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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노트-111화 (111/298)
  • < -- 초록색 등급 사냥, 습격자? -- >

    "이크!"

    게슈너는 머리 위에서 내리꽂히는 헤드로스의 손바닥을 피해서 급하게 땅바닥을 굴렀다.

    퍼벅!

    헤드로스의 손바닥은 아슬아슬하게 게슈너를 스치고 대지를 때렸지만 그 파장은 대단했다.

    손바닥에 맞은 땅이 크게 파이면서 그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진 것이다.

    게슈너는 그 충격파에 몸을 맡기고 한참을 굴러서 헤드로스에게서 멀어졌다.

    방금 헤드로스의 공격은 온 몸을 허공에 띄운 상태에서 헤드로스의 모든 힘을 손바닥에 집중시켜 내리 찍은 것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게슈너도 그리 급하게 몸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치거나 혹은 창이 나 방패를 이용해서 힘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헤드로스의 몸이 땅에서 떨어진 상태에선 어떤 작은 공격이라도 맞받아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그것을 게슈너도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말로 듣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차이가 있는 법이다.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서도 몇 번이나 헤드로스의 몸이 땅에서 떨어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맞서다가 호되게 당한 경험을 했던 게슈너였다.

    몸이 허공에 뜬 상태에서 헤드로스의 공격은 그야말로 극강이었다. 사소한 부딪힘이 곧 엄청난 손해로 돌아왔다.

    '초록색 등급의 몬스터는 확실히 에테르의 양이 노란색 등급에 비할 바가 아니야. 두 배가 아니라 댓 배는 더 강해진 것 같아.'

    세진은 헤드로스를 통해서 초록색 등급의 몬스터가 지니는 생체 에테르의 수준을 어느 정도 짐작해 냈다.

    이것은 직접 싸우면서 파악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영역이었고, 디버프를 주로 사용하는 세진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몬스터의 체내에 존재하는 생체 에테르의 양과 밀집도는 곧바로 디버프 기반 에테르의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노란색 등급의 몬스터 체내에서는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던 세진의 디버프 기반 에테르가 초록색 등급의 몬스터 체내에서는 묽은 죽 속을 움직이는 것 같은 뻑뻑함을 느끼게 했다.

    거기에다가 헤드로스는 간혹 몸 안의 이상을 풀어내기 위해서 자신의 생체 에테르를 폭발적으로 움직여서 세진의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몸 밖으로 털어내기도 했다.

    온전히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감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몸 안에 꺼림칙한 기운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런 조취를 취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행위를 할 때면 헤드로스의 체내 생체 에테르는 급격하게 감소하지만 어쨌거나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몸 밖으로 뽑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세진은 자신의 수준이 아직 초록색 등급에게 온전하게 먹힐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수련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것은 에테르의 양의 문제가 아니라 운용 능력의 문제였다.

    '확실히 실전이 없이 상상 수련이나 명상만으로는 부족했던 거다. 초록색 등급에서 이렇게 부담을 느낀다면 이걸 마음껏 헤집을 수 있을 정도로 디버프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걸 목표로 좀 더 실전을 해야겠어.'

    세진은 마지막 헤드로스를 잡으면서 그렇게 결심을 했다.

    벌써 닷새 동안 세진은 홀로 헤드로스를 사냥했고, 피시지와 주크 일행이 그런 게슈너를 보호하느라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이젠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으니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이곳에 온 이유가 초록색 등급의 몬스터를 상대로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 통하는지 알아보자는 것이었으니 목적은 충분히 달성을 한 셈이다.

    물론 그 결과가 앞으로도 많은 수련이 더 필요하다는 것으로 나온 것은 무척 속상한 일이지만 그건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세진님 저예요. 어리.

    "응?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세진은 잠자리에 누웠다가, 늦은 밤에 자신을 찾아온 어리 날도마뱀의 출현에 깜짝 놀랐다. 녀석은 다른 사람들의 감시를 피해서 세진이 있는 천막 근처까지 다가온 것이다.

    "무슨 일이야? 자넷과 함께 가게를 지키고 있으라고 했더니?"

    = 자넷은 테멜에 있어요. 상점의 물건들도 모두 테멜 안에 있고요.

    "응?"

    세진은 뭔가 일이 벌어진 것을 깨달았다.

    = 세진님이 사냥 가시고 나서 얼마 후에 상점에 쳐들어온 놈들이 있었어요. 솔직히 자넷이 무슨 힘이 있어서 저항을 하겠어요? 제가 그 낌새를 알자마자 자넷에게 짐을 챙기라고 해서 그냥 숨었죠.

    "그래. 그건 잘 했다. 그런데 레트시에서 우리 가게를 노리는 놈들이 있었단 말이야? 목표가 뭐지?"

    = 살짝 들어보니까 자넷을 납치해서 게슈너님과 거래를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에요.

    "거래라니? 설마 에테르 가드나 웨폰을 만들 방법을 내 놓으란 소리를?"

    = 아뇨. 그런 거래는 게슈너님과 자넷이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건 그들도 알고 있었어요.

    "그럼?"

    = 몸값이요. 가드와 웨폰까지 갖춰진 열 벌의 장비를 받아 낼 계획이었던 것 같아요.

    "그거 이상하네?"

    세진은 어리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건 너무 소박하지 않나? 자넷을 납치해서 에테르 장비를 얻는다? 물론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들을 생각하면 그런 잔챙이들이 설칠 분위기가 아닌데? 그런데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걸까? 만약 자넷을 납치하는데 성공하고 또 내게서 에테르 장비를 받는다고 해도 그들이 무사할 가능성은 별로 없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물건들이란 말이지.'

    세진은 이런 저런 고민을 해 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지금 상황에서 자넷을 납치해서 에테르 장비를 얻겠다고 나선 것은 무리가 있는 행동이었다.

    = 아이 참,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응?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

    = 여기 주변에 지금 다른 헌터들이 무척 많아요. 한 50명은 되는 것 같아요.

    "50명?!"

    세진은 깜짝 놀랐다.

    레트시에선 자넷에 대한 납치 시도가 있었는데, 이곳엔 게슈너를 어떻게 해 보려는 수작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게슈너를 호위하는 인원이 턱없이 적다.

    피시지가 데리고 온 인원이 그를 포함해서 아홉 명이다. 그리고 주크 일행도 열 명이다. 함께 뭉친다고 해도 스물이 되지 않는 숫자인데 근처에 숨어 있는 인원이 50이라 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누군지 알아?"

    = 몰라요. 하지만 그 중에 서른 명은 한 무리가 맞아요. 서로 연락을 하는 걸 봤어요. 여기 도착해서 세진님 근처로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살폈거든요.

    "그렇군. 나머지가 또 다른 놈들인지 한 패거리인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최소 서른이 한 무리라면 위험한 상황이네?"

    = 자넷이 그러는데 그냥 게슈너가 실종이 되면 여기 있는 사람들도 모두 안전하게 레트시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래요.

    "그러니까 나도 테멜로 들어가서 사라지자? 그 후엔 여기 남은 이들이 알아서 일을 해결하게 두고? 그러다가 피시지와 주크가 한 판 붙으면?"

    = 주변 상황을 알리고 먼저 간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데요? 자넷이.

    "그러니까 적당히 쪽지 남기고 튀란 말이지? 나중에 욕 좀 먹을 것 같은데?"

    = 자넷이 그러는데, 그 쪽이 여기 있는 펄커스 트라이브 사람들이나 주크 일행 모두 가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일 거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 정도 판단력은 있는 사람들이겠죠. 피시지라는 선임 매니저나 주크 모두요.

    세진도 잠시 생각해보니 그게 만약을 위해서 제일 좋은 방법일 듯 했다. 목표가 사라지고 없는데 굳이 공격을 해서 피를 볼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아무래도 이쪽이 불리한 상황이니까. 그게 좋겠지. 참, 곧바로 레트시로 가지 말고 숨어 있다는 놈들 좀 살펴볼 수 있을까?"

    = 너무 가까이 가지만 않으면 문제없어요. 초록색 등급 몬스터가 나타나는 지역에서 누가 날도마뱀 따위를 신경 쓰겠어요?

    "그럼 그렇게 하자. 어떤 놈들이 뒤를 노리고 있었는지 알아야겠으니."

    = 네에. 세진님. 어서 들어오세요.

    "잠깐 쪽지는 남겨야 할 거 아니냐."

    날도마뱀이 입을 쩍 벌려서 안쪽의 에테르 소용돌이를 드러낸다. 세진은 급하께 쪽지를 써서 남기고는 테멜로 사라졌다.

    아침이 되어서 게슈너가 사라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숙영지에는 두 패거리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지?"

    피시지가 일행들을 이끌고 포위하듯 둘러 선 주크 쪽을 향해 물었다.

    "우리가 너희의 말을 어떻게 믿나?"

    "게슈너님이 남긴 편지를 너희에게도 보여줬다. 그런데 믿지 못한다면 그걸 우리가 어떻게 하란 건가?"

    "그래서 우린 간단한 증명을 요구한다."

    "증명?"

    피시지는 라훌 헌터를 이끌고 있는 주크에게 별로 호감이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게슈너를 보호한다며 따라 온 것도 기분이 나쁜 일인데, 이젠 슬슬 사라진 게슈너를 핑계로 뭔가 요구를 할 듯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증명이다. 우린 너희가 게슈너님을 억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러니 너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

    "어떤 방법으로?"

    피시지는 참는 데까지는 참아 보기로 하고 여기까지 대화를 진척시켰다.

    "너희에게 테멜이 없다는 것만 증명하면 된다."

    "테, 테멜?"

    "그렇다."

    "그게 어떻게 증거가 되지?"

    "게슈너님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도구는 테멜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테멜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게슈너님이 없다고 한다면 어쩔 건가?"

    "하하하. 당연히 믿을 수가 없지. 이런 사냥터에 오면서 테멜을 소유하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 만약에 이런 곳에 테멜을 지니고 왔다면 당연히 불온한 계획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 게슈너님이 없는 것은 너희의 짓이란 소리가 되는 거겠지."

    "흐음."

    피시지는 난감한 상황에 침음성을 흘렸다.

    그의 짐 속에는 분명 테멜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테멜의 용도는 절대로 게슈너를 납치 감금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다.

    "좋다. 그럼, 마찬가지로 너희 또한 증명을 해야겠군. 나는 혹시 너희가 게슈너님을 납치 감금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하니 말이야. 아무 죄가 없는 우리를 핍박하는 것은 분명 우리에게 죄를 덮어씌우자는 의도겠지. 어때? 너희도 사람의 수가 줄 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 테멜을 가지고 있지 않나?"

    피시지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역습을 해 봤다.

    그리고 그의 시도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주크 일행의 반응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행 몇의 시선이 주크에게로 향하는 것을 확인했다.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을 지니고 있는 피시지가 그보다 실력이 조금 떨어지는 라훌 헌터들의 기색을 읽어 낸 것이다.

    "왜 말이 없지? 그리고 한 가지 잊은 것이 있는 모양인데, 게슈너님이 남긴 쪽지에는 우리가 지금 누군지 모를 헌터들 50명에게 포위가 되어 있다는 거다. 만약 이 말이 맞다면 우린 싸울 이유가 없지. 게슈너님의 말이 옳다면 그가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한다는 말도 진실일 테니까."

    "훗, 웃기는 소리. 우리가 포위를 당했다고 해도, 너희가 게슈너님을 납치 감금 했을 거라는 의심을 벗진 못한다. 그건 우리가 포위된 것과는 다른 문제일 수도 있거든."

    주크는 피시지가 슬쩍 빠져 나가려는 것을 용케도 잡아챘다.

    "젠장, 어쨌건 우리는 게슈너님의 실종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그리고 너희가 계속 우리를 압박한다면 우린 어쩔 수 없이 너희가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이들과 한 패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헛소리. 도리어 그것들이 있다면 그게 너희 패거리겠지."

    주크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두 패거리가 무기까지 빼 들고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잘못하면 주변에 숨어 있는 다른 패거리에게 어부지리를 주게 될 상황이 벌어지게 생겼다.

    분명히 주변에 다른 헌터들이 숨어 있다는 게슈너의 경고가 있었는데도 잠시 그것을 잊은 듯 행동하는 두 패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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