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78화 (78/298)
  • < -- 뜨거운 감자 - 에르테 코쿤, 2급 천공기 -- >

    대체 에너지.

    기존의 에너지를 대신해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의 필요성은 몇 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석유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그 석유의 고갈은 매번 인류를 위기감으로 몰아가며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다.

    새로운 에너지의 개발과 실용화에선 언제나 지지부진한 걸음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중에 에테르 코어를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는 에르터 코쿤이 등장하자 세상은 환호했다.

    하지만 그 환호성 뒤에는 거대한 세력의 분노가 가려져 있었다.

    석유 시장을 배후에서 지배하고 있는 모임의 회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각자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었지만 발달한 통신 기술은 그들을 한 곳에 있는 듯이 회의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많은 화면에 제각각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들은 간단하게 손을 들어서 발언권을 얻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발언권이 생긴 회원의 화면에는 점멸하는 작은 점이 그 사실을 알려준다.

    "에르터 코쿤의 등장으로 석유 가격이 급락하고 있습니다."

    "그거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될 겁니다. 석유는 난방 연료로만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번에 나온 에르터 코쿤이 석유 시장을 잠식하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 에르터 코쿤의 등장은 우리에게도 좋은 점이 많습니다. 석유의 소비가 줄어들면 그만큼 우리들이 석유를 오래 팔 수가 있다는 이야깁니다. 석유는 한정된 에너지원이고 그것은 반드시 고갈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다고 적정 이하로 석유 공급을 줄이게 되면 우리도 위험해집니다. 우리가 석유를 무기로 쓸 수 있는 것은 그것을 공급하기 때문이지 공급하지 않거나 못하는 순간에는 우리를 보호하는 벽이 모두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건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르터 코쿤의 등장이 긍정적이긴 하지만 그게 우리 손에 없다는 것 은 문제입니다."

    "아니죠. 우린 생각을 달리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석유를 팔지 무슨 엔진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생각합시다. 그러니 우리는 에르터 코쿤이 아니라 에테르 코어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특히 화이트 코어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코쿤이 아니라 코어에 집중을 해야죠."

    "하지만 그게 어렵지 않습니까. 몬스터는 세계 어디서나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비슷한 확률로 에테르 코어를 주고 말입니다. 거기다가 화이트 코어의 경우에는 천공기란 선행 조건이 필요하고, 그것조차도 화이트 코어를 대가로 지불해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아, 그러니까 생각을 잘 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몬스터 영역, 그러니까 에테르 코어를 얻을 수 있는 사냥터를 확보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화이트 코어는 아니어도 일반 코어들은 우리가 월등한 공급량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일부러 몬스터 영역을 발생시켜서 관리를 하자는 겁니까?"

    "그렇지요."

    "그럼 땅은 넓고 사람은 적은 땅이 필요하겠군요."

    "맞습니다. 대충 몇 지역이 떠오르는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곳이 적지 않지요."

    "저는 사막이나 황무지 쪽을 좀 알아봐야겠군요."

    "제가 담당한 지역은 곤란하군요. 워낙 인구 밀도가 높아서 말입니다."

    "각자 사정이 있기 마련이지요. 어쨌거나 우리가 힘을 모아서 에테르 코어 농장을 조성하고 에테르 코어의 공급을 조절할 수 있다면 우린 석유에 이어서 새로운 힘을 손에 쥐게 되는 겁니다."

    "당연히 사냥꾼들을 조련하는 것도 필요하겠군요."

    "그렇지요. 요즘도 천공기 둘로 하나의 화이트 코어도 얻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간혹 생기는 걸로 압니다. 그런 경우를 줄이고, 나아가서 2, 3급의 몬스터를 사냥해서 코어를 획득 저장하는 것도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맞습니다. 아직 에르터 코쿤이 1등급 에테르 코어만 활용이 가능하지만 언젠가는 그보다 높은 등급의 에테르 코어도 활용 방법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미리 선 점해서 비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비축이란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에테르 코어를 다량으로 비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그 저장이 간단하지 않아요. 잘못하면 몬스터 영역이 생깁니다. 2등급도 문제지만 3등급이면 정말 곤란합니다."

    "그것 참, 2등급 천공기와 3등급 천공기가 빨리 나와 줘야 숨통이 좀 트일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문제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한 번 건드려 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만."

    "누구를요?"

    "그 박세진이란 자와 어리 공방 말입니다."

    "그러다가 그 불똥이 우리에게 튀면 어쩌려구요?"

    "뭐 적당한 회사 하나 정도 날린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전혀 쓸모없는 그런 거 말고, 적당히 버려도 될 것 같은 회사 하나 내세워서 작전을 하고 실패하면 그  회사를 포기하는 거지요."

    "크게 투자를 하자는 건데, 그래서 어떤 일을 하자는 겁니까? 그 박세진을 납치라도 하자는 겁니까?"

    "음, 그건 곤란합니다. 그 자가 각성자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 지인이 은근히 알려주더군요. 괜히 건드려서 피 보지 말라고 말입니다. 각성자도 제대로 된 각성자란 정보입니다."

    "그래요? 그런 정보가 있으면 미리미리 공유를 하고 그래야지 말입니다."

    "어쨌건 그래서 그 쪽 보다는 김혜인 박사 쪽을 파 보자는 겁니다. 그 여자가 코쿤의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잘하면 그것도 얻을 수 있을 지 어떻게 압니까?"

    "결국 그겁니까? 그 코쿤?"

    "아니지요. 일단 그 여자를 납치한 이후에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전력을 기울여서 프렌드friend라고 하는 그 단체의 움직임을 찾아보는 겁니다. 그야말로 세계 전체를 감시하는 것이죠. 돈이 많이 들기는 하겠지만 우리 모두가 나서면 적어도 사흘 정도는 세계의 모든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주 사소한 거라도 걸려들면 그 다음에는 프렌드friend도 더는 비밀의 단체가 아니게 되는 겁니다."

    "음, 부담이 많이 가는 일이군요. 그 사흘 동안 프렌드friend의 움직임을 찾지 못하면 결국 건실한 회사 하나를 날리게 되는 거고, 또 그 배후에 있을 우리 하부 조직도 얼마간 날아갈 것을 각오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반대하는 겁니까?"

    "반대를 하기엔 그동안 우리가 너무 오래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 같아서 자존심이 좀 상하긴 하죠."

    "그럼 결정을 합시다. 겉으로 보기에는 에르터 코쿤에 대한 작전으로 하고, 내부적으로는 작전 시작과 함께 우리들의 전력을 기울여서 프렌드를 찾는 겁니다. 그들이 계속 비밀에 감춰져 있다면 우리도 계속해서 답답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겁니다."

    "좋습니다. 저는 찬성합니다."

    "나도 찬성입니다."

    "그렇게 합시다. 나도 찬성표를 던지겠습니다."

    "좋아요. 모두 그렇다면 저 역시 반대하지 않겠어요. 아니 적극적으로 돕죠. 이번엔  모두 그래야 할 거예요."

    "자자, 그럼 그렇게 하기로 결정이 났으니까 이젠 어떤 회사를 내세우고 어느 정도까지 하부 조직을 미끼로 던질 건지도 이야기를 해 봅시다."

    그렇게 세계 석유 시장을 암중 지배하는 이들의 모략이 시작되었지만 세진의 어리 공방은 그런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꼬독! 꼬독! [정말로 천공기를 일본에는 제공하지 않을 생각입니까?]세진은 도일의 문자를 한 번 보고는 대꾸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꼬독! 꼬독!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일본은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서도 몬스터 영역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근래엔 3등급도 등장하고 있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더구나 몇몇 각성자들이 뭉쳐서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난 사냥을 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그들이 결국 3등급 코어를 얻게 되고, 거기서 4등급 몬스터라도 등장하는 날에는 인류는 재앙에 한 발 다가가게 될 겁니다.]

    "선도일씨, 그만하죠. 저도 그렇고 제 친구들도 그렇고, 일본에 천공기를 넘길 생각 은 없습니다. 저번 원전 사태에서 한국이 도움을 준 후에 그들의 태도가 바뀐 것이 있습니까? 요즘도 한국 정부에 갖가지 명목으로 천공기를 지원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면서요?"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일본 산업과 연계가 필요한 한국 기업들의 목줄을 쥐고 압력을 행사하는 일본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 대해선 세진도 나서서 누굴 편들고 말고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니들은 니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는 식인 것이다.

    꼬독! 꼬독! [하지만 몬스터들의 문제는 개인감정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칫 등급이 높은 몬스터의 등장을 제어하지 못하면 정말 큰 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

    "도일씨, 나도 압니다. 하지만 일본 전체가 몬스터 천지가 된다고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한 번 호되게 당해서 전 세계에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좀 더 정신을 차리죠. 거기다가 아직까지 몬스터들은 일정 지역에 묶여 있습니다. 아닌 말로 일본 전체가 몬스터 영역이 된다고 해도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조차도 별 영향이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는 문제긴 합니다만."

    꼬독! 꼬독! [설마 그렇게 될 때까지 방관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전 자력갱생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우리들이 누굴 도울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무조건 주변 사람들을 돕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스스로 알아서들 하겠죠."

    세진은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서 일행들의 선두로 나섰다.

    지금 세진은 특별한 부탁을 받아서 2등급 몬스터 영역의 이면 공간에 대한 진입을 시험하기 위해 이면 공간 공략팀과 함께 나온 길이었다.

    아직 2등급 몬스터와 3등급 몬스터의 이면 공간은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 미지의 공간이었다.

    '김형일 병장이라고 했지? 에테르가 아니야. 에테르가 뭔가 다른 에너지로 바뀐 거야. 아니 몸이 에테르를 받아들여서 색다른 에너지로 바꾸는 거야. 신기한 현상이네. 라훌족과도 다른 형태의 변이야. 그들은 자연스럽게 에테르에 적응해서 그것을 이용하는데 김형일 저 사람은 에테르를 변형시킨 에너지를 사용해. 다른 각성자들도 저런 식이면 꽤나 흥미로운 일이야.'

    세진은 그런 중에 커다란 총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김형일 병장을 관찰하고 있었다.

    한국에선 처음으로 발견된 각성자고 세진도 가까이에서 보는 첫 각성자여서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이 많았던 것이다.

    "아저씨, 뭘 그렇게 봅니까? 아까부터 뒤통수가 근질거립니다. 그만 보시지 말입니다."

    그런데 김형일이 세진의 시선을 느꼈던지 살짝 짜증을 냈다.

    "아, 미안합니다. 묘한 기운을 사용하고 있어서 관심이 가더군요. 몸 전체에 골고루 퍼진 기운을 필요한 곳으로 끌어 쓰는 방식이군요. 거기다가 소비된 힘은 다시 외부에서 들어온 에테르가 변해서 채워지고 말입니다."

    "어? 아저씨, 그걸 딱 보고 알았습니까? 절 연구하는 사람들은 말을 해 줘도 증명이 안 된다고 머릴 쥐어뜯던데 말입니다."

    "뭐 그냥 보입니다. 그런데 자체적으로 힘을 쓰고 나면 이후에는 시간밖엔 답이 없는 겁니까? 어떻게 힘을 스스로 채울 방법은 없느냔 말입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게 좀 그렇습니다. 저기 다른 아저씨들이 배워보라고 해서  호흡법도 배우고 그랬는데 소용이 없습니다. 더구나 저는 에테르라는 에너지도 못 느낍니다. 그냥 몸 안에서 생기는 기운만 느낄 뿐입니다."

    "그건 또 신기하군요.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요?"

    "제가 알기론 다 그렇다고 하지 말입니다. 몸 안에 있는 기운만 느끼지 외부의 기운은 못 느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가장 큰 차입니다. 우리들과 저런 분들과의 차이 말입니다."

    김형일은 도일을 턱으로 슬쩍 가리키며 말한다.

    '벌써 파벌 같은 것이 있나? 각성자와 수련 능력자 사이에?'

    세진은 김형일의 태도에서 그런 것을 느꼈다.

    서로를 다르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분명 수련 능력자들이 끼리끼리 뭉쳐서 새로운 각성자들을 밀어 내면서 생긴 틈이겠지. 하여간 어딜 가나 텃세는 어쩔 수가 없다니까.'

    세진은 머리를 흔들었다.

    "다 왔습니다. 저 철책만 넘으면 몬스터 영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철책에서 1Km정도 들어간 후에 몬스터 사냥을 하고 또 다른 볼 일이 있으신 분은 활동을 시작 하시면 됩니다."

    인솔을 맡은 짧은 머리카락의 팀장이 철책 통문을 관리하는 초소로 가면서 그렇게 일정을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세진은 2등급 천공기 시험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2등급 이면 공간을 코어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여는 실험을 하기 위해 왔기 때문에 안에선 독자행동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