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09화 (109/298)

< -- 게슈너 한 발 또 한 발 전진한다. -- >

"어쨌거나 이번에 레트시를 중심으로 라훌 의회가 정식으로 만들어지게 되면, 그 힘을 등에 업고 라훌 독립군과도 협상을 할 수 있을 거야."

자넷이 레트시를 중심으로 라훌족들의 구심점을 만들려는 계획을 떠올리며 말했다.

레트시에 소속된 라훌족들 모두가 참여하는 투표를 실시해서 레트시만의 정부 기관, 혹은 의결기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속속 탄력을 받고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독립군에선 주크를 내세워서 의회를 장악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게 쉽게 일이 되도록 하면 곤란하긴 하지."

"맞아. 그래서 내가 요즘 힘을 좀 쓰고 있잖아. 호호홋, 최초의 라훌족 여성 의원이 될 거란 말이지. 이왕이면 의회의 회장까지 해 볼까 생각중인데, 아무래도 그 자리는 주크에게 줘야 할 것 같으니까 감시단체 정도 만들어서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까 생각중이야."

"그래. 그것도 필요하긴 하지. 권력을 손에 쥐면 부정부패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 니까 말이지."

"응. 거기다가 주크는 라훌 독립군 소속이잖아. 그러니 그가 모든 일을 좌지우지 하게 둘 수는 없는 일이지. 레트시는 이제 모든 도시들의 중심이 될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세진은 이쪽이 아니라 독립군 쪽에 소속되어야지. 그래야 목적을 이루기 쉽고 말이야."

자넷은 이후에 자신은 레트시의 의원으로 그리고 게슈너는 독립군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내외로 서로 협조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겨우 에테르 가드와 웨폰 정도로 이런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줄은 몰랐어."

"겨우는 아니지. 그게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데? 그게 다른 데블 플레인에도 소개가 되면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세진은."

"그건 아직 생각 없다. 나중에 때가 되면 이야길 해 보자."

은근히 전 우주 연합을 상대로 하는 거래에 대해서 운을 띄우는 자넷에게 세진은 슬쩍 선을 그었다.

세진에게 이쪽에서의 삶은 아직 생생한 꿈과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세진이 초록색 등급의 몬스터 사냥 연습을 하고 싶다고 뜻을 비추자 너도 나도 나서서 세진과 함께 사냥을 가주겠다고 줄을 섰다.

그것도 세진에게 도움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진을 위험에서 보호하겠다는 생각으로 모인 무리들이었다.

게슈너로 분장하고 있는 세진이 만약 사냥에서 불행을 당하게 된다면 더 이상 에테르 가드와 웨폰은 제작할 수가 없다. 그 비밀은 오직 게슈머만 알고 있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도 두지 않고, 일을 돕는 조수도 두지 않는 게슈너였다. 그러니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큰 일이 난다.

주크가 당연하다는 듯이 실력이 뛰어난 라훌 헌터 한 팀을 보냈다. 그리고 유저 헌터들 중에서도 몇몇 트라이브에서 함께 사냥을 가 주겠다고 의사를 전해왔다.

사실 유저 헌터들은 어떤 의미에서 라훌족에 비해서 더 믿을 수 있고, 안전한 이들이 다.

그들은 툴틱으로 헌터룸의 감시를 받기 때문에 라훌족에게 먼저 해코지를 할 수가 없다. 만약 그런 일을 벌이면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 그들은 유희의 삶이고 라훌은 진짜 삶이기 때문에 차별이 심한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게슈너와 함께 사냥을 가고 싶다는 것에는 어떤 불순한 의도는 없을 거라고 세진은 생각했다. 물론 테멜을 이용해서 게슈너를 납치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런 행동까지 툴틱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에 세진이 스스로 테멜 안으로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유저 헌터들이 그런 짓을 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만약 그것도 믿지 못한다면 레트시 시내 어디라도 돌아다니지 못하고 집안에만 박혀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세진은 주크가 보낸 라훌 헌터들이 아닌 유저 헌터의 트라이브 중에 한 곳을 선택해서 사냥을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이전에 한 번 인연이 있었던 펄커스 트라이브에 함께 사냥을 하자는 뜻을 전했다. 펄커스 트라이브는 이전 거버너와 탄제 셋이서 발견한 소형 테멜을 판매한 인연이 있는 곳이었다.

물론 이제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그들을 다시 보는 것이어서 옛 일은 의미가 없어지긴 했지만.

"반갑습니다. 펄커스 트라이브의 수석 매니저 피시지입니다. 게슈너씨와 함께 사냥을 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반갑다. 난 게슈너다. 말투는 원래 이렇다."

"하하하. 알고 있습니다. 게슈너씨의 독특한 어투를 모르면 레트시의 사람이 아니죠."

"나는 노란색 상급 몬스터를 사냥한다. 혼자서. 크게 힘들지 않다. 하지만 초록색은 경험이 없다. 그래서 초록색 등급의 사냥이 내게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사냥을 지켜보다 위험하면 도와주는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함께 가는 사람들은 방어형 헌터가 셋이고, 근전 딜 러가 셋에 원거리 정신 능력자가 둘입니다. 그런데 게슈너님께서도 정신 능력을 쓴다고 들었습니다만."

"디버프, 에테르 방패, 랜스, 붐을 쓴다. 무기는 창과 방패를 동시에 사용한다."

"아, 그렇군요. 혼자서 노란색 상급을 사냥할 수 있으시다면 익스퍼트 하급은 되신다는 소리겠군요. 게슈너 님의 특제 가드와 웨폰을 사용하신다고 하더라도 익스퍼트도 되지 않았는데 노란색 상급 몬스터를 상대할 수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익스퍼트 중급이다. 가드와 웨폰을 사용하면 상급과 동급이거나 약간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게슈너는 스스로의 능력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았다.

"대단합니다. 그럼 혼자서 초록색을 상대할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사실 아실지 모르지만 익스퍼트 중급부터 초록색 등급의 몬스터를 사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건 맹점이 있지요. 익스퍼트 중급 혼자서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다섯이나 여섯으로 뭉친 한 팀이 사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초록색 등급 몬스터를 익스퍼트 중급이 사냥한다.'

가 아니라

'초록색 등급 몬스터는 익스퍼트 중급 파티가 되어야 사냥이 가능하다.'

가 정확한 말이죠."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게슈너님은 혼자서 그것들을 사냥하시려는 겁니다."

"그래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펄커스 트리이브에 도움을 청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상황 정리가 이렇게 된 것 같으니 이제 출발을 해 볼까요? 모든 준비는 저희 쪽에서 다 해 왔습니다."

피시지가 그렇게 말하며 출발 선언을 하려는데 한쪽 골목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게슈너와 피시지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 선두에는 주크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왜 앞을 가로막지?"

피시지가 앞을 가로막고 선 주크 일행에게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아아, 긴장들 하지 마십시오. 우린 그저 게슈너님께 볼 일이 있을 뿐입니다."

주크가 앞으로 나서서 공격 의사가 없다는 듯이 두 손을 활짝 펴 보이며 말했다.

"내게 무슨 용건이지?"

게슈너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섰다.

"솔직히 게슈너님께 섭섭합니다. 우리가 아니라 유저 헌터들에게 안전을 맡기시다니 말입니다."

"그게 더 확실하지. 라훌 헌터라고 뒤통수를 때리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나? 하지만 적어도 그런 면에서는 이들이 더 믿을 수 있지 않나?"

게슈너는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하하. 뭐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면 저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게슈너님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피시지가 얼굴을 굳힌 상태로 주크에게 물었다.

"뭐 별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여러분의 뒤를 따르겠다는 말을 하려는 겁니다. 사실 게슈너님의 가치는 너무 커서 거기 유저 헌터들이 처벌을 각오하고 딴마음을 먹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어서 말입니다. 솔직히 몇 사람 희상해서 게슈너님의 비밀을 캐자고 하면, 결국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까?"

"으음."

주크의 말에 피시지가 짧은 신음을 삼켰다. 절대 아니라고 해야겠지만 그렇게 말을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믿음을 줄 방법이 없으니 대꾸할 말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 뒤를 따라오면서 이들에게서 나를 지키겠다는 건가?"

게슈너가 주크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도 사실 문제가 될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이야 우리의 시간을 허비해서 게슈너님께 호의를 보이려는 것일 뿐이니까요."

"뭐 마음대로 해. 그건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니까."

"우리도 상관하지 않겠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에서 우리를 자극하지 않았으면 한다."

피시지도 결국 내키지 않는 허락을 하고 말았다. 주크의 주장은 전혀 무리가 없는 내용인 것이다. 그것을 굳이 거부하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하고 만 것이다.

초록색 등급의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레트시에서 사흘을 꼬박 이동해야 사냥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보다 가까운 초록색 등급 몬스터 사냥터가 있었지만, 게슈너가 처음으로 초록색 등급 몬스터를 잡는다는 것을 고려해서 적당한 몬스터를 물색하다보니 그렇게 떨어진 곳에 있는 몬스터가 선택된 것이다.

"실례되는 질문이 아니라면 에테르 가드와 웨폰을 만들 게 된 계기 같은 것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루 종일 이동해서 어둠이 깔린 후에야 노숙을 하게 된 일행이 모닥불을 중심에 두고 둘러앉아서 식후에 차 한 잔으로 입을 헹구고 있을 때, 피시지가 지나가듯 가벼운 어조로 게슈너에게 말을 걸었다.

"계기. 에테르를 느끼고 그것은 이용할 수 있는 헌터가 되었을 때, 생각했다. 에테르 코어의 에너지를 우리는 왜 이용하지 않는가."

"아, 그러니까 이곳 사람들은 어째서 에테르 코어를 이용하지 않는가 하는 것을 고민했다는 말이군요?"

피시지가 게슈너의 말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한 번 더 이야기하며 확인했다.

"그렇다. 그러다가 붉은색 등급의 에테르 코어를 손에 넣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코어에서 축적된 에테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을 찾으려 애썼고 결국 찾았다."

"무얼 찾았다는 것인지 들을 수 있습니까?"

"에테르를 받아들이는 무엇. 그리고 운이 좋아서 그것을 이용해서 에테르를 가공하는 방법까지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된 이유다."

"그럼 저도 노력하면 가능하겠군요? 게슈너님과 같은 일을 하는 것 말입니다."

"방법을 찾으면."

게슈너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이 가지는 의미가 어떻게 해석이 될 것인지에 대해선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방금 그 대답이 게슈너에 대한 위험도를 한층 높였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방법을 찾으면 게슈너 이외의 사람도 게슈너가 만드는 것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리는, 다시 말해서 게슈너에게서 비법을 빼내기만 하면 게슈너가 없어도 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게슈너를 납치해서 어찌해 보려는 생각을 하는 이들에겐 꽤나 의미 있는 문답이 오고 간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굳이 사냥에 힘을 쓰는 이유가 있습니까?"

피시지가 게슈너의 사냥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나도 헌터. 실력을 키운다. 그것을 확인한다. 당연한 일."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게슈너님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모두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살지 않는다. 나는 자신을 증명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둔다. 내 능력을 키우는 것은 나를 증명하는 좋은 수단이다."

"그 이유 말고는 없습니까?"

"몬스터를 알아야 더 높은 등급의 물건을 만들 수 있다."

이건 완전히 세진의 거짓말이다. 하지만 듣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아니다. 게슈너는 말이 많지 않고 또 한 편으로는 어눌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게슈너가 거짓말을 하지 않으리란 선입견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말이 어눌한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하는 잘못된 인식을 이용한 것이다.

이로서 게슈너가 사냥을 하는 중요한 이유는 몬스터로부터 뭔가 방어구나 무기를 만드는 힌트를 얻기 위함이라는 헛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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