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79화 (79/298)

< -- 뜨거운 감자 - 에르테 코쿤, 2급 천공기 -- >

2급 천공기나 3급 천공기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사실 천공기는 1급과 다를 바 없다. 거기에 어떤 코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이 아직 2급 천공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 세진이 보급하는 천공기는 2급 에테르 코어와 반응하면 그 에테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구멍을 뚫기 전에 마법진이 무너지게 설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그 천공기에 사용했던 에테르 코어의 에너지는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EMP폭탄이 된다.

실제로 그런 실험을 하다가 낭패를 본 이들이 적지 않았다.

오늘 세진은 2급 천공기의 성공적인 사용을 대외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정부 소속의 이면 공간 공략팀과 함께 길을 나선 것이다. 김해시청 북동쪽에는 백두산, 까치산, 도봉산, 신어산이 오밀조밀 몰려 있다.

신기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이름의 산들이 한 곳에 그렇게 모여 있다는 사실이다. 백두산에 까치산에 도봉산.

그런데 그곳에 2급 몬스터 영역이 만들어졌다.

"욕심도 많지. 이 좁은 곳에 백두산도 있고, 도봉산도 있고, 까치산도 있고 신어산? 이건 모르겠지만 어쨌건 유명한 산들은 다 모아 뒀네."

공략팀 중에 누군가가 분위기를 풀어 보자는 듯이 농담이하고 한 말이다.

"그러네? 백두산, 우리 그 쪽으로 가는 건가?"

"아, 그런데 여기 나오는 몬스터 2급이라며? 거기다가 부유형? 날아다닌다는 말이지?"

"브리핑 때 뭐 했어? 다 들어 놓고 왠 헛소리야?"

"그냥 심심하잖아. 그런데 이 몬스터 이름이 꽝철이? 깡철이? 뭐 그렇다며?"

"그건 제가 좀 알아봤습니다. 이 몬스터가 이무기 종류인데 용이 되지 못해서 심술만 만땅인 놈이랍니다. 그런데 그 성질이 더러워서 가뭄을 만들어 낸대요. 불을 뿜는 이무기나 그런 유사한 종류인 거죠. 그래서 이게 나타나면 가뭄이 들고 화재가 나고 그런다네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뱀? 상대하기 곤란하겠네?"

"그래도 지면에서 5미터 이상은 안 올라간답니다. 뭐 그래도 2급이라서 소총으론 어지간히 쏴선 죽이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김형일 병장이 수고를 많이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분들도 있으니까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칼 잘 쓰는 양반들도 있잖아."

"우린? 우리 바렛도 쓸 만 하다고."

"우리야 몬스터 저지용이지. 한 두 방 맞는다고 어디 죽는 거 봤어?"

"1급은 그래도 몇 방이면 날리잖아."

"아서, 욕심 부리지 말고, 우린 몬스터의 급소를 공격해서 틈을 만드는 것이 임무야.  착각하면 곤란해."

"네네.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그냥 긴장 좀 풀어 보자고 한 말입니다. 네넵."

김형일 병장은 어쩐지 따돌림을 받는 분위기고, 순수 군인 출신의 저격수 두 명을 포함한 특수부대원 다섯이 뭉쳐 있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명이 또 어울려 있는데, 선도일은 거기에 끼어야 하는데도 계속 세진의 곁을 맴돈다.

그렇게 철책을 넘어 전진을 하다가 드디어 세진 일행은 첫 깡철이 몬스터를 만났다.

길이가 5미터 정도 되는 뱀이 허공에 떠서 움직이는데 속도가 매우 빨랐다.

공략팀의 전방에는 주로 수련 능력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대부분 칼이나 검을 무기로 썼고, 육중한 지팡이, 선장이라 불러야 할 종류를 들고 있는 이도 있었다. 아무래도 수련 능력자의 중심은 그 선장을 들고 있는 사람인 모양인지 진형이 그를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하지만 선도일과 또 다른 한 명은 일반 군인들 앞을 막아섰는데 아마도 방어력이 많이 모자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남은 것인 듯 했다. 세진은 몬스터의 등장과 함께 잘 짜인 틀을 만드는 것을 후방에서 지켜봤다.

그런데 그런 세진의 곁에 김형일 병장이 있었다.

"젠장, 이게 쉬운 줄 알아. 이게 얼마나 무거운데? 쏘면 그 반동은 또 어떻고. 그런데 탄까지 내가 들고 다녀야 해. 이런 젠장. 이제 병장인데 부사수도 없이 제대할 때까지 혼자야. 꼬여도 이렇게 꼬인 군번은 없을 거다. 빌어먹을."

그는 크지 않은 목소리로 구시렁거리며 자신의 키만큼 큰 총에 총알을 물려 넣고 있었다. 총에 달린 탄박스에서 곧바로 연결할 수 있게 만들어진 형태지만 그렇게 탄까지 연결하고 나니 더 다루기가 버거워 보였다.

"준비 끝."

김형일 병장는 언제든 총을 쏠 수 있게 준비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 버린다.

"같이 공격 안 해요?"

"아, 아저씨. 저는 지원 요청이 있을 때에만 공격을 하지 말입니다. 제가 아무리 천하 장사라지만 탄을 무한정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지 말입니다. 여기 이 탄통 보이십니까? 이게 200발 들어가는 탄통인데 작정하고 긁으면 몇 십 초도 안 되서 다 쓰지 말입니다. 그런데 제 배낭에 이런 탄통이 열여섯 개가 있습니다. 많은 거 같지만 안 그렇습니다. 저런 잔챙이를 잡는데 제가 나서면 오늘 사냥은 일찌감치 쫑 난다고 봐야 합니다. 열여섯 마리 잡고 나가야 한다는 소립니다."

"그렇습니까?"

"네. 전 그러니까 일종의 최후의 보루 정도 된다고 봐야 합니다. 사실 여기 사람들 중에서 제 화력이 제일 빵빵하니까 말입니다."

"직접 몸싸움 같은 건 안합니까?"

"저 말입니까? 전 태권도 단증도 상병 달고 겨우 땄습니다. 그나마 사격에 재능이 있어서 덜 갈궜지 총도 못 쐈으면 고문관이라고 했을 겁니다. 제가 심각한 몸치지 말입니다."

"그래요?"

"네. 전 몸으로 뭘 하는 건 별로 재능이 없습니다. 요즘도 저기 있는 분들에게 몸 쓰는 걸 배우긴 하는데 별로 소득이 없습니다."

"칼 들고 싸우는 걸 배웠어요?"

"그렇지 말입니다."

"차라리 저기 저 사람처럼 선장 같은 중병기를 택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한 방 파괴력으로 승부를 보는 그런 거요."

"네? 그 말씀은 저 죽으라는 소립니까? 몬스터에게 맞으면 한 방에 훅훅 간다는데 일단 피하거나 막을 재주는 있어야지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방 노리다가 몬스터에게 맞으면 어쩌란 말씀입니까? 죽으란 소리지 말입니다."

"김형일 병장님은 자신을 모르는군요. 병장님은 저기 저 깡철이에게 어느 정도 맞아도 죽지 않을 방어력이 있어요. 아, 총 같은 거 맞으면 곤란하고요. 몬스터의 공격에만 특별하고 강력한 방어력이 있어요. 몸에 있는 그 기운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한 거죠. 제가 보기엔 그래요. 나중에 1급 몬스터와 주먹다짐 한 번 해 봐요. 별로 안 아플 겁니다."

"네? 정말입니까?"

"믿어도 될 겁니다. 하하. 아, 제법 잘 싸우네요."

세진은 그렇게 말하며 김형일 병장에게서 시선을 돌려 깡철이를 잡는 사람들을 살폈다.

깡철이 몬스터는 허공을 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위로 아래로 오르내리며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수련 능력자들은 용케 깡철이와 비등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십 미터 정도 후방에 있는 군인들 중에서 저격수 두 명은 간혹 틈이 생길 때마다 깡철이의 몸에 바렛 총알을 박아 넣고 있었다.

그 총알은 김형일 병장이 사용하는 총의 총알과 같은 것이었지만 단발로 사격을 하기 때문에 탄 소비가 그렇게 심하진 않았다.

"바렛을 맞아도 관통이 안 될 정도면 저 몬스터도 대단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군요."

세진이 전투에서 눈을 떼지 않고 김형일 병장에게 말을 걸었다.

"네. 보아하니 저 혼자 잡으려면 탄 한 통으로 간신히 잡겠습니다."

"그래도 지구전으로 가면 결국 잡겠군요. 꽝철인지 깡철인지 저 몬스터도 점차 체내 의 에테르가 소비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아저씬 신기한 재주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혹시 유명한 분입니까?"

세진은 김형철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자신이 제법 유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병장은 자신을 모르고 지금까지 상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박세진입니다. 알려지기론 벗(友)의 대변인이라고 하죠. 아까 소개할 때 못 들으신 모양입니다.?"

"아! 아, 그렇구나. 그래서 낯이 익었던 거였지 말입니다. 난 또 같은 동네에서 살던 형인가 했습니다. 하하핫. 사실 전 다른 사람들하고 별로 안 친해서 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몰랐지 말입니다."

김형일이 멋쩍은 웃음을 웃었다. 역시 팀 내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세진은 생각했다.

"그런데 저기 박세진님? 아니, 세진님? 이것도 이상하고 아저씨, 이게 딱이지 말입 니다. 역시 우리 군인들은 그저 아저씨라고 하는 게 제일 편합니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혼자서 몬스터 잡으러 다니고 그런다는 소리 들었는데 정말입니까?"

"간혹 몬스터의 이면 공간을 정리하곤 합니다."

"우와. 혼자서 말입니까?"

"저기 있는 선도일씨와 함께 다니긴 하지만 대부분의 몬스터는 제가 잡죠. 요즘은 선도일씨도 큰 도움이 되긴 합니다만."

세진이 군인들을 호위하고 있는 선도일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몬스터에 대해서 특별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도 정말이겠습니다."

"안 믿고 있었습니까?"

"하하하. 그게 목숨이 달린 문젠데 생판 모르는 사람이 그렇다고 한다고 믿고 실험을 할 수는 없지 말입니다."

"그렇긴 합니다. 옳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제 말은 사실입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 다면, 몸 안에 기운이 약해지면 방어력도 약해집니다. 그건 기억을 해야 합니다."

"네. 무슨 소린지 알겠습니다. 어? 잡았습니다."

김형일이 깡철이 몬스터가 잡히는 것을 보고 살짝 놀란 기색을 보인다. 2등급 사냥은 처음인 것이다.

"시간을 끌면서 몬스터의 생체 에테르를 소비하게 하면 대부분의 몬스터는 잡을 수 있습니다. 그 때까지 방어를 할 수 있느냐, 그리고 생체 에테르를 소비시킬 수 있는 공격이 가능하냐 그게 문제죠. 그것만 되면 느리긴 해도 몬스터는 잡을 수 있는 거죠."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김형일은 박세진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자 또 가 봅시다. 좀 더 들어가야 제가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네. 네. 싸움이 끝났으니 정리를 해야지 말입니다. 전 이 커다란 총 때문에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닙니다. 개량을 한다고 했는데도 이건 뭐 거의 대포 수준이라서 말입 니다. 하하."

김형일은 발사 준비를 했던 총을 정리해서 대기 상태로 만들어서 어깨에 들쳐 맸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도 전장 정리를 끝낸 모양인지 다들 다시 이동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인솔자인 주서관 소령의 통제에 따라서 좀 더 깊은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세진은 그들을 따라서 이동하는 중에 다섯 번의 전투를 치르고 나서야 계획했던 위치에 닿을 수가 있었다.

"자자, 일단 모이십시오. 이제부터 우리가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위해서 실험을 합니다. 제가 2등급 천공기를 이용해서 진입통로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 때에 이면 공간으로 진입을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통로의 유지 시간을 재는 것이 처음에 할 일입니다. 이후에 다시 통로를 열게 되면 이때에 공략팀이 진입을 합니다. 하지만 만약 잘못되어서 모든 인원이 진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 때는 미리 알려드린 메뉴얼 대로 행동하시면 됩니다."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최대한 자리를 사수하고 기다리고 안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곧바로 통로를 열어서 나온다는 계획 말입니까?"

누군가 세진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2급 통로는 좀 더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수 있을 때까지 유지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2급 에테르 코어가 품고 있는 에테르의 양이 1급의 열 배는 되니 당연히 통로 유지 시간도 길고 출입 인원도 많을 거라고 예상한 것입니다. 다만 그에 비례해서 2급 이면 공간의 결계가 강력할 것도 생각을 해야 하기에 만약을 대비해서 메뉴얼을 만든 것입니다."

"모두 교육 시간에 듣고 숙지한 내용입니다. 그러니 박세진씨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진은 주서관 소령의 말에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 공략팀의 실질적인 지휘관인 것이다.

세진은 곧바로 2급 천공기를 이용한 통로 형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최초의 2등급 이면 통로가 열렸다.

이후에 그들이 시간을 측정하고 다시 통로를 열어서 2급 이면 공간으로 들어갔을 때, 예상대로 통로가 닫히지 않고 제법 긴 시간동안 유지 되는 것을 보고 주서관 소령 은 2급 통로에는 20명 가까운 인원을 한꺼번에 투입하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급한 것은 이면 공간에 들어온 일행을 향해 다가오는 네 마리의 깡철이들이었다.

"수련 능력자들은 모두 나서서 깡철을 막고, 김 병장은 서둘러 지원 준비 되는 대로 갈겨! 그리고 박세진씨는..."

"제가 한 마리 맡아서 처리하죠. 그리고 끝나는 대로 다른 쪽을 돕죠."

세진은 주서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제일 먼 곳에서 다가오고 있는 깡철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세 마리 정도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디버프로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