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덩치를 키워야겠어. 덩치를. -- >
데블 플레인 전체가 어수선하다.
모든 라훌족이 헌터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소식은 라훌족 뿐만이 아니라 유저 헌터들 사이에서도 굉장한 논란이 되었다.
이제부터 라훌족이란 일꾼들이 점차 사라지게 될 거란 예상이 벌써부터 데블 플레인 전체를 뒤흔드는 것이다.
헌터가 될 수 있다는데 누가 남의 밑에서 허드렛일이나 하고 싶겠는가? 한 달 내내 일을 해도 5에텔론은 벌 수 없는 것이 일반 라훌족의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제 모든 라훌족들이 헌터가 될 수 있다니 모두들 기대에 가슴들이 부푸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이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깊은 우려의 뜻을 보였다.
헌터들이 생산하는 것은 몬스터들의 에테르 코어가 거의 전부다. 그런 에테르 코어가 앞으로 무척 많이 생산이 되기는 할 테지만, 그것으로 무얼 할 것인가. 먹고 마시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이 라훌족의 손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제 그 생산자들이 헌터가 되겠다고 한다면 그들이 먹고 입고 쓸 것은 누가 생산을 할 것인가?
물론 모든 라훌족이 헌터가 되지는 않을 것이고 또 그렇게 되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지금보다 물가가 훨씬 더 올라갈 것은 분명했다. 에텔론은 넘치는데 텔론은 부족한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면 에텔론이나 코어를 교환 가치로 사용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생산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값을 치른다고 해도 구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유저 헌터들도 난감한 문제였다. 그들의 생체 에테르바디도 먹고 마시고 자야 한다.
그런데 그런 편의를 제공하던 라훌족이 앞으로 그것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데블 플레인에서의 헌터 생활은 고달프기만 할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걱정을 하거나 말거나 게슈너는 경비대를 모집하고 그들에게 독립군의 에테르 수련법을 전했다.
거기다가 특별하게 만들어진 훈련장을 제공해서 다른 사람들 보다 월등히 빠르게 에테르를 느끼고 또 축적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독립군에서도 게슈너에게 그와 같은 훈련장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게슈너는 레트시의 중앙에 커다란 건물을 얻어서 유료 훈련장을 만들었다.
다른 곳에 비해서 훨씬 빠르게 에테르 수련법의 성취가 높아지는 훈련장!
말할 것도 없이 게슈너의 훈련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게슈너의 훈련장은 유료지만 등급에 따라서 그 가격이 차이가 극명했다.
초보자, 유저, 익스퍼트, 마스터로 구별되는 등급에서 초보자는 그저 형식적으로 동전 하나만 있으면 훈련장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유저가 되면 하루에 1에텔론을 내고 훈련장을 쓸 수 있었고, 익스퍼트는 하루에 100에텔론이었다. 그리고 마스터는 아직까지 이용자가 없었지만 요금으로는 하루 1만 에텔론으로 요금이 책정되어 있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게슈너가 마스터는 이용하지 말라고 일부러 그렇게 높은 가격을 정했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훈련장 안에서는 에테르 수련법만 할 수 있었고, 몸이나 무기를 사용하는 연습은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게슈너의 훈련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람들은 게슈너가 훈련장을 만들기 위해서 화이트 코어를 꽤나 많이 사용한 것을 알고 있었다.
훈련장을 만들 때에 일꾼들이 게슈너가 화이트 코어러 훈련장 벽과 바닥, 천정에 삽입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고, 또 그것이 아니라면 훈련장에서만 유독 에테르 수 련법의 성취가 남다를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화이트 코어를 사용해서 뭔가 했다는 것을 알아도 같은 건물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건물은 내가 에테르 가드를 만드는 비법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그러니 건물 안에 있으면 에테르 가드를 착용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본다."
게슈너가 직접 나서서 훈련장의 비밀을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에는 이미 그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내막을 짐작하고 있을 정도였다.
초보자들은 쉽게 유저가 되었고, 유저들은 오래지 않아서 높은 성취를 얻었다. 그리고 간혹 익스퍼트의 벽을 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는 게슈너가 경비대를 모집하고 훈련장을 만든 이후로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그 사이에 게슈너의 상점은 여전히 성세를 이루고 있었고, 경비대원들의 수는 300명이 넘을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그들은 경비대에만 제공되는 훈련장에서 마음껏 훈련을 받을 수 있었고, 경비대원으로 받는 임금으로 에텔론 상점에서 여러 기술들을 각인 받을 수도 있었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면 그만큼 지위가 높아지고 또 대우가 좋아진다. 그들은 굳이 몬스터 헌팅을 하지 않아도 수련을 하고 상점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대가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간혹 경비대원 다수가 참여하는 몬스터 헌팅이 정기적으로 있었다.
그리고 그 헌팅이 일종의 시험이 되어서 이후에 진급이나 지휘 하락의 기초 자료로 쓰이곤 했다. 그리 위험한 사냥은 아니었지만 실력을 확인하기엔 충분한 사냥이 정기적으로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경비대도 마냥 손놓고 놀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좋은 직장에서 좀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경비대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특임대란 말씀입니까?"
아니킷은 자신의 직장 오너인 게슈너의 제안을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맞다. 경비대 중에서 특임대가 있는 것은 알 것이다. 물론 이 특임대에서 하는 일은 절대로 비밀을 엄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는 것도 알 것이고, 그들이 다른 대원들에 비해서 훨씬 높은 임금을 받는 것도 알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험하기도 하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때론 목숨을 걸기도 해야 하니까 말이야. 그래서 아니킷 당신은 특임대에 들어오란 제안을 거절할 것인가?"
아니킷은 확인하듯 묻는 게슈너의 물음에 잠시 고민을 했다.
이대로 경비대에 있어도 나쁘지 않았다. 크게 위험한 일도 없고, 대우도 좋아서 가족들의 생활을 풍족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물가는 비싸지고 있다.
다른 가족들이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것이 힘들지 않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 동안 에테스 수련에만 힘쓰고 있던 가족들이 요즘은 다시 땅을 일구고 가 축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가족들이 이제는 도시나 마을 근처에서 등장하는 하급의 몬스터를 겁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것들이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가서 사냥을 하고 혹시나 5에텔론짜리 코어라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몬스터는 아직 사냥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에테르 수련법을 익히는 것에도 개인적인 재능의 차이가 있었다. 아니킷은 재능이 굉장히 뛰어난 편이지만 다른 가족들은 훈련장을 종종 이용하면서도 유저 중급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사냥을 할 수 있는 몬스터도 제일 등급이 낮은 붉은색 등급의 몬스터들이었다.
잡아서 코어를 얻어 봐야 5 에텔론이다. 예전에는 그것도 엄청나게 큰 액수였지만 지금은 그다지 큰 액수가 아니다. 물가는 말 그대로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키우는 것이 하급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니킷의 가족들도 그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으로 다시 농사와 목축을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이 불안정한 시기였다.
지난 1년 사이에 너무도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었고, 눈 앞에 있는 게슈너는 바로 그 변화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저는..."
"참고로 말하지만 비밀 서약을 지키지 않거나 혹은 규칙을 어기게 되면 아니킷 당신에게 큰 불행이 닥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각오를 단단히 하고 대답을 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거절하더라도 불이익은 없다. 그것도 알고 있겠지만."
아니킷은 게슈너의 말을 모두 이해했다. 지금까지 많은 경비대원들이 특임대란 이름으로 지명을 받았고, 그 중에 일부는 특임대가 되고, 일부는 그냥 경비대원으로 남았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도 게슈너가 그에 대해서 따로 어떤 조취를 취하진 않았다. 그저 특임대가 된 사람만 따로 근무를 하게 되고, 일체의 장비를 새로 지원받게 된다.
그리고 들리는 이야기로는 특임대가 되면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에테르 수련의 성취가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니킷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는 변화의 중심인 게슈너 상점의 경비대원이었고, 그 덕분에 누구보다 레트시와 라훌족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 레트시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첨단의 도시였다.
한 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게슈너 옆에 있는 것이 좋고, 일반 대원보다는 특임대가 좋을 거란 판단은 어렵지 않았다.
"특임대 소속이 되겠습니다. 게슈너님."
아니킷은 그렇게 말했고, 게슈너는 새로운 수족을 얻게 되어 기뻐했다.
아니킷은 곧바로 새로운 숙소를 배정받았고, 장비 일습을 얻었다.
특임대의 장비는 게슈너 상점의 최고급품인 에테르 가드의 노란색 등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주황색 등급 보다는 뛰어난 물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당연히 게슈너 상점의 경비대 특임대만의 전용 물품으로 외부로 흘러 나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킷은 특임대의 동료들과 새로 인사를 나누고 그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한 훈련에 매진해야 했다.
아니킷은 특임대의 임무가 드러내놓고 하는 일상의 임무 이외에 숨겨진 임무가 있다는 예상을 했다. 하지만 아니킷이 주로 하는 임무는 경비대원들에 대한 감찰이나, 상점 점원들에 대한 조사, 그리고 레트시의 시민들의 성향 조사 같은 것들이었다.
이즈음에 레트시에는 라훌족들의 선거 열풍이 몰아치고 있었는데, 그것이 왜 필요 한지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의원이란 존재가 없이도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데 굳이 머리 위에 상전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 라훌족 대다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만이나 불안이 클 수밖에 없는 라훌족들은 간혹 그들이 마을 촌장이나 원로들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의원이란 존재를 뽑아서 명확한 성문법을 만들고 또 체계를 정하면 살기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탓에 지금 레트시에선 라훌족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그들로 하여금 법을 만들게 하고, 또 집행하게 하자는 이야기가 자꾸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킷은 그런 의원 후보로 자넷 총관이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킷은 선거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조사를 하거나, 혹은 레트시에서 무력을 모으고 있는 집단에 대해서 알아보는 등의 임무를 주로 맡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아니킷은 레트시에 의외로 많은 무력 단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 무력 단체들이 대부분 유력인사들의 사병과 같은 것임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레트시에는 어느 정도 능력이 있다는 이들은 모두 사병을 키우고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아니킷 자신도 게슈너의 사병이니 다른 이들이 사병을 키우거나 혹은 사병이 되는 것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입장은 아니었다.
어쨌건 아니킷은 그런 기본 조사들을 하면서 레트시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의 범위도 넓어졌다.
이제 아니킷도 레트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 다툼의 외관이나마 어느 정도 바라볼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 즈음에 드디어 아니킷에서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다.
그것은 처음 아니킷이 특임대원이 되기로 하면서 예상하고 있었던 그런 종류의 임무임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