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73화 (73/298)

< -- 하지 마라 응? 하지마! 말로 하면 좀 들어! -- >

"어디 가서 이면 공간을 유지하는 다른 코어를 구해 와야겠다."

- 그래서 다시 여기 놓아두고 변화가 있는지 알아보시려고요?

어리가 물었다.

"그래. 아무래도 이 테멜의 코어가 이면 공간의 코어를 흡수하는 것 같으니까 다른 것도 흡수를 하면 결과적으로 이곳의 규모를 엄청나게 늘릴 수 있다는 소리가 되는 거지. 이건 저쪽 데블 플레인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거든? 이곳 지구의 에테르 코어들은 그쪽의 에테르 코어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

- 어떤 점이 다른데요?

"일단 이면 공간에 몸을 숨기고 번식을 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다르지. 물론 언젠가 일제히 나타나서 지구 전체를 점령할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될 수 있으면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살고 있었다는 거거든? 그런 경우가 있다는 소리도 저쪽 에서 들어 본 적이 없어."

- 그렇군요. 그럼 억지로 그 몬스터들을 끌어내고, 또 잘 살고 있는 곳에 쳐들어가서 죽이고 하는 것은 이쪽이니까 우리가 악당인 건가요?

어리의 질문에 세진은 잠시 정말 그런가를 생각해 봤다.

"모르겠네. 정말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이 영원히 이면 공간에서만 살 수 있고, 그럴 생각이었다면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은 그런 종들이 아니거든? 이것들은 자신들과 같은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의 세상을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란 말이지. 그렇게 멸망한 행성 문명의 수가 하나 둘도 아니라고 했고. 결정적으로 지구에도 에테르 농도가 점차 짙어지고 있었잖아. 없던 것이 생겨서 늘어나고 있었지. 그러니까 절대 숨어서 공존하며 살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 거야."

세진은 지구 대기중에 에테르가 넘쳐나는 것만 보아도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이 지구를 좀먹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 그렇군요. 에테르가 퍼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류에겐 위협이 될 문제니까 당연히 박멸을 해야 하는 거였어요. 맞아요. 어리도 세진의 말에 동의했다.

"아무튼 이 테멜은 말이지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 어떻게요?

"이게 얼마나 넓어질까?"

- 얼마나요? 글쎄요?

"앞으로 이면 공간을 유지하는 에테르를 얻는 대로 몽땅 여기에 투자를 해 봐야겠어. 어차피 화이트 코어는 부족 코어로도 충분할 테니까 말이야. 그러면서 이 테멜 공간이 얼마나 넓어지는지 알아봐야지. 어쩌면 한계가 없을지도 모르잖아."

- 우와 한계가 없는 테멜 공간이요? 멋있어요. 대단한 거 같아요.

"여기에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 정도로 넓어지면 마을이나 도시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뭐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말이다."

- 그런데요. 혹시 해서 하는 말인데요.

"응? 뭐가? 난 어리 네가 그런 식으로 말을 시작하면 가슴이 뜨끔하다."

세진은 어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아이 참, 그게요. 그러니까 혹시 다른 이면 공간의 코어도 다른 이면 공간의 코어를 삼키고 커지는 능력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원래 여기 있던 테멜 코어가 세진님이 들고 온 코어를 먹은 것이 아니라, 반대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것도 실험을 해 봐야 되겠네?"

세진은 정말로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한국은 그나마 에테르 코어에 대한 관리가 잘 되는 편이다. 거기다가 천공기를 시험한다는 명목으로 제법 많은 몬스터 영역이 정리가 되었다. 물론 거기서 나온 화이트 코어는 대부분 세진의 차지가 되었다.

천공기를 받기 위해서는 화이트 코어를 내 줘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즈음에는 천공기를 원하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화이트 코어를 줘야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경우에 들어오는 화이트 코어는 모두가 부족 코어라는 것이다. 부족 코어는 몬스터의 우두머리가 지니고 있는 코어를 말하는데, 부족 코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코어를 지닌 몬스터가 부하들을 만들어서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부족을 형성하는 코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인 것이다.

하지만 세진이 필요한 것이 부족 코어가 아니라 이면 공간을 유지하는 코어니 그걸 얻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이미 정리된 곳들 중에서 우두머리를 잡은 후에도 이면 공간이 남아 있는 곳을 알아야 하고, 그 정보는 당연히 도일을 통해서 서대철 과장의 허락을 얻어야 했다.

"그 정보는 왜 필요한 건가?"

서대철 과장이 세진이 우두머리가 잡히고도 남아 있는 이면 공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이유를 물었다.

"그곳에 뭔가 있으니 그 공간이 유지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걸 알아보려는 거죠."

"알게 되면 우리에게도 정보를 줄 건가?"

"정보를 알게 되면 뭘 하시게요? 어차피 이면 공간에 드나들 수 있는 건 천공기를 가진 사람들뿐인데 말입니다. 설마 화이트 코어가 있어야 얻을 수 있는 천공기를 가지고 이미 토벌이 끝난 이면 공간을 살필 생각입니까?"

"그건..."

서대철 과장은 이면 공간의 활용에 무척 관심이 많았지만 일단 이면 공간으로 들어갈 방법이 천공기 밖에 없는 이상은 세진의 말처럼 이면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안다고 해도 별로 도움이 될 것은 아니었다.

"이미 시구문 쪽의 이면 공간은 제가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거기 있던 이면 공간은 완전히 없앴지요. 제가 하려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 이면 공간을 남겨둬서 거기서 다시 몬스터가 발생할 여지를 두는 것 보다는 아예 이면 공간을 없애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군. 하긴 있어도 쓸 수가 없는 공간이니 차라리 없애는 쪽이 좋을 지도 모르지. 일단 자네가 원하는 정보는 주겠네. 거기서 자네들이 무슨 이득을 챙길지는 모르지만 알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자네들이 손해를 볼 것 같지도 않으니, 알려주긴 할 테니, 나중에 우리 쪽을 좀 많이 도와주게."

서대철은 당장의 이익 보다는 벗이라는 단체에게 빚을 지워 두는 쪽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글쎄요. 이건 제 친구들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개인적인 일이어서 말이죠. 그래도 신세를 진 건 기억을 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일단 관악산에 전에 제가 토벌한 장군 능선 말고 다른 쪽도 남아 있는 걸로 압니다. 토벌이 끝나고도 이면 공간이 유지 되었다지요? 거기부터 가겠습니다."

"도일씨를 데리고 가면 도일씨 신분증으로 충분할 텐데?"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저 혼자입니다. 괜한 욕심 부리지 마십시오."

"알겠네. 그래도 어차피 도일씬 자네 근접 경호를 맡은 거니 데리고 가게."

"꼭 원한다면 그렇게 하죠."

"그리고 조만간 새로운 주문서가 들어갈 거네. 김박사가 그러더군."

"알겠습니다. 기대가 되는군요. 이번에는 또 어떤 물건을 만들어낼지 말입니다."

세진은 에테르 코어를 이용한 동력 기관을 연구하는 연구팀에 들어간 김혜인 박사가 뭔가 주문을 할 거라는 말에 사뭇 기대가 되었다.

세진은 이후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토벌이 끝난 몬스터 영역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았다는 이면 공간을 처리하고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획득해서 테멜 코어에 흡수시키는 작업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지구의 이면 공간 코어들은 서로 흡수해서 공간을 넓히는 일을 하지 않았다. - 그럼 다른 테멜도 여기에 가지고 오면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될까요?

어리는 어느새 꽤나 넓어진 테멜 공간에 신기한 듯 그렇게 물었다.

"그럴 수도 있지."

- 그런데 코어를 흡수해도 공간이 늘어나는 비율이 점차 줄어드는 것 같아요. 이건 왜 그럴까요?

"등급 때문이겠지. 아마도 빨간색 등급의 코어로는 한계가 있다는 거 아닐까?

- 어리 생각에는요. 어쩌면 지금 한창 쌓아두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한꺼번에 변태를 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한껏 모았다가 어느 순간에 푸확 하고 변하는 거죠.

"그럴 가능성도 있겠구나. 하여간 재미있긴 하다. 이런 공간이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테멜은 완전한 감옥이기도 하니 더 마음에 든다."

- 하기 그렇기는 해요. 에테르를 몸에 지닌 사람이 아니면 테멜 공간을 드나들 수가 없으니까 말이죠. 입구건 출구건 에테르가 몸에 없는 사람은 접촉을 해도 작동이 되지 않으니 신기한 일이에요.

"그래도 나와 접촉한 상태에서는 다른 생물체도 출입이 가능하니 이것도 나쁘진 않아. 나중에 지구인 중에서도 에테르를 몸에 지닌 이들이 나타나겠지. 아니면 에테르 저항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나오거나 말이다. 그렇게 되면 테멜 공간도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겠지."

세진은 이걸 시험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테멜 공간 안으로 데리고 오는 시도를 했고, 성공했다. 대신에 강아지와 고양이가 테멜 공간으로 들어가는 소용돌이를 건드려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세진은 테멜 공간은 에테르를 가지 고 있거나 혹은 에테르에 대한 기본적인 저항력이라도 있는 존재만 출입이 가능하리란 결론을 내렸다.

- 그럴까요?

"에테르가 대기 중에 있으니까 어쩌면 이미 그런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김형일 상병은 요즈음 자꾸만 몸이 가려웠다.

며칠 전에 몬스터 영역의 이면 공간 토벌에서 보조 요원으로 참가한 후부터 조금씩 이런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 때,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 쓴 때문일까?'

김 상병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몸에 생긴 이상을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돌연변이가 되는 거라면 분명 끌고 가서 실험을 하고 해부를 할 거야. 절대 들켜서는 안 돼.'

김형일 상병은 피부가 아니라 몸 안이 간지러운 상황에서 남모르게 몸을 두드리거나 어딘가에 부딪히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가려움을 해소하려 애쓰면서 참았다.

'함께 피를 맞았던 병사들은 멀쩡한 것 같은데, 유독 나만 이런 이유는 내가 특이 체질이란 소릴까? 몬스터의 피와 반응을 하는? 젠장 이게 무슨 꼴이야. 제발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김형일은 그렇게 간절히 바라며 힘겨운 군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열흘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몸의 간지럼증이 사라졌고, 그 덕분에 김 상병의 깊은 고뇌도 사라진 듯 보였다.

콰직!

"어이, 김상병, 그게 2.4종이라지만 우리 군바리 보다는 등급이 높은 분이라니까? 벌써 삽자루를 몇 개나 해 먹는 거야? 응?"

"박 병장님. 이게 제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중간이 썩었는지 조금만 힘을 주면 이렇게 박살이 나는 걸 저보고 어쩌란 겁니까?"

"안 되겠다. 너 오늘 손에 무슨 살이라도 낀 모양이다. 장갑 끼고 저 쪽에 가서 쉬어라 응? 너도 알지? 이런 날에 괜히 설치다가

'톡 쳤는데 억하고 죽었다.'

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거 말이야."

한쪽에서 곡괭이질을 하던 배 병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는 유독 미신과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실제로 그가 하는 말들이 그럴 듯한 것이 많아서 내무실에서도 그가 무슨 말을 하면 대충 들어주는 쪽이었다. 그러니 그가 나서서 김상병을 작업 열외를 시켜도 뭐라 하는 사병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배 병장님. 저기 박 병장님 저 어디 가서 짱박혀 있어도 됩니까?"

"그래. 나하고 배병장님이 허락한 거니까 간부들 만나면 배 병장님이 그랬다고 하고 짱박혀서 아무것도 아지 마라. 음, 그래 건조장 가서 구석에서 낮잠이나 자라."

"알겠습니다. 박 병장님."

김형일 상병은 정말 오랜만에 작업 열외를 받아서 중대 본부 뒤에 있는 건조장으로 향했다.

건조장은 의복이나 활동화 같은 것을 말리기 위해서 지어 놓은 비닐하우스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곳 한쪽에는 작은 평상이 있어서 앉아서 쉬거나 말년 병장들이 장기 나 바둑을 두는 곳으로 애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과 시간이라 그곳엔 아무도 없을 터였다.

김형일 상병은 건조장 평상에 앉아서 손에 적벽돌을 든 상태로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힘을 주게 되면 가끔씩 몸 안이 간지럽고 그러다가 뭔가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들면? 문제가 생긴다.'

콰드득!

순간 김상병이 들고 있던 벽돌이 뭉개지며 손에서 떨어진다.

"이게..."

"어이, 김상병 무슨 일이냐?"

부르며 건조장 안으로 부소대장인 고하사가 김상병을 부르며 들어오다가 김형일 상병이 적벽돌을 아귀힘으로 부수는 것을 보고 우뚝 멈춘다.

'아, 군생활이 여기서 꼬이기 시작하는구나. 제길.'

김형일 상병은 앞으로 험난한 군생활이 기다릴 것을 예견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 날, 김형일 상병은 곧바로 대 몬스터 작전본부로 차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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