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74화 (74/298)

< -- 진화 혹은 돌연변이? 그리고 김혜인 박사 -- >

김형일 상병은 한국에서 발견된 최초의 능력 각성자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그런 사례가 보고되어 따로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각성자들은 각국 정부의 보호와 관찰,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정보는 세진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세진은 한국에 있는 몬스터 영역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당연히 세진의 목적은 화이트 코어와 이면 공간 유지 코어였다.

하지만 세진의 목적이 뭐가 되었건 세진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몬스터 영역을 정리하는 행동은 국민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줬다. 비록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하는 일이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국가의 위협을 제거하는 봉사자 정도로 보였던 것이다. 거기다가 세진을 통해서 천공기들이 각국 정부로 판매가 되었다.

천공기의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원화로 십억 정도에 거래가 되니 국가 단위로 보면 그리 비싼 가격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천공기 둘에 화이트 코어 하나가 반드시 지불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러니 처음 천공기 두 개는 이십억에 살 수 있지만 이후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화이트 코어 하나가 있어야 천공기 두 개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자니 자연스럽게 국가마다 이면 공간 전담 공략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적은 간단했다. 천공기가 열려 있는 시간 동안에 한 팀이 모두 이면 공간으로 침투하고, 그 팀원으로 이면 공간을 공략해 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천공기 하나로 화이트 코어 하나를 얻을 수 있으니 공략에 성공하면 화이트 코어 하나의 여유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세진이 화이트 코어에 욕심을 내는 것을 보고, 각국에선 화이트 코어가 뭔가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보고 그것을 연구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면 공간 공략팀은 정예화 되어갔다.

그리고 그건 한국이라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도일씨도 거기에 포함이 되었다는 겁니까? 이젠 제 경호원은 그만 두는 거고요?"

꼬독! 꼬독! [그래도 여전히 이곳에서 살 겁니다. 집안일은 제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일이 있을 때에만 출동을 하고 그러는 겁니다.]

"한마디로 여길 하숙집으로 사용하겠다는 말이군요?"

꼬독! 꼬독! [하숙비는 가사활동입니다.]

"콜! 그렇게 하십시오. 나쁘지 않은 제안이네요. 어차피 선도일씨가 저를 경호할 일도 없는데 따로 다른 일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죠."

꼬독! 꼬독!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 팀 인원이 열 두 명이라고요?"

꼬독! 꼬독! [그렇습니다. 그 이상이면 사실 천공기로 뚫은 구멍이 사라지지 않습니까. 1분 시간 동안 계속 유지가 되는 것이면 몰라도 사람 숫자가 열두 명 정도 지나가면 구멍이 사라지니 어쩔 수 없이 인원에 제한이 생기기 않았습니까. 열두 명이 한계랍니다.]

"그 숫자로 이면 공간 공략이 가능합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우두머리는 만만치 않을 텐데요?"

꼬독! 꼬독! [팀원 중에 중화기를 다루는 사수가 있습니다. 개량형으로 만든 MG50을 쓰지요. 아무리 우두머리라도 그걸 견딜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 화기는 오직 우두머리를 상대할 때에만 잠깐 쓸 수 있을 뿐이죠. 단지 그걸 위해서 운용하는 무기입니다.]세진은 MG50이란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총알 하나가 거의 한 뼘 길이에 달하는 무식한 총이다. 배와 비행기를 잡는 용도로 쓰기도 하는 그걸 사람이 들고 다닌다니 입이 벌어질 일이다.

"그걸 사람이 들고 다녀요? 가능합니까?"

꼬독! 꼬독! [음. 네. 삼각대나 그런 걸 빼고 가볍게 했습니다만 어쨌건 운용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선 더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음 M60은 아무래도 약하려나? 그래도 MG50이라니 어마어마하네요. 그 대물 저격총인 바렛에 쓰는 총알이 바로 그 총알이죠? 벽에 커다란 구멍 내고 사람도 맞으면 형체가 일부 사라진다는 그거 말입니다."

꼬독! 꼬독! [사실 우리 팀이 쓰게 될 것은 MG50의 개량형인 K-6를 다시 개량한 겁니다. 개머리판도 달고 방아쇠도 바꾸고 그런 거죠. 개인 커스텀 총인 셈입니다. 그리고 저희 팀에는 바렛 사수도 둘 있습니다. 아, 정말 그 이상은 물어보지 마십시오.]도일은 거기까지 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세진은 팀원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도일의 태도에 뭔가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몸까지 피하는 마당에 더 물어보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뭔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니 조용히 따로 알아보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뭐 저 놈이 내기(內氣)를 사용하는 놈이니까 그 쪽에서 온 이들도 있을 거고, 군인들 중에서도 실력 있는 이들도 있겠지. 그나저나 그런 무식한 총을 다루는 놈은 어떤 놈이야? 개인 화기로 다룰 물건이 아닌데 말이지.'

그 시간 김형일 상병은 제 키만큼 큰 기관총을 들고, 등에는 12.7mm 탄환이 가득한 특수 제작 배낭을 메고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어쩌다가 비상식적인 힘을 지니게 된 김형일 상병은 연구소 모르모트 겸, 이면 공간 공략팀의 화력 담당을 맡게 된 것이다.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고, 나는 곧 병장이 될 거다. 그리고 전역의 그 날이 온다아!"

김형일 상병이 고된 훈련을 받으면서도 그렇게 다짐을 하지만 그를 보는 간부들은 하나같이 김형일이 전역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잡아 두려고 할 것이 분명한 것이다.

'불쌍한 놈, 저 놈 조만간 장기 복무 지원서에 지장 찍을 날이 오겠군.'

'간혹 저런 놈이 있지.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쯧쯔. 그래도 그렇게 잡혀 있는 놈들이 대우는 좋지. 진급도 빠르고 말이지. 하사관으로 시작해서 간혹 영관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전역하고 싶은 마음, 나도 이해한다. 이해해.'

간부들의 말 없는 측은한 시선을 김형일 상병은 알지 못했다. 그저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달아도 간다는 진리만 믿고 달릴 뿐이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세계는 일본에서 갓파의 등장으로 시작된 몬스터들의 등장이라는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되게 만들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결과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김혜인 박사는 그런 의미에서 운이 좋은 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천공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세진이 직접 에테르 도면을 손봐주는 자리에 있었던 경험도 했다.

그것이 그녀에게 에테르 이용에 대한 새로운 방식에 눈뜨게 해 줬고, 결국 김혜인은 획기적인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실험하는 도중에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실현은 되는 기이한 발명품을 손에 쥐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해?"

"당연히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역사에 길이 남은 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발명 때문에 지금 죽게 생겼는데?"

"아직 괜찮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정진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도대체 누가?"

"연구소에 다른 기업체에서 보낸 이들이 없으리란 법은 없죠. 거기다가 이번 건 좀 컸습니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이 당연하죠. 자그마치 에테르 코어를 어떤 에너지보다 높은 효율로 쓸 수 있는 방법이 생겼는데 말입니다. 그게 비록 열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해도, 전에 박세진씨가 그려줬던 것에 비하면 몇 십 배는 우수한 거 아닙니까. 에테르 코어 하나로 열다섯 개 동의 아파트 단지 한 달 난방을 할 수 있을 정돕니다. 그건 에너지 혁명이라고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죽을 위기에 처해있지."

끼이익!

"아악! 정진이 뭐야?"

김혜인 박사는 갑자기 급하게 멈춘 차 때문에 몸을 앞뒤로 흔들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나마 안전벨트 덕분에 무사한 것이 다행이었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십시오."

정진이는 벌써 내려서 김혜인 박사 쪽의 문을 열고 재촉햇다.

"응? 어딘데 여기가?"

김혜인 박사가 벨트를 풀면서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긴 어디겠습니까? 어리 공방입니다. 보시면 아시잖습니까."

"아, 그렇구나. 그럼 너 지금 우리가 여길 들어가야 한다는 거야? 그 박세진이란 사람에게 의탁을 하자고?"

"당분간이 될지, 아니면 오랜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일단은 살고 봐야 할 거 아닙니까. 가시죠."

정진이 경호원은 지금 상황에서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아예 어리 공방으로 찾아들었다. 적어도 이곳은 한국 내에선 거의 독립된 공간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잘못 건드리면 뭐가 터질지 모르는 곳이니 어느 정도는 자신과 김혜인 박사의 신변 안전을 보장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세진은 뜬금없이 들이닥친 손님 때문에 무척 놀랐다.

"그러니까 겨우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 겁니까? 아니 겨우 그걸 얻자고 사람을 납치하려는 이들이 있다고요?"

"겨우 그거라니요? 지금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을 하실 일이 아니에욧. 자그마치 에테르 코어의 활용에 성공한 사례라고요. 그걸 그렇게 폄하하면 안 되죠."

정진이 경호원이 발끈했다.

"음. 알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그게 그런 쪽으로라도 활용이 되면 좋은 결과긴 하지요."

세진은 정말 원시적인 에테르 코어의 활용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들은 에테르 코어의 활용은 지금 김혜인 박사가 가지고 온 방법 보다 몇 백 배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거기다가 몬스터 패턴을 이용한 코어 에너지 추출 방법은 신선하기는 하지만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는 방법이었다.

'그나마 반발력을 이용한 모터를 만드는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한 거라고 봐도 되겠군.'

"그래서 이 집에서 머물고 싶다는 건데, 그건 들어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저는 이미 소문이 날 대로 난 사람이라서 말이지요.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무슨 계획이라도 있습니까?"

세진이 김혜인 박사를 정면으로 보며 물었다.

"제가 이걸 가지고 회사를 차리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에테르 코어를 이용한 발열기 뭐 이런 거죠. 그리고 그걸 운영하는 곳이 벗이라고 하면 좋지 않을까요? 물론 진짜 운영은 제가 하고 적당한 지분을 벗에게 주는 걸로 하죠. 일종의 보호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요."

김혜인 박사가 조금 자신 없는 어투로 제안을 했다. 연구를 하던 연구원이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이 막막하기는 하지만 일단 발명해 놓은 것의 쓰임이 그런 쪽이니 한 번  시도를 해 봐도 될 것 같다고 여긴 것이다.

"일단 그냥 우리 박사님이 벗에 가입한 걸로 하면 되잖아요. 그럼 문제 해결이죠. 네? 어때요?"

이정진 경호원이 핵심을 짚어서 제안을 했다. 결국 벗을 등에 지고 안전을 확보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우리 벗의 구성원들이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아실 텐데 그런 말씀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만약 박사님께서 벗에 소속된다면 우리들은 박사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드러나 있는 구성원은 저 하나로도 차고 넘치는 상황입니다."

"정식 회원 그런 거 말고 그냥 협력자 정도로 해요. 그리고 내가 생각해봐도 이거 정말 대박이거든요? 물론 구조가 너무 간단해서 그걸 숨기고 발전기를 만들려면 좀 신경을 쓰긴 해야겠지만, 거 있잖아요. 천공기 만드는 기술 중에서 다른 사람들이 절대 분해해서 알아볼 수 없게 하는 그런 기술도 있던데, 그거 좀 적용해서 가르쳐주거나 혹은 벗에서 핵심 부품을 제작해 주면 에테르 발전기는 대박이 날 거라고요. 안 그래요?"

김혜인은 조금 전과는 달리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다. 자신의 기술과 벗의 기술이  결합되면 핵심 기술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사업도 탄탄대로를 달릴 거란 확신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다른 회사에 넘기는 것은 왜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기술 공개를 하거나 말이죠."

세진은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결국 기술을 들고 자신을 찾아온 김혜인 박사의 생각이 궁금했다.

"화가 나잖아요. 내 건데 빼앗아 가려고 하니까요. 그리고 다른 회사란 곳이 이번에 저를 노린 곳이 아니란 보장이 어딨어요? 또 기술 공개를 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기술을 쓸 텐데,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대기업만 배불려주는 꼴이 될 거 같아요. 그래서 싫어요. 내가 만든 거니까 정말 약간의 이윤만 붙여서 팔고 싶어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요."

"워워워. 포부는 엄청난데 그게 그렇게 쉽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그 핵심 부품을 제 친구들을 통해서 만들어야 하는 입장인데 말입니다. 그게 쉽지 않은 일이죠. 또 우리 친구들은 소량 생산에 능한 사람들이지 대량 생산은 어렵단 말이죠."

세진은 김혜인의 계획을 성사시키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그게 그렇게 만들기 어려운가요?"

'일단 만들기만 하면 어리가 복제를 해 내면 되는 일이라 어렵지는 않지. 하지만 어리가 그것만 만들면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게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일단 설계도를 봐야겠죠. 크기가 문제일 수도 있고 말입니다. 솔직히 박사님도 지금 에테르 도면이라고 하는 것 말고는 준비가 된 것이 없는 거 아닙니까?"

"맞아요. 하지만 그게 핵심인 거죠. 거기서 열을 발생시키고 그 열을 이용해서 다른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사실 난방이나 발전이나 뭐가 되었건 제가 만들 제품은 단지 열을 제공하는 기능만 있어요. 다른 건 알아서들 기계를 만들거나 변경하거나 해서 쓰면 되는 거죠."

"크기가 어느 정도나 됩니까?"

"글쎄요? 아직 얼마나 작게 줄일 수 있는지는 실험을 해보지 못했어요."

"좋습니다. 일단 어리 공방의 직원으로 채용을 하죠. 음, 4층에 연구 공간을 드리겠습니다.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두고 보기로 하죠."

세진은 일단 김혜인과 이정진 두 사람을 임시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품으로 날아든 새를 내치는 법은 없어야 한다고 세진은 생각했다.

거기다가 둘 다 꽤나 미인이 아닌가. 늑대 둘이 사는 공간에 여자가 끼어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이 굳이 연애 감정이 아니어도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