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탈예거와 프루토 게슈너 공방전을 벌이다. -- >
레트시는 근래에 꽤나 소란스럽다.
못 보고 못 들은 척 한다고 해서 밤이면 한 번씩 난리가 나는 것을 사람들이 모를 수가 없다.
이제는 유저 헌터들도 밤이 되면 게슈너의 상점 근처로 구경을 나올 정도다.
한쪽에서는 게슈너의 상점을 치려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방어를 한다.
그러면서 첫 날 이후로는 전력이 비슷해서 어느 한 쪽이 승기를 완전히 잡지도 못하고 밀고 밀린다.
때론 게슈너 상점 안쪽까지 공격자들이 들이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이 게슈너와 자넷을 찾기도 전에 방어하는 이들이 나서서 그들을 내쫓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이제는 게슈너 상점을 사이에 두고 두 세력이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거기다가 게슈너는 자신은 자신의 상점을 지켜주는 이들이 누군지 모른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이 자신을 공격하고 또 지키고 있다는 것이 우습다며 제발 자신에게서 관심을 거둬 줬으면 하고 이야기했다.
또한 한시적이지만 라훌족에 대한 상품 판매도 중지했다.
이미 게슈너에게 물건을 납품하던 이들이 모두 등을 돌린 상태여서 초창기처럼 직접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 그리 물량이 많지도 않으니 자신을 공격하는 라훌족에게 물건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선언은 많은 라훌족들의 날선 비판을 받았다.
같은 라훌족에게 물건을 팔지 않겠다는 것은 배신행위라고까지 성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게슈너를 공격하는 이들이 실제로 레트시의 유지라고 할 수 있는 탈예거와 그 일당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갔다.
대 놓고 탈예거를 비난하는 이들은 없었지만, 뒤돌아서면 낮은 욕설을 내뱉는 상황 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탈예거와 대립하는 또 다른 세력에 대한 궁금증도 나날이 커지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지?"
프루토가 보고를 위해 찾아온 주크에게 물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야 하는 프루토는 레트시에서도 빈민가라고 할 수 있는 곳의 허름한 건물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그러다보니 복장도 일반 라훌 빈민의 모습을 하고 있어, 낡고 초라해 보인다.
"이젠 어느 정도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프루토님."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탈예거 그 늙은이가 진작 우리와 손을 잡았으면 좋았을 것을, 늙으면 고집만 세진다고 하더니 결국 사단을 내고 말았어."
"그래도 덕분에 우리들이 게슈너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건 고마운 일이지요."
"좋아. 주크. 이번엔 그 늙은이도 한꺼번에 처리를 해 버리고 나는 부하들과 함께 다 시 잠수를 해야겠어. 너무 드러나는 것도 곤란해. 그 후는 주크가 알아서 해야 하고 말이야."
"물론입니다. 프루토님. 제가 게슈너를 무슨 일이 있어도 저희 품으로 끌어들이겠습니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나? 어쩐지 자신감이 넘치는데?"
"한 가지만 허락해 주시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응? 그게 뭐지? 혹시?"
프루토란 사내는 지저분한 수염으로 가려진 얼굴에서 안광을 빛냈다.
"네. 그걸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게슈너와 그 자넷이란 여자의 사이가 간단치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그 여자를 위해서 그걸 허락해 주시면 게슈너를 회유하기가 한결 쉬워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이 틀어지게 되면?"
"그럼 어쩔 수 없이 지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그 여자라도 확실하게 끌어 들 여야 하고 말입니다. 어쩌면 그 쪽으로 접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일 것입니다."
"자넷을 먼저 끌어 들이고, 그걸 바탕으로 게슈너를?"
프루토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게슈너는 조금 단순합니다. 장인이어서 그런지 여러 생각을 하지 않고 또 선을 그어 놓으면 그 선을 좀처럼 넘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넷이란 여자는 꽤나 머리가 좋고, 또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여자가 게슈너의 상점에 들어와서 짧은 시간에 이룬 결과를 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어쩌면 그 자넷이란 여자도 게슈너를 이용하기 위해서 접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출세를 위해서 게슈너를 잡았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지?"
"그 여자가 과거를 철저하게 숨기려고 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뭔가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방법을 찾다가 게슈너의 소문을 듣고 접근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우린 그 여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렇습니다만, 그래봐야 헌터도 아닌 일반 라훌입니다. 그들 중에서 자넷과 같은 이들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꿈을 꾸다 좌절하는 이들은 어디나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아. 허락하지. 양쪽으로 다 찔러봐. 게슈너는 게슈너 대로, 그리고 자넷이란 여자는 여자대로 말이야. 게슈너가 아니라도 자넷이란 여자 정도면 우리 조직원으로 받아들여서 나쁠 것은 없겠지. 능력은 있어 보이니까 말이지."
"알겠습니다. 프루토님."
"그리고 주크. 나는 이번에 탈예거를 지운 후에 다른 곳으로 가야 하니, 뒷일은 주크 자네가 맡아. 이제 자네도 익스퍼트가 되지 않았나?"
"역시 푸루토님이십니다. 저는 아직 확신이 없는데 제 수준을 먼저 아시다니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레트시를 책임지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부지런히 노력해야 할 거야. 그건 확실히 대단한 수련법이니까 말이야. 자네가 지금은 앞서가고 있다지만 언제 뒤에서 추월을 할지도 모를 일이야."
"네. 네. 알겠습니다. 쉬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루토님께서 제게 주신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모두가 우리 라훌을 위한 일일 뿐이지. 라훌을 위하여!"
"라훌을 위하여!"
뜬금없는 선창과 복창이 이었지만 낮고 짧은 그 말에 숨은 뜻이 깊었다. 그들이 속한 단체의 일면을 짐작케 하는 구호인 것이다.
주크는 다음날 자넷을 찾아와서 상담을 청했다. 그리고 자넷의 작은 사무실에서 마주앉을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주크라고 합니다."
"네. 반가워요. 제게 좋은 제안이 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자넷 총관."
"총관이라. 상점 지배인이 총관은 좀 과하군요. 그냥 자넷이라 불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자넷씨."
주크는 자넷이 사양하긴 했지만 총관이란 직책으로 불렀을 때에 자넷이 조금 흥분했다고 생각했다. 그의 예상대로 자넷이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였다고 짐작하며 기뻐했다.
실상은 있지도 않은 신분까지 만들어서 자신에게 호감을 사려는 주크에게 뭔가 있다고 느낀 자넷이 호기심을 드러낸 것인데, 주크는 엉뚱하게 해석을 한 것이다.
"제안이 어떤 건지 들을 수 있을까요? 사실 요즘은 점원까지 일을 그만둔다고 말썽을 부려서 제가 시간이 많지 않아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제 제안이 훨씬 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들어 보시겠습니까?"
"그러죠. 그러려고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요."
자넷은 주크의 얼굴을 직시하며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지금 게슈너씨의 상점을 둘러싸고 있는 다툼은 며칠 내로 종식이 될 것입니다. 물론 탈예거 쪽의 패배로 이번 일은 마무리 될 것입니다."
"탈예거의 패배? 그럼 주크씨가 우리 상점을 보호하고 있는 이들과 관계가 있나요?"
"아닙니다. 그들은 탈예거를 제거하고 이 도시를 떠날 것입니다. 그 후에 탈예거의 빈 자리를 메울 사람이 저라고 보시면 됩니다."
"무슨 이유죠?"
"무슨 이유라니요?"
주크는 자넷의 질문에 담긴 뜻을 알지 못해 되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들, 누군지는 모르지만 우리 상점을 보호하는 그들이 스스로 피를 흘리면서 저희를 돕는 거지요?"
"하하, 그거야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옳은 것이 당연히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유저 헌터들의 세상이나 마찬가지인 이 데블 플레인에서 우리 라훌들은 제대로 된 법과 질서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나서서 최소한의 법과 질서를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법과 질서라구요?"
"그렇습니다. 그래야 우리 라훌들도 무법자들이 설치는 위태로운 시기를 벗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지금까지도 최소한의 법은..."
"그래서 게슈너 상점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최소한의 법은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아닙니다. 우리 라훌들에겐 아무 법도 질서도 없었던 겁니다. 있다고 착각할 뿐이죠. 왜냐하면 우리 라훌은 아직 스스로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 생각해보면 그렇기도 하네요. 따지고 보면 탈예거가 설치는 것도 그가 힘이 있기 때문이죠. 힘을 내세워서 상대를 억압할 수 있다면 그건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죠."
"그렇습니다. 맞아요. 그래서 그런 일을 하고자 하는 분들이 그분들이죠."
주크는 자넷이 제대로 이해를 했다고 생각하는지 활짝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그 분들이 레트시를 떠난다구요?"
"아, 그건, 사정이 이렇습니다. 그 분들은 어디 한 곳에 머물면서 그 도시 일만 처리할 수가 없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탈예거의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물러나 시고, 저와 제 지인들이 그분들의 뜻을 이어받아서 레트시를 다스리는 것이지요."
"다스린다고요?"
"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여건을 만들어서 레트시의 라훌족 연합체를 구성하고 이후에 레트시 라훌족 의회를 구성하는 것이 실질적인 목표입니다. 사실 탈예거의 경우에도 그의 영향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도움을 얻고자 했지만, 늙은 사람이 욕심이 과했습니다. 그래서 말이 통하지 않았지요."
주크는 자신들이 탈예거를 회유하려 했던 것을 숨기지 않았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인데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탈예거와 그의 부하들을 제거한다고 했는데 그게 가능한가요? 지금까지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린 최대한 탈예거와 그의 부하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기회를 주고 있었던 것이지 힘이 모자랐던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을 내리고 정리하기로 한 거죠. 그리고 그런 결론이 났으니 다른 도시에 있던 몇몇이 도착하면 곧바로 일처리를 할 것입니다."
"으음. 우리가 주크씨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러신다고 해도 별다른 변화는 없습니다. 아니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당분간은 달라질 것이 없지요. 아까 말씀 드린 대로 레트시에 라훌족 의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서 그런 여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라서 말이지요. 그저 그런 대의에 동참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일 뿐입니다."
"흐응. 그렇군요. 하지만 솔직히 별로 내키지 않네요. 그래봐야 라훌 헌터들의 일일 뿐이고 저 같은 일반 라훌들은 이러나 저러나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자넷이 슬쩍 발을 빼려고 핑계를 댔다. 헌터들의 일은 그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말인 것이다. 그러니 게슈너와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뜻이다.
"자넷씨는 제가 파악하기로 뛰어난 능력만큼이나 성취욕구가 강한 사람으로 생각됩니만 아닙니까?"
"높은 곳에 오르고 싶은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는 욕망 아닌가요?"
"하하하. 그렇지요. 그래서 말인데, 주류에 합류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 주류라고 하는 것이 헌터를 말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바로 그거죠. 그리고 제겐 자넷씨를 헌터로 만들 비법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 비법으로 하급 헌터에서 이제 익스퍼트까지 성장을 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헌터의 재능이 없는데요?"
"그걸 고려한 제안입니다. 우리는 일반 라훌이라도 헌터로 만들 능력이 있습니다."
"노, 놀랍군요. 그게 정말이라면."
"어떻습니까? 자넷?"
주크의 제안은 끈적끈적한 접착력을 가지고 자넷을 유혹했다. 그리고 자넷은 어렵게 그런 주크에게 얼마간의 유예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주크는 자넷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넷이 욕심이 많은 여자라고 파악했던 것이다.
자넷이 세진을 고문했던 이들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것 같은 생각에 흥분했을 거라곤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