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슈너 한 발 또 한 발 전진한다. -- >
"이건 정말로 사기야. 이래선 안 되는 거라고."
자넷이 에테르 로드 수련을 하다가 자세를 풀고 일어나며 먼저 일어나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세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가?"
"너는 못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초보는 확실히 다르다고. 빨간색 등급의 방어구도 아니고 주황색 등급을 입고 에테르 로드 수련을 하니까 이건 뭐 하루하루가 달라.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라고. 내가 벌써 유저 중급이란 말이야."
"에테르 양만 늘어나는 걸 가지고 호들갑은. 너 아직 각인도 제대로 안 받았잖아."
"그거야 뭐 별로 소용도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랬지. 나도 너처럼 디버프랑 에테르 방패, 랜스, 붐 그렇게 정신 능력 위주로 배울까봐. 이 에테르 로드 수련은 본 래 몸으로도 익힐 수 있을 거 같으니까 배워 두면 정신 능력을 본체에서도 쓸 수 있을 것 같거든?"
"아서라, 에테르가 없는 행성에서는 쓸모도 없는 걸 뭐하러 익혀? 너, 에테르가 있는 행성, 그러니까 몬스터가 있는 행성에 갈 일 있어? 생체 에테르바디 말고 본체로?"
"으음. 생각해보니까 그럴 일이 없을 것 같기는 하네. 뭐 그래도 운동 삼아서 익히는 것 괜찮을 거야. 우리 세바스에게 이야기하면 내가 수련을 할 방법을 찾아줄 거야. 아니면 전에 너처럼 제이비아 같은 곳에서 간혹 수련을 하면 되지 뭐. 재미 있잖아. 정신 능력 쓸 수 있으면."
세진은 자넷의 말에 그녀를 말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재미로 배우겠다는 것을 무슨 말로 말린단 말인가? 취미 생활을 두고 이런저런 말로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너 에텔론 모아야 한다면서? 얼마나 모을 생각이야?"
"글쎄? 한 천만 에텔론 정도 모을까?"
"겨우 그거?"
"야, 겨우라니? 너 지금 니 힘으로 에텔론 번다고 하면 얼마나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너 초보 헌터도 겨우 되거든? 그 살력으로 붉은색 등급 몬스터도 겨우 잡고, 열 마리 잡아 봐야 5에텔론이다. 응? 그런데 천만 에텔론에 겨우란 말이 나오냐?"
"그거야 뭐, 어차피 여긴 유희삼아서 노는 것지 에텔론 벌자고 온 게 아니니까 그렇지. 너 자꾸 잊어버리는 모양인데 내가 얼마나 부잔줄 알기나 하냐?"
"쯧, 자넷 니가 얼마나 부자건 나랑 상관없거든?"
"왜 상관이 없어? 내가 한 몫 떼어 줄 수도 있잖아."
"싫다. 내가 왜 그런 걸 받냐?"
"테멜은 받았잖아."
"그 때는 그냥 선물이라고 준 거니까 그랬지. 부담이 별로 없었거든. 하지만 니가 나한테 에텔론을 준다면 그건 또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 내 힘으로 할 수 있은 일을 네게 도움을 받으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그러면서 니 힘으로 안 될 일을 내가 도와준다면 얼씨구나 하고 받을 거지?"
"하하하. 자넷, 넌 너무 날 잘 아는 것 같아. 당연히 내가 해결 못할 일이면 네 도움을 받아야지. 그건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생존 문제일 가능성이 크니까 말이지."
"그봐, 그럴 거면서 자존심은 무슨!"
자넷은 그렇게 세진을 타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진의 마음가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친구인 세진은 그녀가 범상치 않은 배경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무턱대고 기대려는 마음이 없었다.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 숱한 이들을 보아온 삶에서 세진은 꽤나 독특한 인물이었고, 그것이 자넷이 세진에게 묘한 호기심을 느끼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었다.
"그런데 자넷은 사냥은 안 나갈 거야?"
"음. 사냥이라. 그건 그만 둘래. 굳이 사냥을 할 필요가 뭐가 있어? 이렇게 수련이란 하다가 또 여유 생기면 각인해서 기술 익히고, 또 수련해서 에테르 늘리고 그러는 재미로 지내는 거지."
"그래. 니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나는 이제부터 다시 사냥도 나가고 해 야 하거든. 한동안 사냥을 안 나가서 늘어난 에테르를 몸에 익숙하게 만들질 못했으니까 말이야."
"응, 그런데 넌 왜 노란색 등급 방어구도 만들 수 있다면서 그걸 만들어서 수련에 쓰지 않는 거야?"
마침 생각이 났다는 듯이 자넷이 물었다.
"그거? 솔직히 너무 빨리 성장하면 문제가 있잖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한 수준으로 실력이 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목표가 접근을 하지 않을 위험이 있잖아."
"그럼 이제부턴 확확 성장을 하겠네?"
"그렇지. 더구나 놈들에게서 내 에테르 로드 수련법의 일부를 얻었으니 이젠 숨길 필요도 없는 거지. 거기다가 내 방어구가 수련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것도 슬쩍 흘려서 장비의 가치를 더 높여야지. 비싸게, 아주 비싸게 파는 거지. 하하핫."
"아주 에텔론을 긁어 모으겠네. 그런데 그렇게 코어를 받아서 전부 테멜에 쌓아 두기만 할 거야? 보니까 어리도 심심하면 몇 개씩 먹고 그러는 거 같던데?"
"상관없어. 어리가 먹는 건 그냥 간식 같은 거니까. 보통은 내가 수련 전에 에테르를 주입하는 걸로 충분히 만족하거든."
"어쨌건 만약을 위해서라도 코어를 에텔론으로 바꿔서 툴틱에 저장을 해 둬. 안 그러면 한 번에 훅하고 날려버리는 수가 있다고."
"뭐 그래봐야 우리 어리가 가지고 있을 텐데 뭐. 어쨌건 코어를 에텔론으로 바꾸긴 바꿔야지. 참, 어디서 테멜 코어를 좀 살 수 없을까?"
"응? 테멜 코어?"
"그 있잖아. 테멜을 유지하는 코어 말이야."
"그거 특별히 구별을 하지 않을 텐데? 같은 등급의 화이트 코어는 부족코어나 테멜 코어나 다 같이 취급을 하잖아."
"그런가? 그래도 따로 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실험을 해 볼 것도 있고."
"그래? 뭔가 재미가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드네? 언제 내가 툴틱 가지고 나가면 우리 세바스에게 알아보라고 할까?"
세진은 자넷의 말에 잠시 고민을 했다. 자넷의 도움을 받아서 테멜 코어를 얻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지구에 가지고 갔던 테멜 코어가 지구의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해서 성장을 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자넷도 그런 테멜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고집을 부릴 것 같기도 해서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일단 이곳에서 얻은 테멜 코어도 흡수해서 어리가 성장을 할 수 있는지 확인을 해 본 다음에 생각하자. 지구의 이면 공간 유지 코어만 가능한 거라면 굳이 자넷에게 알릴 필요도 없겠지.'
"급한 건 아니야. 그리고 하나 정도야 주크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구할 수 있겠지."
"아냐, 아냐. 그럼 안 되는 거야. 주크에게 할 부탁이면 내게 해. 괜히 그 놈들에게 빚을 질 필요가 뭐가 있어?"
자넷이 절대 불가를 외친다.
"알았어. 그냥 상점에 오늘 라훌 헌터들에게 슬쩍 이야길 흘려 봐. 화이트 코어가 필 요한데 그 중에서도 테멜 코어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이야. 잘 하면 노란색 등급의 방어구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 정도면 다들 열심히 구하지 않을까?"
"흐응. 그거 좋은 생각이다. 상급 장비를 만들려면 화이트 코어가 필요하다고 하자. 그리고 특히 테멜 코어가 필요하다고 해. 그 동안 제작 확률이 낮았던 것도 화이트 코어 중에서 테멜 코어가 섞여 있었는데 그걸 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하면, 딱 좋네. 딱 좋아. 어때? 내 생각이?"
자넷은 신이 나서 손뼉까지 치면서 떠들었다.
"어째, 그 생각의 절반은 내 생각인 것 같다만, 나쁘지 않다. 그렇게 하자."
세진도 자넷의 계획에 찬성했다.
= 으응. 아까부터 둘이서만 뭐 해요? 이 어리를 빼놓고 놀고 싶은 거예요? 그런다고 테멜 안에서 어리의 눈과 귀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흥!
어리가 세진과 자넷이 수련을 마치고도 중앙 홀로 오지 않자 인형을 보냈다.
"녀석, 간다. 가."
세진은 피식 웃으면서 자넷과 함께 어리가 있는 중앙 홀로 걸음을 옮겼다.
[게슈너 방어구를 만들기 위해서 테멜 코어가 필요하다.]이 소문이 레트시에 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게슈너 장비의 가격이 비싼 것을 이해했다. 화이트 코어는 같은 등급의 일반 코어의 200배 가격으로 거래가 된다. 그런 물건이 들어가야 게슈너 방어구와 무기가 만들어진다면 가격이 어마어마한 것도 이해를 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다만 하나의 화이트 코어로 몇 개의 방어구가 만들어지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아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화이트 코어가 얼마나 들어가는지는 몰라도 장비 제작에 화이트 코어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게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 때부터 테멜 코어를 에텔론 상점으로 가지고 가지 않고 게슈너의 상점으로 가지고 오는 이들이 늘어났다. 게슈너 상점에서는 그 테멜 코어를 에텔론 상점에서 팔리는 가격에 10%를 더 얹어서 일반 코어로 교환을 해 줬다. 그러니 에텔론 상점에 판매를 하는 것 보다 10%의 이익이 더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간혹 부족 코어를 테멜 코어라고 속이고 판매를 하는 이들이 있어서 자넷과 게슈너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코어를 속여서 판 사람에 대해서는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고 다시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그런 소문이 돌면서는 겨우 10%의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이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테멜 코어 보다는 부족 코어의 수가 많은 상황이라서 심심찮게 부족 코어를 테멜 코어라고 속이는 이들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 좋은 것이에요. 어리는 아주 좋은 것이에요.
"흡수하면 성장을 하긴 하는 거냐?"
- 네. 세진님. 어리는 확실히 성장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공간도 훨씬 크게 만들 수 있을 거예요.
"혹시 노란색 등급 테멜 코어를 줘도 흡수를 할 수 있을 것 같냐?"
세진은 어리에게 주황색 등급의 테멜 코어만 흡수를 시키고 있었다. 한 단계 위의 코어를 흡수시키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은 걱정 때문이었다.
-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고 싶어요. 해 보고 싶어요. 세진은 어리의 말에 갈등을 겪고 있었다. 하고 싶다고 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말이 걸리는 것이다.
"어리야. 네가 확신할 수 없다면 나는 코어를 줄 수가 없다. 그건 안 되겠어. 어리 넌 내게 소중한 존재니까 말이다."
- 으음. 그럼요. 나중에요. 지구에 가면요.
"그래. 지구에 가면?"
- 거기서 3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구해 주세요. 그건 확실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전에도 그랬잖아요. 작은 테멜이 2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먹고 성장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3등급을 먹고 성장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뒤에 이곳의 노란색 등급의 테멜 코어를 흡수하는 거예요. 어때요?
"흠.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자. 여기서 당장 네게 노란색 등급 테멜 코어를 주는 것은 불안해서 안 되겠다."
- 알았어요. 어리는 세진님이 고마운 것이에요. 어리를 걱정해 주셔서 너무 감동받은 것이에요.
"그래. 그래. 알았다. 녀석."
- 아, 자넷이 세진님을 찾고 있어요.
"나가봐야겠군. 어리야 알지? 네가 테멜 코어를 흡수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비밀이다. 여기서도 테멜 코어들끼리 서로 흡수하고 성장하는 일은 없는 것 같으니까 너는 특별한 경우야. 아마도 이곳의 테멜과 지구의 이면 공간 유지 코어가 만나게 되면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아직은 자넷에게 알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중에 돌아갈 때에 작은 테멜을 하나 가지고 가서 실험을 해 보고, 성공하면 그걸 자넷에게 선물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비밀이다."
-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리는 어리 짝퉁이 생기는 것이 반갑지 않아요. 흐흥.
"설마 그런 일이 또 생기기야 하겠니?"
- 비슷한 경우는 생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어리보다 무징무징한 테멜이 탄생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해요.
"쯧, 녀석. 별 걱정을 다 한다. 그래 알았다. 나중에 자넷에게 코어를 흡수하는 테멜을 선물할 때에도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는 비밀로 하기로 하자. 그럼 되냐?"
- 그래도 자넷이라면 어느 정도 짐작을 할 것 같아서 말리고 싶지만, 자넷이 세진님께 잘 하는 만큼 보상을 하는 거라면 저도 찬성할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더 두고 봐야 해요.
"무슨 시누이 심술도 아니고. 알았다. 그렇게 해라. 네 허락이 없으면 자넷에게 그런 선물 하지 않으마."
- 역시 세진님은 어리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아주세요.
"자넷이 들어오기 전에 나가봐야겠다."
- 네. 세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