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15화 (115/298)
  • < -- 적을 파악하고 작은 복수를 하다. -- >

    세진은 라훌 독립군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헌터들에게 대한 적개심을 바닥에 깔고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헌터들을 싸잡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격한 이들은 아니다.

    네스토와 펠릭스, 타지난으로 대표되는 세 계파는 각각 특성이 있었는데 네스토는 온건주의자로 라훌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데블 플레인의 건설이 목표였다.

    쉽게 말하면 라훌들을 하나로 묶어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인 것이다.

    이에 비해서 펠릭스는 유저 헌터를 완전히 몰아내고 라훌들만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인 강경주의자였다. 주로 그의 지휘를 받는 이들이 유저 헌터를 공격하고 죽이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여기 타지난이란 중간자가 있었다.

    이 사람은 대체적으로 라훌 독립군의 지원 세력 정도로 보면 알맞은 사람이었다.

    이 타지난이 라훌 독립군의 기술을 장악하고 있다면 맞을 것이다.

    사실 세진을 노리고 작전을 했다면 당연히 펠릭스가 했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펠릭스가 아닌 타지난이 나선 것은 세진에게서 얻을 에테르 수련법이 타지난이 관여해야 하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러니 세진은 당연히 타지난에게 복수를 해야 했다.

    타지난과 그의 부하들이 목표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라하와 하파트라는 이름의 두 마스터도 복수의 대상이고, 아직 살아 있다는 후안과 알프론. 제이앤도 목표였다.

    그리고 펠릭스도 세진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저 헌터를 사냥하는 것을 무슨 자랑으로 여기는 이들이 펠릭스의 추종자들이니 당연히 거슬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직까지는 세진에게 어떤 위해를 가한 적이 없으니 일단은 미뤄 둘 수는 있는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세진 너하고 나하고 어리, 이렇게 셋이서는 어렵지. 타지난이 이끄는 위원의 수도 다섯이고, 또 타지난의 개인 세력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잖아."

    자넷이 이리저리 정보를 살펴보고는 복수의 희망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나도 알아. 뭐 어떻게든 후안, 알프론, 제이앤까지는 납치를 하는 방법이나 기습을 하는 방법을 써서 해결을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이상은 어렵단 말이지."

    "그렇지? 타지난과 그 라하? 하파트? 아무튼 그 셋만 해도 마스터에다가 그들이 부리는 부하들의 수도 엄청나게 많다면서?"

    자넷은 얼굴 가득 걱정이 드리워져 있다. 세진이 서둘다가 일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인 것이다.

    "보기보다 라훌 독립군의 세력이 커. 열두 개의 대도시에는 물론이고 중요한 사냥터와 연결된 마을들마다 지부들이 하나씩 있어. 더 중요한 것은 요즘 하급 마을들에도 그들의 세력이 퍼지고 있다는 거지. 에테르 수련법을 미끼로 말이야."

    "흐음. 내가 익혀봤어도 굉장한 수련법인데, 당연히 모두들 혹하고 빠지는 거지. 뭐 그래서 라훌들의 전체적인 능력이 올라가고 입지가 상승하는 것이 꼭 나쁜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나도 그게 불만은 아닌데, 그 에테르 수련법이 나를 고문해서 알아낸 거라는 데에 문제가 있는 거지."

    세진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지금 독립군의 성장은 바로 세진 자신에게서 얻어 간 수련법의 영향이 큰 것이다.

    "호호호, 우리 세진이 이곳 라훌족의 독립을 위해서 몸 바쳐서 희생을 했다는 말이네? 아주 지대한 공헌을 한 거잖아. 호호홋."

    "재미있냐? 난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이렇게 근육이 떨리는데? 내 몸이 아닌 생체 에테르바디에서도 이런 반응이 일어날 정도면 그 당시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모르겠어?"

    세진이 팔뚝의 근육이 잘게 떨리는 것을 자넷에게 보여주며 신경질을 부린다.

    "아, 미안하다. 뭘 그렇게 정색을 해? 이미 지난 일인데."

    "후훗. 속았냐?"

    그런데 자넷이 급히 하는 사과 뒤를 이어서 세진이 히죽 웃는다.

    "뭐? 뭐냐?"

    "니 말대로 그게 언제 일인데 아직도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겠냐? 그런 거 없다. 그 당시에 정신력이 급격하게 올라가면서 익스퍼트 경지에 올랐지. 그래서 그런지 그 때의 고통이나 괴로움 따위는 그냥 기억으로 남았을 뿐이다. 상처나 흉터는 아니야."

    "아, 그거 다행이네. 그런데 무슨 시답지 않은 장난이야? 너 그런 짓은 간지럽다고 잘 안 하잖아."

    자넷은 어쩐 일로 세진이 장난을 치는지 신기하다는 듯이 본다.

    "그냥. 별 뜻은 없고. 나하고 너, 함께 있은 것도 오래 되었는데 너무 건조하게 지낸다 싶어서."

    "응? 건조?"

    "친하긴 한 것 같은데 선을 그어 놓고 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느낌이라 장난 좀  쳐 봤다."

    "아, 그렇구나. 무슨 소린지 알겠네. 우리 세진이 이 누님하고 어떤 뭔가 그런 응? 원하는 구나?"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어떤, 뭔가, 그런? 뭐냐 그게?"

    "호호홋, 말로는 못하는 그런 거 있잖아. 앙?"

    자넷이 은근한 눈빛으로 세진을 본다.

    "됐다. 뭔 헛소리냐? 그냥 좀 더 친하게 지내보자는 의미였다. 인간적으로도 좀 더 가까워지고 그런 거."

    "흐응, 그래서 이 누나가 싫어? 응?"

    자넷이 슬쩍 두 손으로 가슴을 들어 올리며 유혹의 눈빛을 보낸다.

    "미쳤구나? 가서 자라. 응? 되도 않는 짓 하지 말고."

    "쳇, 안 넘어 오는구나. 넘어 왔으면 엄청 놀려주려고 했는데."

    "쯧, 내가 그 속을 모를 줄 알았냐? 눈빛 가득 재밌다고 씌여 있는데?"

    "웁, 그랬어? 다음에는 진지하게 접근을 해야겠구나. 농담처럼 하지 말고."

    "가라. 가. 난 타지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좀 해 봐야겠으니까."

    "그래. 그럼. 호홋, 참, 내일은 레트시에 입성해서 모습을 드러내야지?"

    "그래야지. 계속 실종 상태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난리가 나겠구나. 주크 쪽에서도 그렇지만 펄커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뭐 대충 떼우면 되는 거야. 트렉 놈이 들고 있던 테멜을 가지고 어떻게든 이야기를 만들어 봐야지. 가까운 곳에 숨겨 뒀던 테멜에 있다가 왔다면 저들이 어떻게 할 거야?"

    "그건 그렇겠네. 아함. 나 간다."

    "그래 가서 자라."

    세진은 자넷을 보내고 홀로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알아냈어?"

    "넵. 치프. 블스시와 그 주변 마을들에서 나온 녀석들입니다. 별다른 접점이 없는데도 함께 모여서 이번 일을 꾸민 것은 그들이 어떤 비밀스러운 단체에 속해 있거나 아니면 즉흥적으로 일을 꾸몄다는 소리인 것 같습니다."

    "즉흥적이라고 하기엔 수가 많고, 아니라고 하기엔 연결고리가 없지. 하지만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재미가 있는 거야. 적이 늘어나는 거니까 말이야."

    "그래서 그 쪽을 염두에 두고 상황을 살피고 있습니다."

    "그래. 우리 장로들도 이번 일에는 흥미가 있는 모양이야. 감히 우리 트라이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색다른 자극을 느낀 모양이더군. 흐흐."

    "하지만 그들이 라훌이라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번에 그들을 죽인 것은  같은 라훌들이고 그게 아니어도 그들이 먼저 목숨을 노렸으니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지만, 이번 사건으로 다른 라훌들을 엮어서 공격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이상, 우리들은 라훌을 함부로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규칙 때문에 선공이 불가능하니까요."

    "괜찮아. 놈들이 세력을 이루고 있다면 우리가 놈들의 공격을 유인하면 되는 거야. 우리가 라훌을 공격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이 하는 일을 방해하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지. 우린 힘이 있고, 또 돈이 있어."

    펄커스는 눈빛을 빛내며 피시지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피시지도 트라이브의 치프인 펄커스의 뜻을 명확하게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놈들의 연결고리를 찾겠습니다."

    "음, 그렇게 하고. 그 게슈너 말이야. 아직이야?"

    "네.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잡힌 거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주변에 있던 이들을 모두 확인해 봤지만 수상한 이들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충돌 후에 도망간 이들은 게슈너씨를 확보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 그 쪽지처럼 알아서 피했다고 믿어야 하는데 말이지. 그런데 어째서 아직도 나타나지를 않고 있느냔 말이지."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거나 혹은 어딘가 문제가 생긴 거라고 봐야겠습니다."

    "일단 그 자가 나타날 때까지는 우리가 그 자와 얽혀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그냥 두고 보자고. 그나저나 그 게슈너가 좀 더 상급의 장비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정말 어마어마할 텐데 말이지."

    "이번에 나온 수준으로도 꽤나 도움이 되는 장비들입니다. 물론 치프께는 많이 모자란 물건이겠지만 말입니다."

    "뭐 그렇지도 않아. 내 수준에서도 약간은 보정을 받을 수 있을 정도야. 없는 것 보다는 낫다고 할까?"

    "그럼 별 소용이..."

    "우리 수준에서 아주 약간이라도 향상이 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어. 좀처럼 늘어나지 않던 것에서 약간의 변화라도 무시할 수는 없지. 사실 사냥이나 기타 위력의 향상 보다는 뭔가 수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거야."

    "그럼 라훌들과 비슷한 효과를 보시는 겁니까? 라훌들은 수련에도 도움이 되고, 또 공격과 방어에도 큰 효과를 본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봐야 익스퍼트 까지만 그런 거야. 그 이상이 되면 우리들이나 라훌들이나 별반 차이는 없을 거야. 물론 게슈너가 뭔가 숨기는 것이 없다면 말이야."

    "숨기다니요?"

    "자신만의 전용 장비가 있다면, 그리고 그 장비가 다른 장비에 비해서 월등하다면 그건 그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말이겠지. 안 그래?"

    "알겠습니다. 그것도 고려해서 그의 사냥 장면을 면밀하게 다시 살피라고 하겠습니다."

    "어렵게 찍은 영상인데 분석을 잘 해야지. 안 되면 장로들에게도 보여 봐. 내가 느낀 것을 장로들도 같이 느낀다면 그건 게슈너의 전용 장비가 다른 것들과 차이가 있다 는 말일 거야."

    펄커스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부하들에게 확인을 시켰다. 게슈너의 장비에 특별함이 있다면 그것은 펄커스의 수련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그가 그토록 바라는 마스터 최상급에 이르는 길이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펄커스는 내심 그런 기대를 가지고 게슈너를 주목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젠장!"

    주크는 허름한 거처에 홀로 앉아서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이번에 게슈너를 따라 갔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것도 문제였지만 그 후에 그 때, 나타났던 이들이 같은 라훌 독립군 소속이란 것이 더 문제였다.

    꽤나 많은 인원이 죽었고, 그들의 숨을 끊은 것은 다름 아닌 주크의 그의 부하들이었다. 사실 펄커스 트라이브 소속의 유저 헌터들은 될 수 있으면 라훌족의 목숨까지 끊지는 않으려고 애를 썼고, 그 덕분에 훌륭하게 부상자만 양산해 냈다.

    그런데 함께 공격을 당했던 주크 일행이 쓰러진 라훌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원래는 펄커스 소속의 헌터들이 그들을 잡아서 고문을 했어야 했지만, 다른 라훌들이 보는 앞에서 아무리 적이라도 심한 고문을 할 수도 없고, 또 따로 포로로 끌고 가겠다는 말을 할 수도 없어서 잠시 두고 보는 사이에 주크가 모두의 목을 잘라 버린 것이다.

    주크는 그들이 무슨 배후가 있거나 그럴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주크가 알고 있는 가장 큰 비밀 세력은 독립군이고 자신이 거기에 속해 있으니 적들은 그저 단순한 약탈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같은 독립군 소속이 쥬크 일행을 공격해서 죽이려고 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으니 거리낌 없이 목을 잘랐던 것이다.

    그런데 그 문제 때문에 조금 전까지 프루토가 보낸 전령에게 박살이 났다. 어떻게 같은 동지의 목을 벨 수가 있느냐는 질책이 강력했던 것이다.  물론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이유로 따로 벌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동료를 죽였다는 심리적인 압박은 무시하기 어려운데, 거기에 프루토는 쓸데없이 게슈너의 뒤를 따라갔다가 일을 만들었다고 질책을 한 것이다.

    "보고도 하고 움직였는데, 거기에 뜬금없이 독립군 소속이 나타나는 게 말이 되나? 더구나 같은 편인 줄 알았거나 몰랐거나 죽이려고 드는 것들을 어떻게 그냥 두나? 서로 죽이자고 칼질 시작했으면 적인 거지. 무슨 독립군 동료야 동료가. 젠장!"

    주크로선 억울한 일이었다.

    게슈너가 펄커스 트라이브와 얽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함께 동행을 하며 감시하겠다는 연락을 분명히 프루토에게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뜬금없는 습격자들. 그래서 그 습격을 퇴치했더니 그들이 같은 독립군 소속이라고 입에 거품을 무는 상급자들의 반응이 돌아왔다.

    그럼 퇴치하지 않고 죽어 줬어야 한단 말이냐고 따지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입을 닫고 있었더니 알아서들 흥분을 가라앉히고 상황을 인정한다는 간단한 말로 사태를 덮었다. 그런데 직속 상관인 프루토는 나중에 전령을 보내서 잘 좀 하지 그랬냐는 헛소리를 한 것이다.

    말이야 좀 더 신중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프루토가 주크에게 화풀이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때문에 주크도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탁자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고.

    어쨌거나 게슈너가 복귀하기 하루 전, 밤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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