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벽하게 당했군, 당했어! -- >
정진이와 김혜인까지 각성자가 되면서 세진의 어리 공방에는 각성자만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정진이는 예상대로 김형일과 같은 육체 능력자가 되었는데 조금 타입이 달라서 민첩성이 제일 큰 폭으로 상승하는 형태였다.
물론 기본적으로 육체 능력자가 지니는 신체 변화도 있었다. 지구력과 힘도 늘어났고, 몸의 방어력도 획기적으로 상승했다. 더구나 회복력도 일반인과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다만 김형일의 방어력이나 힘에 비해서 초기 능력이 조금 모자란 것으로 판명이 났는데 대신 민첩성은 김형일에 비해서 초기 능력이 월등히 높았다. 그러니 같은 육체 능력이라도 조금씩 개인차가 있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정진이는 김형일과 붙어 다니며 훈련에 힘썼다. 이에 비해서 김혜인 박사는 이전 석성의 특별팀에 있던 한미리와 같은 타입의 각성자가 되었다.
김혜인 박사의 능력은 두뇌의 힘을 이용하는 것으로 측정이 되었는데, 일종의 정신력만으로 어떤 일을 해 내는 능력인 것이다. 그 중에서 김박사가 지는 능력은 단거리 순간이동 능력과 염력이었다.
처음에는 염력만 가지고 있는 줄로 알았는데 어느 순간 염력으로 움직이던 쇳덩이를 정진이의 머리 위로 날리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새로운 능력을 깨닫게 되었다.
그 때, 정진이가 한참 김혜인 박사를 놀리고 있었던 상황인데 김혜인 박사가 염력으로 허공에 띄우고 있던 쇳구슬이 정진이의 머리 위에 나타나서 뚝 떨어져 꿀밤을 먹인 것이다.
그 사건 이후에 김혜인 박사가 그녀의 의지로 무엇이건 가까운 거리로 순간이동을 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아직은 한 사람을 20미터 정도 보내고 나면 모든 기운을 잃고 파김치가 되는 수준이지만 능력을 키우다보면 일행 모두를 공간이동 시킬 수 있을 정도의 능력자기 될지도 모른다고 세진은 기대하고 있었다. 정말 위험한 상황에서 팀원의 목숨을 한 번은 구해줄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정말 마음에 드는 갑옷이네요. 움직이기 편하고 가볍기까지 하니까요."
김혜인은 자신의 갑옷을 받아 착용한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며 감탄했다.
"박사님 갑옷이 제일 가볍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박사님의 육체 능력은 일반인에 비해서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히니까요. 그런 체력으로 무거운 갑옷은 어렵죠. 대신 회복력도 조금 떨어집니다. 더 연구를 해서 회복에 대한 보조 기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세진씨. 그런데 우리들 모두 갑옷을 입고 있으니까 무슨 코스프레 같아요. 그 게임 코스프레 있잖아요."
"저도 간혹 그런 생각을 합니다만, 그래도 미국이나 독일에서 만든 갑옷에 비하면 훨씬 나은 겁니다."
"그 석성에서도 결국 미국 제품을 샀다면서요?"
"그랬다고 하더군요. 우리 물건을 쓰고 싶었겠지만 반응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겠 죠."
"그것도 있겠지만 그 이산하와 이강토라는 사람들, 자존심을 지키려고 데면데면했던 것도 이유가 되겠죠. 그 사람들 세진씨를 별로 안 좋아한다면서요?"
"진이씨가 그러던가요?"
"전에 그 사람들 왔을 때, 우린 위에 있어서 상황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진이가 나서면 우리집 남자들 입은 금방 열리잖아요."
"하긴, 그런 면이 있죠. 다들 여성체 면역이 없는 사람들이라서. 원."
"호호호. 그건 세진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제가 보기엔 오십보 백보?"
"무슨 말씀을! 제가 이래뵈도 얼마나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는데요? 전에는..."
세진이 말을 하다만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하는 것을 김혜인 박사도 느끼곤 자리를 피한다.
"미안해요."
김혜인 박사가 떠난 자리에 그녀의 사과의 말만 묵직하게 떠돈다.
아직 세진은 심선정의 그림자를 완전히 떨치진 못한 것이다.
시간은 심선정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앙금으로 가라앉게 했다. 간혹 그 앙금이 풀썩 떠오를 때가 있는 것이다.
매스컴은 무섭다. 어떤 의미에서 지구상에서 몬스터로부터 가장 안전한 나라로 볼 수 있는 한국에서 세진의 행보는 여러모로 관심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 매스컴의 포커스가 이산하와 이강토의 석성 특별팀으로 쏠렸다.
그들이 한국의 몬스터 영역을 하나씩 정리를 할 때마다 뉴스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 배후에는 당연히 석성의 어마어마한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석성의 기업 이미지는 끝을 모르고 상승하고, 이산하와 이강토의 인기 역시 엄청나게 올랐다. 흔히 재벌가의 아들들이 받게 되는 질시의 눈초리는 사라지고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의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내에 몬스터 영역이 끝없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으면 특별팀은 의미가 없어진다. 오히려 위험한 힘을 지닌 돌연변이들이 모인 불안한 무력단체로 인식될 수도 있다.
여기서 어리 공방은 좀 사정이 다르다. 원래부터 어리 공방은 벗이라는 위험한 집단의 하수인 정도로 인식이 되어 있다가 조금씩 한국의 몬스터 작전에 도움을 주면서 호감을 높인 쪽이다.
그러니 인식이 나빠져 봐야 원래 상태로 돌아갈 뿐이다. 하지만 석성의 경우에는 특별팀에 대한 호감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할 절대적인 이유가 있었다. 특별팀이 구설수에 오르게 되면 그것은 석성의 기업 이미지에도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특별팀은 그룹의 홍보를 위해서 운영하는 야구팀이나 축구팀, 농구팀과는 전혀 다르다. 그곳에는 직계가 둘이나 속해 있고, 파워 자체가 다르다. 한국의 몬스터 영역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석성에서도 그 사실을 깨닫고 곧바로 외부로 눈을 돌렸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몬스터 영역을 해결해 주는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큰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나름대로 이면 공간 공략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굳이 다른 나라의 팀을 불러들여서 자국의 안보를 사설 팀에게 맡기는 것 같은 인식을 국민에게 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석성의 특별팀은 간혹 국내에서 발생하는 몬스터 영역을 처리하거나 외국에 세운 석성의 공장들이 있는 곳에서 몬스터 영역을 처리하는 일거리를 얻곤 했다.
그런 상황은 겨우 몇 달 만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메스컴의 포커스를 억지로 끌어 들였던 석성의 선택이 이번에는 역효과를 불러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특별팀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도 1등급 몬스터 영역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기에 특별팀의 유지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것도 굳이 특별팀이 아니라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략팀이면 충분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긴 했지만.
"그러니까 정부에서 우릴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석성의 차기 총수로 유력한 이좌돈 사장이 책상 위에 펜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고 비서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각성자를 너무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역시 문젠가?"
"그렇습니다. 지금 이산하 팀장이 이끄는 각성자가 열 두 명이고, 이강토 팀장이 열 두 명입니다. 그리고 예비로 대기중인 인원이 일곱입니다."
"아이들 빼고도 서른하난가?"
"그렇습니다."
"겨우 그 정도로 정부가 우릴 백안시 할 이유가 있나?"
숫자가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이좌돈 사장은 불평을 해 봤다.
"그 서른한 명이면 청와대도 전복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능력이 문제인 것입니다. 각성자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강력한 무력을 쥐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실 각성자들이 모이면 벗이란 단체가 하나 더 만들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비서의 대응은 그런 이좌돈 사장의 불평이 쏙 들어갈 정도로 직설적이었다.
"위험하군."
비서의 말에 이좌돈 사장이 짧게 결론을 냈다.
국가 공권력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은 절대 일개 기업의 손에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기업이 무력까지 소유하게 되면 스스로 왕국을 세우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것을 허용한 국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무력을 어느 정도 인정해준다고 해도 그것은 국가가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범위까지다.
"그래서 기획실에선 뭐라고 하나?"
"감축입니다."
"줄이는 숫자는 국가 소속으로 보내고?"
"그렇습니다. 팀을 하나로 둘이고 숫자고 한 팀 정도로만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엘리트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합니다."
"응?"
"정부에서도 능력자들의 수준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껍데기만 주고 알맹이를 챙기려다간 더 밉보일 수가 있겠지. 그래 산하와 강토의 실력은 어느 정도나 되나?"
"냉정하게 상급에 턱걸이입니다."
"그러니까 최고는 아니다?"
"그렇습니다."
"아쉽군. 그 어리 공방의 갑옷들을 얻었다면 산하와 강토의 성장이 남달랐을 수도 있는데 말이지. 그거 어떻게 아이들 것만이라도 구할 수 없는지 접촉을 해 봐. 돈이야 그쪽도 넘치니까 현물로 거래를 하자고 해. 땅이나 건물이나 그것도 아니면 이번에 조선에서 만든 그것도 괜찮고."
"사장님. 그 배는..."
"어차피 그룹에서 쓰려고 만든 거라서 판매용도 아니잖나. 그거 준다고 그룹에 큰 문제라도 있나?"
"회장님께서 섭섭해 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버님껜 내가 이야기 해. 아버님이 세상을 보는 눈이 나보다 더 뛰어나지. 그냥 그러라고 하실 거야. 어때? 그 배면 좀 말이 통할까?"
"일단 이야기는 해 보겠습니다만."
"그래. 해 봐."
"네. 알겠습니다."
"특별팀은 감축하고. 한 팀만 남겨. 열네 명으로 하지. 산하하고 강토에게 여섯씩 붙여. 작전 나갈 때에는 함께 움직이고 평소엔 여섯씩 따로 움직이고. 팀장은 산하, 부팀장은 강토야."
"이면 공간에는 열두 명이 진입하니 두 명은 예비가 되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여전히 규칙은 유효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룹의 이익이야. 그걸 침해해서 상대를 공략하면 도리어 불이익을 줄 거야. 무슨 짓을 해도 되지만 그것이 그룹에 마이너스가 되면 그 녀석 점수도 깎이는 거야."
"몇 번이나 강조한 말이니 마음에 새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놈이 어리 공방에 가서 고개 뻣뻣하게 세워?"
"아직 숙이는 법은 배우지 못하신 나이입니다. 그 일을 기화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첨가했으니 다시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상대에게 마음을 숨기고 굳은 표정을 웃음으로 포장하는 것을 익히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눈치를 안 보고 살다보니 그런 쪽으론 좀 느리단 말이지. 다른 그룹 아니들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그야 워낙 저희 석성이 어디 눈치를 볼 일이 없으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사장님 때에도 거의 고개 숙일 일이 없었지만 지금 산하도련님과 강토도련님의 경우에는 아예 그런 일이 없었지요."
"알아. 쯧. 뭐 고치면 되는 일이니까 그렇게 하고, 나가봐. 나도 이젠 일을 좀 해야지."
이좌돈 사장은 비서에게 그렇게 명령을 하곤 내려놓았던 펜을 다시 들었다. 잠시 팔을 쉬었으니 다시 일을 시작할 때인 것이다.
그는 아직도 종이로 된 서류를 선호하고 또 직접 싸인을 해서 중요한 문제를 결제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중요한 일일수록 종이로 된 서류로 꾸며져서 그의 책상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이좌돈은 서류의 문장에 간혹 밑줄을 그어가며 검토를 한다. 이미 비서는 소리도 없이 사장실 밖으로 나간 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