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공기 - 구멍 뚫는 기구 -- >
세진이 에테르 코어를 이용해서 몬스터들이 있는 이면 공간을 확인한 사실은 극비에 붙여졌다.
몬스터가 어디에서 오는지,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는 이들은 아무도 없는 상황.
그런데 세진이 몬스터들이 실제공간과는 유리된 이면 공간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낸 것이다.
"그러니까 그 안으로 들어가서 몬스터들을 정리하면 이후로 지금 몬스터 영역이 되어 있는 곳을 정상적으로 되돌릴 수 있을 거란 말인가?"
세진은 질문을 던지는 원장이란 자를 시큰둥하게 바라봤다.
"내가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는 어리로 보입니까?"
등록일 : 13.12.10 00:00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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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라니?"
"원장님 세진씨가 기르는 앵무새 이름입니다."
뒤에 서 있던 서대철 과장이 허리를 굽히고 귀엣말로 알려준다.
"아, 미안합니다. 정보가 들어오면 다시 확인하는 것이 습관인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 안쪽에 몬스터를 정리하면 몬스터 영역을 본래 상태로 돌릴 수 있다는 겁니까?"
세진은 끝까지 질문의 답을 듣고 싶어 하는 원장이란 사람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게 궁금하면 댁들 연구원에게 물어볼 일이지 왜 내게 묻습니까? 그리고 제게서 가지고 간 그 금속판은 그쪽에서 알아서 가지십시오. 뭐 다시 작동을 한다는 보장은 전혀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세진은 원장을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눈을 살짝 감아버렸다.
어찌어찌 선도일과 주서관에게 끌려온 곳이 이곳 서울대의 컴퓨터 신기술 공학 연구소라는 곳에 차려진 대 몬스터 작전 본부였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자니 몇 사람이 와서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거기에 건성건성 대답을 하고 있노라니 이 원장이란 자가 나타나서 세진과 면담을 시작한 것이다.
원장 곁에는 서대철 과장을 비롯해서 다섯 명의 떨거지가 서 있는 상황이었다.
"작동하지 않을 거란 말이군. 그게 그쪽에서 만든 물건이니 우리가 어떻게 해 보려고 해도 아마 실패하겠지. 그러니까 그걸 우리가 가져가도 신경을 쓰지 않은 거고 말이지."
"잘못해서 에테르 코어가 폭발하면 이 일대의 모든 전자 기기나 전기 관련 물품들은 박살이 날 테고, 그럼 한동안 시끄럽겠지요. 아직 우리나라에선 그런 짓을 한 사람은 없지요? 다른 나라에선 종종 그런 일이 벌어지곤 하던데 말입니다."
"그럼 잘못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단 건가?"
원장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몰랐습니까? 선도일씨와 그 군인 아저씨 말을 제대로 안 들었습니까? 제가 그 판 위에 에테르 코어를 올려 놓자, 그것이 사라지면서 빛이 나고 뭐 이런 소리 없었습니까? 코어가 사라졌으면 그 에너지는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생각이 있으면 그게 폭발의 다른 형태란 것 정도는 염두에 둬야죠. 안 그렇습니까?"
세진은 원장을 놀리듯이 눈을 감은 상태로 주절주절 떠들었다.
그러자 원장 뒤에 있던 사람들 중에 둘이 서둘러서 무전기에 대고 떠들기 시작한다. 당연히 지금 당장 실험을 중지하고 대기하란 소리가 들린다.
'미친 것들. 앞뒤도 재지 않고 실험? 겁들을 상실했구만? 한 번 대차게 당하게 둬야 하는 건데 말이지.'
파파팟, 파팟.
"엇!"
"젠장!"
"아, 하지 말라니까!"
하지만 세진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세진이 있던 곳의 조명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들고 있던 무전기와 스마트포 등등. 전자 제품이라고하는 것들은 모두 스파크를 일으키며 동작을 멈췄다.
누군가 성격이 급한 연구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벌써 에테르 코어를 천공기 위에 올려 놓았으니 말이다.
"결국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모양이네요. 쯧쯔.
남의 물건을 가지고 가서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거죠. 거기 원장님 안 그렇습니까?"
세진은 어둠 속에서도 잔뜩 일그러진 원장이란 사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한 점의 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원장은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지만 불안한 표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한쪽에서 희미한 빛이 터져 나왔다.
"음?"
"서과장?"
"네. 접니다."
"그건 뭔가?"
"비상시에 사용하게 만들어진 조명입니다. 전기가 아니라 화학반응으로 빛을 내는 겁니다.
현장 요원들에게 지급되는 물품입니다."
"현장에서 떠난 지 오래 되었어도 아직 용케 그런 걸 챙겨 가지고 다니는군."
"몸에 익은 습관 같은 겁니다.
원장님."
서대철 과장은 빛이 나는 시계를 원장과 세진 사이에 내려놓았다.
초록색의 빛은 흐릿해서 겨우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지만 암흑과 비할 바는 아니었다.
"우리가 과욕을 부렸군."
원장이 세진을 보며 말했다.
녹색이 감도는 조명을 받아서 원장의 얼굴빛이 기괴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세진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벗들에 대한 경각심이 없어진 모양입니다. 저를 대하는 것이 아주 강압적이더군요?"
"그건 단지 실수일 뿐이네. 우린 절대 벗들과 적대 관계가 될 생각이 없네. 당연히 자네에 대한 대우도 최상이어야 하네. 그런데 그만 자네가 밝혀 낸 사실이 너무 극적이어서 다들 흥분을 한 거네. 거기다가 이곳에 있는 이들은 자네에 대해서 모르는 이들이 많다보니 실수가 겹친 것이지. 특히 주서관 소령은 자네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순수 군인이네."
"그런 사람을 제게 붙인 것이 서대철 과장이고, 더 나아가면 당신들이죠. 안 그렇습니까?"
"그건 알다시피 자네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네."
"뭐 좋습니다. 그래서 어쩔 생각인지 모르지만 이번 EMP사건부터 해결을 해야겠군요. 골치가 좀 아프시겠습니다. 하하하."
세진은 여전히 원장에게 삐딱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지금 세진에게 힘을 쓸 수 없는것이 정부의 입장이었다. 국정원 원장이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와도 세진이 꿇릴 일은 없는 것이다.
"여기 일은 여기서 알아서 하지. 그런데 그건 어쩔 건가?"
"결계 말입니까?"
"그렇지."
"몇 번 더 실험을 해 보자고 하니, 그렇게 하고, 그 후에 내부로 진입해서 안쪽을 소탕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그 다음에는 그에 맞춰서 계획을 세워야지요. 그리고 보고 받으셨는지 모르지만 그 개구멍이 유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죠? 1분 남짓인데 투입 인원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겁니다."
"그거야 다시 입구를 열면 되지 않나?"
세진은 원장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후훗, 거기 그 공간이 이면에 있는 곳이라면 같은 자리에서 입구를 열어도 같은 위치에 열린다는 보장이 없죠. 뭐 그것도 실험을 통해서 확인을 하긴 해야겠네요."
원장은 세진의 비웃음에 달아오른 얼굴이 비상 조명의 색 때문에 가려지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덜컥!
"여기 급한 대로 비상 발전기를 가동시켰습니다. 작동중이 아니라서 이번 사고에서 무사했습니다.
직원 하나가 환하게 밝은 등이 달린 소형 발전기를 들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진은 일그러지는 원장의 얼굴을 보면서 저 죄 없는 직원은 찍혀도 심하게 찍힐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열심히 한 것이 무슨 죄일까.
어쨌거나 세진은 구겨진 원장의 얼굴을 보면서 원장의 무릎으로 모았던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흩어 버렸다.
성질이 나서 원장이 나갈 때에 무릎에 디버품을 한 방 날려 줄 생각이었는데 구겨진 얼굴을 보니 좀 봐주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대전에 보관하고 있던 에테르 코어들이 다량 서울대의 관악산 대몬스터 작전 본부로 옮겨져 왔다.
그리고 세진이 가까운 지하철 역, 무인 물품 보관함에서 꺼내 온 금속판으로 실험이 시작되었다.
세진은 그 판을 천공기 즉 구멍 뚫는 기구라고 불렀고, 연구원들도 모두 그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실험은 먼저 몬스터 영역 몇 곳을 찍어서 어느 정도 안쪽으로 들어가야 이면 공간에 구멍이 생기는가 하는 점과 매번 같은 곳에 구멍이 생기는가, 얼마나 공간이 유지되는가 등을 살피고 이면 공간이 생성되는 곳에서는 언제나 이상 없이 공간이 열리는가도 알아봤다.
그 때문에 상당히 많은 에테르 코어가 소비되었다.
결국 이런 저런 실험에만 여름이 가고 가을에 접어들 때가 되어서야 실험 결과가 정리되었다.
"천공(穿孔)은 1분 정도 유지가 되고, 천공이 이면 공간에 열리는 위치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같은 곳에서 열어도 위치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천공은 몬스터 영역으로 지정된 안쪽으로 200미터 이상은 진입한 후에 뚫는 것이 안정적입니다. 그 이하에선 간혹 에테르 코어만 소비되고 천공이 뚫리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아울러 몬스터 영역 밖에서는 소용이 없었습니다."
"천공으로 진입 후에 그곳에서 다시 천공으로 탈출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적어도 들어간 위치로 다시 나올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기 어렵습니다. 이유는 매번 다른 위치로 진입구가 열리는 것으로 봐서 그곳이 결계의 벽이 있는 곳이라 믿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의견으로는 이쪽에서 몬스터 영역 어디서건 구멍을 낼 수 있다면 저 쪽에서도 그래야 하니 위치는 상관없을 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박세진씨의 의견으로는 단일 종류의 몬스터가 나타나는 것으로 봐서, 그 몬스터들이 각각 다른 이면 공간에 있을 가능성이 높고, 또 그 곳에 몬스터를 발생시키는 어떤 요소가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 원인을 제거하면 이면 공간을 없애지는 못해도 몬스터 영역이 된 지역은 회복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지원자를 받아서 이면 공간 안쪽으로 진입한 후에 다시 천공기를 사용해서 탈출하는 것을 실험하기로 했습니다. 박세진씨가 직접 하기를 원했지만, 1회용 천공기를 받아서 실력 있는 특수 요원 한 팀을 진입시키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성공하면 이후에 다수의 특수 요원들을 진입시켜서 안쪽을 소탕하는 작전을 펼칠 계획입니다. 이것이 성공하면 우리 나라는 몬스터 영역을 극복한 최초의 국가가 될 것입니다.
"다만 그 천공기의 제작이 어리 공방이라는 곳에서만 가능하고, 그 노하우를 카피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은 차후에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커엄, 그 문제에 대해서는 극비로 취급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천공기의 존재나 그 제작에 대한 이야기는 나돌지 않아야 할 것이네. 만약 이 일이 외부로 알려지게 되면 우리도 문제지만 그 일과 관련 있는 이들은 다시 벗들의 방문을 받을 가능성이 있네. 그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우방국들에게도 문제가 될 것이네. 만약에라도 어설픈 감정으로 동맹국이랍시고 정보를 넘기는 짓은 하지 않기를 권고하는 바이네."
몬스터의 출몰이 국가적인 재난이 되자, 국회에서 허락한 대통령 직속 기관이 생겼다.
그것이 바로 몬스터 대책본부고 지금 회의를 하는 이들이 그 구성원들이다.
어쨌거나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고 모인 이들이라 이번에 몬스터 영역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그 핵심이 되는 기술이 알지 못할 세력의 손에 들어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어디 다른 나라에 선을 대고 있는 인물은 없을지, 그리고 그런 사람이 쓸데없이 정보를 누출하지나 않을지 걱정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벗들의 방문이라는 말 앞에서는 어느 정도 해소가 되고 있었다.
재수 없으면 일본 꼴이 날 거란 사실을 아직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잊기에는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난 것이 아니다.
이제 열 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어쨌거나 한국의 입장에서는 몬스터 영역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 작품 후기 ====
========================천공기... 넵... 뭐 영어로 하려다가... 그냥 썼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정하고 나니까 펀칭기가 생각이 나더란... 거 종이에 구멍 뚫어서 철할 때에 쓰던 건데... 요즘도 쓰나 몰라... 크크크.
자, 오늘도 한 챕터 올라갑니다.
이거 언제까지 가능할지... 저도 저 자신을 시험하는 기분입니다.
그래도 성공하면 행복하죠.
읽으시는 분들도 행복하시길... 그런데 예전에 썼던 스킬피스 그걸 다시 수정해서 올리기 시작했더니 시간이 더 모자라... 피가 마르는 것 같습니다. 하하핫. 죽겠어요.
힘, 힘을 주세요... 좀 더 행복하게... 추천! ^^