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19화 (119/298)

< -- 마스터 라하와 마주하다. -- >

타지난 계파가 발칵 뒤집혔다.

라하가 사라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라하와 함께 움직였던 라하 직속의 20명 익스퍼트 리얼 헌터들도 사라졌다.

라훌 독립군의 세 계파 중에 하나인 타지난의 고함이 그의 계파 전체에 울려 퍼졌다.

레트 시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라하가 사라진 것이 레트 시 인근의 마을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전투의 흔적만 약간 남아 있을 뿐, 어떤 세력이 그와 같은 일을 벌였는지는 오리무중으로 빠지고 말았다.

타지난의 부하들이 레트시를 삼엄한 눈빛으로 훑었다. 라하가 실종된 날, 레트시에 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그들에 의해서 낱낱이 밝혀졌다.

게슈너도 타지난의 의심의 눈길을 받았다. 게슈너가 지니고 있는 무력이 있으니 라하의 실종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는 것은 당연했다. 비록 마스터가 끼어 있는 라하와 그 부하들을 상대하기엔 약간 모자란다고 해도 의심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와 그의 경비대는 모두 게슈너 상점과 훈련소에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물론 그렇게 속이고 나갔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레트 시 주변에서 20명이 넘는 인원이 단체로 움직인 경우는 독립군들의 눈과 귀를 피하지 못했다.

유저 헌터들이 무리를 지어서 이동한 것이나 라훌 헌터들의 단체 사냥을 나간 것도 모두 파악이 되고 세세히 이동 경로와 사냥 활동까지 점검이 이루어졌다.

며칠 동안 레트시가 시끄러웠다.

하지만 타지난 계파는 결국 라하의 실종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은 타멜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결론을 내리고 좀 더 장기적으로 라하의 실종에 대한 추적을 계속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독립군은 물론이고 일반 라훌들까지 알려졌다.

레트 시 근처에서 마스터 등급의 라훌 헌터와 그의 부하 20명이 실종된 것이 공론화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라훌 독립군이란 세력의 속해 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라하가 워낙 유명한 사람이어서 그와 그의 부하들의 실종이 이야깃거리가 된 것이다.

레트 시에선 라하란 존재가 별다른 의미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주로 활동하는 타이온 시에서는 최고의 라훌 헌터로 이름이 높은 존재였다. 그런 그가 레트 시 인근에서 실종된 것은 타이온 시에 적을 두고 활동하는 모든 라훌 헌터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서 독립군의 타지난 계파에서 레트 시에 대한 감시 체계를 만드는 것을 레트 시의 유지들이 가만히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타이온에서 온 라하 수색 본부라는 웃기는 이름의 새로운 무력 단체가 그렇게 레트  시에 입성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세진은 당분간 몸을 웅크리고 있을 계획이었다.

"오늘도 왔나? 와 봐야 얻는 것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공을 들이지? 내가 더 알려 줄 것이 있다고 생각하나? 난 숨긴 것이 없는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면 모를까 기억나는 것을 숨기진 않았지."

라하는 그가 묶여 있는 방으로 들어오는 게슈너에게 그렇게 인사를 했다.

라하는 돌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은 상태로 게슈너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얇은 쇠사슬로 묶여 있었고, 그 쇠사슬들은 라하의 치명적인 급소들을 관통해서 앞뒤로 얽혀 있었다. 그래서 라하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했는데 라하가 있는 의자가 때로는 모양을 바꿔서 침상이 되기도 하고, 비스듬히 기대고 서는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지금처럼 의자로 만들어서 그를 앉히기도 했다.

라하는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돌로 만들어진 물건이 변화를 일으키는지 알지 못했 지만, 그것은 이곳이 어리가 관장하는 테멜 공간이기 때문이 일어나는 일이었다.

테멜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어리는 테멜 공간의 구성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그런 능력을 이용해서 라하가 묶여 있는 돌판의 모양을 바꾸는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테멜 공간은 어리의 또 다른 모습이나 같은 것이다.

"내가 라하 당신의 말을 모두 믿을 거라는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무 고문도 하지 않았는데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 놓겠다면서 떠든 당신의 말을 말이야."

"클클. 그래서 내가 해 준 이야기 중에서 거짓을 하나라도 찾았나? 그럴 일은 없었을 텐데?"

라하는 게슈너의 말에 느긋한 웃음과 함께 반박했다.

"그래. 아직은 없지. 하지만 내가 아는 말 중에서 이런 것이 있어. 거짓말을 아흔 아홉의 진실 속에 하나를 숨겨야 상대를 완벽하게 속일 수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나는 라하 당신의 말에 흥분하지 않아. 차근차근 확인하고 또 확인을 할 뿐이지."

"도대체 왜 나를 공격한 거지?"

라하는 아직도 게슈너가 자신을 공격하고 감금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는 게슈너가 세진이란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 했을 텐데? 타지난이 내 최종 목표라고 말이야. 라하 당신은 그에게 가기 위한 중간 단계에 불과하지."

"그게 이상하다는 거다. 타지난이 라훌족에게 죄를 지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웃기는 소리. 타지난이 하지 않았으면 너나 네 동료 하파트, 그게 아니면 또 다란 타지난의 수족들이 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나? 타지난을 아무리 추켜세우려고 해도, 타지난의 추종자들이란 놈들이 저지른 일이 떳떳하지 못한 이상, 타지난 그 놈의 잘못을 네가 덮을 수는 없는 거다."

"어째서? 타지난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추종자들의 잘못이 아닌가?"

"라하, 라하, 넌 정말 네게 유리한 대로만 생각하려는 경향이 강하구나. 타지난의 부하, 혹은 추종자들이 일을 벌일 때에 그것이 타지난에게 이익이 되리라 생각하고 일을 벌이지 않나?"

"그야 당연하지."

"그러니 너희가 죄를 지어서 얻은 이익을 타지난이 누렸으면 당연히 그 대가를 타지난이 받아야 하지 않겠나? 물론 너희 같은 도구들 역시 부셔서 태워 버려야 하겠지만, 그런 도구를 곁에 두고 쓰고 있는 타니난 역시 징벌을 벗어날 수는 없음이지."

"그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라하는 극구 타지난을 변호하려 했다. 묘하게 라하는 다른 면에서는 순순히 양보를 하면서도 타지난의 문제에 있어서는 절도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괜찮아. 그가 잘못이 없다고 해도 상관 없어. 너도 그랬잖아. 타지난을 위해서 죄 없는 이에게 못된 짓을 많이 했지. 너는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타지난은 몰랐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나도 죄 없는 타지난을 네가 다른 이들을 대했던 것처럼 대할 생각이니까 말이아. 이런 이야긴 너무 지겹지 않나.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하게 되니 말이야."

라하는 말이 없이 게슈너를 노려봤다.

죄가 있거나 없거나 죄지은 부하들을 가진 타지난은 벌을 피할 수 없다는 게슈너의 말은 언제나 반복되고 있었다.  라하도 매번 타지난을 변호하면서도 결론이 이렇게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슈너는 타지난을 어떻게 해서라도 궁지에 몰고 처벌하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라하는 최대한 게슈너가 타지난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막고 싶었다.

"손님이 왔어. 너를 찾기 위한 수색대들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자, 드디어 거물이 나타났지. 누굴 것 같아?"

라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눈빛을 빛내며 게슈너를 바라봤다.

"하파트? 그거 온 건가?"

"오호? 맞아. 서로 잘 아는 모양이지? 라하 당신의 눈빛이 반짝반짝 살아나고 있군."

"하파트. 그라면 뭐를 한다고 해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지. 그는 꼼꼼한 사람이니까 말이야."

"나도 알아봤지. 하파트가 타이온에서 가까운 레이비 시에서 주로 활동을 했고, 도시가 가깝다 보니 라하 당신과 하파트가 서로 잘 어울렸다고 하더군. 그런데 재미있 는 것은 하파트란 그 사람이 정신 능력도 제법 잘 쓴다는 거야. 거기다가 레비이 시에서 아주 유명한 헌터여서 타이온의 라하 당신과 비슷한 위치더군."

"..."

라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하파트가 왔다. 그렇다면 충분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라하였다.

그만큼 하파트는 믿음이 가는 동료였고, 친구였다.

세진은 평소와 달리 입을 굳게 다무는 라하의 태도에 그가 하파트를 굉장히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만간 하파트를 만나게 해 주지."

"뭐라?"

"하파트, 그 자도 나를 벗어날 수는 없지. 그 역시 타지난의 수족이 아닌가?"

"뜻대로 되지 않을 거다. 하파트는 나와는 다르니까."

라하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세진은 그런 라하를 잠시 지켜보다가 라하의 감옥을 벗어났다.

"감시는 잘 하고 있는 거야?"

- 물론이죠. 어리는 아주 잘 하고 있어요.

"라하의 에테르 운용은?"

- 어차피 몸에 박혀 있는 에테르 코어 검신(檢身)들 때문에 에테르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거 알잖아요. 대신에 머리 쪽으로 점점 에테르를 모으고 있어요. 그 쪽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죠.

"정신 능력을 개발하는 중이란 소리군."

- 그러 거죠. 하지만 멀었어요. 아직 세진님 수준이 되려면 하아아안참 더 노력해야 해요. 호호홋.

"그래도 무시할 수는 없지. 명색이 마스터의 경지에 있는 능력자였으니까 말이야. 거기다가 정신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한 순간에 폭발하듯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서 라하의 음식에 에테르 코어를 갈아 넣고 있어요.

"그거 흡수하고 능력이 커지면?"

- 에이, 아시면서 코어를 그대로 흡수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게 그래도 몬스터 생체 에테르에서 나온 건데 그걸 다른 생명체가 그것도 에테르 기반 생명체도 아닌 일반 생명체가 그대로 흡수하는 게 가능하겠어요? 그랬으면 라하의 몸에 박혀 있는 검신에 있는 에테르를 먼저 흡수해서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빠르죠.

"하긴 그것도 그렇다."

- 그래서 라하의 몸에는 자잘한 코어 가루들이 마구마구 흘러 다니고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한 순간에 모든 능력을 회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죠. 만약 성공하면...

"그럼 어떻게 할 건데?"

- 아주아주 높은 하늘에 올라가서 배출을 해야죠. 떨어져 죽거나 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저를 잡거나 할 수는 없게 말이죠.

"그래. 만약의 경우에는 그 방법을 써라. 놈이 회복을 하면 테멜에서 적당히 막다가 테멜에서 내보내도록 하고 내보낼 때에서 최대한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그래야 놈이 너를 어떻게 하지 못하지."

- 그런데 왜 아직 살려두고 계시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다 죽였잖아요.

"글쎄? 아마도 내가 못난 마왕이 걸었던 길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그게 뭐예요? 이상한 말씀.

"마왕들이 그래. 죽여야 할 순간에 죽이지 않고 주저리주저리 떠들다가 나중에 뒤통수 맞고 패배하고 그러거든. 그런데 라하를 잡고 나니까 그래도 마스터에 올랐던 사람인데 그냥 목숨을 취하는 것이 어쩐지 달갑지 않은 거야. 그래서 정보도 얻을 겸 해서 살려두고 있었지."

- 정보는 이제 모두 얻은 거잖아요. 그럼 처리를 해도...

"무서운 어리야. 너는 사람 죽이자는 소리를 하면 안 된단다. 그런 생각이나 결심은 내가 해야지. 예쁜 어리는 좋은 생각만 해야지?"

- 피힛, 그게 뭐예요? 제가 무슨 어린 꼬마도 아닌데.

"어쨌거나 생각해보니까 라하를 잡고 있어봐야 내게 득이 될 것은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완전히 지워야 하파트 같은 놈이 냄새를 맡겠다고 설쳐도 나올 것이 없지."

- 맞아요. 그러니까 라하 같은 위험인물을 제게 맡겨 두지 마시라고요. 솔직히 저도 가끔 겁이 나요. 라하가 쇠사슬을 끊고 날뛰면 어쩌나 하고 말이죠.

세진은 어리의 말을 듣고 그동안 생각지 않고 있었던 라하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를 계속 살려 둬야 할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라하를 계속 내가 데리고 있지만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 일정 경지에 오른 인물에 대한 예의 같은 거? 그래서 나도 혹시나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건가? 내가 남을 가벼이 대하면 나중에 내가 그런대우를 받을 것을 겁내는 건가?'

세진은 이유 없이 라하를 살려두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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