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벽하게 당했군, 당했어! -- >
세진 일행이 이면 공간에서 우렁각시 몬스터를 만나 전투를 시작할 무렵,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대도시의 빌딩 팬터하우스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의 뒤에서 고용인이 이번 일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라. 그렇긴 하지.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
사내는 등을 돌리지 않은 상태로 물었다.
"우연이 겹친 일이라 우리는 몰랐던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놈도 한 번은 당해봐야죠. 그래야 그 뒤에 있는 놈들도 조금 긴장을 하거나 혹은 다른 꼬리를 만들어 내지 않겠습니까? 지금으로선 전혀 틈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틈을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정체를 밝히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이란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형태라고?"
사내는 이전에 일을 꾸몄던 것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더구나 기린 그룹은 저희 자본이 꽉 쥐고 있는 곳이라서 일을 꾸미기에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석성 특별팀도 입을 다물기로 했으니 다행이지요."
"그 놈들이 호되게 당한 모양이지? 그런데 그 정도로 차이가 나나? 석성 특별팀도 2급 몬스터 정도는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들 아냐? 그런데 어째서?"
"2급과 3급은 차이가 큽니다. 아시는 것처럼 3급은 어지간한 소총으론 상대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겨우겨우 몸만 피한 거죠. 뭐 희생자가 생긴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 예측대로 될까?"
"박세진 그 자가 죽지는 않아도 일행 중에서 희생자가 생길 것은 분명합니다. 뭐가 되었건 박세진을 흔들어 놓거나 혹은 프렌드를 흔들어 놓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그래. 그래야지. 아무렴. 그나저나 운이 좋긴 했어. 그런 곳이 또 발견되다니 말이야. 그것도 이용하기 딱 좋은 순간에 말이지."
사내는 아주 특이한 형태의 몬스터 영역에 대한 보고서를 떠올렸다. 흔히 등급 혼합형이라고 하는 몬스터 영역이 있다. 말 그대로 1등급과 2등급, 혹은 3등급까지 몬스터가 함께 등장하는 곳을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이하게 상급 몬스터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1등급 몬스터 영역인데 수 천 마리를 잡아야 한 마리 정도 2등급 몬스터가 등장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런 경우 보통은 그 이면 공간이 1등급 천공기로 열린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서 토벌을 하다보면 2등급 몬스터가 종종 나오고 결국 우두머리는 1등급이 아니라 2등급인 경우가 된다.
보통은 그런 몬스터 영역에 대해서 과도기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등급에서 2등급으로 올라서는 중간 과정에 있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곳이 1등급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2등급 몬스터 영역에도 있다.
겉으로 보기엔 2등급 몬스터 영역이지만 이면 공간에는 반드시 3등급 몬스터가 우두머리로 있을 거란 추측이 가능한 곳, 그곳을 이란에서 발견하고 세진 일행을 끌어 들여서 위험에 빠트리려는 계획은 페루에서 곧바로 귀국해버린 세진 때문에 무산되 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기린 그룹에서 만들어낸 2등급 몬스터 영역에서 한 마리의 3등급 몬스터가 나온 것이다.
그 말은 곧 그 영역이 과도기형 이면 공간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3등급 우두머리가 있을 거란 말이 된다.3등급 우두머리는 예상하기로 4등급 몬스터보다 더 위험한 개체일 것이다. 그곳으로 세진 일행을 끌어 들였으니 이젠 결과만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석성의 특별팀은 2등급 몬스터 영역으로 사냥을 나왔다가 단 한 마리 등장한 3등급 몬스터에게 박살이 났다. 이산하와 이강토를 살리기 위해서 열두 명의 팀원 중에서 네 명이 죽었다. 그런 그들이 이번 작전을 듣고 곧바로 정보 통제를 해서 그곳에 3등급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숨겼다. 그 때문에 세진 일행은 단순히 2등급 몬스터 영역이라 믿고 의뢰를 받아들인 것이다.
"행운이 겹친 거지요. 거기서 3등급 몬스터가 나온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었으면 이번 작전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석성의 그 애송이들도 박세진 그 자를 싫어했으니 공감대가 생긴 거지. 다행이야. 다행. 운이 좋았어."
"그렇습니다. 이번엔 느긋하게 결과만 기다리면 됩니다. 사실 우리들이 손을 쓴 것도 없지 않습니까. 기린 그룹과 석성의 합작이지요."
"그렇지. 아무렴. 우리야 그저 구경이나 한 것밖에 없지. 아무렴. 하하하."
사내는 기분이 매우 좋은 듯이 창밖으로 지는 노을을 보며 웃었다.
그 시간 세진 일행은 뭔가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몬스터들 중에서 유독 강한 개체들이 있었던 것이다.
세진은 그 몬스터들이 3등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팀원들의 호흡을 맞추는데 나 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사냥을 계속하며 우두머리를 찾고 있었다.
세진은 우두머리가 3등급일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특이한 경우의 이면 공간이라서 세진이나 어리도 알지 못하는 유형이었다.
그래서 들어올 때에 2등급 이면 공간으로 들어오는 힘을 사용해서 공간을 열었으니 이곳의 우두머리는 당연히 2등급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1등급 이면 공간에서도 간혹 2등급 몬스터가 등장하곤 했지만 그런 정보는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었다. 세진을 노리던 이들이 제일 먼저 했던 작업이 바로 그 정보를 지워내는 일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세진이나 그 일행이 특이한 우두머리가 등장하는 이면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경험하는 방법 밖에 없었는데, 세진 일행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뭐가 이래? 이젠 다 찾아 본 거 아닙니까? 세진님? 작은 낚시터까지 모두 돌아본 것 같은데요? 그런데 우두머리는 안 보입니다."
김형일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낚시터까지 뒤져도 우두머리를 찾지 못하자 긴장이 풀렸던지 흙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상하군. 그럼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세진이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저기 여기 말고 한 군데 더 있습니다. 저수지가."
도일이 조금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뭐라구요? 아니 또 있다구요? 하지만 지도로 볼 때는 산을 한 바퀴 다 돌았고, 지도에 나온 곳은 다 돈 것 같은데요? 도일씨가 뭐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뇨?"
떡배가 지도를 펼치고 지금까지 돌아본 저수지와 못을 하나하나 찍었다.
그런데 그런 떡배 옆으로 도일이 다가가더니 지도의 윗부분에 접힌 곳을 펼쳤다.
그러자 북쪽으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커다란 저수지 하나가 지도에 나타났다. 아예 저수지로 들어가는 물의 근원지가 다른 산에서 시작하는 그런 저수지였다.
"설마 여길 말하는 겁니까? 하지만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데요? 그리고 외부의 몬스터 영역도 여기까진 포함되지 않는다고 기린 그룹에서 이야길 했습니다만?"
세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직 몬스터 영역이 완전히 정착된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팽창하는 중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겁니다."
도일이 세진의 궁금증을 풀어 준다.
"그렇게 되면 몬스터 영역이 무척 넓어지는데..."
"그래요. 너무 넓다고요."
"하지만 이 주변에 없으니 저길 가 보는 방법 밖에 없겠네요. 어쩔 수 없죠 뭐."
김형일과 김혜인, 정진이가 순서대로 한 마디씩 한다.
하지만 결론은 산척지라고 하는 곳으로 향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도 규모가 젤 크니까 뭐 희망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서 가서 처리하고 집에 갑시다. 배도 고프고 그러네요."
"떡배 아저씨 정말 배고프겠다. 아까 먹은 것도 무척 부실했는데."
"그래도 영양소 가득, 건강에 좋은 식단이었습니다."
정진이의 말에 선도일이 짧게 항의한다. 나름 자신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깃든 반발이다.
= 도우미, 도우미, 가사 도우미. 도일 오빠. 맛있어. 맛있어. 행복해? 행복해?
세진은 어이가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정신 차려요. 세진님.
"어떻게 여기에 저런 몬스터가 있을 수 있지? 저건 노란색 등급을 훌쩍 넘은 놈이라 고. 초록색 등급에서도 하급은 절대 아닐 녀석이야."
=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요. 김혜인 박사도 기절했다고요.
"빌어먹을!"
세진은 주변을 둘러봤다.
김혜인 박사는 정진이 경호원의 등에 업혀 있는 상황이다. 김형일은 기식이 엄엄하다. 우두머리 우렁각시에게 몇 번 맞은 것 같은데 저렇게 변해버렸다. 다른 사람들도 얼굴빛이 노랗게 변했다.
지금 당장 이면 공간의 통로를 열어서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럴 여유조차 없다.
김혜인 박사가 위급한 순간에 사람들을 모두 한 곳으로 모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두머리 우렁각시의 감지 범위 밖으로 나간 것은 아니다. 지금 천공기를 사용하거나 혹은 세진의 능력을 쓰거나 간에 모두가 안전하게 우렁각시를 피해서 도망을 갈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었다.
더구나 더 중요한 것은 만약 이면 공간 밖으로 통로를 열었는데 그 통로로 저 우렁각 시 몬스터가 따라서 나오게 되면 그걸 어떻게 할 것인지 답이 없었다.
몬스터가 세진이 열어 놓은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테멜 공간으로 들어가고 어리 앵무 혼자서 피하게 하면 될까?'
세진은 그 생각을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가 저 우렁각시에게 어리 앵무가 당하게 되면 테멜 밖으로 나오는 일이 어렵게 된다. 더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테멜 공간을 들키게 된다. 그건 곤란했다.
'어쩔 수 없이 선택은 하난가? 저 빌어먹을 우렁각시를 박살낼 힘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
결국 세진에겐 무척 간단하면서도 처음부터 떠올랐던 해결책이 모범답안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리야, 갔다 오자. 이리와!"
세진이 어리를 불러 어깨에 올렸다.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세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듀풀렉 게이트를 발밑에 열고 푹 꺼진다. 놀라는 일행의 표정이 역력하게 보였다가 곧 사라진다.
그리고 세진은 헌터룸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 또 뵙네요. 이번에는 얼마만에 오신 겁니까? 제 순간에 세진님께 얼마나 오랜 시간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우미, 반가워. 내가 우미를 무척 오랜만에 본다고 느낄 정도의 시간이 지났지."
- 어깨의 그건 뭔가요? 테멜인 것 같은데요?
"전에 내가 가지고 갔던 그 테멜이야,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이 새의 배에 넣어 뒀지."
- 그렇군요. 이제 오셨으니 다시 제이비아로 가실 건가요? 아니면 생체 에테르바디를 이용해서 새로운 헌터 생활을 시작하실 건가요?
"일단은 제이비아로 가야 할 텐데, 내게 남은 에텔론이 얼마나 되지?"
- 312만 3428에텔론입니다.
"다시 제이비아로 가려면 그 중에서 백만을 써야 하나?"
- 죄송하지만 다시 제이비아로 가시려면 200만 에텔론을 쓰셔야합니다. 그리고 한 달에 10만 에텔론의 체류비가 필요합니다.
"응? 왜 갑자기 두 배가 된 거지?"
- 두 번째 방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 제이비아는 특별한 곳입니다. 때문에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님은 이미 제이비아의 혜택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 혜택으로 인해서 제이비아 방문과 체류에 필요한 비용이 늘어난 것입니다.
"내가 그곳에서 사람들을 사귄 것이 그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건가?"
- 그렇습니다. 세진은 잠시 고민을 했다. 이렇게 되면 곤란했다. '이 몸으로 그냥 헌터 사냥터를 돌아다니며 목숨걸고 수련을 한다? 그건 미친 짓이지. 목숨을 걸고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제이비아를 이용해야 하는데 지금 있는 에텔론으로 1년도 있기 어려워. 그렇다면 그걸로는 4등급, 아니 초록색 등급의 몬스터를 마음껏 요리할 실력을 키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그래선 에텔론이 모자라고.
""어쩔 수 없지. 일단 새로운 생체에테르바디로 내려가서 에텔론을 벌어볼 밖에. 그 후에 제이비아에 다시 가거나 해야겠지. 그리고 이 테멜은 함께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고, 내 생체 에테르 바디는 에테르 기관을 없는 상태로 해 줘. 참, 툴틱을 숨길 수 있지? 아주 특별한 경우, 그러니까 에텔론 상점의 개인실에서만 툴틱을 사용할 예정이니까 다른 헌터나 라훌족들이 내가 헌터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해 줬으면 하는데?"
-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세진님이 헌터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불가합니다.
"괜찮아. 라훌들만 속일 수 있으면 되는 거야. 나는 라훌족으로 살 생각이니까 말이야."
- 알겠습니다. 툴틱을 피부에 묻어 놓는 형태로 해 드리겠습니다.
"고마워. 그리고 생체 에테르 바디의 외모는 전에 내가 이곳에서 성형을 받았던 그 모습으로 해 줘."
- 접수했습니다. 그럼 자리에 누워주십시오.
세진은 우미의 말에 따라서 의자에 편하게 누워 눈을 감았다.
'이번에도 꽤나 오래 걸리겠네. 언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냥 회복 캡슐을 믿고 한 번 싸워볼 걸 그랬나?'
세진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자신이 새로운 몸에 들어온 것을 깨닫고 눈을 떴다.
두 번째 생체 에테르바디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