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02화 (102/298)

< -- 자넷, 자넷이 찾아왔다! -- >

- 그런데 저에 대한 것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밤이 깊어 생체 에테르바디 보관소로 떠나기 전에 어리가 세진에게 물었다.

"어차피 함께 지내야 할 사람인데 언제까지나 속일 수는 없지. 네가 테멜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과 테멜이 성장한다는 것은 숨기고, 그냥 네가 테라포밍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정도까지만 이야길 하자. 어차피 너는 헌터룸 관리자들 때문에 테멜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니까 여기에만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지."

- 하지만 제가 어리 도마뱀을 움직이고 밖으로 음성 대화를 하는 것은 어떻게 해요? 설명할 길이 없는데요?

"그냥 네 본체가 지닌 능력이라고 해. 사실 그렇잖아. 어리 너는 네 주변에 있는 에테르를 이용해서 물리적인 활동이 가능하고 그걸 테멜 밖으로도 적용을 시킨 거니까 말이지."

- 하긴 그 방법 밖에는 없겠네요. 그 이상 물어보면 어리는 비밀이라고 할 거예요.  절대 알려주지 않을 거라고 우길 거예요.

"그래. 나도 어리가 말을 안 해 줘서 모른다고 하마. 그럼 되겠지. 안 그러냐?"

-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그럼 자넷도 어리를 함부로 하지 못할 거예요.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인격체로 인식할 거예요. 음, 그래야 해요.

"당연하지. 만약 자넷이 어리를 물건 취급하면 나도 참지 않을 거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전에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도 해야지."

- 네. 그렇게 해요. 음. 그럼 이제 출발합니다.

"안 들키게 조심하고."

- 걱정하지 마세요. 이 작업장에는 어리 날도마뱀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숨겨진 통로가 여러 곳이 있어요. 그런 통로로 기어가서 멀리 떨어진 다음에는 하늘로 날아서 갈 거예요. 몸의 색도 어두운 밤하늘 색으로 바꿔서 어지간해선 절 봐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예요.

"그래. 그래. 수고해라."

세진은 그렇게 어리를 응원했다.

자넷은 헌터룸에서 세바스에게 몇 가지 지시사항을 전하고는 오래지 않아서 다시 레트시의 생체 에테르바디 보관소로 접속을 시도했다.

얼마 전까지 쓰던 의체를 새로 교환해서 에테르 기관이 없는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약간의 에텔론을 더 지급하고 그 생체 에테르바디에 에테르 저항력은 부여하는 시술을 특별하게 받았다.

이로서 자넷의 생체 에테르바디는 완벽한 라훌족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

자넷은 새로운 의체에서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지만 매번 보는 익숙한 생체 에테르바디 보관소의 모습일 뿐이다.

자넷은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출입구의 문을 살짝 열었다.

그러자 잠시 후에 기다렸다는 듯이 세진의 날도마뱀이 조금 벌어진 틈으로 기어 들어왔다. 그리고 날도마뱀이 입을 쩍 벌리자 그 안에 테멜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에테르 소용돌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넷은 잠시 망설이다가 에테르 소용돌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사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테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그 위험한 곳에 스스로 뛰어드는 격이다.

하지만 생체 에테르바디가 진짜 몸이 아니라는 것이 그녀를 그런 위험에 스스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자넷은 테멜 안으로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주변을 살폈다.

'어? 테멜이 꽤나 크네? 내가 줬던 테멜이 이렇게 규모가 큰 거였나? 세바스가 소형으로 준다고 했었는데?'

자넷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구를 향해 걸었다.

그런데 입구에서 세진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서 와, 자넷."

"아, 먼저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었구나? 세진."

"당연히 그래야지. 친구가 오는데 기다려주는 것이 예의 아니겠어? 자 이리와 안쪽에서 잠시 쉬자. 그 동안에 날다람쥐는 레트시를 벗어나서 다른 마을까지 가 줄 거야. 그럼 거기서 자넷은 모습을 드러내는 거지. 그 후에 레트시까지 오면 되는 거야. 레트시에선 우리 상점에 취직을 할 수 있도록 해 줄게."

"그렇구나. 내가 레트시에서 바로 모습을 드러내면 곤란하긴 하겠다. 난 다른 마을에서 온 걸로 해야겠네?"

"그래봐야 결국 자넷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를 거야. 자넷도 굳이 밝힐 이유는 없지.

'과거를 잊고 싶어요.'

정도로 이야기하고 입을 다물면 그만 아니겠어?"

"호호호.

라고 그거 재밌네. 알았어 그렇게 하지. 어머나 여긴?"

둘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테멜의 중앙 홀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거기엔 은색의 공처럼 생긴 어리가 금속으로 된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여긴 테멜 코어가 있는 곳이야. 저기 저 탁자 안에 테멜 코어가 있지. 그리고 여기  있는 이 친구는 어리라고 해. 지금 자넷을 위해서 열심히 레트시를 벗어나서 남쪽 마을로 날아가는 날다람쥐를 움직이고 있는 중이지. 내게는 여동생 같은 존재야."

- 반가워요. 자넷. 우리 처음 보는 거지요? 저는 자넷 이야기를 많이 들었답니다. 어리에요.

"어머나. 놀라워라.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데? 잠깐만 아, 그래 행성 테라포밍을 위한 소형 모델에 이런 형태가 있엇던 것 같아. 네가 그 테라포머니?"

-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는 몰라도 외형만으로 저를 규정할 수는 없어요.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을 생각해야 할 거에요. 에헴. 그리고 제가 테라포밍을 위해서 탄생한 존재는 맞지만 지금은 세진님의 가족이에요. 그러니 그렇게 대해주세요.

"가족?"

자넷은 잠시 의아한 눈빛으로 세진을 봤지만 세진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자넷도 세진의 뜻을 따라주기로 했다.

실제로 가족으로 생각을 하건 아니건 무슨 상관인가. 자넷의 가족 중에는 괴상한 풀 하나를 화분에 심어 두고 가족처럼 대하는 이도 있다. 그는 그 풀에게 함부로 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꽤나 오랫동안 냉대를 받아야 하고, 그래 도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평생 그의 얼굴을 볼 생각을 말아야 한다. 그런 친척이 있는 까닭에 자넷은 어리의 존재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반갑다. 난 자넷이야. 세진의 친구지. 알겠지만 제이비아에서 처음 만났어."

- 알아요. 여기 테멜도 자넷이 선물로 줬다면서요? 그 덕분에 저도 세진님과 함께 이렇게 데블 플레인에 와 있을 수 있게 되었어요. 안 그랬으면 세진님이 여기서 일을 보시는 동안에 혼자 기다려야 했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 자넷님께 몹시 감사하고 있어요.

"아, 그래? 그거 고맙네. 참, 지금 그 날도마뱀을 움직여서 다른 마을로 가는 중이라고?"

- 네. 지금 열심히 날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그나마 다행인 건, 몬스터들이 날다람쥐에게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딜 가더라도 위험한 일은 별로 없어요. 정말 다행이죠?

"그렇구나. 그런데 어떻게 테멜 안에서 테멜 밖의 몸을 조종할 수가 있지? 그게 가능해?"

- 아시는지 모르지만 저는 만들어질 때부터 제가 지닌 에테르 에너지를 이용해서 주변 일정 영역의 물건들을 움직일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 소형 테라포머가 주변에서 재료를 수급하기 위해서 그런 기능을 줬지."

- 아시네요. 그 능력을 이용해서 날다람쥐을 움직이는 거예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건지는 알려줄 수 없는 비밀이에요. 숙녀에겐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어야 하거든요.

"응? 숙, 숙녀."

"어리는 내 여동생이나 마찬가지야. 자넷. 언제부턴가 굉장히 감성이 풍부해졌지. 이 녀석이 죽음을 떠올리는 시간을 좀 길게 가졌던 적이 있는데 그 후로 이렇게 된 거야. 덕분에 나는 진짜 가족을 한 명 얻게 된 거고 말이지."

"그렇구나. 알았어. 무슨 말인지."

자넷은 어리라는 존재가 특이하단 것을 깨달았고, 세진이 정말로 어리를 인격체로 대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어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자신 또한 어리를 하나의 지적 생명체로 보고 그렇게 대해야 하는 것이다. 짝!

"아, 그럼 게슈너 상점에서 만드는 물건들을 실제로는 여기 어리가 만드는 거구나? 세진이 만드는 것이 아니었어."

자넷은 문득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감탄성을 토했다.

"맞아. 어리 실력이지. 내가 무슨 재주가 있어서 그런 물건들을 만들어 내겠어?"

- 아니죠. 저는 물건을 만들지만 세진님은 그 물건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고안하잖아요. 에테르 코어를 이용해서 방어력을 높이거나 공격력을 높이거나 하는 것은 모두 세진님의 솜씨지 제 능력이 아니죠. 전 설계된 대로 만드는 것 뿐이니까요.

"그래도 우리 어리 없이 그게 가능이나 하겠어? 역기 어리가 있어야 가능한 거지."

- 호호호. 그건 그렇지만요. 호호.

어리는 세진의 칭찬이 싫지 않은 듯이 웃었다. 둘만 있을 때에 칭찬을 듣는 것과 자넷이란 삼자가 있는 상태에서 칭찬을 듣는 것은 확실히 기분이 달랐던 것이다.

= 자, 손님이 오셨는데 대접이 시원찮네요. 여기 차가 있으니 좀 드시면서 이야기를 하세요.

"어머나!"

자넷은 갑자기 들려온 새로운 목소리에 깜짝 놀라다가 묘하게 만들어진 인간 형태의 인형이 찻잔이 든 쟁반을 들고 홀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 놀라지 마세요. 어리가 이곳에서 사용하는 인형이에요. 보시는 것처럼 저는 손과 발이 없거든요. 뭐 에테르를 이용해서 주변 사물을 움직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인형을 이용하면 물건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 보다는 나아 보일 것 같아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 그래? 아, 어리씨 내가 반말해도 이해해요. 사실 사적인 자리에서 누구에게 존대를 하는 것이 익숙하질 않아서 말이죠."

= 괜찮아요. 세진님 친구시니까 그래도 되요. 네에.

"이해해주니 고마워요. 참, 세진. 이젠 게슈너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자넷이 세진을 보며 물었다.

"그래야지. 이 몸은 게슈너니까 말이야."

"그렇구나. 게슈너, 게슈너. 알았어. 그렇게 하자. 게슈너. 그리고 난 여전히 자넷이야. 다른 건 빼고 그냥 자넷. 어때?"

"좋아. 자넷. 그렇게 하자."

후루룩.

"아, 이거 차가 맛있네. 어리 이게 무슨 차죠?"

- 그건 홍차랍니다.

"음. 비슷한 것은 마셔봤지만 이건 정말 독특한 것 같네요. 게슈너 이거 팔면 잘 팔리겠다."

"팔고 싶어도 얼마 없어. 그거 우리 행성에서 가지고 온 거라서 말이야."

"아, 그런 거구나. 어쩐지 이런 차를 마셔본 기억이 없다 했더니 그래서 그런 거야.  너희 행성에서만 나는 거니까 말이이."

- 그 외에도 몇 가지 차가 더 있어요. 녹차라거나 유자차라거나 오미자, 구기자, 둥글레, 생강 등등 한 종류가 많지는 않아도 조금씩 다양하게 있으니까 제가 가끔 타 드릴게요.

어리도 자넷이 마음에 들었던지 차를 타 주겠다고 호의를 베풀었다.

"고마워. 어리. 어리는 참 친절하구나."

- 어리는 친철한 어리씨인 것이죠. 네. 그래요.

"말투가 참 재미있네. 어리는."

자넷은 어리의 특이한 말투에 세진을 보며 말했다.

"간혹 그래.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만들어 내거나 혹은 괴상한 어투를 조합하곤 하지. 그래도 하는 짓은 귀여운 아이야."

"게슈너는 어리를 굉장히 좋아하는구나?"

"그야 당연하지. 내겐 더 없이 소중한 가족이고 든든한 지원군인데."

"으응. 그렇구나. 그래. 게슈너 기뻐해! 이제 너는 어리 말고 이 자넷이란 후견인을 두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 상점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거야? 물건 파는 거야? 그럼 월급은 얼마 주는데? 설마 살림을 맡길 거야? 음식하고 빨래하고 뭐 그러는 거? 난 그거 별로 자신 없는데? 설마 그 이상을 시킬 건 아니지?"

"그 이상?"

"있잖아. 젊은 주인님이 예쁜 여자 고용인을 밤에 불러서 그러는 거 말이야. 흐응. 그건 좀 생각을 해 봐야 하는데? 아니다 고용된 상태니까 주인님 말을 들어야 하나? 그래야 맞는 거겠지? 꺄아, 오똫게 오똫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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