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75화 (75/298)

< -- 진화 혹은 돌연변이? 그리고 김혜인 박사 -- >

"하지만 실험을 하려면 에테르 코어도 필요하고 그런데요. 여기서 에테르 코어로 실험을 하다가는 자칫 근처에 몬스터 영역이 생길 수도 있어요. 저야 지금까지 대전에서 연구를 해서 문제가 아니었지만요."

김혜인이 조금 걱정스러운 투로 이야기를 한다.

"흐음. 그것도 문제는 문제로군요. 뭐 일단 에테르 코어 없이 연구를 시작하십시오. 제가 어리 공방 근처에 이면 공간이 있는지 확인을 하고 있다면 모두 정리를 하죠. 그럼 여기서 에테르 코어를 사용해도 문제는 없을 겁니다."

"어머, 그게 가능해요? 미리 몬스터 이면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요?"

정진이 경호원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별 것 아닙니다. 아무 곳이나 구멍을 뚫어보고 구멍이 있으면 이면 공간이 있다는 소리고, 구멍이 생기지 않으면 이면 공간이 없다는 소리죠. 그렇게 확인을 하는 겁니다. 무식한 방법이죠."

"아, 무슨 소린지 알겠네요. 역시 천공기가 넘치는 벗의 일원만 할 수 있는 방법이네요."

"어쨌건 그렇잖아도 어리 공방 근처에 이면 공간이 있는지 확인을 해 볼 생각이었는데 잘 되었군요. 넉넉잡고 일주일 내에 확인을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세진님."

김혜인 박사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세진은 하얀 목선과 옷깃 사이의 쇄골에 살짝 마른 침을 삼켰다.

'내가 너무 굶은 모양이야. 그러고 보면 내가 언제부터 굶고 있었던 거지? 젠장!'

여자에 면역이 별로 되지 않은 세진은 미녀 두 사람이 어리 공방에서 함께 지내게 되자 지금까지 없었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으음. 이 여자들은 그냥 4층에 연구실하고 살림집을 함께 만들어 줘야겠네. 1층에서 함께 지낼 수는 없지. 늑대 둘이 있는데 서로 너무 불편할 거야.'

세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곧바로 도일에게 연락해서 4층 인테리어 공사를 맡겼다. 아무나 불러서 시키다간 결국 4층 전체가 갖가지 벌레들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나마 국정원에 맡겨 두는 것이 다른 정보 기관들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 후에 세진이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통해서 세밀하게 살피면 될 일이다.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속일 수 있는 어떤 형태의 에너지도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세진이었다.

"그래서? 그 년들이 어디로 갔다고?"

"어리 공방입니다."

"젠장. 그럼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외출을 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절대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연구 과정이 담긴 기록은?"

"별 것 없습니다. 그저 괴상한 낙서들이 가득할 뿐입니다. 그것도 연구소로 보내서 확인을 하라고 했습니다만 뭔가 건지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개발에 성공한 거 맞아?"

"시제품 시연이 있었습니다. 에테르 코어로 어마어마한 열을 발생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그 지속 시간이 한 달은 갈 거라고 김박사가 장담을 했답니다."

"에테르를 량을 측정할 수 있는 계측기가 거기 대전에만 있고, 그걸 김박사 그 년이 사용할 수 있으니까 믿을 순 있겠군. 그나저나 그 정도면 시장성이 어느 정도나 될까?"

"에테르 코어 하나로 1500세대 아파트 단지의 한 달 난방을 책임질 정도입니다. 저희 분석으로는 그 장치가 그리 크지 않아서 기존의 시설에서 열을 가하는 부분만 교체를 하면 공간이 남을 거라고 합니다. 한 번 장치 교체를 한 후에는 에테르 코어만 있으면 유지가 되는 것이라 시장성은 차고 넘칩니다. 지금도 에테르 코어는 별다른 사용처를 찾지 못하고 쌓이고 있는 중입니다. 거기다가 화이트 코어의 경우에는 자체 충전이 되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는 이야기는 그것 하나로 거의 영구적인 에너지원을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에테르 코어의 에너지의 활용 방법이 생겼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일입니다. 특히 화이트 코어의 존재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닙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일반 코어는 소비품이지만 화이트 코어는 그게 아니란 말이지. 그런데 그 에테르라는 에너지를 활용할 방법이 없다가 드디어 획기적인 활용법이 나온 거라고. 그런데 그걸 그 년들이 들고 튄 거잖아. 젠장."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콧대 위로 밀어 올리면서 화를 낸다.

"그건 그렇고 다른 놈들도 냄새 맡고 설친다고?"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어서 정보의 독점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 골치 아프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독점이 어려우면 나눠 먹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네. 그리고 나눠먹자고 하면 석성이나 기린, 지엘..."

"이봐, 황비서."

"넵. 사장님."

"꼭 그들과 나눠 먹어야 한다는 편견은 버려. 차라리 김혜인 박사, 그 쪽과 나눠 먹는 쪽을 생각해. 응? 그게 훨씬 이득이잖아. 그 쪽에선 기술을, 이쪽에서 생산을, 아주 좋지 않아?"

"하지만 김박사는 우리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을 텐데요?"

"우리가 뭐? 우린 아무것도 몰랐어. 그러다가 석성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정보를 얻어서 한 발 앞서서 치고 들어간 것일 뿐이야. 응? 안 그래?"

황비서는 사장의 말뜻을 곧바로 알아들었다.

"확실하게 흔적을 지우겠습니다. 저희 회사 정보원들을 움직인 적이 없습니다."

"그래. 그래. 그거야. 그렇게 하고 김박사와 접촉을 생각해 봐. 떳떳하게 가자고. 떳떳하게 말이야."

"네. 사장님."

세진은 천공기 없이도 이면 공간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어차피 천공기란 것이 에테르 코어의 힘을 이용해서 결계에 구멍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멍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이 되고, 시간이 지나기 전이라도 구멍을 드나드는 사람의 수에 따라서 메워지기도 한다. 마치 침입자를 감지하는 것처럼 일정 숫자 이상의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세진은 그것이 이면 공간을 유지하는 코어의 의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건 세진은 몸에 지니고 있는 에테르를 이용해서 천공기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 역시 연습을 통해서 터득한 방법이었는데 자신이 지닌 에테르로 어리를 충전하거나 혹은 듀풀렉을 충전해서 게이트를 열 수 있다는 것을 안 이후로는 몸 안에 가지고 있는 에테르를 활용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스스로 고민하게 되었고, 그 결과 천공기 없이 이면 공간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세진은 어리 공방 주변의 일정 거리 안에 이면 공간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간편한 복장을 한 상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면 공간으로 가는 통로를 열어 보고 있었다.

어리 공방에서 에테르 코어를 가지고 실험을 하자면 주변에 이면 공간을 모두 정리 해야 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해 주겠다고 김혜인 박사에게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귀찮음을 감수하고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 여기도 없어요. 그럼 이제 남은 곳은 한 곳 뿐이에요. 거기도 없으면 어리 공방에 에테르 코어가 있다고 해도 몬스터 영역이 생길 가능성은 없는 거죠. 1급 에테르 코어에 반응할 이면 공간은 없는 거니까요.

어리 앵무가 세진의 어깨에 올라앉아 있으면서 쫑알거렸다.

어차피 이면 공간으로 들어가면 어리 앵무는 어리가 보내는 신호가 끊어져서 시체(?)가 되지만 그래도 함께 산책이라도 하고 싶다고 따라 나온 어리였다.

"음, 이상하단 말이지. 사람들이 많은 곳에는 이면 공간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인구 밀도가 낮은 곳에서만 1급 몬스터 영역이 있었어. 그렇지? 시구문도 일정한 영역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지. 그래도 그런 곳에 이면 공간이 있었다는 것이 특이한 경우긴 했지만."

= 맞아요. 세진님. 그랬어요. 아마도 사람들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는 건지도 몰라요. 보면 사람들이 좀 살거나 왕래가 많은 곳에 이면 공간 유지 코어가 있었던 경우가 많아요. 그건 우두머리론 안 되니까 유지 코어까지 생긴 거 아닐까요?

"그럴까? 하긴 에테르 기반 생명체와 상극인 생명의 기운이 많이 있는 곳에서 버티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거기에 유지 코어가 있어서 겨우 이면 공간을 유지할 수가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

= 아마 맞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확인한 곳에도 더 등급이 높은 이면 공간은 있을 수 있어요.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 충분히 견딜 정도가 되는 몬스터들의 이면 공간이 있을 수는 있잖아요.

"그래. 그것도 그렇겠네. 그럼 나중에 등급이 높은 몬스터들이 나오게 되면, 그것들이 대도시 한 복판에서 등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 그럴지도 모르죠. 우와 그럼 정말 난리가 날 것 같아요. 우웅, 걱정이네.

"제발 사람들이 미친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3등급 몬스터 영역까지 나왔으니 언제 4등급 몬스터가 등장할지 걱정이 앞선다. 아무튼 중국 놈들이 문제야 문제."

세진은 고개를 흔들면서 중국을 비난했다. 지금도 중국에선 3등급 몬스터들이 나타나고 또 사냥을 당하기도 하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선 위험을 알면서도 3등급 에테르 코어를 손에 넣기 위해서 은밀한 거래를 계속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UN을 중심으로 해서 몬스터 대책을 세운다고 하지만, 뒤로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거래를 계속하는 것이다.

"언제 한 번 당해 봐야 해. 아마 4등급이나 5등급 몬스터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알게 되겠지. 그게 얼마나 큰 재앙이 되는지 말이야."

= 그래도 새로운 에너지원의 발견이라고 좋아할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김혜인 박사 같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테니까요.

"그렇지. 그것도 일종의 진화야. 인간은 환경에 적응해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하니까 말이지. 에테르 코어가 나타나니 거기에 맞춰서 진화한 동력 장치를 만들어 내는 거잖아. 대단하지."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요? 신기해요. 아, 저기 저 앞에 사거리 정도에서 확인하면 될 것 같아요. 음, 딱 좋은 위치네요.

어리 앵무가 앞쪽에 보이는 사거리 골목을 향해 날개를 펼치며 말했다.

세진은 그곳에 도착해서 마지막으로 이면 공간 유무를 확인했고, 재수가 좋은 건지 없는 건지 이면 공간을 발견했다.

"여긴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 이잉, 세진님 들어가시면 저는 어떻게 해요?

"쯧, 어쩔 수 없잖니. 기다리고 있어라. 여기 정리하고 나올 테니까. 사람들 오기 전에 빨리 들어가야겠다.

= 세진님, 하지만... 어이 앵무의 투정은 세진이 이면 공간으로 들어가면서 끊기고 말았다. 이면 공간으로는 전파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기 때문에 어리가 움직이던 앵무가 죽은 듯이 늘어져 버린다.

세진은 어리 앵무를 지하창고에 넣고, 무기인 창을 대신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새로운 이면 공간의 모습을 살폈다.

'역시 종묘에 사람들의 거의 살지 않으니 이면 공간이 하나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맞았어. 어쨌건 빨리 정리하고 가야겠네.'

세진은 빠르게 정리를 할 생각으로 곧바로 이면 공간을 중앙으로 향했다.  종묘의 정전이 있는 방향이 이면 공간의 중앙으로 보였고, 이곳에 있는 몬스터는 닷발 괴물이라 불리는 전통 괴물이었다.

주둥이가 닷발, 꼬리가 닷발이라고 해서 닷발 괴물로 불리는 이것은 사람들이 악어에서 연유해서 상상해 내었을 거라고 하는 괴수였다. 머리가 그리 좋지는 않다고 하고, 전형적인 하급 괴수로 사람들을 해치는 요괴 정도로 인식되는 괴물이었다.

세진이 종묘 이면 공간에서 맞이한 괴수도 주둥이가 길고, 꼬리가 긴 대신에 몸통이 아주 짧아서 앞다리와 뒷다리가 좁은 간격을 두고 붙어 있는 괴수였는데 주둥이가 악어 주둥이가 아니라 해마의 주둥이처럼 생겼다. 그래봐야 등급이 제일 낮은 몬스터라서 세진은 앞으로 가로막는 족족 처리하고 나아가 결국 정전이 있는 위치에서 우두머리 닷발 괴수를 처치했다.

부하들보다 탄탄한 방어력과 간혹 주둥이에서 쏘아지는 물줄기 같은 특수 공격이 있었지만 세진을 곤란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세진은 그곳에서 부족 코어와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동시에 얻어서 나왔다. 당연히 이면 공간은 사라졌다. 이로서 어리 공방에서 에테르 코어를 사용해도 주변에 몬스터 영역이 생길 가능성은 없어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