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초록색 등급 사냥, 습격자? -- >
"뭐라고?"
- 주크 쪽과 피시지, 그러니까 라훌 헌터와 유저 헌터들이 서로 칼을 뽑고 대치 상태에 들어갔어요.
"이건 또 뭔 일이래? 지들 살리려고 몸까지 감춰 줬더니 서로 죽이자고 들어? 아니 주변에 다른 놈들이 있다고 한 이야긴 뭘로 들은 거래?"
"그러게? 왜 싸우지?"
자넷도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다. 세진과 자넷은 주크와 피시지가 테멜 때문에 입장이 어정쩡해 진 것을 알 수가 없다.
- 거리가 멀어서 그것까진 확인을 할 수가 없는데요? 가까이 가 볼까요?
"아서라 말아. 괜히 그러다가 들키면 정말 우린 곤란한 상황이 된다. 아무리 날도마 뱀이라도 저런 상황에서 끼어들면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래. 맞아. 세진이 말대로 그냥 있자. 저들이 싸우다가 다른 놈들에게 당해도 지들 탓이지.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세진이 극구 만류를 하고, 자넷도 날도마뱀 몸체를 주크와 피시지 등이 있는 곳으로 더 가까이 접근시키는 것에 반대했다.
= 아, 포위하고 있던 이들이 조금씩 다가서고 있어요. 아무래도 뭔가 할 모양이에요.
어리가 외곽에서 포위하고 있던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알린다.
"내가 없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거지?"
"어쩌면 저들이 칼을 뽑은 것을 보고 자신들이 포위하고 있는 것이 들켰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몰라. 둘이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대비하는 거라고 여기고 한꺼번에 들이칠 작정을 했을지도 모르지."
= 정말로 자넷의 말이 맞는 모양이에요. 이쪽에서도 무기를 꺼내고 공격 준비를 하고 있어요.
"주크와 피시지가 조금 더 참아야 할 텐데, 그럼 일단 공격을 받으면 서로 싸우는 일은 없을 거 아냐?"
"그러게."
세진과 자넷은 테멜의 중앙 홀에서 어리의 중계로 밖의 상황을 듣고 있었다.
직접 보고 들을 방법이 없으니 어리가 에테르를 퍼트려서 파악하는 정보를 알려주면 귀로 듣는 방법뿐인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주크와 피시지는 주변에서 다가오는 제 삼의 인물들을 발견할 때까지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한시적인 연합을 결성하게 되었다.
"저들, 너희와 상관없는 건가?"
"당연하지. 보아하니 너희도 저들과 연관이 없는 것 같군."
"이거 쉰 명은 되는 것 같은데? 어쩔 거지? 저들은 모두 라훌 헌터들이야."
"저들이 라훌이라도 우리완 상관없어. 너희도 알지 않나? 라훌들은 너희 유저 헌터들처럼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가 어려워."
주크가 피시지에게 같은 라훌이라도 연관이 없음을 주장하며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다.
"그럼 일단은 저들을 우리 공동의 적으로 생각하고 대처를 하지."
"좋다. 우리들 사이의 문제는 일단 저것들을 해결한 후에 보자."
주크와 그 부하들, 그리고 펄커스 트라이브의 멤버들은 원형으로 방진을 구축하고 다가오는 이들을 기다렸다.
잠시 후에 얼굴을 가리는 복면을 쓴 라훌 헌터 쉰 명이 주크와 피시지 일행을 포위했다.
"뭐냐?"
주크가 한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만 홀로 무기를 들지 않고 느긋한 자세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가 책임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으음. 게슈너가 안 보이는군.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복면인들의 리더로 보이는 인물은 주크의 말에 대답할 생각이 없는지 질문으로 되받았다.
"그는 어젯밤에 떠났다. 주변에 포위한 이들이 있다면서 자신이 없으면 우릴 공격할 일이 없을 테니 먼저 간다고 썼더군."
피시지가 주크에게 돌려 받은 쪽지를 펼쳐 들어 보였다.
"하하. 이거 참, 우리가 포위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익스퍼트 중급이라지만 우리 감시를 뚫고 사라졌다고? 그걸 믿으란 말인가?"
"믿거나 말거나 그가 여기 없다는 것은 확실하지."
주크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이거 곤란하군. 우리가 지금 이 많은 인원을 동원해서 헛짓거리를 했다는 말이 되는 건가? 하지만 게슈너가 빠져 나갔다는 것 보다는 너희가 게슈너를 숨기고 있다는 쪽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 안 그런가? 너희도 그럴 거야. 스스로가 경계에 실패했다고 믿기 보다는 너희가 다른 방법으로 게슈너를 숨기고 있다고 믿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어때?"
복면의 리더는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기 보다는 주크나 피시지가 게슈너를 숨기고 있다고 믿는 쪽을 택할 모양이다. 주크와 피시지는 그의 말에 얼굴 표정이 굳었다.
그들 역시 서로 테멜에 게슈너를 감금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서로를 의심하며 싸우지 않았던가, 그런데 저 복면인이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래. 그렇지. 너희도 인정을 하지? 그러니 이제 확인을 해 봐야겠지?"
복면의 리더는 주크와 피시지의 표정을 보며 그렇게 물었다.
"어떻게 확인을 하겠단 거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테멜을 건네주고 검사를 받으면 되는 건가?"
피시지가 물었다. 사실 테멜의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그것이 아홉 명의 유저 헌터의 목숨 값보다 비싼 것은 아니었다.
"아, 미안해서 어쩌나? 그건 좀 어렵겠어. 너희 테멜 안에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데 거길 기어 들어갈 수는 없지."
"그렇다면 결국 우리를 모두 해치겠단 소리구나!"
주크가 이빨을 바득 갈면서 소리를 질렀다. 일행 모두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서 잘못하면 모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각오를 다지라는 의미의 고함인 것이다.
그 소리가 신호가 되었는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무리 사이를 흐르는 에테르가 한결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게슈너가 없다. 그리고 그는 자의로 이곳을 떠났다. 그것을 믿지 않을 건가?"
피시지가 다시 한 번 복면인을 향해서 물었다.
"믿고 싶다. 하지만 믿음이란 것이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니지 않나? 너희가 유저 헌터라고 하더라도 너희가 우리 라훌들에게 하는 말이 언제나 참인 것은 아니지. 안 그래?"
"결국 서로 죽고 죽여야 한다는 거냐?"
"뭐 이해하라고. 그리고 어차피 너희는 진짜 목숨도 아니지 않나? 그 반면에 우린 진 짜 목숨을 걸고 이 자리에 있으니까 억울해 하지 마라. 너희가 다 죽고 우리 중에 하나가 죽어도 그건 도리어 우리에게 손해니까 말이야."
"우리 펄커스 트라이브는 절대 복수를 포기하지 않을 거다. 자신이 있다는 거냐?"
"우리? 우리야 뭐 어차피 얼굴도 가렸겠다, 너희가 다시 새로운 몸으로 온다고 해도 무서울 것 없거든?"
"지금 이 모든 상황이 툴틱을 통해서 우리 펄커스 트라이브의 다른 멤버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너희 하나하나의 특징이 모두 툴틱에 기억되지. 거기 귀에 사마귀 있는 놈, 거기 목에 삼각형 점이 있는 놈, 거기 덩치가 유독 큰 놈, 거기 오다리에 머리카락이 붉은 색인 놈, 등등, 너희가 숨기지 못한 특징들 하나하나가 분석되고 나면 너희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후에 우리 트라이브의 모든 구성원이 나서서 너희에게 복수를 할 것이다. 아는지 모르지만 우리들이 너희 라훌을 먼저 건드리지 못하지만 너희가 먼저 시작한 일에 대해서는 정당한 복수의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잊지 마라."
피시지는 복면인 몇의 특징을 짚어주며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무사히 넘기려고 애쓰고 있었다. 만약 그게 실패하면 이 곳에선 엄청난 살육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피시지는 그것을 말리고 싶었다.
"쯧, 그것 참, 상황이 우습게 돌아가네. 뭐 괜찮아. 어차피 시작한 일이야. 자, 그럼 시작을 해 보자고."
하지만 복면 사내는 다 잡은 먹이를 놓아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런, 젠장! 이건 전부 너희의 선택이다. 원망하지 마라."
막 싸움이 시작되려는 순간 피시지가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자신의 칼로 그것을 찔렀다. 아니 자신의 칼을 그것의 에테르 소용돌이에 집어 던졌다. 소형 테멜을 품에서 꺼낸 것이다.
당연히 칼은 테멜 안으로 사라졌다. 칼에 깃들어 있던 피시지의 에테르에 소용돌이가 반응을 한 것이다.
"무슨 짓이냐? 쳐라!"
복면인 사내는 뭔가 불안을 느꼈던지 곧바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젠장! 죽여! 하나라도 죽여!"
주크도 소리를 지르며 적을 향해서 맞대응을 시작했다. 이제 익스퍼트 초급을 넘어서 중급으로 향하고 있는 주크지만 게슈너의 에테르 가드와 웨폰을 장비하고 있는 이상, 일반적인 익스퍼트 초급과는 확연히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온 다른 아홉 중에 둘이 주크와 같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익스퍼트 초급이었다.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그들에겐 있었다.
그에 비해서 피시지 일행은 한 사람도 게슈너 상점의 장비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등을 대고 철저하게 방어적인 태도를 갖추며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콰과과광! 콰과광!
"크흐흑. 이것들이 정말!"
첫 공격은 다른 것이 아닌 정신 능력의 화염 에테르 붐 폭발이었다. 하지만 그 공격에 죽은 이들은 없었다. 제각각 몸 안에 축적하고 있는 에테르를 이용해서 방어에 성공한 것이다. 퍼벙! 퍼업!
"크악!"
"크아악. 정신 능력자다!"
그리고 피시지가 이끌고 온 이들 중에 두 명이 포함되어 있던 정신 능력자들의 공격이 곧바로 복면인들 사이에서 터졌다. 역시 가장 효과가 좋은 폭발 에테르 붐이다.
"죽어! 새끼들아!"
"죽여라!"
복면인들이 벌떼처럼 피시지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두 명의 정신 능력자가 펼친 에테르 방패에 일차로 막히고, 그 뒤는 세 명의 검방 헌터들에게 막혔다.
방어를 전문으로 하는 그들 세 명은 삼각형 꼭지점을 맡아서 철저하게 방어에만 힘을 쏟고 있었다.
"아니 이 양반은 왜 안 나와? 이러다가 죽게 생겼구만."
그런 중에 피시지는 아직 여유가 있는 표정으로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카캉, 콰과광! 퍼벙! 펑!
헌터와 헌터의 싸움이거나 혹은 헌터와 몬스터의 싸움이거나 일단 시작되면 먼저 일어나는 현상은 에테르의 충돌이다.
서로의 에테르를 깎아 내지 않으면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어떻게든 공격을 퍼부어서 에테르를 소비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공방에서는 어느 쪽이 더 밀도 높은 에테르를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서 공격이나 방어에서 깎여 나가는 에테르의 양이 다르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그만큼 에테르의 밀도가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 변수가 있으니 게슈너의 방어구를 착용한 쪽은 애초에 다른 이들보다 월등한 에테르 방어막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주크와 그의 부하 둘이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그들이 공격은 같은 익스퍼트의 공격과는 차원이 달랐다.
"크윽. 뭐야?"
"썅! 이거 뭐 이렇게 강해?!"
"게슈너 장비를 착용한 놈들이다. 그 놈들은 차륜전을 물아 붙여!"
"우랴랴랴랴! 죽어 새끼들아!"
주크와 그의 부하 둘은 절대 혼자 다니지 않았다. 주크를 중심으로 삼각형으로 대형을 만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복면인들을 협공했다.
삽시간에 희생자들이 다섯 가량 바닥을 구르게 되자 복면인들의 기세가 주춤했다.
"병신들! 이것들은 우리가 맡지."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던 복면인 열 명 정도가 나서서 주크와 부하 둘을 포위했다.
"설칠 만큼 설친 거 같으니까 이젠 우리 차례지? 응?"
주크 등을 포위한 복면인들이 흉흉한 기세로 다가서자 주크 등은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상대의 수도 많지만 실력도 뛰어난 이들이란 사실을 느낀 것이다.
"뭣들 하는 거야? 어서 처리하지 않고. 언제 유저 헌터들이 몰려올지 몰라. 서둘러서 정리하고 여길 떠야 한다."
복면인 리더가 소리를 지르며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고 나섰다.
"젠장 익스퍼트 최상급인 모양이네? 검이 불타고 있어."
피시지가 복면인 리더의 모습을 보면서 앓는 소리를 했다.
"이 양반 뭐하는 거야?"
그리고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거 나한테 하는 소리야? 피시지? 응?"
그런데 그런 피시지 옆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시지의 얼굴빛이 확 밝아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