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88화 (88/298)

< -- 어리의 기행과 그 희생자들 -- >

세진은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이번에 세진이 세계적으로 에테르 코어의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서 에테르 코어 감지 장치를 보급했다.

그런데 일부 국가에서 그것으로 이면 공간의 유지 코어를 발견해 냈다는 사실을 근래에 알게 되었다. 실상을 보면, 세진이 알기는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그런 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해 왔던 것으로 보였다.

이면 공간을 공략해서 우두머리를 잡은 후에도 공간이 무너지지 않고 있던 곳을 기록해 뒀다가 에테르 감지 장치를 가지고 들어가서 코어를 수거해 낸 것이다.

일반 코어 하나와 천공기 하나를 허비해서 100% 화이트 코어를 얻을 수 있으니 너도나도 그 작업을 했던 모양이다.

"어쩐지 천공기 수요가 늘어났다 했어. 화이트 코어를 그렇게 얻었으니 천공기를 확 보할 여유가 된 거겠지."

세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속이 쓰렸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미국에서 들어오는 화이트 코어 중에 이면 공간 유지 코어가 다량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테멜의 어리가 알게 되면서다. 사실상 세진도 그냥 화이트 코어를 놓고 보면 그 차이를 알 수가 없다. 오직 화이트 코어 중에서 테멜 코어에 흡수가 되는 것이 이면 공간 유지 코어인 것이다. 그래서 화이트 코어의 차이를 금방 알지 못했다. 더구나 어리가 이면 공간 유지 코어가 테멜에 들어오면 얼씨구나 하고 집어 삼키고 말이 없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그러다가 화이트 코어의 수가 모자란 것을 추궁하지 어리가 징징거리며 털어 놓은 내용이 그랬다. 화이트 코어 중에 이면 공간 유지 코어가 제법 섞여 있다고 말이다.

이후로도 차분하게 살펴보니 여러 나라에서 이면 공간 유지 코어가 대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말도 없이 에테르 감지 장치를 엉뚱한 곳에 쓰면서 입을 싹 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세진의 기분이 좋지 않을 밖에. 어리가 세진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고 코어를 흡수하는데 정신이 없었으니 당연히 야단을 맞을 밖에.

"어쨌건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천공기 보급은 할 수가 없네?"

세진은 1급 천공기를 영구적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서 보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야만 세계의 몬스터 영역을 빠르게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젠 2급 몬스터 영역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1급 몬스터 영역이라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천공기 보급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게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천공기가 있으면 이면 공간을 비밀스러운 곳으로 이용할 세력이 세상에는 넘쳐나는 까닭이다.

밖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숨어서 하기에 얼마나 적당한 곳인가. 그런 곳을 마음대로 사용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영구 천공기다.1회용은 화이트 코어 반 개라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그런 비밀 공간을 드나들기 위해서 쓰기가 어렵다. 비용이 너무 과다한 것이다.

하지만 영구 천공기가 있으면 출입하는 비용이라야 1등급 에테르 코어 하나면 족하 니 문제가 아니다.

그 때문에 세진이 세웠던 천공기 보급 계획은 완전 백지화하게 되었다. 이제 이면 공간이 유지되는 이유가 이면 공간을 유지하는 코어가 따로 있기 때문이란 사실이 알려졌으니 예전처럼 우두머리가 사라진 이면 공간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사라진 것이다. 그 전까지는 비밀스럽게 사용하려는 생각은 있었어도 불안해서 망설였지만 이젠 그렇지 않으니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천공기가 있다면 세계 곳곳에 비밀 장소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니 천공기 보급을 할 생각이 싹 사라진 세진이다.

"뭐 전에도 천공기를 보급한다고 하면서도 불안하긴 했지. 그런데 그걸 알까 모르겠네? 이면 공간에 오래 놔둔 물체들은 이면 공간에 동화된다는 사실을 말이야. 열흘 정도 거기 놓아뒀다간 밖으로 가지고 나오지도 못할 텐데? 공간이 무너지면 그것들도 함께 사라지는데 말이야. 크큿. 나중에 비밀리에 뭔가 하고 있는 곳에 들어가서 유지 코어를 꺼내면 어떤 일일 벌어질지 궁금하네."

세진이 이면 공간의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면서도 크게 고민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세진이 예전 시구문에서 실험을 해 본 결과로는 이면 공간에 속한 물건은 점차 조금씩 물성이 변해서 이면 공간의 유지 코어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그렇기 된 이후에는 이면 공간이 무너지면 다른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그것들도 사라지게 된다. 이면 공간 밖으로 그것을 꺼내 오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여기에 아주 중요한 비밀이 있는데 이면 공간에서 어느 정도 물성이 변한 것들 중에서 간혹 쓸 만한 것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무작위적인 확률의 싸움인데, 어쨌거나 이면 공간에서 5일에서 7일 정도가 지난 물체들은 이면 공간 밖으로 나오면 기이한 변화를 일으켜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물질 중에서 쓸 만한 것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세진도 그것에서 어떤 규칙을 찾지 못하고 그저 '랜덤'이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어쨌건 그런 현상이 이후에 어떤 돌발변수를 만들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진은 천공기 보급 계획을 접으면서 대신에 2급 이면 공간에 대한 제거 의뢰를 받기로 했다.

2급 화이트 코어를 얻고자 하는 목적도 있고, 주춤한 벗(友)의 브랜드 가치도 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물론 떡배와 도일을 단련시키려는 목적도 없잖아 있었다.2급 몬스터 영역은 한국에는 하나도 없다. 세 곳이 나타났고, 그것을 모두 세진이 나서서 없애버렸다. 드러나지 않은 2급 이면 공간을 찾아서 없앤 것까지 합치면 한국에서만 열 곳이 넘는 2급 이면 공간이 사라졌다. 물론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정말 소수여서 아직까지도 그런 비밀은 유지가 되고 있었다. 2급 몬스터 영역이 정리된 것은 알려졌지만 드러나지 않은 이면 공간을 찾아 처리한 것은 비밀에 묻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선 2등급 몬스터 영역은 격리시킨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다. 없앨 수 있다면 당장 없애고 싶은 곳에 몬스터 영역이 있는 나라가 한 둘이 아니다.

세진이 2급 이면 공간 제거 의뢰를 받기로 한 것을 떡배와 도일에게 알리자 둘 모두 반대하지 않았다.

이젠 1등급 이면 공간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것이 너무 쉬워서 흥미가 떨어진다고 투덜거리던 상황이니 2급 이면 공간 공략을 마다할 일이 아닌 것이다.

거기에 의뢰를 받는다는 발표를 하기 얼마 전에 김형일 병장이 제대를 하고 어리 공방 소속이 되었다. 어차피 각성자라서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한 김형일이 치가 떨리는 국방부와 정부를 피해서 세진의 어리 공방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진은 헌터들의 기본적인 구성을 짤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탱커 역할을 할 사람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실 김형일은 MG50이라는 무시무시한 화력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공격수였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몬스터를 완벽하게 막아 낼 수 있은 방패 역할을 맡길 사람이 없었다.

김형일은 몸 속의 기운으로 스스로의 육체를 강화시켜서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물론 정부 소속으로 활동할 때에는 후방에서 MG50 사수로 활동을 했지만, 세진이 주목한 김형일의 역할을 그것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4등급 이상의 몬스터를 사냥해야 할 텐데, 그러자면 마땅한 방패가 필요하고 그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김형일을 찍은 세진이었다.

덕분에 김형일은 세진이 준비한 갑옷을 입고 1등급 몬스터를 방패와 둔기로 때려잡는 연습을 한동안 해야 했다.

"이거 정말 대단하지 말입니다. 아, 대단합니다. 몬스터의 공격이 전혀 들어오지 않습니다."

김형일은 처음에는 몸싸움을 해야 하는 것에 엄청난 부담을 느꼈지만, 오래지 않아서 자신의 역할에 완벽하게 적을했다.

그는 자신이 입은 갑옷의 능력에 대한 믿음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육체에 대한 자신감도 새롭게 가지게 되었다.

실제로 갑옷이 없이도 1등급 몬스터는 육박전으로 잡을 자신이 생기기도 했다.

"김형일씨는 계속해서 몸속의 기운을 키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각성자들의 기운을 일컬어서 포스라고 하기로 했다니까 저도 포스라고 하겠습니다. 그 포스를 비우고 채우고 또 비우고 채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육체에 포스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자연스럽게 몸에 축적할 수 있는 포스의 총량도 늘어나게 됩니다."

"그건 그렇지. 보라고 내가 그 갑옷 입고서 얼마나 많이 성장을 했는지 동생은 모를 거야. 암. 그러니까 동생도 열심히 하라고. 그럼 부쩍부쩍 성장하는 걸 느끼게 될 테니까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열심히 해야지 말입니다. 아니 해야죠."

김형일은 군대 말투를 뜯어 고치느라 아직도 고생을 하고 있었고, 떡배는 같은 각성자고 또 나이가 제일 어리다는 이유로 김형일을 많이 챙겨주는 편이었다.

사실 떡배는 국정원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선도일을 대하는 것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는데, 이제 정부에 불만이 있는 김형일이 들어왔으니 서로 입장이 비슷하다 여기고 더 친밀감을 표시하곤 하는 것이다.

"세진님 드디어 발표를 하시는 겁니까?"

"그거시 연락이 얼마나 올지 모르겠습니다. 세진님. 지금 막 가슴이 뛰고 그러는데 말입니다. 이제 제 이름자도 세계적으로 놀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동생들이 저 출세했다고들 할 겁니다."

꼬독! 꼬독! [이번에도 역시 특정 나라들에 대한 보이콧이 있을 예정이십니까?]김형일과 떡배가 흥분을 하는 것과는 달리 도일은 상황을 차분하게 바라보며 실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뭐 개인적인 감정으로 의뢰자를 구별하는 것이 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도 인간인데 말입니다. 저는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안 줍니다. 줬던 떡도 뺏고 싶은 사람이 저죠."

"하하. 뭔 말인지 확 알겠습니다. 세진님. 그야 그렇지요. 마음에서 내키지 않는 일은 안 해야죠. 그게 스트레스 안 받고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떡배 형님 말씀이 맞는 말이지 말입, 아, 그거 참. 말투가 잘 안 고쳐지네."

"하하하. 그거 신경을 쓸수록 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형일씨 그냥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됩니다."

꼬독! 꼬독! [여러 나라에서 의뢰가 들어오면 어느 나라부터 가실 겁니까? 혹시 생각해 두신 나라라도 있습니까?]

"해외여행 아닙니까. 세 분은 어디 가시고 싶은 곳이 없습니까? 가는 김에 여행도 하는 걸로 하고 가죠."

세진이 김형일과 떡배, 도일 세 사람과 한 번씩 눈을 마주치며 대답을 기다렸다.

"여행하면 뭐니뭐니해도 유럽 여행이!"

"뭐시 유럽이여 유럽이. 미쿡. 미쿡이 젤이지. 카지노의 본고장 라스베가스. 응? 라스베가스 거기가 딱이여."

꼬독! 꼬독! [여행이라면 죽기 전에 한 번은 가 봐야 한다는 수도자들의 나라 인도가 제일입니다. 더구나 수련 능력자들도 많고 각성자의 수도 많은 곳이 인도니까 한 번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유럽에도 각성자는 많이 있습니다. 도일씨. 그리고 유럽에 수련 능력자들 중에 마법을 수련했다는 이들도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던데 그들도 궁금하지 않습니까?"

"어따, 뭔 소리를 하고 있어? 일이 아니라 여행! 세진님이 여행을 하자고 안 했어? 헛소리들 하지 말고 딱 노는 곳으로 가는 거지. 불야성의 도시 환락의 도시 바니걸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

"..."

"..."

세 사람의 시선이 떡배에게 몰린다. 그리고 예전 인형 사건 때에 서로를 보던 눈빛으로 떡배를 본다.

"아, 뭘 또 그렇게 보고 그런... 설마? 아닙니다. 아니에요. 절대 아닙니다."

"불야성."

"환락."

꼬독! 꼬독! [바.

니.

걸. 당첨.]털썩!

"아니라고 해도 왜 나만 가지고 이러나 몰라. 그리고 라스베가스 하면 딱 떠오른 것이 바니걸인걸 어쩌란 말여? 지들은 안 그러는 것처럼 왜 나한테만..."

떡배의 몸이 소파 안으로 한 없이 빠져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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