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80화 (80/298)
  • < -- 2급 이면 공간 공략, 그런데 테러? -- >

    세진에게 2급, 데블 플레인 기준으로 주황색 등급의 몬스터는 그리 무서운 상대가 아니다. 그것도 지구의 몬스터는 그 힘이 약화된 상태니 어려울 것도 없다.

    깡철이 몬스터는 5미터 남짓의 뱀이었지만 다리가 없는 대신에 목을 두르고 있는 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가 있고, 꼬리에는 뭉툭한 철퇴 같은 모양이 달려 있었다.

    머리는 주둥이을 짧게 줄여 놓은 악어처럼 생겨서 언듯 보면 용을 떠올릴 만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아직 다른 사람들은 신경을 쓰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세진 일행이 들어온 이 이면 공간은 몹시 건조했다.

    '잘못하면 탈수로 고생들 하게 생겼네? 이걸 어쩌나?'

    세진은 열심히 깡철이를 상대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힐끗 보면서 잠시 걱정을 했 다.

    하지만 곧바로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깡철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는 역시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깡철이의 몸에 풀어 넣는 것이고, 그 다음은 깡철이의 몬스터 패턴의 핵심 부위로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옮겨 압축시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세진에겐 이제 숨 쉬듯 간단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일인 것이다.

    쉿쉬쉬쉿 쉬쉿!

    "역시 뱀이었어."

    세진은 쓸데없는 감상을 늘어놓으며 깡철이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그리고 세진의 창을 피해서 위로 날아오르는 깡철의 몸에서 디버품이 작렬했다.

    등에서 이어지다 목에서 끝난 몬스터 패턴의 중심이 목 부분이란 것을 확인하고 터 트린 디버품의 효과는 확실했다.

    목의 일부가 터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하늘로 부상하려던 움직임이 멈추고 경직된 깡철이의 목에 샛노란 기운이 서린 세진의 창이 내려 꽂혔다. 취리릭! 취왁!

    "이건 뭐 운동도 안 되는 녀석이었어?"

    세진은 목이 잘린 깡철이를 보며 가까이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이 이쪽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깡철이 사체를 챙겨 둘 생각인 것이다.2급 몬스터의 사체는 쓸 곳이 많을 것이다.

    취리릭!

    "엇! 이런!"

    콰광!

    털썩 데구르르.

    "아, 젠장할. 쪽 팔리게 이게 뭔 짓이야? 땅바닥을 다 구르고. 젠장."

    세진은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몇 미터를 날아가서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깡철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방심하며 다가가다가 깡철이의 꼬리 공격을 얻어맞고 날아간 것이다.

    그나마도 에테르 방패의 도움이 없었다면 더 흉한 꼴을 보았을 것이다. 급한 상황에서도 거의 본능적으로 발동시킨 에테르 방패가 깡철이의 뭉툭한 꼬리를 막았고, 1차로 방패를 깨고 지나오느라 힘이 줄어든 꼬리를 맞으며 세진이 몸을 날려 충격을 해소한 덕분에 흙투성이가 되긴 했지만 크게 부상은 입지 않은 상태로 일어날 수 있었지만, 세진으로선 정말 쥐에게 코를 물린 호랑이 심정이 이런 걸까 싶은 마음이었다.

    "이런 씹어 먹을 새끼가!"

    촤촤촤촥 촤촤촤.

    세진은 곧바로 깡철이에게 달려들어서 죽어라고 창을 휘둘렀다.  깡철이는 가짜 머리가 잘리는 수모를 당하고, 그래도 상대를 속여서 한 방 먹이는 데까지는 성공을 했지만 애초에 세진과 2급 몬스터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디버프로 몸 안에서는 끊임없이 에테르의 충돌이 일어나는 중에 세진의 창이 사납게 깡철이의 몸을 자르고 베고 찔렀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진은 깡철이 한 마리를 조각조각 냈다.

    "아, 신발끈. 죽은 몬스터 이렇게 긁어 놓으면 승화도 안 되는데 어쩌나?"

    죽은 몬스터 사체에 이질적인 에테르가 주입되면 승화가 한동안 멈추게 된다. 그러니 죽은 깡철이 몸통에 화풀이를 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 몬스터 사체가 그대로 남겨 되는 것은 당연하다.

    세진은 슬쩍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깡철의 몸뚱이를 급하게 지하창고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먼저 잘랐던 머리와 몇 조각의 덩어리는 결국 사람들의 눈에 걸려서 그냥 둬야 했다. 공략팀원들은 깡철이와 싸우는 중에도 세진이 잡은 깡철이의 몸이 승화되지 않고 남은 것을 본 이들이 있었다.

    몸의 일부가 잘려서 떨어져 있어도 따로 에테르를 주입하지 않아도 한 몸으로 인식을 하는지 승화가 되지 않는다.

    "오오오, 저기 봐라. 몬스터 부산물이 나왔나봐! 저기 머리도 그대로 남았어."

    "대단한데? 저거 엄청 비싸지 않냐?"

    "1급도 아니고 2급인데 당연히 비싸겠지. 이야, 땡잡은 거네 저 양반?"

    "우리도 뭐 없을까?"

    "바랄 걸 바래라. 저 양반 여기 모시고 오는 것도 빌고 빌어서 겨우 모시고 온 거라더라. 원래 혼자 다니는 양반이잖아. 거기 조심! 칼들고 설치는 사람이 한눈 팔면 어쩌자는 겁니까?"

    세진 쪽을 보느라 틈을 보이는 수련 능력자를 향해 군인들이 소리를 지른다. 세진은 이미 들킨 깡철이의 부산물들은 그대로 두고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달려갔다.

    튜튜튜튜튜튜튜확!

    그런 중에 드디어 김형일 병장의 MG50 사격이 시작되었다. 세 마리의 깡철이 중에서 한 마리가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온 것을 보고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퍼퍼퍼퍼퍽!

    깡철의 몸에 12.7mm의 탄이 연속으로 틀어 박혔다. 그 위력은 사뭇 대단해서 깡철의 몸이 허공에서 뒤로 연신 밀려나고 있었다. 김형일 병장의 사격은 그야말로 신기라고 부를 정도로 대단했다. 거의 모든 탄들이 깡철이의 몸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세진은 몸을 날리려다가 그 모습을 보고는 멈춰서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김형일 병장의 신체 능력은 힘만 발달한 것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골고루 발달했을 거라는 추측을 했다. 지금 MG50을 다루는 솜씨를 보면 동체시력은 물론이고 순발력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식의 사격은 불가능하다고 세진은 생각했다.

    '총이라, 저게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위력을 높인 총을 준다고 하더라도 결국 3등급까지? 아니 4등급에 상처는 줄 수 있을까? 그것도 특수 제작을 한 총이어야 할 텐데? 그래선 한계가 있겠어. 저 사람의 능력을 다른 쪽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할 거야.'

    세진이 그렇게 김형일 병장의 솜씨를 구경하는 동안 한 마리의 깡철이가 누더기가 되어서 땅에 떨어지고, 그것을 선도일이 나서서 목을 베었다.

    "선도일씨, 조심해. 그 목은 장식이야. 목을 잘라도 안 죽어!"

    세진은 그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고, 선도일은 목이 잘린 깡철이에게 접근하다가 급히 뒤로 몸을 피했다.

    부우웅!

    그리고 도일이 있던 그 자리로 깡철이의 꼬리가 번득이며 지나갔다.

    "아, 고맙습니다."

    선도일은 세진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다시 군인들의 총이 쓰러진 깡철이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았다.

    세진은 다른 두 마리의 깡철 사냥에 도움을 줄까 하다가 그냥 김형일 병장의 곁으로 가서 섰다.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김형일 병장이 가까이 다가온 세진에게 그렇게 물었다.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데 저들의 싸움에 제가 끼어들어서 팀웍을 망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아, 그렇기도 하겠습니다. 아저씨는 계속 우리와 함께 하실 분이 아니시니까 말입니다."

    김형일도 세진의 말뜻을 이해했다는 듯이 히죽 웃었다. 그러면서 비어버린 탄통을 분리하고 새로운 탄통을 갈아 끼웠다.

    "이거 한 번 쏘고 나면 무척 뜨거워지지 말입니다. 전 그래서 사격 후에 이거 만지는 게 정말 싫습니다."

    김형일은 탄통 교체를 하면서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 사이에 군인들을 엄호하던 선도일과 다른 수련 능력자 한 사람까지 깡철이를 상대하는데 힘을 보태더니 결국 두 마리의 깡철이를 모두 해결했다.

    다행스럽게 다친 사람은 깡철이의 꼬리에 스쳐서 팔에 찰과상을 입은 사람 하나 밖에 없었다.

    "박세진씨. 저건 어떻게 할 겁니까?"

    사냥이 끝나고 정리를 시작하면서 주서관 소령이 한쪽에 놓여 있는 깡철의 부산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는 저기 머리 부분만 챙기면 됩니다. 나머진 여러분이 나눠 가지시던지 하면 되겠네요. 대신에 머리를 밖으로 가지고 나갈 때까지 운반하는 것을 책임져 주신다면 말입니다."

    "흠. 역시 그렇군요. 지금 상황에서 저걸 챙기고 있을 때가 아니지요. 욕심이 나지만 돈보다 목숨이 더 귀하니까요. 일단 철수할 때에 가지고 갈 여유가 있다면 그 때 챙기기로 하지요. 지금은 포기하는 걸로 하죠."

    주서관 소령은 세진의 예상과 달리 뜻밖에도 몬스터 부산물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세진은 그런 주 소령의 모습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에서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수련 능력자들과는 뭐가 달라도 다른 사람인 것이다.

    "뭐, 몸을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라면 알아서 챙기는 것은 저도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것까지 제약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러자면 어쩔 수 없이 여기 박세진씨가 말한 저 머리통을 들고 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럴 생각이 없는 사람은 괜히 세진씨의 부산물에 욕심내지 마십시오."

    주서관 소령은 수련 능력자들에게 그렇게 잘라 말했다.

    몬스터 부산물이 세진의 소유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니 그걸 가지고 싶다면 노동력을 제공하라는 말인 것이다. 수련 능력자들은 주서관 소령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입맛만 다시면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이 상황을 바꾸며 나섰다.

    "우와. 이거 들고 가면 한 몫 잡는 겁니까? 그럼 제가 들고 가도 되는 거지 말입니다."

    김형일 병장이 성큼성큼 걸어서 깡철이 몬스터의 머리를 들어서 등에 진 배낭 위에 올린 것이다.

    "음, 괜찮습니다. 아저씨 이것만 가지고 가도 좀 떼어 줄 겁니까?"

    세진은 그런 김형일 병장의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게 하죠. 정확하게 가치의 10%를 드리죠."

    "우와앗. 좋습니다. 큰 일 벌어지지 않으면 제가 챙겨가지고 가겠습니다. 음, 대신에 상황이 급하면 이거부터 버릴 겁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세진은 김형일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당연한 일이다. 위기 상황에서 깡철이 머리에 집착하다가 죽는 멍청한 짓은 세진도 바라지 않았다.

    일행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고, 이후로는 깡철이가 두 마리 이상 나타나는 경우는 없었기에 세진도 간혹 돌발 상황에서 방어를 해 주는 정도로 도움을 주면서 이동을 계속했다.

    그렇게 전진하며 느낀 것은 2등급 이면 공간은 1등급에 비해서 훨씬 넓다는 것이었다.

    "네 배? 그 정도 되는 것 같지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입니다는 안 쓰면 안 됩니까?"

    "습관이지 말입니다. 그냥

    '습관입니다.'

    하고 잘라버리면 어쩐지 정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지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입니다를 붙이면 뭔가 정감이 더 가는 것 같지 말입니다."

    "저도 군생활 끝나고 얼마간 그랬던 것 같기는 하지만 자꾸 들으니 꽤나 거슬리네요."

    "어쩔 수 없지 말입니다. 저는 현역 병장이지 말입니다."

    "병장이면 퍼질 때도 된 거 아닙니까?"

    "불행하게도 제겐 그런 걸 가르쳐 줄 선임도 없지 말입니다. 혼자 군생활 하는 몸이라서 말입니다. 거기다가 병장 단 것도 얼마 안 되었고 말입니다."

    "그래도 곧 제대할 거 아닙니까?"

    "시켜줘야 제대를 할 텐데, 그게 될까 모르겠습니다. 저도 눈치가 있는데 지금 상황에서 군대에서 제대를 시켜줄 것 같지 않다는 건 압니다."

    "제대는 하고 싶고요?"

    "당연하지 말입니다. 군대에 말뚝 박고 싶은 생각은 없지 말입니다."

    "나가면 할 일은 있습니까? 이미 평범한 생활은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도 사제물 먹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전 군인 체질이 아닙니다."

    "흐음. 그럼 우리 공방에 취직하십시오. 제가 스카우트 하죠. 생각이 있다면요."

    "공방이요? 아, 거기 어리 공방이라고 하는 곳 말입니까? 거기서 뭘 합니까?"

    "소속이야 어리 공방이지만 하는 일은 지금과 비슷할 겁니다. 몬스터 잡고 이면 공간 드나들고 뭐 그렇겠죠."

    "역시 평범한 생활은 물 건너 간 겁니까?"

    "하하핫.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딜 가더라도 김 병장님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없을 겁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게 현실이죠."

    "..."

    김형일 병장은 세진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이미 알고 있던 현실의 확인이었을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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