대한 일을 이끄는데 게슈너는 무척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는 최근 라훌족 모두를 변화의 물결로 이끌어 낸 인물이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헌터가 되는 것과 일반적인 생산 활동에 치중하는 것의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서 예전 에테르 수련법을 라훌족 모두에게 공개하는 업적을 이루었을 때에 비하면 이름값이 조금 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의외로 게슈너의 지지자들은 에테르 수련법을 익혀서 헌터가 된 라훌 헌터들 보다는 농사를 짓거나 농장을 운영하는 일반 라훌족들이 비율이 더 높았다.

사실 라훌 헌터가 된 이들은 이미 어느 정도 성공한 인물들이고 그들은 이런 저런 이익에 따라서 이합집산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조금 무지한 편에 속하는 일반 라훌족들은 이전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훨씬 나은 대우를 받게 된 현 상황이 게슈너 때문이란 것만 생각했다.

라훌 헌터의 수가 늘어나면서 지배 계층이 늘어났다거나 상위 계층이 증가했다는  그런 생각을 하기 보다는 이전보다 밀 값을 후하게 받을 수 있고, 고기를 비싸게 팔 수 있으며, 같은 일을 하는데도 임금이 많이 올랐다는 것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래봐야 그걸로 사야 하는 다른 물건들의 가격 역시 올라서 크게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게슈너가 상당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지지층 때문에도 다른 의원 후보자들이 게슈너를 흠잡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했다.

게슈너를 욕하고 깎아내리는 말을 하면 그 많은 게슈너 지지자들이 그 후보자에게서 등을 돌린다. 더구나 게슈너는 의원 후보가 될 생각도 없다고 분명히 밝혔으니 괜히 그와 적대적인 위치에 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게슈너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자넷이란 여자가 의원이 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30석의 의원 자리 중에서 하나를 내어 주는 정도는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의원 후보들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자넷 네 편을 들어 줄 의원들을 모아서 당을 만든다고?"

"응. 그래야지. 당연한 거 아냐? 주크도 벌써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고, 다른 몇몇도  서로 손을 잡고 있는데?"

세진은 자넷이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하기에 무슨 소린가 하다가 결국 지원 유세를 해 달라는 소리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자넷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자넷이 끌어 들인 다른 의원 후보들에 대한 지원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라훌족이 그런 쪽에선 좀 느리네? 당을 만들고 당의 핵심 정책을 발표하고 뭐 그런 것은 당연한 일인데 말이지."

"이론은 알지만 실천은 느린 거지. 그래도 주크는 빨라. 벌써 당을 만들어서 내규까지 만들고 있다더라고."

"내가 웅크리고 있으니까 그런 정보도 안 들어오네? 이거 참. 그래서 자넷 당을 만들고, 거기서 내가 할 역할은 뭔데?"

"그거야 우리 당이 라훌 족을 위해서 이런저런 좋은 일을 할 거라고 광고를 해 주는 거지. 그렇게 되면 이제부턴 개인 후보자의 싸움이 아니라 당과 당의 싸움으로 바뀌는 거야. 선거전이."

자넷은 앞으로의 일이 기대가 된다는 듯이 잔뜩 상기된 표정이다.

"뭐 내가 도울 것도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일단 자넷이 내용을 정리해서 가지고 와. 자넷이 만든 당이 앞으로 어떤 정책을 가지고 활동을 할 건지 알아야 나도 무슨 지원을 해도 하지. 뜬금없이 그냥 자넷을 밀어주십시오. 자넷 당이 최곱니다. 할 수는 없잖아."

"호호홋. 뭐 그렇게 해도 효과는 좋겠지만 그래도 포장은 좀 해야겠지? 알았어. 이미 정리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까 곧 가져다 줄게."

"그냥 감찰 정도만 맡으면 된다더니 무슨 당을 만들어서 당수까지 해?"

"그게 내 탓이야? 주크가 먼저 라훌 독립군들을 끌어 들여서 당을 만들고 세를 결집하고 그러니까 잘못하면 말 그대로 나 혼자서 따를 당하게 생겼잖아. 그렇게 되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할 수가 없다고. 이건 내 선택이 아니라 주크가 나를 떠밀어서 생긴 일이라고."

자넷이 억울한 듯이 항변하지만 여전히 자넷은 신이 난 표정이다. 재미가 있어 죽겠다는 표정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라훌족의 선거는 자넷이 알고 있는 아주 오래 된 형태의 선거 방법이었다. 그것도 한 번도 이런 정치 기구가 없던 곳에서 최초로 탄생하는 정치 기구인 것이다.  그러니 허점이 여기저기 보이는 선거라지만 자넷이 살고 있는 행성에서 벌어지는 선거와 투표에 비하면 훨씬 생동감이 넘치고 또 흥미로웠다. 그래서 자넷은 정말로 열심히 라훌족을 위한 정치를 해 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이전에 제이비아에서 휴식을 취하며 잡화점을 운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유희였다. 그 재미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거 알아?"

자넷이 조금 굳은 표정으로 주위를 환기시키며 세진에게 물었다.

"뜬금없이 그렇게 물으면 '알아'라고 할 사람이 있긴 하냐?"

"호호. 그냥

'뭐가?'

하면 될 걸 꼭 말을 해도 그렇게 하더라?"

"그래, 그래서 뭐가?"

"응, 있잖아. 라훌 독립군들 다른 도시에서도 의회 정치를 시작하려고 준비중이잖아."

"그래 열두 도시 전체에서 언젠가는 모두 의회를 만들고, 그 후에는 그 의회들 모두를 묶어서 하나의 단체로 만든다는 것이 계획이었지. 그래서 통합된 정치 기구와 제도 아래서 하나의 국가로 태어나는 것. 그게 목적이라면서?"

"응. 생각해 보면 그게 나쁘진 않지?"

"그야 나쁠 이유가 있나? 어차피 지금도 마을이나 도시들은 의원 대신에 유지들이 관리 운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그걸 좀 더 체계적으로 꾸미겠다는 소리일 뿐이잖아."

"뭐, 그것도 있고, 기존의 지역 유지들을 팽시키고 새로운 권력자들을 만들어서 라훌 독립군들의 입지를 더 강화시키려는 뜻도 있지. 사실 지역 유지 중에서 라훌 독립군에 속한 이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그렇겠지. 네스토와 펠릭스, 타지난 그리고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많은 라훌 헌터들이 모여서 하나의 세력을 만든 것이 몇 십 년도 지나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뭐 그 때, 그들의 실력도 겨우 익스퍼트 정도였을 뿐이고, 그 이후로 점점 실력이 늘어가면서 최종적으로 라훌 독립군의 계파 우두머리가 된 거지만. 그래도 이번 선거를 통해서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겠지. 라훌 족의 여러 세력들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강력한 세력일 테니까."

"웅,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될 것 같아. 입법, 사법, 행정, 군사 이 넷이 가장 큰 문제잖아. 그걸 네스토 펠릭스 타지난이 나눠 가지면 누가 뭘 하건 간에 문제가 생겨. 특히 펠릭스의 경우에는 그가 사법이나 군사 쪽을 맡게 되면 난리가 날 수도 있지."

펠릭스는 강경 노선을 주장하는 계파의 수장으로 라훌 족으로만 이루어진 데블 플레인을 건설하고 외부의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고, 특히 유저 헌터들에 대한 테러를 빈번하게 실행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그게 뭐가 되었건 권력을 쥐게 되면 상당히 곤란하긴 할 것이다.

"유저 헌터들이 참지 않겠지."

세진은 툭 던지듯이 한 마디 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잘못하면 헌터룸 관리자들이 나설 수도 있어."

"응? 관리자들이?"

"이렇게 표현하면 좀 이상하지만 이곳 데블 플레인은 그들 헌터룸 관리자들이 가꾼 농장이야. 그리고 여기서 살고 있는 라훌족이나 유저 헌터들은 그 농장의 일꾼들인  거지. 그런데 그 일꾼들이 농장 주인을 몰아내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음, 어떻게 할까? 내가 농장 주인이면 일꾼들을 해고 하고 다른 일꾼을 써야 하나?"

"빙고. 바로 그거야. 일꾼을 해고해야지."

"그게 말이 되냐?"

"말이 되지. 그들이 나서면 이곳에 사는 라훌 족들은 모두 다른 행성으로 옮겨지게 될지도 몰라. 물론 연방법에 따라서 라훌족에 대한 탄압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이 데블 플레인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하며 라훌족을 다른 행성으로 옮기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걸? 그리고 그들은 충분히 그런 능력이 있어. 헌터룸 관리자들은 연방에서도 엄청난 힘을 지닌 세력이니까 말이야."

"그래도 모두 죽인다거나 하지는 않으니 다행이네?"

"아무튼 그런 것을 모르고 함부로 하다간 라훌족만 곤란한 상황이 될 수 있어. 그래도 고향에서 사는 것이 좋지, 다른 행성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는 것보다는 말이야."

"아니 라훌족들은 이민을 가는 것을 희망하는 이들이 많잖아."

"바보. 설마 그런 조건이 좋은 행성으로 강제 이주를 시킬 것 같아? 5급 아니면 6급 행성에 풀어 놓을 걸? 몬스터만 없지 여기 데블 플레인이나 다름이 없는 그런 낙후된 행성 말이야. 뭐 자원도 별로 없는 그런 곳이고, 환경도 척박한 곳이겠지."

"그래도 몬스터가 없으면..."

"세진 네 생각은 알겠지만, 그래도 난 역시 고향에서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다른 행성으로 이주를 하는 것은 옳지 않아. 라훌족은 이 데블 플레인에 적응해서 살아가야 하는 종족인 거야."

자넷은 생각이 명확했던지 세진에게 딱 잘라서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지구를 떠나서 다른 행성에서 사는 것은 생각을 해보지 않았으니 말이야. 그러고 보면 그것도 이상하지? 왜 나는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주변에 아는 사람들만 다 모아서 한 몇 백 명 데리고 가면 될 것도 같은데 말이지. 크크."

세진은 얼토당토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지껄였다. 자신이 데리고 가는 사람들도 또 각자 몇 백의 지인들이 있을 텐데,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민을 가려면 지구인 모두를 데리고 가야 할 판이다. 그걸 세진도 모르지는 않았다.

"아무튼 재미가 있어. 이번 선거 말이야. 호호."

자넷은 어쨌거나 게슈너가 자신이 만든 자넷 당의 지원 유세를 해 준다고 했으니 목표는 달성했다는 생각이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점점 레트 시의 의원 선거는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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