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84화 (84/298)

< -- 떡배가 오고, 어리는 큰 사고를 쳤습니다. -- >

그 때, 세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2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테멜로 가지고 들어갔다.

그리고 코어를 테멜 코어가 있는 방의 석탁 위에 올려놓았다.

세바스가 준비한 석탁은 테멜 내부의 모습이 바뀔 때에도 여전히 테멜 코어의 위를 덮은 모습으로 유지가 되었다.

그래서 보통 이면 공간 유지 코어는 그 석탁 위에 올려놓고 테멜 코어가 흡수하도록 하고 있었다.

사실 테멜 내부의 어디에 코어를 두더라도 흡수가 되가 때문에 장소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까이 두는 것이 흡수하기 더 편할 것 같아서 석탁 위에 두곤 하는 것이다.

- 어떻게 변할지 굉장히 궁금해요. 세진님도 그렇죠?

"그래. 나도 궁금하다. 그리고 얼마나 오래 걸릴지도 궁금하고."

- 에헴. 그럼 제가 여기서 지키고 있을 게요.

"응?"

- 여기서 테멜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키고 있으면서 다 보고 세진님께 설명을 해 드릴게요. 어리는 착하니까 그렇게 해 드릴 수 있어요.

"그래? 그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나는 여기에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 그러니까요. 제가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리는 잘 할 수 있어요.

세진은 그래서 어리를 테멜에 두고 어리에게 테멜의 변화를 지켜보게 했다.

이전에도 어리를 테멜 공간에 남겨두고 나왔던 일이 종종 있었기에 이번에도 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상상치도 못했던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는 세진도 알지 못했다.  세진은 틈만 나면 테멜로 들어가서 상황을 살폈지만 테멜 코어가 천천히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하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 테멜 공간 내부의 변화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닷새가 지난 후, 세진이 점심을 먹고 2층 공방에 숨겨 놓은 테멜로 들어왔을 때, 세진을 맞이한 것은 부서져서 반쪽이 된 석탁과 그 중앙에 있는 어리의 모습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응? 어리야!"

- 흐아앙. 저 어떻게 해요? 세진님. 저 이젠 어떻게 해요. 흐아앙.

"아니 무슨 일이야? 말을 해야 알지? 석탁은 왜 이 모양이야? 어? 어리 넌 또 왜 여기 붙었어? 안 움직이잖아."

- 그러니까요. 저 이제 어떻게 해요? 흐흑.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해 봐라. 어리야. 말을 해야 상황을 알지."

- 그러니까요. 어제 세진님 나가시고 나서요.

"그래."

-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석탁이 쪼개졌어요. 그러면서 그 밑에서 코어가 나왔는데요.

"그런데?"

- 그 코어가 세진님이 두고 간 2등급 코어를 냉큼 삼켰어요. 그냥 물방울이 합쳐지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가 되어 버렸죠.

"그건 좀 특이한 형상이구나. 조금씩 흡수를 한 것이 아니라 합쳐졌다? 그런데?"

- 그리곤 아무 변화도 없이 조용하잖아요.

"그래서? 그런데 넌 왜 여기 이렇게 붙어 있어? 네 밑에 테멜 코어가 있는 거냐?"

- 흐흑, 그게요. 그냥 신기해서 살짝 건드려 본다고 제가 코어를 건드렸거든요?

"응? 네가?"

- 에테르를 이용하면 제 몸체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냥 정말로 살짝 건 드린 건데요.

"그래. 알았다. 원래 호기심이 그런 거지. 그래서?"

- 흐아앙. 그런데 테멜 코어가 저를 막 삼키려고 해서, 저도 너무 놀라서 테멜 코어를 흡수했거든요.

"응? 테멜 코어가 너를 삼키려고 해?"

- 그게 정확하진 않은데 제가 가진 에테르를 뽑아 먹으려고 하니까 저도 반대로 테멜 코어의 에테르를 흡수하려고 한 거죠. 빼앗기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흐앙 저는 여기 이렇게 고정이 되어 버린거죠.

"테멜 코어는?"

- 제가 다 먹어 버렸어요.

"그런데도 테멜은 유지가 되는데?"

- 그게... 이젠 제가 테멜 코어인 것 같아요. 이 테멜 전부가 제 몸처럼 느껴져요. 흐아아앙. 저 뚱뚱이 어리가 된 거 같아요. 거기다가 이젠 다른 곳에 가지고 못해요. 흐아앙. 어떻게 해요. 흐앙.

"어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결국은 우리 어리가 테멜 코어를 흡수해서 테멜 코어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거네?"

- 그렇다니까요. 흐아앙.

"그런데 왜 우는 건데? 밖으로 못 나가서? 아니면 덩치가 커져서?"

- 이젠 세진님이랑 같이 놀지도 못하고...

"왜? 지금도 이렇게 같이 있는데?"

- 어리 앵무도 이젠 못 움직이고...

"그건 좀 방법을 찾아보자. 네가 테멜 밖으로도 전파를 보낼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 방법이 있겠지. 응?"

- 막, 세진님이 테멜 망쳤다고 화낼 것 같기도 하고... 무섭고.

"안 그럴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보다 우리 어리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거냐? 무사해?"

- 네에. 어리는 괜찮아요. 그런데요...

"왜? 무슨 문제가 있니?"

- 어리는 이제 정말 커다란 물건도 만들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흐앙, 테멜이 전부 저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재료만 있으면 테멜 안에서 커다랗게 뭐든 만들 수가 있게 되었다구요. 흐아앙. 이제 귀여운 어리는 없어요. 뚱뚱이 어리가 태어난 것이에요. 흐아앙.

"너 그거 좋아 하는 거냐? 아니면 싫어하는 거냐? 말투가 아주 잘 되었다는 듯 한 말툰데? 너 우는 것도 흉내만 내고 있는 거지? 응? 맞지."

- 그렇지 않은 것이에요. 어리는 이렇게 된 것이 무척 속이 상한 것이에요.

"흐음."

세진은 어리의 반응에서 확실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뭔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것 같은데 결과는 나쁘지 않으니 어떻게든 우는 것으로 유야무야 넘어가고 싶은 속이 훤히 보인 것이다. 결정적으로 어리의

'-것이에요.'

는 기분이 좋을 때에만 사용하던 어말어미가 아니던가.

"그래. 그것 참 곤란하게 되었구나. 그런데 어리야."

- 네 세진님.

"혹시 말이다. 이 테멜 공간을 네 마음대로 변경할 수도 있니?"

- 당연한 것이에요. 에테르만 있으면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한 것이에요. 지금도 에테르가 무척 많아서 확장이나 구조 변경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에요.

"그럼, 일단 한 곳은 재료 보관소, 다른 한 곳은 물품 제작소를 만들고, 여긴 우리 어 리와 나의 공간으로 하자꾸나. 어떠냐?"

- 네에. 좋아요. 그렇게 할래요. 그래도 에테르가 엄청 많이 남는데 그건 나중을 위해서 저장을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이곳에서 밖으로 전파를 내보내고 또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테멜 코어가 아니지만 테멜 코어의 기능을 알 수 있어요. 아직 모든 정보를 정리하지 못했지만 정리가 끝나면 어리는 굉장한 어리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 좋겠다. 우리 어리."

세진은 그렇게 맞장구를 처 주면서 어리의 변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세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 세진은 며칠 동안 두문불출하며 2층 공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며칠 동안 어리의 변화를 점검한 세진은 한 편으로는 감탄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테멜을 장악한 어리는 테멜의 공간을 이용해서 물건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 규모의 작업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엄청난 물량을 뽑아내는 것이나 혹은 거대한 크기의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존재해서 설계도가 없이는 물건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가 거대한 크기라고 하지만 그것도 이전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정확하게 말하면 대형 버스 정도의 크기가 한계였다.

그 이상은 크기는 테멜에서도 만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테멜 내부에 그 이상의 공간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렇게 크기를 키우면 그 안에서는 어리의 물품 제조 능력을 쓸 수가 없었다. - 제가 좀 더 커지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앞으로 더 많은 코어들이 필요해요. 세진님.

"얼마나 필요한데?"

- 뭔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같아요. 그리고 등급이 높은 것들은 그 나름대로 특별한 기능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2등급을 흡수하면서 외부에도 일정한 영역까진 테멜의 영향력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죠.

어리는 그 말대로 테멜 공간을 외부로도 만들어 내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그 때문에 어리가 들어있는 테멜은 어리 앵무의 배에 들어갔고, 어리 앵무는 어리의 통제를 받아서 정말 앵무새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어리의 본체가 있는 어리의 방에서만 가능했던 일이, 이제는 뱃속에 어리의 테멜을 품고 있음으로 해서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게 된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아직 테멜 안에서 밖으로 전자 기기를 사용한 통신은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사실상 어리 앵무를 테멜 안의 어리가 조작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어리 앵무의 가까이에 있는 전자 기기를 테멜의 어리가 사용할 수 있으므로 별 상관이 없는 일이 되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어리가 테멜과 융합을 함으로서 어리가 소비하는 에테르의 양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 어리는 죽은 듯이 있기 싫어욧. 어리는 움직이고 싶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세진님이 어리 배가 고프지 않게 해 주세요. 네?

"그냥 화이트 코어로 어떻게 해결을 하지 그러냐? 꼭 내가 주입을 해 줘야 하냐?"

- 다르다구요. 정말 세진님이 주시는 에테르랑 화이트 코어에서 나오는 거랑은 차이가 너무 크다구요. 어리는 세진님의 에테르가 좋아요. 기분도 좋고, 뭔가 무징무징해지는 것 같아요.

"무징무징은 무슨."

세진은 투덜거리면서도 어리에게 틈틈이 에테르 주입을 해 줘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그 덕분에 에테르 로드 수련에 이전보다 더 시간을 할애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리야! 아무리 그래도 쓸데없는 물건들은 만들지 말지? 응? 매일같이 이렇게 쓰지도 않을 차나 오토바이 같은 거 만들어 냈다가 분해하고 또 만들었다가 분해하고 하는 이유가 뭐냐? 에테르가 남아돌아? 응?"

- 어리는 원래 탄생 목적이 그런 것이에요. 뭔가를 열심히 만들어야 하는 것이에요.  에테르 걱정이 없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것이에요. 호호홋.

"너 솔직히 말해. 너 테멜 코어를 흡수한 뒤로 다른 변화도 있는 거지? 응? 그렇지?"

- 아니에요. 별로 변한 것은 없는 것이에요.

"아니야. 있어. 음, 테멜 코어도 나름 화이트 코어란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어리는 이제 따로 에테르를 주입받지 않아도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데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니?"

- 우아아, 설마 세진님은 제가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신세로 지내길 원하시는 거예요? 저 자체 충전되는 에테르로는 겨우 숨만 쉬고 살아야 한다고요.

"이것아 넌 숨 안 쉬잖아."

-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말이. 그러니까 세진님은 오해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여전히 세진님의 에테르가 필요한 어리예요.

"휴우.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어. 대신에 이렇게 쓸데없는 것들은 자꾸 만들지 마라. 응?"

- 어리는 알아들었어요. 세진님이 시키는 대로 할 거예요. 네.

'쯧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저 녀석 점점 커서 사춘기가 되는 건 아닌가 몰라. 미운 일곱 살은 지난 것 같은데... 어째 걱정이다. 걱정.'

세진은 이마에 주름이 생기는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어쨌거나 규모 면에선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니게 된 어리가 도일과 떡배의 갑옷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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