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뜨거운 감자 - 에르테 코쿤, 2급 천공기 -- >
'이거 어쭙잖은 놈은 아니란 말이지?'
세진이 맹도강을 지그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제게 괜찮은 친구들이 있다는 건 아시겠고, 그 친구들이 제법 눈과 귀가 밝다는 것도 알 겁니다. 그런데 김박사님이 우리 집에 오시던 날에 말입니다. 그 날 박사님은 납치하려는 이들이 있었지요. 여기 정진이 경호원이 대처를 잘 해서 빠져 나오긴 했는데 말입니다. 혹시 아십니까? 그 날 대해그룹에서 굉장히 바빴지요?"
세진은 맹도강과 황비서의 심장이 그의 말에 따라서 쿵덕거리는 것을 느끼며 조금 느린 속도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맹도강과 황비서가 그 일에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속이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 날 다른 기업들도 그렇고 저희도 바쁜 날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기업들끼리도 서로 먹고 먹히고 하는 사이라서 뭔가 움직임이 보이면 이쪽도 긴장을 하고 그러지요. 그 날도 다른 기업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정보를 담당하는 이들을 움직였습니다."
맹도강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세진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었다.
"그래요? 우리가 아는 것과는 많이 다르군요? 내가 알기로 대해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대단위로 팀을 움직였다고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그건 거기 황비서님?"
"네? 네."
"놀라지 마시고요. 어쨌거나 황비서님이 지휘하고 맹도강 본부장님이 주관 한 걸로 아는데 아닙니까? 우리 정보가 틀렸다는 겁니까?"
세진의 말에 맹도강의 이마에서 땀이 조금씩 솟기 시작한다.
"하하하. 오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린 석성과 지엘의 움직임을 쫓다 보니 그렇게 된 것 뿐입니다. 드러난 것이 전부는 아니고, 또 시간차도 있고 그렇습니다. 하하하."
맹도강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어떻게든 혐의를 벗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게 할 이야기란 것이 제가 기술을 대고, 대해에서 생산을 한다는 건가요? 그렇게 한다고 하면 조건은요?"
그 때, 김혜인 박사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녀도 혼자서 일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세진과 친구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생산 능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맹도강에게 따져봐야 서로 기분만 상할 일이란 것도 알았다. 아니라고 잡아떼면 증거도 없이 몰아붙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김혜인 박사가 세진의 말을 끊고 나선 것이다.
"하하하. 역시 김박사님도 저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시는 모양이군요."
맹도강은 김박사의 말에 반색을 했다.
"아니요. 대해그룹이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석성이건 기린이건 지엘이건, 그게 아니라면 외국의 다른 회사라도 상관없어요. 제가 생각하는 것을 이루어 줄 수 있다면 회사가 어디건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김박사님도 정부의 일을 하시는 분이시니..."
"대해, 석성, 지엘이 언제부터 우리나라 기업이었죠? 글러벌 기업 아니었나요? 원래 다국적 기업이라는 것이 어느 나라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요?"
"아, 그. 뭐..."
맹도강은 날카로운 김혜인의 말을 반박하지 못하고 콧등까지 땀이 나기 시작했다.
'저런 면도 있었네? 재미있는 여자야.'
세진도 의외로 당찬 모습을 보이는 김혜인 박사의 모습에 조금 놀라고 있었다.
"거기다가 벗들에서도 제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어요. 당연히 벗들에 대한 지분도 생각을 해야 하죠. 그렇다면 벗들의 다른 분들의 나라에도 기회를 줄 필요가 생길지도 모르죠. 뭐 중요한 것은 그거 아니겠어요? 어떤 조건을 걸 것인가 하는 거 말이죠."
김혜인 박사는 말을 마치고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제 선택은 알아서 하라는 듯 한 모습이었다. 맹도강은 만만찮은 상대라고 생각하면서 준비해 온 여러 거래 수준들을 떠올리며 어떤 것이 좋을지 가늠하기 시작했다.
기획실에서 이번 계약에서 어떤 조건들을 내 걸 수 있을지 미리 준비한 시안들이 맹도강의 머리를 떠돌았다.
김혜인 박사의 에테르 히터는 점차 확실한 설계가 이루어졌다.
사실 세진이 보기에는 그렇게 대한한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에테르 도면이라는, 마법진과 같은 방법의 에테르 이용법은 굉장히 뛰어나 효율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소 뒷걸음이 쥐를 잡아도 그렇게 잡을 수가 있는지 모를 일이야.'
세진은 김혜인 박사가 에테르 히터에 사용한 도면을 보고, 그가 지하창고의 석판에서 얻은 마법진과 비교해서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유사한 것을 보고는 정말 놀랐다. 김혜인 박사는 그 도면을 몬스터들의 패턴을 조합해서 만들어 내 것이라고 하는데 세진 그런 식으로 마법진을 만들어 낸 그녀의 행운에 진심으로 박수를 치고 싶었다.
사실 선 하나 잘못 그어지거나 혹은 삐끗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 마법진인데 김혜인 박사는 거의 완벽한 마법진을 정말 운 하나로 건져낸 것이다.
"이게 설계도 전체예요. 여기 이곳에 코어를 넣으면 이런 경로를 통해서 에테르가 흐르게 되고 여기서 에테르가 열로 바뀌게 되는 거죠. 그리고 여기 빈 공간에 바로 가열 매체가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여긴 뭘 넣기로 했습니까? 열전도율이 제일 좋으면서 내구성도 좋은 것을 넣어야 에테르 히터의 효율이 좋게 나올 텐데요?"
"아, 그건 적당한 신물질을 대해에서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정말 단순하게 열전도율, 그것만 좋아요. 대신 보존율이나 그런 건 정말 꽝이죠. 하지만 그게 있어서 이 에테르 히터의 가치가 몇 배는 더 올라가게 될 건 확실해요."
"그래서 그 맹도강이란 사람이 뻣뻣하게 나오는 거로군요?"
"그런 건 아니에요. 사실 그게 아니어도 에테르 히터는 충분히 가치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판매하는 에테르 히터를 대해에서 구입해서 새로운 형태의 뭔가를 만든다고 해도 그 맹도강이란 사람은 상당한 이익을 낼 수 있을 거예요. 우리와 손을 잡고 거래를 하는 것은 단지 다른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해서죠."
"애초부터 에테르 히터 제작을 함께 하면 다른 기업으로 들어가는 에테르 히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거로군요?"
"네. 그게 크죠."
세진은 맹도강이란 인물을 에테르 히터 제작에 동참시키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그 후로 만난 몇 몇의 기업 관계자들을 보니 그래도 맹도강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같이 뇌에 기름만 낀 것들이 세진을 짜증나게 만들거나 혹은 너무 이익에만 집착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건 김혜인 박사도 마찬가지였는지 결국 맹도강을 선택해서 에테르 히터라고 명명한 기기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카피 가능성은 어떻게 해요? 정말 그 부분은 세진씨가 책임을 질 수 있는 거죠?"
김혜인 박사가 세진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자, 봅시다. 여기 이 부분. 여기만 제 친구들이 만들 겁니다. 나머지 부분은 대해에 서 만들어야지요. 보시는 것처럼 이게 핵심이니까 말입니다."
"그렇기는 하죠. 그 부분에서 에테르가 열로 바뀌는 거고 그게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제가 발견한 에테르 도면이 거기 들어 있죠."
"그래서 이 부분은 이런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하핫."
세진은 주머니에서 손바닥 크기의 납작한 상자를 꺼냈다. 팔찌나 귀걸이를 넣으면 어울릴 보석함처럼 보이는 검은 상자였다.
"이게 뭐죠?"
"이게 여기에 끼워지는 겁니다. 이 안에 김박사님의 에테르 도면이 들어 있지요. 하지만 이 상자는 분해를 할 수가 없고, 한다고 해도 뭔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 친구들의 기술이 집약된 것이죠."
"아, 그래요?"
"하지만 핵심 기술이 김혜인 박사님의 에테르 도면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핵심 부품만 공급을 할 생각입니다. 당연히 이 부품이 없이는 에테르 히터는 만들어 질 수가 없는 거죠. 어떻습니까?"
"좋아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호호홋."
"이젠 돈방석에 올라앉게 됐습니다. 축하합니다. 김혜인 박사님."
"그게 어디 저만 그런가요? 세진씨도 지분이 꽤나 되잖아요. 거기다가 그거 그 작은 거 만들어서 공급하면서도 싸게 해 줄 건 아니죠?"
김혜인 박사가 세진이 들고 있는 상자 모양의 부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약간의 공임만 받을 생각입니다. 그렇게 비싸게 받진 않을 겁니다. 허엄."
"네네. 그러시겠죠."
세진의 말에도 김혜인은 별로 믿는 것 같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곤충 로봇을 제작 납품하면서 세진이 꽤나 폭리를 취했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세진이 비싸게 받지 않을 거라는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대해와 김혜인 박사, 그리고 벗(友)의 합작으로 탄생한 에테르 히터는 에르터 코쿤 이란 이름으로 발매가 되었다.
에테르 히터 코쿤의 준말인 에르터 코쿤은 외형이 알처럼 생겨서 붙은 명칭이었다. 완성된 장치의 모양이 커다란 알의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적인 영향도 있어서 에르터 코쿤은 발매 얼마 후부터 정말 날개가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사실 처음에 사람들은 굉장히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에테르 코어를 이용한 가열장치라면 에테르 코어가 있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에테르 코어 때문에 주변에 몬스터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대해그룹과 김혜인 박사는 확실한 성명 발표를 했다.
"에르터 코쿤에 들어간 에테르 코어는 지속적으로 열을 발생시키느라 에테르를 외부로 내보내지 않습니다. 때문에 에테르 코어로 인한 몬스터 발생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한 번 에테르 코어를 주입하면 한 달 동안으로 에테르 코어를 다시 쓸 이유가 없기에 에테르가 그 지역에 쌓이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한 지 역에 여러 대의 에르터 코쿤이 있을 경우 에테르 코어를 삽입하는 날을 한 달에 두 번 정도로 정해서 지속적으로 에테르 코어가 그 지역에서 노출되는 일만 피하면 됩니다. 이에 정부와 협의하여 에테르 코어를 사용하는 날을 정할 계획입니다."
그 말대로 에테르 코어를 정해진 날짜에만 사용하게 된다면 지속적으로 에테르가 쌓여서 몬스터의 이면 공간 결계를 흔들 일도 없어진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가정해서 대해그룹에서 직접 실험을 해서 증명을 함으로서 에르터 코쿤의 안정성은 확인이 되었다.
당연히 세계는 열광했다.
몬스터는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것들은 30마리 정도에 하나씩의 에테르 코어를 준다.
일반적인 몬스터 영역에서 많게는 에테르 코어가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온다. 거기에 이면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면 거기서는 더 많은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다.
에테르 코어는 꽤나 가치가 높은 에너지원이 되었다. 거기에 화이트 코어는 그야말로 가치가 급상승했다. 자체 충전이 되는 화이트 코어 는 세 개가 있으면 에르터 코쿤을 영구히 작동시킬 수 있을 거란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한 마디로 무공해 영구 에너지원이 생겼다는 말이고, 전 세계가 환호성을 올릴 일이었다.
급격하게 천공기의 가치가 오르기 시작했고, 반대로 천공기를 사기 위해서 제공해야 하는 화이트 코어에 대해서 거부감이 팽배하기 시작했다.
화이트 코어의 가치가 뛰면 뛸수록 천공기의 가치도 높아진다. 천공기가 없으면 화이트 코어를 얻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천공기 두 개를 얻기 위해선 무조건 화이트 코어 하나를 내줘야 한다. 그게 지켜지지 않으면 천공기는 제공되지 않는 것이다. 불만이 가득 쌓였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서 언급하지 못했다. 천공기는 벗의 독점 사업인 까닭이다. - 세진님. 돈은 쌓아서 뭘 하실 거예요?
어느 날, 어리가 물었다.
"글쎄?"
- 쓸 곳도 없는데 왜 돈은 받아요?
"공짜로 줄 수는 없잖아. 그리고 내가 돈을 쌓아 두기만 하는 건 아니다. 심선정 재단에 기부도 하잖아."
- 기부만 하고 신경은 안 쓰시잖아요. 혹시 비리라거나 그런 것이 있을 수도 있는데요.
"그래? 죽고 싶으면 뭔 짓을 못하겠냐? 국정원에서 감사도 해 준다고 했고, 또 여차하다 나한테 들키면 법보다 가까운 주먹맛을 볼 텐데?"
-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참, 그런데요 얼마 전에 대전 공장에 사고가 있었잖아요. 그거 어떻게 해요?
"결과 나오면 보고 처리해야지."
세진은 살짝 어금니를 물면서 대답했다.
에르터 코쿤 공장에 침입자가 들어와서 한바탕 총격전까지 벌이다가 모두 사살되거 나 자살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 일본, 중국, 미국, 영국, 러시아 등등등. 어휴,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처리를 해요?
"그렇긴 하지. 그래도 국정원이 나섰다고 하니까 뭔가 있지 않겠어?"
- 에르터 코쿤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에요. 이렇게 그렇게 난리를 부리는 거 보면요.
"산업 스파이는 어디나 있는 거니까. 뭐 이번 경우는 산업 스파이로 보기엔 좀 과하긴 하지만."
세진은 누군지 몰라도 정체가 밝혀지면 반드시 응징을 해 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벗(友)이 할 발 걸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끼어들었다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렁한 면을 보이면 바로 치고 들어오는 것이 세상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