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87화 (87/298)

< -- 어리의 기행과 그 희생자들 -- >

어리 공방의 옥상에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열심히 텃밭을 일구고 있었다.

봄이 왔으니 새로 흙 갈이도 하고, 씨앗도 뿌리고 모종도 심고, 도일이 식구들 모두를 끌어내서 일을 맡긴 것이다.

한동안 묘한 인형 때문에 의기소침해 있었던 도일도 돌아가는 분위기가 자신만 의심받고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눈치 챈 후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거기, 그건 따로 심어야죠. 그거 모종이지만 자라면 커진다고요. 그냥 심으면 안 되는 거 몰라요?"

정진이 경호원은 의외로 텃밭 가꾸기에 소질이 있는 모양이어서 이런저런 지휘를 맡고 있고, 나머지는 시키는 대로 열심히 흙투성이가 되어 움직였다. 따뜻한 봄날, 그렇게 심은 채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일의 손에 수확되어 식탁에 오르게 될 것이다.

"김 박사님."

"네? 왜요?"

"에르터 코쿤은 어때요? 여전히 그 상탠가요?"

"저도 새로 에테르 도면을 만들려고 노력중이지만 전과 같은 운은 아직 없어요. 고만고만한 결과만 나오거든요. 거기다가 에테르 코어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자주 실험을 할 수가 없으니까 좀 답답하기도 하고요."

"에테르 코어에서 에테르가 빠져 퍼지지 않도록 만들어 줬잖아요. 그런데 왜 실험을 못해요?"

"그거야 실험을 할 때에 발생하는 에테르 때문이죠. 그게 쌓이면 주변에 몬스터 영역이 나타날 수도 있잖아요."

"적어도 주변에 1급이나 2급 이면 공간은 없다고 확인을 해 줬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요?"

"그래도 불안하죠. 만약 잘못해서 그보다 등급이 높은 몬스터들이라도 나타나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최대한 조심해서 실험을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괜찮아요. 아직 에르터 코쿤과 비슷한 수준의 효율이 있는 에테르 사용 장치는 나오지 않았어요. 지금까진 독보적이죠."

"하지만 요즈음 다른 나라들에서도 제법 성능이 좋은 것들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박사님만큼 실력이 좋은 사람이 있어서 새로운 장치를 만들어 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고 말이죠."

"다른 곳에서 새로운 장치를 만든다고 해도 이미 얻을 이익은 충분히 얻었어요. 대해그룹도 이미 손익분기점은 넘겼다고 했으니 이젠 아무래도 괜찮은 거죠."

"하긴, 대해그룹에선 회사 브랜드 가치를 높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익을 얻었다고 해야겠군요."

"호호호. 맞아요. 맹도강이 거의 후계자로 자리를 굳힌 것도 에르터 코쿤의 공이라면 공인 거죠."

세진은 맹도강이란 사내를 잠시 떠올렸다가 지웠다. 어차피 깊이 관계를 맺은 사람도 아니었고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미래에 대해그룹의 수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인맥으론 알아둬서 나쁠 것 없는 사람이라는 정도가 맹도강에 대한 세진의 평가였다.

세진과 김혜인 박사는그 후로도 에르터 코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세진은 김혜인 박사의 연구실이 있는 4층에 에테르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구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다.

까똑! 까똑! [서대철 부장님께서 에테르 코어 탐지 장치가 조금 더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동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아무래도 수시로 돌아다니며 신고하지 않고 숨겨 놓은 에테르 코어를 찾을 일이 늘어나는 모양입니다.]그런 세진에게 선도일이 문자를 날렸다.

"그건 좀 더 기다리라고 하세요. 다른 나라들도 공항 정도는 검색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죠. 한국만 챙기다간 저도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맞지. 아무렴. 지금도 어딜 봐도 한국이 제일 득을 많이 보고 있는데, 이러다가 윗분들이 심술이라도 나는 날에는 곤란하게 된다고. 우리 세진님이 아무리 발언권이 좋 다고 해도, 조직에선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일처리는 언제 동티가 나도 나게 되어 있다니까?"

"그건 떡배씨 말이 맞습니다. 참, 도일씨."

꼬독! 꼬독! [네?]

"같은 공략팀에 김형일 병장, 아직 전역 안 했습니까?"

꼬독! 꼬독! [아, 그 사람요. 지금 군 영창에 있다던데요?]

"네? 영창이요?"

꼬독! 꼬독! [뭐 들어보니 제대 시켜 달라고 땡깡을 부려서 간단한 군법 위반으로 영창에 잠시 넣어 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쪽도 문제가 좀 있는 모양입니다. 이제 민간인이 되어야 하는 사람을 군대에서 억지로 붙들고 있는 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건 좀 문제가 있네요. 김형일 병장이 제대하면 저와 함께 일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말입니다. 물론 그냥 말로만 한 약속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을 그렇게 억류하는 것은 좀 그런데요?"

세진이 은근히 기분이 나쁘다는 투로 도일에게 이야길 했다.

사실 김형일 병장이 함께 일하자고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데리고 오고 싶은 욕심은 이전부터 있었으니 이번 기회에 끌어들일 수가 없을까 머리를 굴리는 세진이다.

"그 헐크라는 사람 말입니까? 세진님?"

떡배가 세진의 말에 아는 척을 하고 나선다. 김형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이 육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더니 떡배는 김형일 병장을 헐크라고 불렀다.

"맞습니다. 그 사람이죠. 그런데 군대에서 무리수를 두는 거 아닙니까? 굳이 군대일 이유는 없을 텐데요? 도일씨처럼 개인 신분으로 활동을 해도 정부의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을 텐데, 굳이 군대에 묶어 두려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세진이 도일을 보며 말하자 도일이 설명을 했다.

꼬독! 꼬독! [그 사람이 중화기를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에 민간인에게 총을 맡길 수 없다는 이유가 가장 큽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처럼 사회인 신분으로 바꿔도 상관없죠. 하지만 제대를 시키면 총을 함부로 사회인에게 맡길 수가 없기 때문에 곤란하거든요.]

"그거시, 뭐 이해갈 갈 듯 하면서도 안 가는 이유네. 이면 공간 공략팀이면 이미 공무원이라고 봐야 하는데, 그런 공무원이 총을 지니는 것을 문제라고 하면 안 되는 거지. 군인 아니고도 총 들고 다니는 넘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데."

떡배는 자기 손보다 작은 모종삽으로 땅을 파다가 여의치 않자 능력을 이용해서 땅을 파고 뒤집고 구멍을 내고 하면서 혼자서 대 여섯 사람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에 꼬박꼬박 끼어들고 있다.

확실히 연습을 하면 할수록 각성자의 능력도 늘어난다. 더구나 떡배는 세진이 만들어준 갑옷으로 기운의 회복이 월등히 빨라서 연습을 해도 몇 배는 더 할 수 있는 조건이니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도일씨, 김형일 병장 그렇게 잡고 있는 것이 불법이라면 그냥 풀어 주라고 하죠? 합법이라면야 나도 끼어들 명분이 없지만 불법이면 그 사람 우리 팀으로 끌어 오고 싶은데 말이죠."

결국 세진이 도일에게 짐을 떠맡겼다.

이제 이 소식이 국정원의 서대철 부장에게 들어가면 또 몇 단계를 거쳐서 김형일 병장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새해가 되면서 서대철 과장이 부장으로 승진을 했으니 파워도 더 강해졌을 거라고 믿는 세진이었다. 살짝 공권력에 대한 간섭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쓸 수 있는 힘을 일부러 아낄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 세진이다.

새로운 소식으로 지구가 뜨겁다. 요즘 어떤 일 때문에 지구 전체가 들썩이면 그것은 거의 몬스터와 연관이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몬스터와 관계된 소식이었는데 세진은 물론이고 떡배도 그 소식을 보곤 꽤나 놀랐다.

도일은 이면 공간 공략에 나서고 없는 상태라 부리나케 달려온 떡배만 세진과 거실에서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이거슨 우리 갑옷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요? 세진님 안 그렇습니까?"

"아직 정확한 것은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가 드린 갑옷과는 기본적인 차이가 있습니 다. 여기 보면 갑옷에 에테르 코어를 넣는 부분이 있는데, 코어를 넣으면 갑옷의 금속이 강력한 방어력을 지닌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이 금속이 특별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건 우리 갑옷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런 거 같은 데요?"

"조금 다릅니다. 그 정도로는 떡배씨나 도일씨가 느끼는 부수 효과를 기대할 수가 없지요. 떡배씨는 코어를 손에 쥐고 있다고 기운의 회복이 빨라지고 그러던가요?"

"아니지요. 그건. 확실히 갑옷을 입어야만 그런 효과가 있었지요."

"그게 바로 제가 만든 갑옷과 여기 이 화면의 갑옷의 차이일 겁니다. 각성자의 기운을 회복시키는 것은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하니까요."

"아, 그렇군요. 그럼 도일씨가 얻는 효과는 어떻습니까?"

"그건 여기 이 갑옷도 비슷한 기능을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효과로 보면 제 갑옷에는 미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드네요. 일단 제 갑옷은 에테르 코어의 에테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 변형을 시킨 거고, 그것이 떡배씨에게 기운을 회복하는 효과를 주면서 또 갑옷 자체가 착용자에게 그 기운을 집중시키는 기능이 있어서 도일씨가 더 확실하게 내기를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니까요."

"그렇구먼요. 역시 짝퉁은 짝퉁인 모양이네요."

"그렇게 말할 건 아니죠. 우리 갑옷은 아직 비밀 장비 아닙니까. 여하간 이걸 어떻게 구해보긴 해야겠네요. 역시 사람이 많으니 점차 새로운 것들이 나오고 그러네요."

"비밀이 뭐 정말 비밀이기나 합니까요? 도일씨 공략팀도 모자라서 다른 공략팀 두 팀에도 갑옷을 맞춰 주셨음서요. 그 정도면 알 놈들은 다 아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래야 우리도 주문을 좀 받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돈도 벌고 몬스터 퇴치에 도움도 줘서 인류의 안전에 이바지도 하고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아따, 그게 그렇게 생각하면 좋긴 하지만서두 자꾸 경쟁자가 생기고 그러면 또 얼토당토 않은 것들이 간을 본다고 슬쩍 찔러 보고 그러는 일이 생긴다니까요? 제가 조직을 이끌어 보니 꼭 그런 놈들이 있더란 말이지요."

"그렇긴 하죠. 한동안 우리 친구들이 조용히 지내고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서서히 머리를 드는 세력들이 있긴 해요. 떡배씨도 그것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죠?"

"그게, 좀 거시기니 하죠. 점점 늘어서 이젠 주변에 그 놈들만 있는 것 같으니 말입니 다요."

떡배는 봄이 되면서 갑자기 늘어나고 있는 감시자들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감시라면 브로커 일을 하면서 반평생을 당하며 살았던 일인데, 어리 공방에 와서도 감시를 당하고 있으니 속이 상한 것이다. 거기다가 각성자로서 능력이 발전하면서 떡배의 감각도 크게 좋아진 상태라 그의 기운을 실처럼 풀어서 뻗으면 반경 150미터 내에 있는 곳이면 어디건 살펴볼 수가 있을 정도다.

그것만 놓고 보면 세진의 디버프 기반 에테르의 능력보다 범위가 넓었다. 물론 세진은 범위 전체를 한꺼번에 살피는 것이고, 떡배는 의심스런 곳을 하나하나 일일이 에너지 실을 뻗어서 살펴야 한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세진은 아직도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펼치는 넓이가 반경 90미터도 넘지 못하고 있었다.

"떡배씨가 경고를 해 주세요. 사람은 다치지 말고 기기들을 박살내는 정도로 하죠. 어리 공방 내에서 떡배씨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이라면 누구든 상관말고요."

"국정원도 있으면요?"

"상관없잖아요? 국정원이건 뭐건? 그리고 차별하면 국정원도 곤란할 거예요. 그러니 똑 같이 대해주세요."

"으흐흐흐. 알겠습니다. 세진님.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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