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공기 - 구멍 뚫는 기구 -- >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가 말입니까?"
한창 몬스터를 학살하며 다니던 세진이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자 도일은 뭔 소리냔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저쪽에서 이리로 그리고 또 저리로 그리고 여기로 온 거 맞습니까?"
세진이 창으로 그간 지나온 행로를 그어가며 물었다.
"맞죠. 저기가 우리가 들어온 곳이고, 그리고 저쯤에서 첫 싸움, 그리고 저곳에서 저곳으로 이동... 이상하군요."
대답을 하던 도일이 중간에서 말을 멈추고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우리가 하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원을 그리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그럼 여기서 이쪽으로 가면 지금까지 우리가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가게 되는데 말이죠."
등록일 : 13.12.10 00:04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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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천공기 없이도 밖으로 나갈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보통 인식 장애 같은 것이 그런 거잖습니까? 그것만 지나면 본래 세상으로 돌아가고 그러는 거죠. 옛 이야기에도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길을 헤매다가 정신이 들어보니 처음 그 자리에 돌아와 있다고 하는 뭐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그럴듯한 말씀이군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는 것이 아니니까 저리로 가 봅시다. 왠지 저기가 마지막을 것 같죠?"
세진은 시구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곳은 다 돌면서 몬스터를 처리했는데 이제 시구문만 남은 것이다.
"어째 위험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요?"
도일은 좋지 않은 안색으로 세진을 말리고 싶다는 뜻을 보였다.
"지금까지 나왔던 놈들의 우두머리쯤 되겠지요. 하지만 그 정도야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세진은 부족 코어를 지닌 놈이 본래 등급에서 한 등급 반 이상 높은 능력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붉은색 등급이라면 주황색과 노란색 등급 사이가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세진은 걱정하지 않았다.
이곳의 몬스터는 데블 플레인에 비해서 절반 정도의 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우두머리가 있다고 해도 데블 플레인의 주황색 등급 정도의 수준이 되기도 어렵다고 봤다.
지금 세진은 익스퍼트의 실력자였다.
그런 세진에게 이곳의 예상 몬스터는 그리 대수로울 것이 없는 상대였다.
그 판단은 세진의 오만이나 교만, 혹은 방심에서 나온 결과가 절대 아니었다.
천공기가 처음 성공했을 때, 주서관 소령에게 끌려 나오면서 세진은 한 순간 흥분해서 잘못된 선택을 할 뻔 했던 것을 반성하고 또 반성했었다.
천공기로 결계를 열었다고 거길 뛰어들 생각을 한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후로는 좀 더 신중하게 상황을 살폈고, 그 후에 지금 등장하고 있는 몬스터 영역은 충분히 혼자서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움직인 것이었다.
그러니 광희문(시구문)으로 향하는 걸음에 거침이 없는 세진이었다.
"역시 뭔가 있지 않습니까? 몬스터들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소리죠. 저거 망나니 아닙니까. 망나니 칼만 봐도 알겠군요."
"시구문이 죄수의 시체만 들고 나는 곳도 아니었는데 결국 망나니가 등장하니 참 한숨만 나옵니다."
도일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길 보면 몬스터의 모습을 보고 전설이 생긴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의 말이나 생각에 따라서 몬스터의 외양이 결정된 경우도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세진님 말씀을 들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네요. 몬스터가 전설을 만드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사람들의 의식이 영향을 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네. 기억해 둬야할 내용입니다."
도일은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했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일단 저걸 해결을 해 보죠."
세진이 연실의 광희문인 거대한 바위 덩어리에 굴처럼 파인 통로 안쪽에 서 있는 망나니 몬스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은 아직 세진과 도일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통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반복해서 오고가고 있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으면요? 제가 질 것 같으면 아까 이야기한 대로 이곳 외곽으로 가서 정신 바짝 차리고 인식 장애를 피해서 밖으로 가 보십시오. 그럼 정말 여길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천공기를 제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요?"
"설마 그걸 제가 드릴 것 같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자 그럼 갑니다.
하앗!"
세진은 그렇게 도일을 놀리고는 곧바로 망나니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머리에 띠를 묶었지만 긴 머리카락은 봉두난발로 흐트러져 있고, 원래 흰색이었을 옷은 여기저기 얼룩이 잔뜩 묻어 있는데 핏자국인지 흙인지 떼인지 알 수 없이 지저분하다. 하지만 윗도리 고름이 풀려서 드러난 배에서 가슴까지 기괴한 문양의 몬스터 패턴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전에 봤던 일반 몬스터들의 패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하다.
'생긴 건 그래도 부족 코어를 지니고 있는 놈이라 이거지?'
세진은 몬스터 패턴의 정교함을 보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아서 방심하지 않고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망나니 몬스터에게 가득 밀어 넣고, 디버프를 발동시켰다.
우어어어어어! 어어어!
우어!
망나니는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에 놀라선지 몸을 떨고 칼을 쥐지 않은 왼 손으로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하지만 세진은 망나니에게 그렇게 몸을 풀 여유를 주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돌격해서 창을 내질렀다.
빠르게 쏘아진 창은 금방이라도 망나니의 머리를 뚫을 것 같았지만 망나니는 한 방에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약한 상대는 아니었다.
망나니 칼을 휘둘러서 창을 비켜내며 옆걸음으로 자리를 피한 것은 순간이었다.
우어어어어!
그리고 커다란 고함과 함께 세진은 망나니의 몸에서 생체 에테르가 뿜어지면 망나니 몸에 들어갔던 디버프 기반 에테르가 모두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 한 번의 고함에 망나니의 생체 에테르가 많이 소비되긴 했겠지만 디버프에 결려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세진은 속으로 칭찬을 해 줬다.
하지만 칭찬은 칭찬이고, 서고 창과 칼을 맞부딪히며 요란스럽게 어울렸다.
세진은 디버프를 날려버린 망나니와도 비등하게 겨룰 수 있다는 것에 새삼 자신이 성장한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대치를 유지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다시 망나니의 몸으로 밀어 넣었다.
그것이 디버프로 발동이 될 때까지는 망나니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앞서의 경험으로 알게 된 세진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확실하게 망나니를 처리하기 위해서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움직여서 망나니의 가슴 부분으로 옮겨서 응축했다.
역시 디버프 기반 에테르라도 몬스터 패턴이 있는 곳으로 이동시키는 데에는 적지 않은 저항이 있었다. 하지만 등급이 낮은 몬스터라 그런지 결국 가슴가지 이동을 시켰고, 에테르 압축이 끝나자 곧바로 디버품이 발동되었다.
퐉!
우어억!
망나니의 가슴 일부가 터지는 것과 세진의 창이 망나니의 칼을 밀고 들어가서 망나니의 목을 잘라내는 것이 짧은 간격을 두고 연이어 이루어졌다.
츄화확!
잘려나간 망나니의 목에서 핏줄기가 솟구쳐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것이 땅으로 떨어지기 전에 망나니의 몸이 승화되기 시작했다.
세진은 아직까지 죽은 몬스터의 사체에 에테르를 흘려서 사체를 보존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세진은 망나니가 있던 자리에서 하얀색 코어 하나를 주워 들었다. 새끼손톱 크기지만 그것이 하얀색이란 것이 중요했다.
이것은 스스로 에테르를 회복하는 기능이 있는 코어인 것이다.
세진은 그것을 도일이 다가오기 전에 품속에 넣어버렸다.
멀리 떨어져 있던 도일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잡았군요. 그럼 이제 이곳 이면 공간도 사라지는 겁니까?"
"글쎄요? 방금 죽은 놈이 이곳을 유지하는 녀석이었으면 사라질 것이고 아니었다면 계속 남아 있겠지요."
"아직은 변화가 없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좀 더 기다려 봐야지요. 혹시 몬스터가 다시 나타나는지도 알아야 하고, 또 이곳 공간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알아야 하고 말입니다.
세진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밖에서 시구문에 해당하는 바위 언덕의 한 부분을 보고 있었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에테르의 느낌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저기 테멜 코어가 있다면, 이 공간은 저걸 파내지 않으면 계속 유지가 될지도 모르겠군. 재미있네. 이렇게 되면 저런 것을 파괴하지 않으면 새로운 땅이 생기는 거라고 봐야 하나? 아니, 거절 옮기면 이런 공간도 이동이 가능할까? 알아볼 것이 많겠어. 정말로.'
세진의 눈빛은 그런 생각에 따라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세진과 도일은 망나니를 처리한 이후에 다시 시구문 이면 공간을 뒤지고 다녔지만 한 마리의 몬스터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도 몬스터가 새로 나타나는 일도 없었다.
"몬스터가 다시 나오지는 않는 모양인데요?"
"확신 합니까?"
세진이 도일에게 물었다.
"네?"
"이런 가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망나니가 다른 몬스터를 지배하는 존재였다면 말입니다."
"네. 그렇다면요?"
"그 몬스터가 없어졌으니 다른 몬스터들도 모두 사라졌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요. 이제 여긴 클리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거죠."
"그게 성급한 결론이란 겁니다. 이곳에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 그 망나니가 새로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습니까? 며칠, 몇 달 혹은 몇 년 후에 말입니다."
"그,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제가 생각이 좀 짧았습니다."
도일은 세진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뭐 단순히 제 생각일 뿐입니다. 이곳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찰을 하면서 정보를 얻어야죠. 그런데 도일씨, 될 수 있으면 여기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비밀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위에 보고를 해야 하겠지만 그 보고 내용이 다른 곳으로 번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입니다. 보셔서 알겠지만 이제 제가 국정원이나 정부의 도움은 별로 필요가 없게 되었거든요."
세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품속에서 에테르 코어들이 들어 있는 작은 주머니를 꺼낸다.
복주머니 같이 생긴 그 안에는 이곳에서 얻은 에테르 코어가 들어 있고, 그것을 도일도 알고 있었다.
"언제든 원하면 필요한 곳에서 이면 공간으로 들어가서 몬스터 사냥을 할 수 있고, 따로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게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딱 그런 소리죠. 더구나 여긴 다른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된 곳이어서 잘만 활용하면 새로운 아지트로 이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절대 들킬 염려가 없는 새로운 공간이죠?"
"만약에 망나니가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겠군요. 미국처럼 곳곳에 무인 화기를 장치해 두면 따로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을 테고 말입니다."
"하하하.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도일씨.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우리 팀원들에게 그런 공간을 하나 개발해 두라고하면 좋겠군요. 이왕이면 넓은 곳으로 말입니다."
세진은 굉장히 기쁜 표정을 지었다.
도일은 그런 세진을 보면서 벗이란 단체가 엄청난 기득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이들이 천공기를 개발하지 못하는 이상, 이면 세계를 획득하거나 혹은 사용하는 것은 벗(友)이라고 하는 단체가 주도하며 이끌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천공기? 그거 하나가 세상을 쥐락펴락 하겠군.
앞으로 한동안은 벗들을 건드릴 수 있는 힘은 존재하기 어렵겠어. 정말 대단하군.'도일은 세진의 뒤를 따라 걸으며 좀처럼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도일씨, 정신차리고 따라와요. 여기서부터 인식 장애를 피해서 밖으로 나가보자구요. 그게 가능한지. 가능하면 어디로 나가게 되는지 알아봐야죠. 그리고 정말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천공기 없이도 이면 공간으로 들어설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될지 또 어떻게 압니까? 나갈 수가 있다면 들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확률은 극악하겠지만?"
도일은 세진의 목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세진에게 달려갔다.
천공기 없이 몬스터 영역을 들어설 수 있는 방법이란 말에 흥미가 생긴 것이다.
============================ 작품 후기 ==============
==============세 편입니다. 넵... 천공기.. 그게 꽤나 비중있는 무기가 될 듯?
넵.. 그렇다죠... 거기다가 이면 공간을 공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니... 후후훗.
그리고 이면 공간도 활용도가 있을 듯? ^^ 행복하시죠?
저도 행복해요... 목표 달성입니다.
내일 또 뵈요. 전 스킬피스도 신경을 써야 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