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훌족 장인 게슈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다. -- >
게슈너는 수레에 실려 있던 물건들을 모두 점원들에게 내려서 진열을 하게 했다.
그리고 직접 자신의 손으로 한 개의 상자를 꺼내서 상점 앞에 내 놓은 탁자 위에 올렸다. 그리고 손뼉을 몇 번 쳤다.
짝짝짝짝!
사람들의 시선이 게슈너에게 몰리고 일순 거리가 조용해졌다.
"음음. 주황색 등급 에테르 코어 장착이 가능한 상갑과 한손 검이 만들어졌다. 경매를 한다."
게슈너는 언제나 말을 짧고 간단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게슈너가 전하고자 하는 뜻은 완벽하게 전해졌다.
"상갑이다. 하갑이나 투구, 부츠는 없다. 이거부터 경매 시작한다."
게슈너의 말에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1천 에텔론 내겠다."
"2천 에텔론에 산다."
"4천 에텔론."
"4천5백 에텔론."
"5천 에텔론."
삽시간에 금액이 5천까지 뛰었다. 그리고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붉은색 등급의 에테르 코어를 사용하는 갑옷이 100에텔론이다. 그것이 50배가 되었으니 엄청난 가격 폭등이다. 심리적인 저지선이 생긴 것이다.
"내가 사겠다. 7천 에텔론 낸다. 성능을 시험해 보고 이야길 해 주지. 무기는 1만5천 에텔론에 사겠다."
그런데 누군가 경매에 찬물을 끼얹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무기까지 함께 가격을 부른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가게 앞에서 벌어지는 약식 경매다 규칙 같은 것이 제대로 있을 턱이 없다.
"젠장, 뭐야? 저 미친 가격은?"
"미치긴 뭐가 미쳐? 사실 저게 붉은색 등급의 방어구가 무기가 가진 성능을 주황색 등급에 맞게 가지고 있다면 저런 가격이 그렇게 과한 것도 아니지. 혼자서 주황색 등급의 몬스터를 썰고 다닐 수 있다면 하루에 얼마나 벌 수 있을 것 같아? 제대로 사냥하면 하루에도 몇 백 에텔론을 벌 수 있을 거야.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 거기다가 그 뿐이야? 방어구와 무기를 착용하고 사냥을 하면 어쩐지 에테르 상장이 더 빨라지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잖아."
"맞다. 그걸 생각하면 비싸다고 할 수는 없지."
"사실 지금 붉은색 등급 장비들이 너무 싼 거지. 뭐 별로 남는 거 없이 판다는 게슈너의 말이 맞을 거야. 하지만 저렇게 어렵게 만들어지는 물건이라면 좀 비싸게 팔아도 되는 거지. 이번에도 하나 밖에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 어렵게 만들어지는 것인 데 말이지."
"그런데 저 사람 누구야? 레트시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유저 헌터 아냐?"
"왜? 유저헌터면 어쩌게? 비싼 가격에 사간다는데 그걸 어떻게 말려?"
"아니 말린다기보다는 게슈너가 라훌족인데 유저 헌터에게 물건을 팔면 안 되는 거 아냐?"
"웃기는 소리. 유저헌터고 리얼헌터고 상인이라면 이익을 쫓는 것이 당연하지. 나도 러훌이지만 그런 것까지 유저, 리얼을 나눌 일은 아니지. 그렇게 말하면 유저에게 빼앗기지 않게 라훌들이 힘을 모아서 게슈너의 방어구와 무기를 비싸게 사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게슈너에게 손해를 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말이지."
"맞아요. 그게 맞는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방어구 1만 에텔론에 사겠어요. 무기는 경매 시작하면 그 때, 다시 이야기하죠."
아직 판매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7천 에텔론에 입이 벌어졌던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한 여자가 방어구에 1만 에텔론을 불렀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낯선 얼굴들이 이렇게 많아? 저 여잔 또 뭐야?"
"게슈너 상점이 소문이 나서 요즘 다른 도시에서 들어온 헌터들이 많다더니 저 여자도 그렇고, 아까 7천 부른 저 남자도 그런 모양인데?"
"아니 우리 레트시 토박이들은 어딜 가고 외지에서 온 녀석들이 설쳐?"
"그러게? 우리 레트시 헌터들이 원래 가난한 거였어?"
"1만 2천에 사지. 좀 더 늦었다간 레트시가 가난뱅이 도시로 소문이 나겠군."
"우와, 탈예거 어르신이네? 익스퍼트 상급이신데도 저거에 관심이 있으신가?"
"그러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서 1만2천을 부르자 거리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여기 물건이다."
게슈너가 점원을 불러서 탈예거에게 갑옷을 가져다주게 한다.
"아니 경매 중에 뭔 짓이야? 내가 더 부를 거란 말이다."
처음 갑옷과 무기를 동시에 사겠다고 했던 사내가 버럭 고함을 지른다.
"적당한 가격이라 생각하면 판다. 탈예거가 적당한 가격을 불렀다."
"이익, 무슨 그런 경우가 있어? 경매는 비싼 가격에 파는 거지."
"호호호. 그럼 나는 그 칼을 2만 4천 에텔론에 사겠어요. 어때요?"
그런데 사내가 뭐라고 떠들건 상관없다는 듯이 여자가 칼을 가격으로 2만 4천 에텔론을 불렀다.
"내가 2만 5천에 사겠다."
사내가 질 수 없다는 듯이 2만5천을 부른다.
"칼은 그쪽 거다."
게슈너가 칼을 점원에게 들려서 여자에게 주게 했다.
"이 자식이 지금!"
무시당한 남자가 발끈하려는데 게슈너가 입을 연다.
"붉은색 방어구 100에텔론, 무기 200에텔론이다. 그럼 주황색 등급 방어구 1만2천에 팔렸으면 무기는 당연히 2만4천이다. 여자가 머리가 좋은 거다."
"나, 난 머리가 나쁘단 소리냐아?"
"경매는 끝났다. 이후에 다시 만들어지는 장비를 판다. 가격은 오늘 정해진 가격이다. 판매는 선착순이다."
게슈너를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서 상점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
무시당한 사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소리를 질렀지만 점원들은 탈예거와 여자에게서 물품 대금을 받느라 정신이 없고, 다른 사람들도 두 사람이 산 갑옷과 무기에 정신이 쏠려 있었다. 사내는 철저하게 소외된 상태였다.
"다, 다음에는 꼭 사고 말테다. 그리고 게슈너 넌 나한테 찍힌 거야. 두보 보자."
사내는 그렇게 각오를 다지고는 게슈너의 상점 앞을 떠났다.
게슈너, 세진은 상점 뒤에 있는 마당을 지나서 살림집으로 사용되는 건물로 들어섰다.
사실 그 살림집 너머에 붙어 있는 건물이 게슈너의 작업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럼에도 게슈너, 세진이 언제나 수레에 물건을 싣고 대로를 따라 한 바퀴 돌아서 상점으로 물건을 가지고 가는 것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이벤트다.
세진은 처음부터 엄청난 물건을 만들어서 팔 생각도 없었고, 그게 가능하지도 않았다.
일단 이곳에서 쓸 수 있는 재료들로 갑옷과 무기를 만들어야 했고, 그 무기와 갑옷에 에테르를 한 겹 씌울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 내야 했다. 물론 그 기술이란 것이 세진이 기억하고 있는 마법진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세진이 기억하는 마법진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딱 끊긴다는 것이 문제다.
언제든 지하창고에의 석판에서 지식을 얻을 수 있었기에 굳이 모든 내용을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오히려 쓸데없는 심력의 낭비일 뿐이었다.
그랬는데, 이곳으로 오고 나서 문제가 생겼다. 이제 당분간 지하창고에 갈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지하창고에 가게 되면 지구의 시간이 흐른다. 세진이 없는 상태에서 선도일 등이 우두머리 우렁각시의 공격에 노출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사실 지금도 우두머리 우렁각시를 어떻게든 처리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헌터룸과 지구를 번갈아 오가면서 싸우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 것 이다. 부상을 입거나 지치면 헌터룸에 와서 쉬어서 회복하고 다시 가서 우렁각시 몬스터를 상대하다보면 어쩌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세진은 머리를 흔들었다. 잘못하다간 일행 중에 희생자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아예 초록색 등급 정도는 한 손으로 눌러 죽일 수 있은 실력을 키워서 돌아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에텔론을 벌기 위해서 장비를 만들어 팔고 있는데, 아직 초록색 등급의 에테르 코어를 사용할 수 있는 장비는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주황색과 노란색 등급의 에테르 코어를 사용하는 장비까지는 어찌어찌 개발이 끝나 있다는 소리다.
그걸 팔기에는 너무 시기가 이르다는 생각에 조절을 하는 중이고, 이제 주황색 정도는 팔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오늘 선을 보였다.
앞으로 주황색 장비도 간간히 내다 팔면서 에텔론을 모으다가 노락색 등급 장비를 팔게 되면 제법 에텔론이 모일 거라고 예상하는 세진이다.
= 이제 사냥을 가실 건가요? 세진님?
어깨 위에 있던 기묘한 동물이 세진에게 말을 건다.
어리 앵무의 탈을 벗고 새로운 몸을 만든 어리다.
어리의 모습은 날개달린 도마뱀의 모습이다. 등에 달린 날개는 독수리의 날개를 닮았다.
원래 어느 행성인가에서 애완용으로 만들어진 생물이라는데 한동안 인기가 많아서 여러 곳에 퍼져 있는 녀석이다. 그런데 이곳 데블 플레인에 이 동물이 야생으로 살고 있다. 초기에 헌터들이 애완용으로 가지고 들어왔던 것들이 주인이 돌아간 다음에도 남아서 결국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간혹 발견되는 종이어서 헌터들이나 라훌족 중에서 애완용으로 데리고 다니는 이들이 있었다. 그레서 세진도 눈에 잘 띠는 어리 앵무 보다는 이 모습이 나을 것 같아서 어리의 외모를 바꾸게 한 것이다.
"그래야지. 그래서 지금 장비 챙기고 있잖아."
= 정말 주황색 등급 몬스터를 잡으실 건가요?
"왜? 이젠 충분히 가능한데? 위험도 별로 없을 거야. 위험해도 우리 어리가 살려주겠지."
= 그야 그렇지만요. 좀 이르지 않나 싶어서요.
"주황색 등급의 물건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으니까 나도 주황색 등급을 사냥해야지. 이것도 수련이야. 나는 지금 본래 몸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사냥을 하는 거니까 말이야. 그래서 육체 능력 보다는 주로 정신능력을 다루는 거잖아."
= 그게 더 문제죠. 육체 능력도 어느 수준은 되어야지 위험하지 않은 건데, 세진님 너무 움직이는 걸 싫어하시는 것 같아요. 걱정이에요.
"하하하. 괜찮아. 내게는 언제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피신처가 있다고 여기 이렇게."
세진이 어깨 위의 파충류 날개를 쓰다듬었다.
= 맞아요. 어리는 세진을 잘 지킬 수 있어요. 저는 최후의 보루인 것이에요.
"그래. 맞다. 맞아."
= 그런데 아까 그 남자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리가 세진에게 뜬금없은 질문을 한다.
"누구? 경매에서 큰소리 치던 그 남자?"
= 네. 그 사람이요.
"헌터잖아. 그것도 유저 헌터."
=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응? 아니었어? 팔뚝에 툴틱이 있는 걸 봤는데?"
세진이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본다.
"분명 툴틱이 있었어. 옷에 반쯤 가려졌지만 내가 분명히 봤지."
세진은 확신했다.
= 그 사람도 에테르 기관이 없었어요. 세진님.
"응? 에테르 기관이 없어? 그럼 그 사람도 나처럼 에테르 기관을 제거했나? 그런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었어?"
= 그게 아닐 수도 있죠.
"무슨 소리야?"
= 그 툴틱이 가짜일 가능성도 있다는 거죠.
"툴틱이 가짜?"
= 생체 에테르바디를 죽이고 거기서 툴틱을 떼어내면 가능하죠. 물론 기능은 중지시키고 외형만 남겨야겠죠. 아니면 헌터룸 관리자들이 끼어들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아무튼 그런 가능성도 있어요.
"그렇군. 내가 툴틱을 제거한 것처럼, 라훌들이 툴틱을 흉내내서 헌터 행세를 할 수 는 있겠군. 하지만 툴틱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잠깐 보여주는 것 말고는 필요가 없는 짓인데?"
= 하지만 아까 그 사람이 유저 헌터에게 접근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거나 혹은 일정 장소로 데리고 가는 정도는 쉽지 않겠어요? 같은 헌터라고 믿으면 해치지 못한다고 굳게 믿으니까 쉽게 당할 것 같은데요?
"흐음. 그렇군. 그건 그것대로 쓸모가 있겠어. 어수룩한 헌터를 꼬여서 위험에 빠트리기엔 나쁘지 않은 위장이네."
세진은 다시 한 번 그 사내의 모습을 떠올려서 확실히 기억을 해 뒀다. 이후에는 약간의 변신 정도로는 세진의 눈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재미있네. 여자도 뭔가 있어 보이고, 그 남자도 그렇고, 탈예거란 라훌헌터도 나타났으니 이제 조만간 라훌족 독립군이란 놈들이 슬슬 기어나오겠지?"
= 그러니까 조금 더 열심히 수련을 하세요. 안 그러면 한 순간에 훅 가는 수가 있어요. 그럼 저는 무척 슬플 거예요. 거기다가 그렇게 되면 저는 어떻게 해요. 이 데블 플레인에서 세진님을 찾아서 헤매고 다녀야 하는 것이에요. 세진님 찾아 삼만리, 아아, 어리는 눈보라를 헤치며 세진님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 황량한 곳에서 쓰러져 잠드는 것이에요. 그리고 세진님의 꿈을 꾸는 것이에요.
"쯧. 그만하지? 닭살이 돋는다."
= 에헤헤헤. 이제 그만 사냥 가요. 세진님.
"그래. 그러자."
세진은 어리를 어깨 위에 올린 상태로 뒷골목으로 나가 사냥터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필요한 다른 물건들은 모두 테멜 안에 있으니 이것저것 들고 다닐 것도 없이 가벼운 차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