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진 일행 마추픽추를 가다 -- >
잉카라면 떠오르는 것이 황금이며 엘도라도다.
스페인의 침략자들은 잉카 제국을 무너뜨렸고 잉카는 신비한 신화와 전설을 남기고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저기 저 조각보여요?"
김혜인 박사가 마추픽추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돌기둥을 가리키며 세진에게 묻는다.
일행은 열 곳의 2등급 이면 공간 공략을 모두 마치고 본격적인 관광에 나선 참이다. 처음에는 정진이와 김혜인 때문에 조금 삐걱거리는 면이 있었지만 곧 안정을 찾은 세진 일행은 어렵지 않게 의뢰를 모두 완료했다.
그 후, 곧바로 마추픽추를 찾아 가는 길이었다.
"물고기 말입니까?"
"그게 아니죠. 퓨마가 뱀을 밟고 물고기를 이고 있는 거죠. 보세요. 그렇게 안 보여요?"
"아, 그런 것 같네요. 무슨 뜻입니까?"
세진이 용케 기둥의 세 부분을 구별해 내곤 박사에게 묻는다.
"호호, 제가 공부를 좀 하고 왔거든요. 물고기는 영혼의 세계, 퓨마는 현실의 세상, 뱀은 죽음의 세계를 뜻 한데요. 그러니까 현실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물고기 세상으로 가느냐, 뱀의 세상으로 가느냐가 결정된다는 거죠. 일종의 내세관을 나타낸 조각이래요."
"아, 그렇군요. 역시 박사님이라 그런지 관광을 오면서도 준비를 제대로 해서 오셨군요."
"아이, 뭐 그런 건 아니고, 남미는 처음이니까 이것저것 알아보고 온 거죠. 거기다가 잉카가 워낙 우리랑 연관이 깊다는 학설들과 증거가 있다 보니까 재미도 있고 해서."
"그래요?"
세진이 김혜인 박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흥미를 보여준다. 여기서 데면데면 했다가는 이후의 일정에 찬바람이 불지도 모를 일이다. 김혜인과 정진이 두 사람이 어리 공방에 있게 되면서 그래도 조금씩 눈치가 생긴 세진이다.
"몽고반점 알죠?"
"네. 여기 원주민이 우리민족처럼 몽고반점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원주민과 우리민족이 연관이 있을 거라고 한다죠?"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여기 사람들이 쓰는 단어 중에도 우리말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 것들이 제법 있고, 또 가락국 설화와 연관된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나 조각도 있다고 해요. 그리고 그거 알아요?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북현무라고요."
"아, 그거 우리나라 사람들이 방위신을 나타내는 거죠?"
"네. 그런데 여기도 비슷해요. 백호 대신에 퓨마가 있고, 현무 대신에 뱀이 들어가고 그러는데 뭐 동쪽을 나타내는 것이 독수리나 새라는 점에서 좀 다르고 남쪽도 쟈칼이 상징이라 우리의 주작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대충 연관을 짓곤 해요."
"동쪽과 남쪽이 전혀 다른데요? 동쪽은 새고, 남쪽은 쟈칼이니."
"그래도 동쪽은 우리말에 동쪽을 가리키는 말이 '새'라서 연관이 있다고 학자들이 주장하기도 하나 봐요. 샛바람이 동풍이잖아요. 그래서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남쪽뿐이다 뭐 그런 거죠."
"어째 억지로 끌어 붙인 느낌이긴 하지만 재미는 있네요."
세진이 무슨 억지 가설을 듣는 기분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 꼭 억지를 부린 것은 아니에요. 이 이외에도 증거로 드는 것들이 제법 많이 있어요."
김혜인 박사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세진을 설득하려 나섰다.
"아, 알았습니다. 여기서 더 듣다가는 저 사람들 모두 얼이 빠지겠습니다. 벌써 지루하단 표정 아닙니까."
하지만 세진이 잉카와 한민족 관련설은 그 정도에서 이야기를 그만하자고 말을 돌렸다.
까독! 까독! [전 아닙니다. 정말 재밌게 듣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선도일이 딴지를 걸고 나왔지만 세진도 양보가 없다.
"그건 도일씨만 그런 거고. 저 봐 정진이씬 완전 관심 없음이잖아."
"전 또 왜요? 전 그냥 두세요."
정진이는 어리 앵무 때문에 신경이 날카롭다. 버스를 빌렸지만 소형이어서 진이는 어리 앵무와 가까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온통 신경이 어리 앵무의 움직임에 집중되어 있었다.
"세진님 그 갑옷 말입니다. 정말 물건이지 말입니다. 2등급 몬스터도 우두머리만 아니라면 무난하게 잡을 수 있는 게 전부 그 갑옷 때문 아닙니까."
김형일이 세진의 뜻을 알아차리고 이야기의 주제를 갑옷으로 돌린다.
"그게 전부 우리 김혜인 박사님 작품이지. 움직임이 예술이잖아. 어떻게 움직여도 불편한 곳이 없다니까."
떡배가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참견을 하고 나선다. 잉카와 한민족 관련설에 대한 강 의 보다는 이쪽이 훨씬 재미가 있고 알아듣기 쉬운 주제인 것이다.
"할 일을 다 마치고 관광을 하게 되어서 정말 좋습니다. 2급 몬스터 영역을 열 곳이나 처리를 했지만 다친 사람도 없이 무사히 끝났으니 축하할 일이죠."
김형일이 새삼 무사히 끝난 의뢰에 대해서 평을 한다.
"그건 그렇지. 처음에는 우리 동생이 어떻게 될까봐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내가 속이 다 새카맣게 탔다니까? 그런데 몇 번 하고 나니 뭐 든든하기 짝이 없더구먼. 하하하."
"그래도 세진님이 나서지 않으면 우두머리는 제대로 잡지도 못했잖아요. 아직 멀었다구요."
정진이가 어리 앵무에게 시선도 떼지 않으면서 참견을 한다. 그래도 완전히 귀를 막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어리가 죽지 사이에 부리를 묻고 잠을 자는 척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진이 어리에게 될 수 있으면 정진이씨를 너무 자극하진 말라고 넌지시 일렀던 효 과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럼. 그거야 당연하지. 우리야 아직 그 2등급 우두머리에게 댈 수가 있나. 그게 그러니까 3등급 몬스터만큼 강한 녀석이라는데 아직은 멀었지. 하지만 그렇더라도 언젠가는 우리, 아니 나 혼자서라도 더 강한 놈들도 잡고 다닐 날이 있을 거야. 아무렴."
"맞습니다. 형님. 저도 언젠가는 세진님만큼 강해질 겁니다."
"응? 그거 도일씨 목표로 알고 있는데? 그럼 둘이 누가 더 나은지 그것부터 확인을 해야 하는 거 아녀?"
"에이, 그게 말이 안 되잖아요. 제 방어력은 몬스터한테나 통하는 거지. 도일씨 검에 맞으면 그냥 슥슥 잘릴 걸요?"
"그 정도는 아니지. 그리고 너도 한 힘 하잖아. 네가 곤봉 휘두르면 아무리 도일씨라도 쉽게 다가오기 어려울 걸?"
[[누가 누구와 싸운다고 그런 소리를 합니까? 동료끼리 무슨 상하를 나눕니까? 서로 맡은 역할이 다른데요. 자기 역할에 충실한 것이 제일 중요한 겁니다.]] 도일이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참지 못하고 스마트폰 음성으로 한 마디 끼어들었다.
"아, 공중정원이에요."
그 때, 김혜인 박사의 탄성이 버스 안을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앞 유리창으로 향했다.
"워워. 앞에 좀 비켜봐요. 다 가려 버리면 난 어쩌라고?"
제일 뒷좌석의 떡배가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모두의 시선이 잉키의 신비 하늘 정원에 모여 있었다.
"그것 참, 저 돌들 옮길라면 수레나 말이 얼마나 필요했을까나?"
떡배가 감탄을 한다. 하지만 곧 들려온 한 마디에 입을 다물고 만다.
"잉카 제국에선 바퀴가 발명되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수레 같은 건 없었다죠."
김혜인 박사의 말이다.
"그럼 뭡니까? 저 돌 어디서 어떻게 가져다가 저런 도시를 만들었단 말입니까?"
떡배가 눈을 똥그랗게 뜬다.
"그러니까 불가사의 아니겠어요? 대단하죠?"
"난 이걸 만든 것도 대단하지만 여기에 살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모습을 감췄다는 것이 더 신기합니다. 여기 1만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데 노인과 어린아이만 빼곤 모두 사라졌다고 하죠. 한 순간에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도 어디론가 다른 차원으로 가는 차원문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지요."
"세진님은 차원문에 관심이 많은 것 같지 말입니다. 페루 올 때부터 몇 번 들었던 것 같지 말입니다"
형일이 흥분해서 군대식 어투를 쓰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고 말한다.
"뭐 좀 관심이 있습니다. 이면 공간이 발견된 후로는 실제 차원 이동은 아니어도 이면 공간으로의 이동은 있었을 가능성이 생겼으니까요."
"그러니까 여기 살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이면 공간으로 갔다는 건가요? 아이들과 노인만 남겨두고? 왜요?"
정진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야 저도 모르죠. 하지만 상상은 할 수 있죠. 갑자기 이곳에 몬스터들이 등장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몬스터를 퇴치하기 위해서 잉카의 모든 젊은 남녀가 소집이 된 거죠. 그리곤 이면 공간으로 몬스터 퇴치를 위해서 들어가죠. 그 뒤엔 다시 나오지 못하고 말입니다."
"어머나, 너무 끔찍해요. 그럼 다들 희생됐을 거란 소리잖아요."
김혜인 박사가 놀란다.
"어쩌면 성공을 한 건지도 모르죠. 이후로 다시 몬스터가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긴 여기 이런 도시를 세울 정도면 우리 형일이 동생 같은 사람이 수백은 있어도 될까 말까 한데, 그런 정도의 전력이면 강력한 몬스터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암요. 그럼 한 5등급이나 6등급 되는 놈이었을까나?"
떡배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린다.
"왜? 왜 또 그렇게 나를 봅니까? 이번에도 뭔 단어가 문젠 겁니까?"
"신기해서요. 김형일씨 같은 사람들이 잔뜩 있었으면 이곳 마추피추를 건설하기 위해서 돌을 옮기는 것도 가능할 것 같고, 또 다른 각성자들이 있었다면 저렇게 돌을 정확하게 짜 맞추는 것도 가능할 것 같잖아요. 거기에 몬스터 등장이라, 시나리오가 딱딱 맞아 떨어지네요. 신기해요."
"커엄. 뭐, 그런 것을 가지고 다 놀라고 그럽니까?"
떡배는 사람들의 색다른 시선에 몸 둘 바를 모르고 부끄러워했다. 커다란 덩치 때문에 뒷좌석을 혼자 차지하고 앉은 떡배의 부끄럼 타는 모습이 어쩐지 귀엽게 보이기도 하는 일행이다.
"이거 떡배씨가 마추픽추의 신비를 벗겨 낸 걸로 해야 하나요? 하하하."
"이전이라면 말도 안 된다고 했겠지만, 지금처럼 몬스터들의 등장하고 각성자들이 생겨나는 세상이 되니까 떡배아저씨의 생각 없이 한 말도 충분히 가능성을 지닌 말이 되네요. 대단해요."
"정진이씨! 생각 없이 한 말이라니요? 거 섭섭하게."
"에, 딱 보면 알죠 뭐. 김형일씨 같은 사람이 있으면 커다란 돌도 옮길 수 있겠다 싶은 생각만 하고 나머진 그냥 나오는 대로 떠들다 보니 뒷걸음에 소 잡은 거죠. 안 그래요?"
"허험. 뭐 꼭 그렇게 짚어서 이야길 할 것은 또 뭐가 있나. 그냥 넘어가고 그러지."
"그래도 잉카인들 사이에 각성자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면 정말로 세상에 넘치는 불사사의들도 그런 능력자들이 있어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겠어요. 생각해 봐요. 대부분 그런 불가사의들은 한 지역에 국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 지역에서만 유독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영역이 있어서 각성자들이 간혹 나왔다고 하면 말이 되는 거죠."
"그럼 그런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김 박사님?"
"뭐가요 형일씨?"
"우리 시골에 가면요, 어느 마을에선 유독 장군들이 많이 나고, 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났다고 하는 곳이 있거든요. 그런 곳도 이면 공간의 영향을 받아서 각성자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리고 옛날 도술으리 부리는 홍길동, 전우치 같은 이야기도 각성자였을 수도 있고 말이죠."
"우와, 그것도 말 된다. 이거 재미있네?"
= 바보들. 차 섰다. 답답해. 답답해. 말도 답답하고 차도 답답해.
세진 일행의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 시작하자 어리가 깽판을 친다.
그 덕분에 모두들 차에서 내려서 마추픽추 구경에 나설 수 있었다. 다만 그 중에 떡배와 정진이 경호원이 고산병 초기 증세를 보여서 코카 잎으로 만든 차를 마시고 누워 있어야 했던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세진은 어리와 함께 마추픽추를 차분하게 탐색했지만 어디에서도 게이트의 흔적이나 몬스터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세진은 만약 이런 곳에 이면 공간이 있다면 굉장히 높은 등급의 이면 공간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있는 힘을 모두 모아서라도 이면 공간의 존재 유무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혹시 모를 위험을 걱정해서 꾹꾹 눌러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