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90화 (90/298)

< -- 세진 일행 마추픽추를 가다 -- >

세진 일행은 리마에서 페루 정부 인사들의 환영을 받고 호텔에 숙소를 정했다. 하지만 미리 약속한 대로 파티라거나 혹은 식사 같은 번거로운 행사 따위는 전혀 없었다.

세진이 번거로운 공식 일정은 모두 사양한다고 밝힌 탓이다.

그저 하루를 푹 쉬고 나서 세진과 떡배, 도일, 형일, 김혜인, 정진이로 이루어진 2급 이면 공간 공략 팀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2급 몬스터 영역으로 출발을 했다.

김혜인 박사와 정진이 경호원은 그냥 호텔에 남겨 둘까 했지만 차라리 데리고 가는 쪽으로 택했다.

남겨 둬서 위험을 감수하게 하느니 그냥 데리고 몬스터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다들 합의를 본 것이다.

거기다가 2급 몬스터 정도는 세진이 나서지 않아도 형일과 떡배, 도일이 나서면 어 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다. 물론 세진이 나선다면 서너 마리가 몰리는 경우가 생겨도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니 몬스터 영역이나 이면 공간으로 데리고 간다고 해도 크게 위험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혹시 알아요? 저나 진이도 각성이란 것을 할 수 있을지 말이에요. 그거 몬스터 영역을 경험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변화라면서요? 그러니까 우리도 아직 기회가 있는 거라고요."

김혜인 박사는 그렇게 각성을 하는 것에 욕심을 냈고, 정진이 경호원은 총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으니 완전 전력 외로 취급하기도 어려운 사람이다.

결국 김혜인 박사만 사냥에 문제가 되는 사람인데, 그 한 명 정도는 세진이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는 판단인 것이다.

정진이 경호원을 보호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도 전문 경호원인 것이다.

페루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인간형이 많고, 그 다음은 퓨마 형상을 한 비스트가 많았다. 거기에 황금과 관련된 모습을 한 몬스터가 많은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인간형 몬스터들은 대부분 원주민의 모습이거나 혹은 스페인 병사들과 선교사의 모습을 한 것들이었고, 간혹 삼등신으로 신화 속 인물을 형상화한, 목각인형을 닮은 몬스터도 있었다. 전설이 몬스터가 되는 것처럼 역사의 한 단면도 몬스터로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이다. 스페인의 침략으로 멸망한 잉카 제국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몬스터들이니 말이다.

"그런데 퓨마가 이렇게 많은 이유가 뭡니까? 도일씨."

세진이 몬스터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도일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미 세진도 페루에 오기 전에 파악해 둔 내용이다.

[[퓨마가 신의 사자로 나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곳곳에 퓨마를 신성하게 여기는 조각이나 조형물들이 많지요. 심지어는 배를 만들 때에도 선수상을 퓨마의 머리나 상반신으로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티티카카 호수엔 그런 갈대 배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도일이 스마프폰 음성 기능으로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이 많을 때에는 그렇게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문자를 음성으로 바꿔주는 앱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자, 저 앞에 있는 몬스터 영역이 바로 비스트형 퓨마가 몬스터로 나오는 곳입니다. 그러니 다들 준비를 하십시오."

한참을 걸어서 몬스터 영역을 지키는 병사들의 초소에 출입 허가증을 보이고 안으로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진이 일행들에게 주의를 줬다.

"아니 그런데 여긴 뭐가 이렇게 대충대충인 겁니까? 쯧쯔. 몬스터 영역이면 철책을 둘러서 접근을 막던가 해야지 이건 뭐 수도에서 그리 먼 곳도 아닌데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를 합니까?"

떡배가 일정 간격을 두고 초소만 세워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는 몬스터 영역을 보고 혀를 찼다.

"형님. 퓨마 아닙니까. 여기 사람들 그거 신성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요? 그러니까 그냥 대충 자리 정해주고 살라고 양보하는 뭐 그런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보고 퇴치를 해 달라고 의뢰를 하냐?"

"우매한 민중들과 지도자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지 말입니다. 백성들이야 퓨마 몬스터를 신성하게 여겨도 지도자들은 백성의 목숨을 위협하는 재앙으로 취급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

"거기다가 페루가 사정이 그렇게 좋은 나라도 아니죠. 몬스터 영역이 어디 한 둘도 아니고 거길 전부 철책으로 두를 수가 없지 않았겠습니까. 나라가 크기는 또 좀 큽니까? 근데 인구는 3천만을 조금 넘습니다. 견적이 안 나오지 말입니다."

"그게 또 그렇게 되냐?"

"그만 좀 떠들고 집중해요. 남은 긴장이 되서 죽겠구만 지금 농담 따먹기 하고 있을 때예요?"

떡배와 형일의 대화에 정진이 경호원이 끼어든다.

김혜인 박사는 세진의 옆에 바짝 붙어서 서 있다.

"언니."

"응? 왜?"

"나 몸이 막 근질거려."

"몸이? 난 머리가 그런데? 꼭 간지럼증 타는 발바닥 같아. 내 뇌가."

"응? 뭔 표현이 그래? 하긴 난 몸 안에 그런 느낌이야. 근질근질."

"이거 우리도 몬스터 영역에 들어와서 각성이란 걸 하는 걸까?"

"우화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김박사님, 정진이씨 샤워 안 했습니까? 왜 두 분에게만 그렇게 진드기들이 많이 붙습니까? 아까 나뭇잎 헤치고 나오면서 진드기 있는 나뭇잎을 그냥 밀고 나온 겁니까?"

두 사람의 꿈을 산산히 부수는 세진의 말이었다.

"에? 그런 게 있었어요?"

"꺄악, 온 몸에 진드기가! 언니, 언니 머리에도 진드기들이!"

"진이야 진정해. 진드기가 널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닌데 왠 호들갑이야?"

"벌레잖아요. 벌레."

"에휴, 저걸 경호원이라고 데리고 다니는 나도 한심하지."

김혜인 박사는 머리를 털털 털어서 진드기들을 떼어내고 곁에 있는 정진이 경호원의 몸에서도 진드기를 털어냈다.

"박사님은 특이하군요."

"호호호. 여자답지 못하죠? 하지만 원래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면이 있어요. 저도 저학년 때에는 생물학 수업도 들었거든요. 그럼 때론 동물을 삶아서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려서 하나하나 접착제로 붙이는 작업도 해요. 그런 거 생각하면 뭐 이런 정도는 별것도 아니죠. 경험 탓이에요."

"그런 겁니까?"

"호호. 그런 거죠."

= 온다. 온다. 온다.

그 때에 세진의 어깨에 있던 어리 앵무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춰서 일행들이 바짝 긴장을 한다.

"역시 저건 그냥 새가 아니야. 맞아. 저것도 각성을 한 앵무새인 거야. 원래 좀 독특했던 놈이 몬스터 영역에서 각성을 해서 괴물이 된 걸 거야."

정진이 경호원은 어리 앵무의 정체를 마침내 알아냈다는 뿌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일행들은 어리 앵무를 한 번 보더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여긴 것이다. 요즘 들어서 그들이 보기에도 어리 앵무는 평범한 앵무새는 절대 아니었다.

= 괴물. 괴물 아니야. 바보 진이, 진이 바보. 진이는 진이가 새라는 것도 모르는 바보 진이.

"뭐랴?"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새소리죠. 개는 개소리. 새는 새소리."

형일이 떡배에게 그렇게 대꾸를 하더니 앞으로 달려나간다. 그곳에 검푸른 빛의 털을 자랑하는 뿔 난 퓨마가 있었다. 마치 산양의 뿔 같은 것을 달고 있는 퓨마의 모습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우라라라라라!"

형일이 기합을 내지르며 퓨마 몬스터를 향해서 방패를 앞세우고 돌진해서 몸통 박치기를 했다.

콰과광!

"우앗. 엄청난 박력이네요. 대단해요."

정진이가 그 모습과 충돌음에 깜짝 놀란다. 쾅!

쾅!

꽝!

캉!

형일이 뭉툭한 곤봉 같이 생긴 무기로 부지런히 퓨마를 두드리기 시작하는데 그 곁으로 도일이 다가가 붙었다. 그리고 떡배가 후방에서 공격 준비를 마쳤다.

형일이 어느 정도 몬스터의 관심을 끌어 놓으면 그 때부터 공격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것도 모두 경험을 통해서 조금씩 습득한 사냥 요령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2급을 사냥하는 것이라서 처음인 형일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퓨마 몬스터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형일씨가 확실하게 2급 몬스터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으니 말입니다. 저 정도면 시간이 걸려도 혼자서 한 마리는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어려워도 혼자서 두 마리를 잡고 시간을 끄는 것도 가능하겠고 말입니다."

"그런가요? 그걸 딱 보고 아시나요?"

"하하, 제가 에테르나 포스 같은 기운에 민감해서요. 그것도 제가 가진 재주 중에 하나죠."

"어쩐지 자랑 같은데요?"

둘은 앞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느긋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뭐해요? 지금 떡배 아저씨랑 싸우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어쩜 그렇게 태평해요?"

정진이 경호원이 둘을 보며 야단을 한다.

"조금 느긋하게 있어요. 정진이씨. 제가 그랬잖아요. 형일씨 혼자서도 저 몬스터를 감당할 수 있겠다고요."

"언제요?"

정진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묻는다.

"박사님과 제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 알고 정작 무슨 내용을 이야길 하고 있었는진 모르는군요?"

세진은 정진이의 상태를 짐작하곤 그렇게 물었다.

"에? 네. 그게 그러네요. 생각해보니까 무슨 이야길 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고 있었네요."

정진이가 조금 생각을 해 보더니 실토를 하고 만다.

"하하하. 지금은 또 절 보시느라 저쪽 싸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못 보시고 있죠?"

"네?"

"아뇨. 특이한 집중력이다 싶어서요. 한 곳에 집중하면 주변의 변화에는 무감각한 그런 면이 있으시네요."

"아, 좀 그런 것 같기는 해요."

"그런 것 같은 게 아니라. 그래, 넌."

김박사가 세진의 말에 쇄기를 박아준다.

그 사이에 정진이는 다시 김형일 등이 퓨마 몬스터와 싸우는 데에 정신이 팔렸다. 김혜인 박사의 말이나 세진의 말은 뒷등으로 흘리고 있다.

김혜인 박사도 그런 정진이의 모습에 익숙한 듯이 다시 세진을 본다.

"확실히 잘 만들었어요."

"뭐가요?"

"저 갑옷들이요. 호호홋. 제가 설계를 하기는 했지만 역시 어리 공방의 실력은 대단한 것 같아요. 저렇게 완벽하게 만들어 내다니 말이죠. 거기다가 사람마다 체형이 조금씩 다른데 그것까지 고려해서 만들어 낸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예요."

"뭐 제 친구들 솜씨가 워낙 좋기는 하죠."

= 온다. 온다. 또 온다.

아직 도일 등의 싸움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한 마리의 몬스터가 접근한다고 어리 앵무가 경고를 한다.

"흠. 이번 녀석은 제가 잡아야 할 것 같군요."

"그럼, 저는요? 누가 지켜요?"

"그야 정진이 경호원이 있잖습니까? 그리고 오래 안 걸립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진이 경호원!"

"넵!"

갑작스런 호명에 정진이가 바짝 긴장을 하고 평소 하지 않던 각이 잡힌 대답을 한다.

"김 박사님 부탁해요. 저는 저 녀석 정리하고 오죠."

세진은 한 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퓨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정진이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상태로 달려나갔다.

"앗! 박세진님."

푸드드드득 푸드득.

세진이 달려가자 세진의 어깨에서 어리 앵무가 날아올라서 김혜인 박사의 어깨로 자리를 옮겼다.

= 지켜. 나를 지켜. 정진이 바보.

"저, 저게 왜 남아서 사람 속을 뒤집어? 너 가만있어. 지금 그럴 때가 아니거든?"

= 그래도 되는 때. 안전함. 안전함.

"뭐라는 거야? 저 상황 모르는 새는?"

정진이는 어리 앵무에게 눈을 한 번 흘겨 주고는 자세를 바로 하고 소총을 가슴으로 끌어 올려 언제든 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이제 몬스터가 달려들면 최후의 보루는 자신인 것이다. 그런 생각에 정진이의 입술이 바짝 말라 들어갔다.

하지만 실제로 정진이 경호원이 총을 쏠 일은 생기지 않았다. 세진이 빠르게 몬스터를 정리하고 제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도리어 일부러 총을 쏠 기회를 주며 분위기에 적응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렇게 세진 일행의 페루 의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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