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공기 - 구멍 뚫는 기구 -- >
까똑! 까똑! [이래도 되는 겁니까?]도일이 불안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통해서 물었다.
"괜찮습니다. 이것도 아주 중요한 실험이니까요."
까똑! 까똑! [정말 몬스터 영역이 아닌 곳에서도 천공기가 작동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여기가 어때서요? 딱 봐도 뭐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집에서 멀지도 않아서 실험을 하기도 좋고 말입니다."
까똑! 까똑! [에테르 코어를 그렇게 들고 다니시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중형을 면치 못합니다.]
"괜찮습니다.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짓입니다. 에테르 코어는 한 지역에 3일 이상 머물 때에 그 지역의 결계를 허물어서 몬스터들이 나타나게 만듭니다. 하지만 때론 그 지역에 결계가 없어서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여기서 제가 천공기를 사용했는데 이면 공간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 지역에는 결계가 없다는 말이니 안심해도 된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니 이런 실험도 필요한 겁니다."
까독! 까똑!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소식 들었습니다.
이면 공간 안에서도 천공기가 작동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우리가 여기에서 이면 공간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탈출을 하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하아!"
선도일은 뭐라고 문자를 보내려고 하다가 그냥 한숨만 쉬고 말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지금 세진과 도일은 광희문에 연결된 성벽을 따라서 뒷골목을 걷다가 성벽이 끊긴 지점에서 성벽을 보며 서 있었다.
세진은 그곳에서 천공기를 사용해서 보이지 않는 결계를 열고 이면 공간으로 가는 실험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즉 아직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은 지역에서 천공기로 이면 공간을 여는 실험을 하려는 것이다.
당연히 도일은 멋도 모르고 따라왔다가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되었지만 세진을 말릴 힘도 없는 상황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지원조에서 아마 상부에 연락을 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난리가 났을 것이다.
"자, 그럼 시작을 해 볼까요?"
하지만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이미 늦은 상황이다. 세진이 벌써 천공기 판을 꺼내고 거기에 에테르 코어를 올려놓은 상황이다.
푸화확!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천공기는 에테르 코어를 분해해서 거기서 나오는 에테르를 한 곳에 집중시켜서 회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허공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보십시오. 여기도 있잖습니까. 이 서울에서 광희문하면 예부터 시구문이라고 해서 죽은 시체를 내보내던 문이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곳에는 유독 기괴한 이야기들이 많고 그러니까 말입니다. 자 들어갑시다.
선도일은 세진이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다급하게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원조의 사람들이 달려왔지만 이미 두 사람은 사라지고, 두 사람이 들어간 구멍도 없어진 상황이었다.
다급하게 날리는 무전과 스마트폰 통신만 불이 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감시 인원 두 명을 남기고 철수했다.
들어간 곳이 이곳이라고 나오는 곳도 이곳은 아닌 것이다.
나오는 곳도 제 멋대로 정해지는 것이 이면 공간과 현실 공간의 천공이 가지는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그러니 상부에서 많은 사람을 그곳에 서성이게 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이유가 없었다. 도리어 사람들을 광희문 주변으로 퍼트려서 넓은 지역을 감시해야 할 상황이었다.
세진은 가만히 도일을 쳐다봤다.
도일은 그런 세진의 시선을 슬쩍 외면하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이미 작동 불능이다.
아니 작동은 되지만 바로 곁에 있는 세진의 스마트폰으로도 신호를 보낼 수가 없다.
근거리 무선 통신을 이용한 송수신도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이 순간 도일은 벙어리 신세가 된 것이다. 그래서 세진이 도일을 쳐다보며 이제 육성으로 말을 하라고 은근한 압박을하는 중이었다.
"휴우. 소, 속이 시원하십니까?"
결국 도일이 입을 열었다.
"뭐 일단 확인은 해야죠.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도 모르는데 도일씨가 끝까지 말을 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면 거기에 맞춰서 행동을 해야 하니까요."
"저도 일의 경중은 가릴 줄 압니다. 개인적인 문제로 중요한 일에서 걸림돌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랬으면 제가 국정원 요원이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자, 그런데 무기는 가지고 오셨습니까?"
"따로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지 않았습니까. 세진씨가 미리 이야길 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게 전부입니다."
도일이 옆구리에서 권총 하나를 뽑아 보여준다.
"음.
그건 안 될 거 같으니까 이걸 쓰죠."
세진은 배낭에서 분리된 창을 꺼내서 조립하고 그것을 도일에게 준다. 그리고 또 다른 창을 조립한다.
"앞으로 미리 이야길 할 생각이 없으시면 저는 검으로 주십시오."
도일은 그렇게 말하고는 창의 앞부분만 따로 분리해서 들었다. 그렇게 해서 창이 사라지고 손잡이가 좀 긴 칼이 생겼다.
"어떻게 쓰건 그거야 알아서 할 일이죠. 그게 원래 그런 이유로 분리가 되게 만든 거 아니겠습니까? 나머지 부분은 버리지 마시고 이리 주십시오."
"아닙니다. 쌍검을 쓰듯, 이건 방어용으로 쓰지요."
도일은 남은 한쪽을 왼 손에 들었다.
"자, 그럼 가 볼까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곳에서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건 알고 계시죠?"
도일은 세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새삼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언덕과 나무들의 연속일 뿐이다.
"잘 보시면 뭔가 좀 눈에 익은 것 같지 않습니까? 저기 저거 어떻습니까?"
그런데 세진이 한쪽을 창끝으로 가리켰다.
도일은 그 쪽을 보면서 확실히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저거 시구문입니다. 그리고 저렇게 뒤로 뻗은 것이 시구문에 연결된 성벽이고 저기서 끊겼죠? 그러니까 우린 저기서 천공을 뚫었는데 여기로 나오게 된 거죠. 여긴 그러니까 현실에선 한양공고 앞 삼거리쯤 되는 겁니다. 아, 삼거리라고 하긴 좀 그렇고 로터리? 그것도 좀 안 맞나요. 그냥 한양공고 앞이라고 하죠. 저기 시구문이 보이는 걸로 보면 우리 뒤쪽이 한양공고가 있는 거고 저쪽으로 가면 토요코인호텔이 있겠군요."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게 길이나 언덕, 나무들과 바위 절벽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군요? 그걸 단번에 알아내시다니 놀랍네요."
"한 번 보면 잘 안 잊어버리는 기억력 때문이죠. 자 그럼 가 볼까요?"
세진은 그렇게 말하고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십시까?"
"사냥을 갑니다. 지금 우린 밖으로 나갈 에테르 코어도 없거든요?"
"네? 그게 무슨? 설마 아까 쓰신 것이 마지막? 그러니까 원래 코어가 하나 밖에 없었다구요?"
"그렇다니까요. 그러니 여기서 몬스터를 잡아서 코어를 얻어야 하는 겁니다."
세진은 도일의 놀란 얼굴을 보면서도 태연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에테르 코어가 없이도 천공기를 작동시킬 수 있는 사람이 세진인 탓이다. 그의 몸에 있는 에테르를 이용해서도 천공기를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실험으로 증명을 했었다.
그렇게 실험을 하느라 빼돌린 에테르 코어가 바로 조금 전에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사용한 그것이었고 말이다.
"몬스터로군요."
"몬스터 맞겠지요. 이제 어쩔겁니까?"
"도일씨가 한 번 상대해 보세요. 한 마리니까 연습을 해 보셔야죠."
"제게 기회를 주십니까?"
"제 몸은 지킬 수 있는지 확인을 해야죠."
세진은 그렇게 말하곤 도일 뒤쪽으로 물러났다.
도일은 오른 손에 기형의 칼을 들고, 왼 손에 쇠파이프를 든 상태로 천천히 몬스터를 향해 나갔다.
"시구문 답죠? 옛날 죄수가 몬스터로 나오다니 말이죠."
"죄수 맞습니까?"
"머리 풀고 흰 옷을 입고 있으면 죄수 아닙니까?"
"어째 처녀귀신이 떠오르는데요?"
"저건 어딜 봐도 여자가 아니라 남자입니다만? 아, 오는군요. 수고!"
긴장을 풀기 위해선지 쓸데없는 말에도 꼬박꼬박 대구를 하던 도일은 몬스터가 자신을 발견하고 빠른 속도로 달려오자, 말대꾸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달려 나가서 몬스터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카카캉!
"크윽!"
하지만 기세 좋게 달려 나간 것에 비해서 결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뭐가 이런!"
도일은 자존심에 큰 타격을 받았다.
세진은 너무도 쉽게 잡는 몬스터였다. 그런데 자신은 칼로 맞추고도 상처하나 만들지 못한 것이다. 도리어 이상한 반발력에 뒤로 밀려나기까지 했다.
카카카캉 카캉 카강 카강캉!
도일은 오기가 생겨서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가며 휘둘러 몬스터를 타격했다.
그러면서 몬스터가 하는 손톱 긁기나 때리기 같은 것은 쉽게 피해 냈다.
하지만 그렇게 공격을 퍼부은 대가는 도일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우엑!"
도일은 뒤로 물러나면서 붉은 피를 토했다.
"우에엑!"
다시 한 번 피를 토하는 것을 본 세진이 앞으로 나서서 몬스터를 막고 창으로 그어 내렸다.
몬스터가 세진의 창에 맞기 직전에 몸이 경직된 것은 세진만 아는 사실이다.
세진은 창이 몬스터 몸에 닿기 전에 디버프를 걸어서 방어력을 현격하게 떨어뜨리고 몬스터의 동작을 경직시키는 수작을 부렸던 것이다.
"괜찮습니까?"
세진이 몬스터를 처리하고 도일을 부축하며 물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세진씨는 쉽게 상대를 하는데 어째서 저는 이렇게 된 거죠?
지금 이건 완전히 내상을 입은 상황인데요?"
"몬스터가 지니고 있는 기운과 도일씨가 가진 기운이 서로 상충해서 생긴 현상입니다. 아예 아무 기운도 없는 사람은 그런 상처도 안 받죠. 기운과 기운이 충돌할 정도가 되어야 그런 꼴이 됩니다.
세진은 도일의 몸에 보통사람과는 다른 내기가 흐르고 있음을 밝혔다.
"크윽. 이런. 들킨 겁니까?"
도일은 숨기고 있던 비밀이 아무렇게나 밝혀진 것이 허탈한 듯한 표정이었다.
"딱히 들키고 말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오래 전에 알았으니까 말입니다."
세진은 별 것 아니란 듯이 말했다.
"하긴 제 능력이 보잘것 없으니 세진씨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도일은 조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엄한 스승 밑에서 체계적으로 수련을 하고 결국 그 이유로 국정원에 특채가 된 몸이었다. 그래서 따돌림도 받았지만 특별한 능력 때문에 인정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자신은 넘보지 못할 고수가 있는 것이다.
"그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 관여하지 말자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사실 그런 능력 있어봐야 쓸 곳도 별로 없는 세상이었잖습니까.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뭐 지금도 여전히 별 소용이 없는 것 같지만 말입니다."
도일은 형편없이 밀려버린 자신의 상황을 되새기며 힘없이 말했다.
"그건 도일씨가 기운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죠. 몸 안에서 기운을 움직여서 쓸 수가 있어야 하는데 축적만 시키고 제대로 못 쓰고 있으니 그런 일이 생긴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이번에 나가게 되면 스승님께 찾아가서 제대로 가르쳐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런 것은 몰라도 되는 세상이라고 하셨는데 이젠 필요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도일은 세진의 말에 희망을 얻고 눈빛을 빛냈다.
그는 다음에는 오늘처럼 꼴불견인 모습은 보이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 있었다.
스승이라면 그런 방법을 알려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세진은 도일을 끌고 다니면서 몬스터들을 그야말로 허수아비 베듯이 베고 다녔다.
사람 형상을 하고 있는데다가 특별한 무기도 없는 몬스터들은 세진의 디버프에 걸리는 순간 이미 일반인보다 못한 상황이 된다.
그러니 에테르를 사용하는 세진의 공격을 막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지구의 몬스터들은 데블 플레인의 몬스터들에 비해서 무척 약했다.
세진이 상대했던 제일 약한 몬스터보다 약한 것이 요즈음 세진이 상대했던 지구의 몬스터 수준이었다.
그러니 세진의 앞을 가로막을 몬스터는 없다고 봐야 했다.
그렇게 쓸고 다니면서 에테르 코인이 나오는 족족 챙겨 넣다보니 어느새 몬스터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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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후기 ============================도일... 역시 아직 안 되는... 쿠쿠쿡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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